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오에서 만난 '명동 백작'
- <목마와숙녀> '그저' 그리고 '어차피'
이천 년 전 유대인 청년 둘은 엠마오로 가던 길에 부활한 예수를 만나서 얘기도 나눴지만 같이 식탁에 앉아 빵을 떼어 나누기 전까지 예수를 몰라보았다.
어제 부활절을 지내고 정동진을 향해 떠나온 나는 동해안 바닷가에서 멋쟁이 시인을 만났다. 6.25가 막 지나고 잿더미가 된 서울 명동에서 부활을 꿈꾸던 '명동 백작' 박인환 시인이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너무나 유명한 박인환 시 <목마와숙녀>의 한 대목이다. 7080 시절 통기타 가수 박인희가 우수에 찬 배경 음악에 감성 짙은 목소리를 얹어 낭송한 이 시가 너무 좋아 덩달아 따라서 암송하곤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며칠 전 우연히 이 詩를 라디오 방송으로 듣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저'라는 부사가 귀에 한참 꽂혔다. 위 대목 말고도 '그저'가 이 詩에 세 번이나 더 나오기 때문이다.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예전부터 궁금했다. 과연 박인환이 이 한 편의 시에 같은 낱말을 이렇게나 많이 중복해서 썼을까? 원전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내겐 마땅한 방법이 없다. 언젠가 동해안에서 구룡령을 넘어올 때 박인환의 고향 인제를 지나가는 국도변에 위치한 공원에 <목마와숙녀> 詩碑(시비)가 서 있는 걸 본 적이 있어서, 그 사진을 검색하려고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흐릿한 사진만 보일 뿐 글자까지 선명한 사진은 보이질 않으니 아쉽다. 아쉬운 마음에 이런저런 자료를 검색하다가 밑에 첨부한 동영상에 자막으로 찍힌 詩가1955년에 '산호장'에서 펴낸 <박인환 시선집>의 원전인 듯해서 반가웠다. 박인희가 낭송하는 시와 몇 군데 다른 부분이 확인된다. 차이가 나는 부분을 순서대로 나열해 본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에서
'가볍게'는 -> '가벼웁게'로,
'부서진다'는 -> '부숴진다'로 되어 있는데,
요즘 맞춤법으로는 '가볍게 부서진다'가 맞다.
詩의 중간쯤 나오는 '등대'의 앞뒤에는 말줄임표 '...'가 보이고, '등대에'라고 되어 있다.
재미있는 건 바로 이 대목이다. 박인희는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이라고 낭송하는데, 원본에는 '낡은'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예전부터 '낡은' 잡지가 뒤에 나오는 '통속'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왔다.
또한 '그저'가 원본에는 모두 '거저'로 표기되었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고, 분명 그저(거저)가 네 번이나 쓰인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 '그저'의 쓰임새와 뜻이 다 똑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곧바로 국어사전을 검색한다. 역시나 많은 뜻이, 그것도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뜻이 있어서 놀랐다.
(중략)
이 대목에서 '그저'와 또 다른 부사 '어차피'가 떠오르는 건 무슨 연유인지 나도 잘 가늠이 안 된다. 두 낱말의 뜻에 별다른 공통점은 없어 보이기에 하는 말이다. 다만 <목마와 숙녀>를 수시로 암송하던 그 시절 내가 알던 친구 중에 하나가 유독 '어차피'라는 부사의 어감에 부정적이었다는 시간적 연대감이 불러온 일종의 착시현상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이번에도 '어차피'의 정확한 뜻을 알기 위해 또다시 국어사전을 검색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중략)
耳順(이순)을 넘은 지금 들었을 땐 잘 모르겠던데, 세상이 두 손아귀에 쥐어질 듯하던 그때 20대 시절에는 '어차피'의 어감이 그 친구에게는 왠지 체념적이라 비겁하고 패배주의적으로 들렸던 것 같다. 그 시절에는 나도 어느 정도는 그 시각에 공감하였던 듯하다.
올해 초 tvN에서 새롭게 시작한 "어쩌다 어른" 시즌3는 첫 번째 강연자로 친숙한 이미지의 아나운서 이금희를 내세웠다. 그러면서 이번 시즌에서 지식 큐레이터로 새롭게 자리매김한 인지 심리학자 김경일은 이금희 아나운서를 소개하면서 그녀가 우리나라 아나운서 가운데 부사와 감탄사를 가장 잘 구사한다면서 구체적인 데이터까지 제시했다. 즉 일반적인 사람들의 부사 사용율이 2% 정도인데, 이금희 아나운서는 그 2배가 넘는 4.7%라는 것이다. 부사를 많이 쓴다는 것은 겸손하다는 뜻이며, 감탄사를 많이 연발하는 것은 공감 능력이 탁월하다는 증거라고도 했다. 공감이 가는 얘기다.
그럼 이쯤에서 '어차피' 골치만 지끈거리게 하는 얘기는 다 집어치우고 '그저' '명동 백작'으로 빙의해서 <목마와 숙녀>를 다시 한번 낭송해 보자.^^
木馬와 淑女 - 朴寅煥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生涯(생애)와
木馬를 타고 떠난 淑女(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木馬는 主人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傷心(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少女는
庭園(정원)의 草木(초목) 옆에서 자라고
文學이 죽고 人生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愛憎(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木馬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 때는 孤立(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作別(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女流作家(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未來(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木馬 소리를 記憶(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意識(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靑春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雜誌(잡지)의 表紙(표지)처럼 通俗(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木馬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https://youtu.be/j72olwH8xvM
"생활의 찌듦을 드러내지 않고 멋의 가면을 쓰고 명동을 누볐기에 박인환에게는 '댄디' ‘명동 백작' ‘명동 신사'라는 이름이 따라다녔다."고 하는데, 그는 31세에 요절해서 지금은 망우동 묘지에 잠들어 있다.
이천 년 전 엠마오 청년들은 예수가 그저홀연히 사라진 뒤에야 그 분이 부활한 예수였음을 깨닫는다.
청년 박인환은 어차피 꿈을 못다 이룬 채 서른 나이에 요절하였지만 그의 시 <목마와숙녀>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읊어지리라.
2023. 4. 10 부활절 다음 날 강릉 정동진에서
첫댓글
신부 님, 변함없는 응원 감사합니다.^^
베드로 잘 감상했네 수고 했습니다.
고마워요!
얼마나 잘 감상하셨는지 다음에 만나면 목마와숙녀 암송해 주세요.^^
술병에서 어떻게 별이 떨어지는지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가 어떤 소리 인지도 모르면서 외우고 다니던 어린 시절이 있었네요 ㅎㅎ
그러한 잠시 옆 동네에 살던 소녀는
성당의 마리아 옆에서 자라고
술병이 죽고 바람이 죽고 술병에 떨어지는 별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백마를 탄 사랑의 사람과 해로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