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17, 포항바다를 걸으며 연이은 낯선 풍경에 반하다
1. 일자: 2024. 9. 12 (토)
2. 장소: 해파랑길 칠포해변~송도해변
3. 행로와 시간
[칠포해변(10:52) ~ (다리 우회길, 데크) ~ 용안해변(11:48) ~ 영일신항만(12:03) ~ (도로/펜스길) ~ 우목항(12:37) ~ 죽전해변(13:08) ~ 공사중 해안(13:17~34) ~ 여남 스카이워크(13:37) ~ (환호해변) ~ 점심(바다원해 14:05~35) ~ (해안도로) ~ 영일각(15:08) ~ 동빈 큰 다리
(15:52) ~ 송도해수욕장(16:20) / 20.2km]
포항은 늘 차를 타고 스쳐 지나가며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는다.
이 가을, 해파랑 포항해변길을 따라 길게 걸으며 도시 포항과의 인연을 만들어 가고 싶다.
* 코스개요
- 송도해변에서 시작해 칠포해변까지 구간
- 공업도시 포항의 시원한 바다와 함께 걷는 길
- 산업화의 상징 포스코를 조망하며 걸어가는 코스
* 관광포인트
- 해파랑길 17코스의 시작을 알리는 평화의 여상과 포토존
- 송도해변을 지나 북부해변에 닿으면 만나는 고사분수대
- 영일대 해수욕장에 위치한 해를 맞는 영일각
- 누에고추 모양을 한 포항시의 대표 공원 중 하나 환호공원
- 포항영일신항만을 지나 칠포해변까지 만나볼 수 있는 드넓은
바다카페에 올라온 트레킹 코스의 대강과 관광 포인트를 살핀다. 남진을 기준으로 게재된 글에서 북진 등로와 길 주변의 감을 잡는다.
< 칠포해변 ~ 영일신항만 >
10:50, 가을 햇빛이 쏟아지는 칠포해변에 덩그너니 선다. 해변을 따라 잠시 걷는다. 철 지난 해수욕장은 여름의 잔재인 냥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나뒹군다. 공사 중인 다리를 우회하여 1km 넘게 걸었다. 길이 어수선하다. 도로, 숲길, 데크, 해변이 계통없이 어지럽게 나타난다. 그래도 먼 바다의 풍경은 가슴이 뻥 뚤릴 정도로 시원하다.
해변에 세워진 Yonghan Beach 화려한 간판에 이끌려 해변 모래사장으로 내려선다. 멀리 영일신항만 방파제를 등대 삼아 테트라포트와 계단이 길게 이어진 등로를 따라 걷는다. 호젓하다. 파도소리 만이 정적을 깨우는 한적한 해안을 한참 걸어 항만 부근 도로로 올라선다. 한 시간 넘게 꿈 꾸듯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선 해안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원 없이 걸었다.
'낯선 환경에 날 노출시키자. 그리하여 새로움을 경험하자' 가 평소 다짐이니, 성공이다.
< 영일신항만 ~ 환호해변 >
항만 옆 도로가 이어진다. 신항만 펜스를 바라보며 1km 이상 걸었다. 한낮 햇살의 열기가 온 몸으로 느껴진다. 해파랑 등로는 짓다만 건물 펜스를 따라 또 길게 이어지더니, 작은 모퉁이를 돌자 거짓말 항구가 나타난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다. 우목항을 따라 마을이 이어지고, 이어 식당과 카페들이 보인다. 포구의 정취가 느껴지는 살가운 동네를 지난다.
멀리 신기루처럼 산업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포항제철 일 게다. 생각보다 큰 규모에 놀란다. 죽전해변에는 차들이 백사장에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는 차박도 가능한가 보다. 잠시 어수선한 길이 이어지더니, 등로가 끊긴다. 해안 사면 절개지 공사가 진행 중인가 보다. 망설이다, 낚시하는 분들이 보여 펜스를 넘어 해안을 따라 걷는다. 그 끝은 놀랍게도 바다 위에 스카이워크를 만든 바다전망대였다. 포항 해파랑길은 반전의 연속이다. 조금 전까지 위험한 절개지 공사장을 걸었는데, 느닷없이 바다 위에 놓인 구름다리 위를 걷다니... 놀라움의 연속이다. 잠시 전망대 위에 선다. 이곳에서도 포스코 제철소 건물의 위용은 압권이다.
환호해변을 따라 산업도시 포항의 풍요를 상징하듯 근사한 식당과 카페들이 즐비한 잘 정비된 길을 걷는다. 주변에 볼거리가 많아진다.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 많다. 해변에 이국적인 설치물들이 꽤 있다. 시간이 오후 2시에 가까워진다. 주변에 식당을 물색하다가 '바다원해' 라는 간판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간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2층 창가에 앉는다. 주문한 물회에는 밑반찬과 함께 매운탕도 딸려 나왔다. 그 유명하다는 포항물회를 현지에서 먹는 감동까지 누리며, 최근 산행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맛난 식사를 했다. 이 식당의 이름은 따로 기록해 두어야겠다.
< 환호해변 ~ 송도해변 >
식후 포만감에 젖어 해변을 빠르게 걷는다. 배가 든든하니 탁 트인 바다와 해안 풍경이 더욱 낭만적으로 나가온다. 산업도시 포항의 바다와 풍광에 점점 빠져든다. 칠포해변 출발 후 잠시 가졌던 지저분한 이미지가 일거에 사라지고 넓고, 깨끗하고, 세련된 느낌으로 바뀐다. 잘 먹은 음식이 기분 전환에 일조했다.
환호동 바다에서 바라보는 풍경, 멀리 신기루처럼 산이 흐르고 그 아래로 산업단지가 몰락한 혹성의 잔재인 냥 서 있고, 그 앞 바다에 떠 있는 한 척의 배 만이 현실을 이야기 한다. 오래 보아도 질리는 않는 풍경에 취해 걷는다. 해변에는 텐드들이 즐비하고 이국적인 파라솔들이 시선을 끈다.
해안은 북구 두호동으로 연결된다. 해변으로 내려선다. 영일각이 존재를 드러낸다. 무척 큰 한옥 누각 팔각지붕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포항의 또다른 랜드마크를 이정 삼아 걷고 사람들의 표정을 살핀다. 각기 모습은 달라도 나름의 표정으로 이 바다를 즐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내가 바닷길을 걷는 이유 다른 하나는 즐겨워하는 사람들과 마주하고 싶은 욕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영일각을 지나 항구동으로 들어선다. 거대한 포항항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정박해 있는 배들의 사이즈도 무척 크다. 포항 해변의 풍광은 내가 이제껏 경험한 그 어떤 바닷가 풍경보다 변화가 많다. 이제 날머리인 송도해변을 알리는 이정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긴 다리를 건넌다. 동빈큰다리 이다. 다리 위에서 보는 포항항은 더 거대했다.
시간은 4시가 넘어간다. 해그름이 느껴진다. 20km 가까이 걸었다. 무릎에 조금씩 신호가 올 즈음 다시 해수욕장이 나타난다. 송도해변이다. 해수욕장 뒤로 거짓말처럼 포항제철 공장들이 그 거대한 위용을 드러낸다. 몇 시간 째 그 모습을 보아온 구조물이지만 가까이서 보니 '여긴 또 어디지?' 란 생각이 들만큼 낯설다. 거대함이 주는 비현실적 모습이 새로움을 준다.
누군가, '사진 많이 찍으셨습니까?' 하고 묻는다. 대장이다. 인사하고 길 건너를 보니 도로변에 산악회 버스가 있었다. 5시간 반이 넘는 긴 여정이 이렇게 순식간에 마무리된다.
< 에필로그 >
음식점들이 줄지어 있는 송도동 도로 옆 작은 공터에 앉아 사진을 살핀다. 너무 많다. 길을 나서며 오늘은 정말 인상적인 것만 찍자고 다짐했는데, 또 공염불이 되었다. 실천되지 않는 다짐이었다. 어찌보면 의식했는데도 사진이 많다는 건, 그만큼 오늘 트레킹은 볼거리가 많고 인상적인 순간들이 많아다는 반증이다. 그대로 받아드리기로 한다. 사진 몇 장은 지웠지만 나머지는 스토리로 엮어 사진 장 수는 줄이고, 기록에 남기기로 했다.
버스가 정시에 출발하고 이내 차창 밖은 어둠이 깃든다. 오늘 걸은 길을 되새김질 해 본다. 한마디로 기대이상이었다. 포항 바다에서 낯선 풍경에 반했다. 바닷길, 그 탁월한 보편적 가치의 위대함을 걸으면서 확인했다. 바다는 그저 드넓다면 그리 감동적이지 않을 게다. 만(灣)이 있어 물길에 굽이가 생기고, 주변에 항구가 만들어져 배들이 정박하고 그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살고, 그들의 색다른 삶의 문화가 형성되는 그 이치를 깨닫는다. 왜, 북부와 남부의 일부를 제외하고 아프리카 해안에 큰 항구가 드물고 큰 도시가 형성되지 못했는가는 밋밋한 해안선에 그 답이 있다.
포항 해파랑길을 걷고 나서 느는 생각, 모두에게 공평한 시간을 알차게 쓰는 방법 중 으뜸은 스스로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노출해야 한다. 길에 나서고 내 발로 걷는 게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