수도권 남부서 중개업소 1860곳 문 닫아
거래 안되는 시장…급매물도 거래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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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권모 공인중개사는 찾아온 손님에게 지금이 잠실주공 5단지 아파트를 싸게 살 기회라고 설득하고 있었다.
재건축 안전진단(건물 노후도를 판단해 재건축 시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곧 통과할 예정인 데다 제2롯데월드 착공도 임박해 집값이 뛸 가능성이 크다며 매수를 권유했다. 게다가 112㎡형은 올 초보다 2억7000만원이나 싸게 살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손님은 “집을 사려면 대출받아야 하는데 금리가 오르면 부담만 커지는 게 아니냐”며 발걸음을 돌렸다.
서울과 수도권 주택시장이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래 감소 속 가격 속락'이 계속되면서 침체 기간이 길어지고 골도 깊어지는 모습이다.
서울 아파트값은 3월초부터 13주 연속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 하반기의 15주 연속 하락에 이어 가장 긴 약세국면이다. 분양시장에서는 미분양 적체→입주율 저하→신규 공급 감소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두드러지는 장기침체 조짐=부동산 업계는 값이 떨어지는 것보다 거래가 안되는 데서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1일 오후 경기 고양시의 A부동산 중개업소에서는 공인중개사와 50대 여성이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손님은 “지난해 팔았으면 손해가 크지 않았는데 중개업소측이 매도 시기를 늦추는 바람에 지금은 팔지도 못하고 돈이 묶였다"며 "중개업소도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인중개사는 “새로 입주할 아파트 값이 분양가보다 떨어지고 그나마 팔리지도 앉자 중개업소 탓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수원시 영통구의 김모 공인중개사는 지난해 10월부터 올 4월까지 매매계약서를 한 건도 쓰지 못하자 지난달 중개업소 문을 닫았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자료에 따르면 올들어 4월까지 용인 등 수도권 남부에서 폐업신고를 한 중개업소가 1860곳에 이른다.
기존 주택의 거래 단절은 새 아파트 시장에까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아파트를 지은 A건설사는 요즘 비상이 걸렸다. 회사 관계자는 “정식 입주기간(45일)의 입주율이 전체 가구수의 20%를 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기존 집이 팔리지 않아 분양받은 아파트로 이사를 오지 못하는 계약자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조인스랜드 조사에 따르면 다음달부터 연말까지 수도권에 입주하는 아파트는 6만3000여가구. 이런 단지 대부분이 마이너스 프리미엄(시세가 분양가를 밑도는 것) 상태다.
주택산업연구원 권주안 선임연구위원은 “올 수도권 입주아파트의 70% 가량이 중대형이라 무주택자보다는 기존 주택을 보유한 수요자들이 계약을 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새 아파트 계약자들이 급하게 처분하려는 매물이 하반기 내내 쏟아지면서 집값 하락세를 부추길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다음달부터 6000가구 이상의 새 아파트가 입주하는 용인시 수지구의 경우 요즘 기존 집값 하락속도가 빠르다. 3.3㎡당 700만원 초반대에 나온 대형 아파트도 있다. 웬만한 수도권 보금자리주택의 분양가보다도 싼 가격이다.
분양가를 한참 밑도는 매물이 속출함에 따라 분양시장은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지난해 10월 시범지구 사전예약 때만 해도 인기를 끌었던 보금자리주택에서도 미분양이 나왔다. 주택상품을 내놔도 수요자들의 눈길을 끌기 어렵다고 판단한 주택건설업체들은 분양일정을 계속 미루고 있다.
◇시장을 보는 다른 시각=학계와 연구기관은 침체국면이 6개월 이상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연구소의 연구원은 "주택시장 붕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금리까지 오르면 매도 물량이 늘어 집값이 더 떨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또 다른 연구기관의 연구위원은 "정부는 시세 통계상 나타나는 하락폭을 근거로 집값 하락폭이 크지 않다고 본다"며 "하지만 거래가 없어 가격 하락폭이 통계에 잡히지 않은 것이지 실제 일부 지역의 집값 하락폭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입장은 확고하다.
금융감독위원회 정은보 금융정책국장은 "가계부채 건전성 확보 및 주택시장 과열 진정이라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의 도입 취지를 감안할 때 현 단계에서 이를 완화하는 것은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국토해양부 주택정책과 진현환 과장도 “시중 부동자금이 800조원에 이르고, 보금자리주택과 4대강 토지보상금으로 계속 돈이 풀릴 것이기 때문에 시장에 잘못된 신호(규제완화)를 보내면 언제든지 다시 불안해 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