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행복에 대해 들었을때, 윤리와 사상을 배우면서 철학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봤습니다. 그중에서도 소크라테스는 행복을 인류가 추구해야 할 최종적인 목표이자 최고의 선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는 행복이란 어떤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항상 다른 수단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돈을 벌거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모든 노력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소크라테스는 행복을 인간에게 보편적이며 가장 이상적인 상태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행복에 대해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게 행복이란 "최소한의 불행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삶에서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요소이며, 오히려 고통은 인간 존재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삶을 "고통과 권태의 끝없는 반복"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우리는 고통을 느끼고, 반대로 욕구가 충족되면 권태에 빠지게 됩니다. 저 역시 이와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항상 어떤 결핍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며, 그 과정에서 고통을 경험하고, 결핍이 채워지면 권태로움을 느끼는 순환을 반복한다고 느낍니다. 그렇다면 위와 같이 삶이 본질적으로 고통이라면, 행복은 무엇이라 정의 할 수 있을까요. 저는 행복이란 완벽한 기쁨이나 만족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점 생각합니다. 완전히 고통이 없는 삶은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행복은 고통을 최소화하는 상태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의 무게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고, 삶의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행복의 실마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몸이 아프지 않고, 마음이 평온하며, 필요한 만큼의 물질적 안정을 갖춘 상태는 완벽한 행복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불행에서 벗어난 상태일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우리가 삶을 더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고,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갈 기회도 생깁니다. 쇼펜하우어의 비관적인 세계관이 무겁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저는 이 관점에서 오히려 작은 행복을 찾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이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불행에 집착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거나 최소화할 방법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기성찰이 행복해지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욕망을 알고 이를 넘어서려는 노력으로 고통으로 부터 멀어질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런 자기 성찰은 불가피한 고통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삶의 태도로 닿을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