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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갈라디아서의 개요와 핵심
(최갑진목사정리)
1) 기록목적 및 배경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는 달리 특정한 하나의 교회에 보낸 편지가 아니라 갈라디아 지역에 흩어진 여러 교회에 보낸 편지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경상지역에 보낸 편지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편지가 도착한 지역이 경상북도인지 경상남도인지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분명한 사실은 갈라디아 교회가 바울의 복음을 듣고 새롭게 생겨난 교회라는 점인데 교회가 설립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울의 권위에 도전하는 유대주의자들이 교회를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1:6).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의 이런 형편을 크게 안타까워하며 다른 어느 서신들보다 더욱 격렬한 논쟁을 펼친다. 그래서 갈라디아서는 ‘기원’이나 ‘찬송’ 혹은 ‘감사’의 내용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① 갈라디아 교회에 침투한 유대주의자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갈라디아 교회를 위협한 거짓 교사들은 ‘할례당’ 이라고도 불리는 ‘유대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려면 유대인의 정체성과 관련한 외적인 ‘표지’들을 반드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행15:1). 그들은 할례를 억지로 받도록 하였으며, 안식일과 절기와 음식 등의 정결법을 강요하였다(갈 4:10,21;5:3). 그러나 바울은 그들이 유대 혈통을 자랑하고 동시에 동료 유대인들의 박해를 모면하기 위하여 거짓 교훈을 전파한다며 맹비난하였다(갈 6:12,13). 한 마디로 그들은 비겁한 거짓말쟁이들이었다. 바울은 거짓 교사들로부터 갈라디아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이 편지를 기록하였다.
②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이해시키기 위하여
갈라디아 교회는 신생교회였다. 그들은 여러 가지 사정상 복음을 충분히 배울 기회를 얻지 못하였고 교회의 교사들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특히 율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구약의 정통에 취약하였다. 바울이 이상히 여길 정도로 갈라디아 교회가 빨리 다른 복음에 넘어간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갈라디아 교회가 유대교의 외식을 따르지 않고 순수한 복음의 기초위에 바로 세워지길 기대하며 이 편지를 기록하였다.
2) 핵심 주제 및 교훈
① 바울의 사도권
바울은 이방인들의 사도로서 유대주의자들로부터 이방인 교회를 보호하는데, 많은 힘을 쏟았다. 따라서 유대주의자들에게 바울은 눈에 가시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을 여러 면에서 음해하였는데 특히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희석된 복음’을 전한다고 주장했다. 이방인들이 유대인이 되려면 유대교의 엄격한 규율과 할례와 같은 표지들이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에 바울이 그것들을 제외해 사람들에게 교회의 문턱을 낮춰주고 인기를 얻으려 했다는 의미이다. 바울은 그들의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일축하며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을 적극 변호한다(1:10). 아울러 유대주의자들은 바울의 사도 직분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가 예수님의 직접 제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사도의 직분은 예루살렘에 사람들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피력한다. 그가 이방인의 사도로 특별히 부름을 받은 과정을 설명함으로써 근거를 제시하였고, 베드로마저 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할 때 자신이 책망했다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그의 권위를 강조한다(2:1-21).
② 이신칭의
바울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믿음만이 의를 얻는 유일한 수단’이었음을 강조하면서 구약의 사건들, 특히 아브라함을 중심으로 논증하고 있다. 이는 로마서에도 유사한 구조로 나타난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의’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며(갈2:16) 행위는 결코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바울은 할례나 정결법 및 유대인의 명절과 같은 표지로 돌아가는 것은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미 없게 만드는 것이며 다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 율법 아래 자신을 종속시키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율법’으로서 의를 이루려 한다면 그 사람은 율법 전체를 지켜야 하지만, 그렇게 구원을 받을 자가 아무도 없고 그런 주장을 하는 유대주의자조차 그것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다(6:13).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표지나 행위 등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에 의한 선물임을 매우 강한 어조로 논증하고 있다.
③ 초등교사(3:24)
초등교사는 “소년-인도자”로서 대개 노예들이었다. 이들의 의무는 주인의 아들을 감독하는 일이었는데 훈육을 엄하게 하였다. 그래서 소년들은 초등교사에게 해방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율법을 매우 부정적으로 다루고 있다. 바울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율법은 그 이후에 덧붙여 주신 것이며 그 목적은 사람들이 죄를 죄로 깨닫도록 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율법을 구원을 위한 수단으로 주신 적이 없으며 그들의 양심을 위하여 율법을 더하여 주셨다는 말씀이다. 모세의 율법 아래 사람들은 율법의 엄한 훈육을 통해 자신들의 비참함과 무능함을 절감하며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깨닫고 겸손히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날을 소망해야 했다. 소년이 장성하여 초등교사에서 벗어날 날을 기대하여 갈망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율법에서 벗어날 은혜의 날을 소망해야 했던 것이다.
④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삶
바울의 논증을 따라가다 보면 율법이 이제는 쓸모가 없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모세의 언약이 아닌 그리스도의 언약 아래 있는 사람들은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 바울은 본서에서 성령을 12회나 언급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성령 아래 있는데 성령께서는 율법의 요구를 응당 행하게 하신다. 율법의 요구를 기꺼이 즐겁게 행하는 것이다. 바울은 성령의 열매는 율법의 전적인 지지를 받는다고 하면서(5:23) 그리스도의 율법을 성취하라고 명령한다(6:2). 성령을 받은 사람은 율법의 심판에서는 벗어나지만,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율법에 더욱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성령 이전의 시대와 성령 이후에 율법 자체는 그대로이지만 그 기능과 의미는 전혀 다르다.
⑤ 남갈라디아설과 북갈라디아서
갈라디아는 일반적으로 중부 유럽에서 이주한 ‘켈트인’들이 거주했던 소아시아 ‘북부지역’을 말한다. 그런데 현대 학자들은 로마가 행정상 편의를 위해 소아시아 ‘남부지역’을 ‘갈라디아주’에 포함 시켰다는 사실을 근거로 바울의 활동이 뚜렷한 남갈라디아설을 지지한다(행14:1-23). 바울은 건강이 좋지 않아 당시 요양 차 갈라디아에 머물렀지만(갈4:13) 험준한 북쪽 산악 지역은 휴양지로 적합하지 않은 데다 이 지역에 유대인들이 거주했다는 기록이 없으므로 유대주의자들이 침투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편지는 바울의 1차전도 여행 이후에 고린도에서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갈라디아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바울이 갈라디아에 요양한 근거가 없다면서 그의 말은 ‘육신의 약함에도 불구하고’라는 의미일 뿐이며 ‘갈라디아 사람들’은 행정구역을 의미하지 않고 실제 갈라디아인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3:1). 아울러 사도행전 16:7에 보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갈라디아 땅을 지나 무시아 앞에 도착했다”고 하는데 만일 ‘갈라디아’가 남부지역을 가리킨다면 북서쪽에 있는 ‘무시아’에 도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편지는 바울의 3차전도 여행 이후 에베소에서 기록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갈라디아의 지역과 연대를 확실히 결정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지역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3) 개요 및 내용
① 서언(1:1-5)
바울은 자신의 사도성을 변호하면서 편지를 시작하고 있다. 그는 여느 서신에서처럼 은혜와 평강의 인사를 전하지만 그리스도의 구속을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주제가 무엇인지를 예고한다.
② 본론(1:6-6:10)
■ 1:6-2:14 자전적 사실을 진술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다면 누구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며 공격적으로 포문을 연 뒤, 그가 사도가 되기까지의 내력을 사실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특별히 바울은 자신이 베드로의 외식을 책망했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그의 권위와 복음의 정당성을 강하게 피력한다.
■ 2:15-5:12 ‘이신칭의’에 관한 논증
⒜ 2:15-21 : 문제 제기
그는 율법으로서는 의를 얻을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으며, 누군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움을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율법 아래 있다면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은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예수 안에서 구원받으려고 하는 자들이 율법의 행위를 통해 의를 추구하는 것은 모순이며,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폐기하는 행위이다. 바울은 자신이 이미 율법 아래 죽었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다시 살아났다는 고백적 진술을 통해 그의 논지에 쐐기를 박는다.
⒝ 3:1-14 : 믿음과 행위 (논증#1)
바울은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성령을 언급한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예로 제시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그의 의로 여겨주셨다. 아브라함의 믿음 안에 있는 자들도 그와 같이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 반대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 의를 얻으려면 규례를 모두 지켜 행해야 한다. 그러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을 자가 없고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를 다 속량하셨기 때문에 율법은 아무런 권리가 없다.
⒞ 3:15-22 : 율법과 약속 (논증#2)
바울은 율법과 약속이라는 대결 구도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이어나간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430년 뒤에 주어진 율법이 파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율법은 왜 주셨을까? 그것은 죄를 밝혀주시기 위함이다. 바울은 율법 자체를 공격하지 않지만, 인간의 죄를 씻기에는 율법은 전혀 효과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 3:23-4:7 : 종과 하나님의 아들 (논증#3)
계속해서 바울은 율법을 이스라엘에 베풀어 주신 이유를 보다 심도 있게 논증하고 있다. 그는 율법을 초등교사와 초등학문에 비견한다. 그의 강조점은 두 가지이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종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둘째는 율법은 초등학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초등교사는 자녀들이 완전한 성인이 되기 이전에 미숙함으로 인하여 책망하는 역할을 한다. 그때는 자녀라도 종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완전한 자녀로서 성숙한 이후에는 초등교사에서 해방된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성숙한 자녀의 지우를 주셨음으로 초등교사인 율법은 그분의 자녀들을 구속할 수 없다.
⒠ 4:8-20 :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한 적용과 호소
바울은 지금까지의 논증을 통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호소한다. 그는 비록 유대인임에도 스스로 이방인이 된 것처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도 바울과 같이 율법주의에서 벗어나기를 요청하고 있다. 거짓 선생들은 그들을 속여 넘어뜨리려 하는 자들이나 바울은 오직 갈라디아 교회들을 향한 순전한 마음으로 사역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말에 속지 말고 자신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이전에 보였던 바울에 대한 신의와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을 회복하라고 요청한다.
⒡ 4:22-28 : 약속의 자녀와 육체의 자녀 (논증#4)
바울은 간곡히 호소한 뒤 다시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돌아가 논증을 이어나간다. 그는 아브라함의 아내였던 두 여인을 하나님의 약속과 연결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약속의 여인 사라의 자녀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약속으로 유업을 받는다. 그러나 육체를 의지하는 유대주의자들은 하갈의 자식들이다. 그들은 마치 이스마엘이 이삭을 학대함 같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괴롭히지만 하갈과 그의 아들처럼 쫓겨나게 될 것이다.
⒢ 4:29-5:12 :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한 적용과 호소
바울은 구체적 지침을 내린다. 율법의 본질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과 성령이라는 몇 가지 구도를 통해 논증하며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율법의 멍에를 메지 말고 거짓 교사들을 배격하라고 호소한다.
■ 5:13-6:10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삶에 대한 실천적인 권면
바울은 서신을 마무리하면서 혹여나 그들이 무율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율법과 관련한 실천적인 권면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는 내주하시는 성령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하고, 성령의 열매를 추구해야 한다. 성령은 참된 의를 이루며 육체의 본성을 효과적으로 이기게 하신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법을 위하여 서로 짐을 나누어지며 신령한 마음으로 서로 권면하라고 하면서 공동체성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성령을 위하여 심고, 착한 일을 하라고 명령한다.
③ 결언(6:11-18)
바울은 서신에서 마지막에서도 역시 거짓 교사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강요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전혀 의로운 자들이 아니다. 마지막에 가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다시금 십자가로 집중시킨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바울은 자신이 직접 큰 글씨로 썼다는 말로서 얼마나 자신의 마음이 간절함을 표하면서 서신을 마무리한다.
첫댓글 샬롬
하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