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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 의의〔尙書疑義〕
삼가 살펴보건대, 《상서채전(尙書蔡傳)》은 선유(先儒)들이 정정(訂正)한 곳이 많이 있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정정한 말 중에서 매우 좋은 곳이 하나가 아니지만 어떠한지 모르겠다.
〈순전(舜典)〉의 ‘출납(出納)’을 해석한 것 중에서 진씨(陳氏)와 호씨(胡氏)의 두 설이 옳은 듯하다.
〈대우모(大禹謨)〉의 ‘자기의 주장을 버리고 남을 따르다.[舍己從人]’의 주(註)에서 정자(程子)는 “자기의 주장을 고수하는 것이 견고할까 오히려 두렵다.[尤懼守己者固]”라고 말하였는데, ‘우(尤)’ 자(字)는 가만히 생각건대 ‘유(猶)’ 자(字)의 잘못인 듯하다. 고문(古文)에 ‘유(猶)’가 ‘우(尤)’로 되어 있으니 우(尤) 자(字)와 서로 비슷한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전(詩傳)》 주(註)에 “오히려 후세의 말 잘하는 선비가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猶非後世能言之士所能及之]”라 하였고, 여러 성리서(性理書)에도 ‘유(猶)’로 되어 있으나 《서전》에는 ‘우(尤)’로 잘못 써져 있으니 의미가 없는 듯하다.
“우 임금이 말하기를 ‘도를 따르면 길하고 도에 반하면 흉하니, 그림자나 메아리 같다.’라고 하였다.[우왈혜유(禹曰惠迪)하면[爲面] 길(吉) 하고[爲古] 종역(從逆) 하면[爲面] 흉(凶) 하논지[爲奴隱地] 유영향(惟影響) 하니이다.[爲尼是多]]”라고 하였는데, 아마도 “순종하면 길하고 거스르면 흉하니 메아리 같다.[적(迪) 하면[爲面] 길(吉) 코[古] 역(逆) 하면[爲面] 흉(凶) 하논지[爲奴隱地] 향(響) 니이다[尼是多]]”라고 해야 할 것이다. ‘유(惟)’ 자를 세속에서 모두 ‘유(猶)’ 자로 해석하는데, 아마도 어조사[語助]로 썼으니 서로 같은 뜻이 저절로 그 속에 있다.
‘불지상아(黻之狀亞)’에 대해 살펴보니 ‘불(黻)’은 고문(古文)에 ‘아(亞)’로 쓰여 있으며 음(音)은 불(弗)이다. 세속에서는 잘못하여 아성(亞聖)의 아(亞)로 읽으니, 아마도 잘못이라 생각한다.
‘북쪽과 남쪽의 끝까지 이르렀다.[삭남기(朔南曁)]’에 대해 모두가 삭방의 남쪽[朔之南]으로 해독하지만 아마도 잘못인 듯하다. 다만 남쪽과 북쪽을 말했을 뿐이다.
깎아서 팔다.[절열(折閱)] ‘절(折)한 것을 열(閱)하다.’에 대해서 순자(荀子)가 말하기를 ‘좋은 값이 되지 않아 값을 줄여서 팔아도 사지 않는다.[良賈不爲, 折閱不市]’라고 하였으니, 파는 물건의 값이 손해를 보는 것을 말한다.
‘유용(惟庸)’에 대해 채전(蔡傳)과 회암(晦庵)의 설이 같지 않다.
“태갑(太甲)이 중임(仲壬)의 상(喪)을 치르고, 탕왕[成湯]의 묘소에서 이윤(伊尹)이 사왕(嗣王)을 받들어 박읍(亳邑)으로 돌아오자 상을 마치는 달이 되지 않았는데도 반드시 정삭(正朔)의 날을 기다렸다.”라고 하였는데, 그 뜻이 명확하지 않다.
‘자기의 몸을 닦으며 진실한 덕이 아래에 화합한다.[수궐신(修厥身) 하며[爲彌] 윤덕(允德) 이[是] 협우하(協于下)]’는 부분은 아마도 ‘자기의 몸을 닦아[수궐신(修厥身) 하야[爲也]]’로 해야 할 듯하다.
‘오셔서 벌이 없겠는가?[후래무벌(后來無罰) 아[阿]]’라는 부분은 아마도 ‘벌이 없을까 합니다.[무벌(無罰) 아하니이다[阿爲尼是多]]’로 해야 할 듯하다.
‘선왕이 때로 힘써 그 덕을 공경한다.[선왕유시(先王惟時) 로[奴] 무경궐덕(懋敬厥德)]’라는 부분에서 ‘유시(惟時)’의 아래에는 아마도 토(吐)가 없어야 할 듯하다.
〈반경(盤庚)〉의 ‘사람은 옛사람을 구한다.[인유구구(人惟求舊)]’에서 ‘옛사람을 구한다[구(舊) 를[乙]구(求)]’라는 부분은 아마도 ‘옛사람에게 구하고[구(舊) 에[厓] 구(求) 하고[爲古]]’로 되어야 할 듯하다.
〈열명(說命)〉의 ‘마치 시장에서 종아리를 맞는 것처럼 하며[약달우시(若撻于市) 하며[爲彌]]’라고 한 부분은 아마도 ‘마치 시장에서 종아리를 맞는 것처럼 하라 라고 하며[약달우시(若撻于市)라 하며[羅爲彌]]’로 되어야 할 듯하다.
〈미자(微子)〉에서 ‘그것을 어찌해야 합니까?[약지하기(若之何其)]’라고 한 부분의 주(註)에 ‘하기(何其)’를 어조사[語辭]라고 하였는데, 의심스럽다.
〈목서(牧誓)〉의 ‘어사인 사도와[어사(御事) 이언[是於隱] 사도(司徒) 와[臥]]’ 부분에서 ‘어사와[어사(御事)와[臥]]’라고 말하지 않고 ‘어사인[어사(御事) 이언[是於隱]]’이라고 말한 것은 어찌해서인가?
〈대고(大誥)〉의 ‘월여소자고익(越予小子考翼)’과 ‘궐고익(厥考翼)’은 문자가 같은데도 해석이 다르니, 의심스럽다.
“준동하면 홀아비와 과부가 슬프나[윤준(允蠢) 면[面] 환과애재(鱞寡哀哉) 나[那]]”의 주(註)에서 ‘사국준동(四國蠢動)’의 경우 사국(四國)은 삼감(三監)과 무경(武庚)을 가리켜서 말한 것인가? 만약에 그렇다면 그 글의 뜻이 밝지 못하다.
‘전영인도공(前寧人圖功) 애[厓] 유종(攸終) 호리오[乎里五]’의 경우 아마도 ‘전영인(前寧人)’에서 구를 끊어야 할 듯하다.
〈미자지명(微子之命)〉에서 ‘숭덕상현(崇德象賢)’의 ‘숭(崇)’ 자(字)와 ‘상(象)’ 자(字)는 미자(微子)를 높이고 본받는다는 것인가? 아니면 성왕(成王)을 높이고 본받는다는 것인가?
〈강고(康誥)〉에서 ‘짐기제(朕其弟)’의 ‘기(其)’ 자(字)는 무슨 의미인가?
〈재재(梓材)〉에서 ‘여약항월(汝若恒越)’ 한 구절에 대한 현토(懸吐)는 전(傳)에서 근거할 바가 없는데도 또 《집주(輯註)》를 따르지 않는 것은 왜인가?
[주1] 상서채전(尙書蔡傳) : 《상서》는 지금의 《서경》을 말한다. 한대(漢代)에는 《상서》로 불리다가 송대(宋代) 이후로 《서경(書經)》이라 불리게 되었다. 《상서채전》은 채침(蔡沈)이 편찬한 《서경집전(書經集傳)》을 가리킨다. 채침은 남송(南宋)의 학자로, 채원정(蔡元定)의 아들이며, 주희(朱熹)의 제자이다. 자(字)는 중묵(仲默), 호는 구봉(九峯),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벼슬에 여러 번 천거되었으나 사양하고 평생 구봉(九峰)에서 은거하였기 때문에 구봉 선생(九峰先生)이라 불렀고, 그 학파를 구봉 학파(九峰學派)라 일컫는다. 저서로 《서경집전(書經集傳)》ㆍ《홍범황극내편(洪範皇極內篇)》 등이 있다.
[주2] 순전(舜典)의 출납(出納) : 《서경》 〈순전(舜典)〉에 순 임금이 용(龍)이라는 신하에게 “짐은 참소하는 말이 선인의 행실을 해친 나머지 짐의 무리들이 듣고서 동요하고 놀라워하게 되는 것을 미워하는 바이다. 그래서 그대를 임명하여 납언으로 삼으니, 밤낮으로 짐의 명령을 출납하면서 진실되게 하라.[朕堲讒說殄行, 震驚朕師. 命汝作納言, 夙夜出納朕命惟允.]”라고 한 부분을 말한다.
[주3] 진씨(陳氏)와 호씨(胡氏) : 신안 진씨(新安陳氏) 진력(陳櫟)과 신안 호씨(新安胡氏) 호차염(胡次焱)을 말한다. 진력(陳櫟, 1252~1334)의 자는 수옹(壽翁), 호는 정우(定宇)ㆍ동부노인(東阜老人)이다. 저서로 《사서발명(四書發明)》, 《서전찬소(書傳纂疏)》, 《예기집의(禮記集義)》 등이 있다. 호차염(胡次焱)의 자는 제정(濟鼎), 호는 매암(梅巖)ㆍ여학(餘學)이다. 함순(咸淳) 연간의 진사로서 벼슬이 귀지위(貴池尉)에 이르렀다.
[주4] 시전(詩傳) …… 아니다 : 주자(朱子)의 《시전(詩傳)》 서문(序文)에 나오는 글이다.
[주5] 북쪽과 …… 이르렀다 : 《서경(書經)》 〈우공(禹貢)〉 맨 마지막의 “동쪽으로는 바다에까지 번져 갔고, 서쪽으로는 유사 지역에까지 입혀졌으며, 북쪽과 남쪽의 끝까지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의 풍성(風聲)과 교화가 사해에 다 미치자, 우 임금이 검은 규(圭)를 폐백으로 올리면서 순(舜) 임금에게 그의 일이 완성되었다고 아뢰었다.[東漸于海, 西被于流沙, 朔南曁, 聲敎訖于四海, 禹錫玄圭, 告厥成功.]”라고 한 부분을 말한다.
[주6] 좋은 …… 않는다 : 《순자(荀子)》 〈수신편(脩身篇)〉에 “훌륭한 농부는 수해(水害)나 한재(旱災)가 있다 해서 농사짓는 것을 그만두지 않으며, 훌륭한 장사꾼은 손해를 보거나 물건이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해서 물건 파는 것을 그만두지 않으며, 군자는 세상이 혼란스럽다고 해서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법이다.[良農不爲水旱而輟耕, 良商不爲折閱而輟市, 君子不爲世亂而怠於事.]”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7] 유용(惟庸) : 《서경(書經)》 〈상서(商書) 태갑 상(太甲上)〉에 “왕이 심상하게 여겨 듣지 않았다.[王, 惟庸, 罔念聞.]”라고 한 부분을 말한다.
[주8] 수궐신(修厥身) …… 협우하(協于下) : 《서경(書經)》 〈상서(商書) 태갑 중(太甲中)〉에 “이윤이 배수계수(拜手稽首)하고 말하기를 ‘몸을 닦으며 진실한 덕이 아래에 화합함은 현명한 군주입니다.’라 하였다.[伊尹拜手稽首曰, 修厥身, 允德協于下, 惟明后]”라고 한 부분을 말한다.
[주9] 후래무벌(后來無罰) : 《서경(書經)》 〈상서(商書) 태갑 중(太甲中)〉에 “선왕이 곤궁한 자들을 자식처럼 사랑하였으니, 백성들은 그 명에 복종하여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어 함께 나라를 소유했던 이웃 나라의 백성들이 마침내 말하기를 ‘우리 임금님을 기다리노니 우리 임금님이 오시면 벌(罰)이 없겠는가?’라 하였습니다.[先王子惠困窮, 民服厥命 罔有不悅, 竝其有邦厥鄰, 乃曰, 徯我后, 后來無罰.]”라고 한 부분을 말한다.
[주10] 선왕유시(先王惟時) 로[奴] 무경궐덕(懋敬厥德) : 《서경(書經)》 〈상서(商書) 태갑 하(太甲下)〉에 “선왕(先王)이 때로 힘써 덕(德)을 공경하여 능히 상제(上帝)에 짝하였고, 금왕(今王)께서 훌륭한 전통을 이어 소유하였으니, 부디 이것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先王惟時, 懋敬厥德, 克配上帝, 今王嗣有令緖, 尙監玆哉.]”라고 한 부분을 말한다.
[주11] 인유구구(人惟求舊) : 《서경(書經)》 〈상서(商書) 반경 상(盤庚上)〉에 “지임이 말하기를 ‘사람은 옛사람을 구하고, 그릇은 옛것을 구할 것이 아니라 새 그릇을 쓰라.’[遲任有信曰, 人惟求舊, 器非求舊惟新.]”라고 한 부분을 말한다.
[주12] 약달우시(若撻于市) : 《서경(書經)》 〈상서(商書) 열명 하(說命下)〉에 “내가 나의 임금을 요순처럼 만들지 못한다면 시장에서 종아리를 맞는 것처럼 내 마음이 부끄러울 것이요, 한 사내라도 살 곳을 얻지 못한다면 이는 또한 나의 죄라고 할 것이다.[予弗克俾厥后惟堯舜, 其心愧恥, 若撻于市, 一夫不獲, 則曰時予之辜.]”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13] 약지하기(若之何其) : 《서경(書經)》 〈상서(商書) 미자(微子)〉에 “부사(父師)여! 소사(少師)여! 우리가 미친 짓을 발출(發出)하기에 우리 국가의 노성한 사람들이 황야(荒野)로 도망하는데, 이제 당신들은 이것을 지시하여 나에게 넘어지고 떨어짐을 말해줌이 없으니, 어찌하여야 합니까?[曰父師! 少師! 我其發出狂, 吾家耄遜于荒, 今爾無指告予顚隮, 若之何其?]”라고 한 부분을 말한다.
[주14] 목서(牧誓) : 원문에는 “목서(牧誓)”의 ‘서(誓)’가 ‘서(書)’로 되어 있으나 판각의 오류이기에 수정하였다.
[주15] 어사(御事) …… 와 : 《서경(書經)》 〈주서(周書) 목서(牧誓)〉에 “왕이 이르기를 ‘아! 우리 우방의 총군과 어사인 사도와 사마와 사공과 아와 여와 사씨와…(하략)…’라고 하였다.[王曰, 嗟! 我友邦冢君, 御事司徒司馬司空, 亞旅師氏…(下略)…]”라고 한 부분을 말한다.
[주16] 대고(大誥)의 월여소자고익(越予小子考翼) : 《서경(書經)》 〈주서(周書) 대고(大誥)〉에 “너희 여러 나라의 군주(君主)와 서사(庶士)와 어사(御事)들이 반대하지 않는 이가 없어 말하기를 ‘이 일은 어렵고 중대하며, 백성들이 안정하지 못함이 또한 왕(王)의 궁(宮)과 방군(邦君)의 집에 있다.’라고 하며, 나 소자(小子)와 부로(父老)가 공경히 섬기는 자들도 정벌할 수 없다고 하여 ‘왕(王)은 어찌 점(占)을 어기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爾庶邦君, 越庶士、御事, 罔不反曰, ‘艱大, 民不靜, 亦惟在王宮邦君室’, 越予小子考翼, 不可征, ‘王害不違卜’.]”라고 한 부분을 말한다.
[주17] 궐고익(厥考翼) : 《서경(書經)》 〈주서(周書), 대고(大誥)〉에 “왕(王)이 이르기를 옛날에 짐이 무경(武庚)을 정벌하러 갈 적에 짐도 어렵다고 말하여……그 아버지가 밭을 일구었거늘 그 자식이 기꺼이 파종(播種)도 하려고 하지 않는데 하물며 기꺼이 수확(收穫)하려 하겠는가? 부로(父老)가 공경히 섬기는 자들이 기꺼이 ‘내 후손(後孫)이 있으니 기업(基業)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고 말하겠는가?[王曰 若昔, 朕其逝, 朕言艱,……厥父菑, 厥子乃弗肯播, 矧肯穫? 厥考翼, 其肯曰 予有後, 弗棄基?]”라고 한 부분을 말한다.
[주18] 윤준(允蠢) …… 나 : 《서경(書經)》 〈주서(周書), 대고(大誥)〉에 “이러므로 나 충인(沖人)이 길이 어려움을 생각하니, 아! 진실로 준동(蠢動)하면 환과(鰥寡)가 가엾지만 내가 하는 일은 하늘이 시키신 것이다.[肆予沖人, 永思艱曰, 嗚呼! 允蠢, 鰥寡哀哉, 予造天役.]”라고 한 부분을 말한다.
[주19] 삼감(三監) : 무왕이 은(殷)을 이기고 은의 백성을 세 아우 관숙(管叔)ㆍ채숙(蔡叔)ㆍ곽숙(霍叔)에게 감독하게 하였는데, 후에 이들이 난을 일으켰다가 주공에게 토벌되었다. 삼감은 바로 그 세 아우가 다스리던 위(衛)ㆍ용(鄘)ㆍ패(邶)나라를 가리킨다.
[주20] 무경(武庚) :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킨 뒤 은나라의 도읍 조가(朝歌)에 무경을 봉한 것을 두고 말한다.
[주21] 전영인도공(前寧人圖功) …… 호리오 : 《서경(書經)》 〈주서(周書), 대고(大誥)〉에 “왕(王)이 이르기를 ‘너희들은 옛 사람들이다. 너희들은 크게 멀리 살필 수 있으니,…(중략)…하늘이 돕되 정성스런 말씀으로 함은 우리 백성을 살펴보면 알 수 있으니, 내 어찌 전영인(前寧人)의 공(功)을 마칠 것을 도모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王曰, 爾惟舊人, 爾丕克遠省…(中略)…天棐忱辭, 其考我民, 予曷其不于前寧人, 圖功攸終?]”라고 한 부분을 말한다.
尙書疑義
謹按尙書蔡傳。先儒多有所訂正。而細觀則所訂說甚好處不一。未知何如。
舜典釋出納處。陳胡二說。似是。
大禹謨舍己從人註。程子語有尤懼守己者固。尤字。竊意猶字之誤。古文猶作尤。與尤相類。故詩傳註。猶
非後世能言之士所能及。性理羣書作猶。而書傳誤作尤。似無義。
禹曰。惠迪 爲面 吉 爲古。從逆 爲面 凶 爲奴隱地。惟影響 爲尼是多。恐作迪 爲面 吉 古。 逆 爲面 凶 爲奴隱地。響 尼是多。惟字。世俗皆釋以猶字。恐只作語助。而相似之義。自在其中。
黻之狀亞。按黻古文作亞。而音弗字。俗誤以亞聖之亞讀之。恐誤。
朔南曁。皆以朔之南讀之。恐誤。只言北與南耳。
折閱。折거閱다。荀子良賈不爲。折閱不市。謂損其所賣物價也。
惟庸。蔡傳與晦庵說不同。
太甲居仲壬之喪。而于成湯之墓。伊尹奉嗣王歸于亳。不於終喪之月。而必待正朔之日。其義不可曉。
修厥身爲彌允德是協于下。恐作修厥身 爲也。
后來無罰阿。恐作無罰 阿爲尼是多。
先王惟時 奴。 懋敬厥德。惟時之下。恐無吐。
盤庚。人惟求舊。舊 乙 求。恐舊 厓 求 爲古。
說命。若撻于市 爲彌。恐作市 羅爲彌。
微子。若之何其註。何其。語辭。可疑。
牧書[誓]。御事 是隱於。司徒 臥。 不曰御事 臥。 而曰御事 是於隱者。何也。
大誥。越予小子考翼。厥考翼。同文而異釋。可疑。
允蠢 面 鱞寡哀哉 那。 註四國蠢動。四國。指三監武庚而言歟。若然則其文義不可曉。
前寧人圖功 厓 攸終 乎里五。恐以前寧人爲句絶。
微子之命。崇德象賢。崇字象字。謂微子崇之象之乎。抑成王崇之象之乎。
康誥。朕其弟。其字何義。
梓材。汝若恒越一節吐。於傳無據。而又不從輯註。何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