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전" (21)
황성길 노정에 한 곳에 다달아 주막에서 자노라니, 그 근처에 황봉사라는 소경이 뺑덕 어미가
잡것인 줄 이미 알고 한번 보기를 원하였고 , 뺑덕이네가 으례 그 곳에 오리라 짐작하고
주막 주인과 내통하여 뺑덕 어미를 유인하였다.
"그대 수룡궁이 오묘하다 들은바 있으니, 이 소경을 위해서도 적선하는 셈 치고 ,
살아 생전 천궁을 보게 하여주오."
( 소설이 쓰여진 옛날이나 지금이나 , 소경이 이성을 만나,운우의 정을 쌓기란 ..
하늘에 달을 따다 ,자기집 대야에 담그기 마냥 , 어려운 일 이다.)
황봉사의 유인의 말을 들은 뺑덕 어미가 속으로 생각하기를,
"심봉사를 따라 황성 잔치에 간다 해도 눈 뜬 계집이야 참례도 못 할 터요 , 집으로 가자니
동리 이곳저곳 외상값에 졸릴 테니 , 이참에 황봉사를 따라가면 소원도 풀어주고..
("우쌰 우쌰,뿅 뿅"..) 따라서, 일신도 편할테고 한철 살구도 잘 먹을 것이다."
그리곤 심봉사의 노자 행장까지 도둑질해 가지고 황봉사와 밤중에 줄행랑을 쳐버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심봉사 식전에 일어나 뺑덕 어미를 찾는데,
"여보 마누라. 무슨 잠을 그리 자오."
하며 말을 걸어 보지만 , 밤새 수십리를 달아난 계집이 대답할리 있나.
"여보 뺑덕 어미"
아무리 다시 불러 봐도 대답이 없으니, 심봉사 마음이 이상하여 머리 맡을 더듬어 본즉,
아이코 , 행장,노자를 싼 보따리가 잡히질 않는구나.
그제서야 뺑덕이네가 도망한 것을 알고,
"애고 이 계집이 도망하였나?" 탄식을 하였다.
"이보게 마누라, 나를 두고 어디 갔소. 황성 천리 머나먼 길을 누구를 믿고 간단 말이오.
애고애고 내 팔자야."
이렇듯 탄식하다 다시 생각하고,
"아서라 마서라, 그년 생각하니 내가 잡놈이다. 현철하던 곽씨 부인 죽는 양도 보고, 내 딸 효녀 심청이
생이별도 하였거늘 , 그 망할 년을 다시 생각하면 내가 잡놈이다. 행여라도 그년을 생각도 않으리라" ..
이렇게 주막을 떠나 한 곳에 다다르니, 때는 오뉴월 더운때로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판인데,
시냇가 물 소리 나는 곳에서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멱 감는 소리가 났다.
심봉사도 더위에 지친터라,
"엣따, 나도 목욕이나 하자."
고의적삼을 훌훌 벗어 던지고 시내에 들어앉아 목욕을 한참 즐긴 심봉사,
물가로 나와 옷을 입으려 한즉,
심봉사보다 더 시장한 도둑놈이 옷을 모두 가지고 도망을 가버렸다.
심봉사 하도 기가막혀,
"애고 천하에 몹쓸 도둑놈아, 어디 가져갈 것이 없어 ,눈 먼 소경인 내 옷을 가져갔단 말이냐 ?
아이고야 ..아이고야" ..
졸지에 벌거벗은 알봉사가 된 심봉사 ..
오뉴월 불 같은 햇볕아래 홀로 앉아 , 연방 장탄식을 지르는데,
과연 누구라서 옷을 준단 말인가 ?
그때, 무릉태수가 황성에 갔다 오는 길인데 , 행차 나팔 소리를 듣게 된 심봉사,
"올커니 저 관원에게 억지나 써 보자, 하고 행차를 막고 썩 나서는데,"
("그냥은 못 간다 !" ..."딸랑딸랑 ..딸랑딸랑 ..쌍방울 소리를 내며 길을 막아섰다.)
"아뢰어라 아뢰어라, 황성 가는 봉사가 발괄차로 아뢰어라."
"에그머니" ..
백주 대낮에 불알 두쪽만 남은 눈 먼 소경이 벌거벗고 ,행차길을 떡 막고 큰 소리를 지르니 ,
보는 꼴이 가관인데 , 정작 나선 자는 눈이 멀었으니 , 창피한 것을 전혀 모르는도다.
"어디 사는 소경이며 어찌 옷은 모두 벗었냐 ? 또 무슨 말을 하려느냐?"
심봉사 처량하게 여쭈기를,
"네. 소맹 아뢰겠나이다. 소맹은 황주 도화동에 사는 심학규라 하오는데 , 황성 맹인 잔치를 가다 ,
날이 몹시 덥기로 이 물가에서 목욕을 하다, 의복과 행장을 다 잃어버렸사오니 찾아 주시옵소서."
행차가 놀라,
"그러면 무엇을 잃었느냐?" ("볼품 없이 늙어빠진 무기를 감출 , 속곳 부터 입혀라")
심봉사 하나하나 아뢰니,
"네 사정은 원통하나 갑자기 모두 찾을 수는 없으니 ,우선 옷 한벌과 약간의 노자를 줄터이니
어서 황성으로 올라가라."
태수 아래것을 불러 분부하되,
"너는 벙거지만 써도 탈이 없으니 갓을 벗어 소경을 주라, 교구군은 수건을 쓰고 망건 벗어 소경 주라."
"그리고 약간의 노자를 소경 손에 쥐어줘라."
작성자 소주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