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주는 보약
강 동 구
잔소리는 누구에게나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다.
철없던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의 잔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다. 다른 형제들보다 부모님의 속을 많이 태워서 그랬는지 나를 향한 부모님의 잔소리는 공휴일도 없고 방학도 없었다.
자식들 잘되라고 자나 깨나 걱정하시면서 깨우쳐 주시는 부모님 말씀이 왜 그렇게 듣기가 싫었는지 빨리 어른이 되어 부모님의 잔소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기다리지 않아도 세월은 가고 어느새 어른이 되어 결혼하고 나니 아내의 잔소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결혼하면 아내와 함께 알콩달콩 오손도손 언제나 재미있게 살아갈 줄 알았는데 산 넘어 산이라더니 그놈의 잔소리는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잔소리는 나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는데 즐길 일이 따로 있지 어떻게 잔소리를 즐길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잔소리를 즐기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부모님의 잔소리나 아내의 잔소리는 나를 위함이 분명한데 왜 그렇게 듣기가 싫을까? 어린 시절에는 철이 없어 그렇다고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아내의 잔소리가 듣기 싫기는 여전하다. 옛말에 약은 입에 쓰고 옳은 말은 귀에 거슬린다더니 옛 어른들 말씀이 한마디도 틀린 말씀이 없는 것 같다.
아기들이 아플 때 약을 먹이려고 하면 막무가내 먹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한다. 주사를 놓으려고 하면 자지러진다. 왜? 주삿바늘은 아프고 약은 입에 쓰기에 기를 쓰고 거부한다.
내가 겉으로는 어른이지만 주사 맞고 약 먹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어린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 잘되라고 하는 마음에서 나를 위한 아내의 잔소리가 듣기 싫다면 나는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아내의 잔소리가 들으면 들을수록 행복해지는 감미로운 음악처럼 들리면 얼마나 좋을까? 아내의 잔소리가 연애할 때 달콤하게 속삭여주던 사랑의 언어처럼 들릴 수 있도록 귀에 최면을 걸어 놓을 수도 없고 잔소리를 피할 수있는 방법도 없으니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
일체유심조라 했듯이 세상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나는 생각을 바꾸기로 하였다. 보약은 몸을 이롭게 하는 약이다. 아내의 잔소리도 나를 이롭게 하는 말이기에 보약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의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아내가 보약을 챙겨 준다고 생각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마음의 평화가 나를 찾아왔다. 그동안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잔소리라는 달갑지 않은 아내의 선물이 보약으로 변신하여 내 몸과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있다.
마음이 평안하니 보약을 먹으면 약효가 빠르게 나타난다. 아내의 잔소리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전에는 잔소리를 들으면 우선 듣기 싫다는 생각이 앞서고 한 귀로 들으면 두 귀로 흘려보냈는데 생각을 바꾸어 아내의 잔소리를 보약이라 생각하고 귀담아들으니 아내의 잔소리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잔소리가 줄어드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보약은 꾸준히 먹어야 하는데 먹다가 먹지 않으면 건강에 어떠한 문제가 생길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고심 끝에 생각해 낸 것이, 아내가 가끔 잔소리할 수 있도록 문제를 만드는 것이다.
아내와 단둘이 살아가는 집에서 아내는 남편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잔소리를 은근히 즐겼는지도 모른다. 집안에 남편 대신 가끔 잔소리할 강아지도 없고 남편 말고는 대화할 상대가 없으니 아내의 잔소리는 남편과 대화 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 보니 아내도 남편에게 잔소리하는 즐거움이라도 있어야지 그마저 없으면 아내는 무슨 재미로 살아갈까 싶어 이제는 아내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잔소리거리를 만들어 주려고 한다.
그나저나 누가 뭐라 하여도 이 세상 남편들에게는 아내의 잔소리는 최고의 보약이다. 이렇게 좋은 보약을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 그러나 아무리 좋은 약도 용법 용량을 잘 지켜 복용해야지 과용하면 건강을 해치기 쉬우니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오래 전 TV 광고가 생각난다. 약 좋다 남용 말고 약 모르고 오용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