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9 전략 폭격기(下)
B-29는 제작과정에서 기본설계도도 수정, 변경되었는데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익면하중(翼面荷重)에 대한 것으로 기체 항공역학상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었다.
익면하중이라면 기체의 총 중량을 날개면적으로 나눈 값을 말하는데 그것은 기능과 안정성의 상관관계에 있어서 비행기의 이륙, 체공, 착륙이라는 관점에서 항공역학상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즉 날개가 넓으면 이륙, 착륙이 부드럽기는 하나 속도가 줄고, 반대로 날개가 좁고 길면 속도는 빠르나 이륙과 착륙 시 대단히 위험하다.
그리고 또 중요한 문제는 공랭식 복합 엔진에 있었다.
최초에 비행기의 중량을 줄이기 위하여 무게가 알루미늄의 1/3 정도인 마그네슘을 사용하여 엔진을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18개의 실린더에 계속적인 충격과 마찰이 반복되기 때문에 부서지고, 엔진에 불이 났던 것이다.
그런 문제는 1943년 2월 시험비행 때 발생했다. 시험비행기가 군 관계자와 보잉사 기술자들을 태우고 약 40여분동안 비행했을 때 마그네슘으로 만든 엔진에 불이 나서 비행기가 추락하여 결국 31명의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이 사고로 보잉사의 베테랑 기술자 대부분이 사망하게 됨으로서 B-29 개발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점은 폭탄을 투하하는 문에도 있었다. 폭탄투하실 문이 천천히 열리고 있는 동안 공기의 저항 때문에 비행기의 속도가 떨어지고 기체가 흔들려서 목표물 조준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기술자들은 0.7초 이내에 문이 열리고 3초 이내에 닫히게 하는 공기압축 제어장치를 고안했다.
그러고, B-29에는 각종 장치를 작동시키는 전기 모터가 150개 이상 있는데 이것들을 작동시킬 수 있는 엄청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 새로운 발전기를 고안해야 했다.
1943년 7월에 모든 시험을 통과하고, 완성품이 된 XB-29 비행기가 출고 되었다. “하늘의 요새” B-29 VLR 전략폭격기의 위용이 드러났다.
날개 길이가 43m, 동체길이 30m, 꼬리 수평 날개 13m, 수직 방향타가 8m이상 이며, 사이클론 R-3350이라 불리는 2,200마력의 복합 엔진 4기에 각각 5m나 되는 4엽 프로펠러가 있다.
이 비행기의 무게는 제작기간 중에 추가된 최종 중량이 47.4톤이었으며, 짐을 실은 최대 중량은 64.3톤(폭탄 적재 10톤)이다.
최대 속력은 570km/h, 항속거리는 6,000km이며 고공 9,000m까지 올라간다.
승무원은 조종사, 레이더 통신병, 기관총사수 등으로 11명이 탑승하며, 무장은 CAL50 중기관총 12정이 기수와 동체, 꼬리 부분에 장착되어 있다.
그리고 승무원이 위치하게 될 비행기 내부는 기압을 정상으로 유지 시켜주는 압력 설비가 되어있고, -45℃나 되는 9,000m 상공에서도 평상복으로 일할 수 있다.
만약 다른 비행기라면 산소마스크를 쓰고, 방한복을 입어야 한다. 이러한 저온과 저기압의 극심한 환경에서는 혈관에 질소포말이 발생하는 이른바 ‘비행사의 잠수병’을 야기 시키기 때문이다.
B-29는 정상적인 제작기간 5년을 4년으로 단축시켜서 생산했기 때문에 실전에 배치될 때까지 계속적인 보완작업이 수반되었을 뿐만 아니라 조종사를 비롯한 승무원들을 훈련시키는데 많은 시간을 소모하지 않을 수 없었다.
B-29의 시제품이 출고된 후 1944년 1월 말까지 단지 70명의 기장을 배출했을 뿐이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944년 3월 중순 전투준비를 완료한 B-29는 마이애미와 뉴펀들랜드를 거쳐 영국으로 날아갔다.
이것은 일본을 기만하기 위한 양동작전 이었는데, B-29가 영국에 착륙한지 45분 만에 독일 정찰기 조종사에 의해 촬영되고 말았다.
물론 일본의 첩보기관에서도 B-17이나 B-24보다 더 큰 비행기가 날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
이미 3월 1일까지 제20 폭격사령부와 제58 폭격비행단이 창설되었다. 비행단은 재이크하먼 대령이 사령관에 천거 되었고, B-29 120대와 3,045명의 장교, 8,099명의 사병으로 구성되었다.
B-29는 개발과정에서 기술자들의 고통과 희생이 따르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대가는 헛되지 않았다.
그들의 축적된 노하우로 인하여 항공기술이 혁신적으로 발전하였다. 즉 레이더에 의한 새로운 운항체계는 정교한 유도장치의 선구자가 되었으며, 몇 십 년 후에 우주 탐험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그리고 비행기사고만나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블랙박스도 B-29의 산물인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자 B-29는 보잉707과 747로 다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