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유배지 관람권1
추사유배지 안내지2
제주도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유배지로
광해군의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곳, 조선의 주자가 되고 싶었던 송시열이 마지막 머물던 곳
김정희가 불멸의 추사체를 완성했던 곳, 37년을 신앙 하나에 의지하여 정난주가 외로이 살던 곳이다.
(추사유배지)(사487호)(대정읍성)3
추사 김정희(1786년-1856년)는 서예뿐 아니라 금석고증학
경학, 불교, 회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19c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석학이다.
이곳은 추사가 55세가 되던 해에 윤상도 옥사사건에
연루되어 먼 유배길에 올라 약9년간 유배생활을 했던 곳으로 2007년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곳이다.
추사선생은 이곳에 8년 3개월 머물면서 부단한 노력과 성찰로
법고창신하여 추사체라는 서예사에 빛나는 업적을 남겼고 그 유명한 세한도(歲寒圖)를 그려내었다.
이곳은 집터만 남아 이용되다가 1984년
강도순의 종손의 고증에 따라 복원되었고, 2010년 추사관을 지어 추사와 관련된 역사자료를 전시하였다.
尹尙度(1768년-1840년)는
순조30년(1830년) 호조판서 박종훈과 유수를 지낸 신위, 어영대장 유상량 등을 탐관오리로 탄핵을 한다.
그러나 왕의 미움을 사서 추자도로 유배되고, 추사의 아버지 김노경은 배후조종 협의로 고금도에 유배된다.
그러다가 헌종6년(1840년) 의금부에 압송되고 국문을 받다가 윤상도는 아들과 함께 능지처참된다.
이 사건을 두고 윤상도 옥사라고 하는데
추사는 윤상도가 올렸던 상소문의 초안을 잡았다는 이유로 이 사건에 뒤늦게 연루되어 제주로 유배되었던 것이다.
추사유배지(대정성지)(기12호)4
대정성지는 조선시대 제주도의 3읍성 중 하나로 대정현에 축성된 성곽유적지이다.
제주도는 1416년(태종16년)에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등 3개의 지역으로 분리되었는데
대정성은 분리된 2년 후인 1418년(태종18년) 봄에 초대 현감인 兪信이 축성했다.
추사유배지(대정조점)5
제주 추사관(세한도)(국180호)6
추사가 유배시절 제자인 우선 이상적(1803년-1856년)이 책을 보내준 데에 대한 보답으로 그려준 그림이다.
이 작품은 예서체로 쓴
세한도라는 표제와 소나무, 잣나무, 가옥 등으로 이루어진 간결한 화면 그리고 김정희의 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발문에 쓰여있는
날이 차가워 다른 나무들이 시든 뒤에야 비로서 소나무가 늘 푸르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는 구절과 잘 부합된다.
추사관의 세한도는 당대 최고의
추사 연구가였던 후지스카 치카시(1879년-1948년)가 1939년 복제하여 만든 한정본 100점가운데 한 점이다.
세한도는 서화일치를 추구한
추사 김정희의 높은 정신세계를 반영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문인화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명작이다.
우선 이상적은 스승의 작품을 가지고 연경에 갔으며, 1845년에 장악진, 조진조, 등 청나라의 명사 16인의
제, 찬을 받아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이 후 세한도에는 김석준, 오세창, 이시영, 정인보 등 한국인의 글이 덧붙여져서 오늘에 이르렀다.
추사 김정희의 삶과 업적7
추사의 해천일립상(海天一笠像)8
추사 김정희의 유배시절 모습을 그린 해천일립상을 새긴 입석(남문지못)
추사의 무량수각(해남 대둔사에 있는 탁본)9
무량수각은
추사가 제주에 유배오던 중 해남 대둔사에 둘렀다가 써 주었다는 예서체 현판이다.
대둔사의 대웅보전
오른쪽에 걸린 이 현판은 예서체의 멋을 한껏 부렸는데, 획이 대단히 기름지고 윤기가 난다.
추사는 이 글씨를 써 준 뒤 초의에게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이라는 현판을 떼어내도록 했다.
추사는 그 후 9년 뒤 제주 유배가 풀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이 글씨를 보고는 자신의 현판을 떼고 이광사의 현판을 걸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지금도 대둔사 대웅전에는
이광사의 현판이 걸려있다. 무량수각은 무량수불인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을 말한다.
추사가 쓴 의문각10
의문당은
추사의 스승인 완원(1764년-1849년)의 호이며, 추사가 제주 유배시절 대정향교에
써준 현판으로 제주지역 유생들과 추사와의 교류 흔적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1846년 11월에 추사가 써주었고, 대정향교 학생들의 공부방인 동재에 걸려 있었다.
현판 뒷면에 보면 향원 오재복이 새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정향교는 추사 유배지와 2km정도 떨어진 단산이라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추사가 쓴 옥산서원 현판11
추사가 쓴 보정산방12
다산의 학예와 인품을 존경하고 보배롭게 여기는 산방이라는 뜻의
보정산방은
24세 연하인 추사가 강진 귤동마을의 다산 제자에게 써준
예서 현판 글이며, 현재 다산초당 동암에는 추사 친필본을 모각한 현판이 걸려 있다.
추사가 쓴 판전13
화엄경경판보관전각의 현판(서울 봉은사)
추사의 초상화와 추사의 흉상14
(2011.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