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11일)
부산 영화제에 가서 영화 한 편 보다.
지난해만 해도 팜프렛 미리 보며 영화를 고르고 고르고 한 다음에 미리 예매를 여러 장하고 했는데, 올해는 여름을 힘들게 보내며 진이 다 빠졌는지 부산 국제 영화제를 한다고 해도 기다림도 떨림도 없었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젊은애들 같이 마냥 신나서 쫓아다니다, 이번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모습이 옆에서 서글퍼 보였는지, 아들이 안나가 보느냐고 재촉한다. 그러자 어제 일요일, 이웃에 사는 이모가 나가자고 하여서 피프 거리에 나가 보았다.
현장에서 구해지는 아무 표나 사서 한 편을 보고 오기로 하였다.
부산 영화제 8회를 계속 참여하였는데, 단 한편을 보더라도 참여는 해야된다는 참여에 의미를 두고서........ 거리에 떠밀려 다니는 젊은이들 구경하며, 온데서 펄럭이는 깃발과 영화 포스터들을 정신없이 보며 영화의 축제에 그래도 한 자리 메꾸는 시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보기도 하며 말이다.
대영 시네마에서 반납된 표를 찾으니 두 군데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헝거리 영화, 다른 하나는 우르과이 영화란다. 동구권 영화는 여러 번 보아서 남미 권의 우르과이 영화 [위스키]라는 표를 두 장사서 이모는 1층으로, 나는 2층으로 가서 자리 잡았다.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하나도 없이 복이 있으면 좋은 영화 볼 거고, 아님 그냥 한 편 때우고 가는 거라고 생각하였다.
[위스키]라는 제목에서 술에 관한 영화인가 했더니 생각 밖으로 카메라 사진 찍을 때, 우리는 웃으며 찍자고 "김-치" "치-즈" 하는데, 우르과이에서는 "위-스키" 하며 입 벌리고 웃고 찍는 거였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화면에 애조띤 남미 음악이 흐르며 차분하고 느려서 우리 보기에 딱 좋았다. 주인공도 영세 양말공장 운영하는 늙은 홀아비와 공장에서 직공으로 온갖 잡다한 일 다 하는 늙고 좀은 심술스러워 보이는 예쁘지 않은 과부였다.
공장의 똑같은 일의 반복에서, 브라질에서 사는 사장의 동생이 오래 만에 형네 집에 다니러 오며, 사건은 시작된다. 홀아비 사장은 공장 일하는 과부에게 3일 동안 부인 노릇을 부탁하고, 이 여자는 흔쾌히 들어주며 여러 가지를 신나서 준비한다. 결혼반지와 가족사진, 구석구석 청소하고 부부의 집을 표티 내려 애쓴다. 브라질에서 온 동생은 3일 지나고, 형과 형수가 늙고 공장도 영세하고 하니 마음이 아퍼서 위로 겸 어디 좋은 데로 3일 여행을 가자고 하여서 출발한다.
이 여행에서 세 사람이 "위- 스키"하며 사진도 찍으며 여러 가지 즐기고 구경 다니며 호텔에서 묵는다.
그 여러 날을 내외로 다니면서 홀아비는 둘이 있을 때는 더욱 뚝뚝하게 굴며, 엄격하게 뚝 떨어져 지내며 과부 여자의 마음을 몰라준다. 여자는 무뚝뚝하지만 성실한 사장 영감이 그래도 마음은 있어서 따라다니며 최선을 다 하는데, 홀아비는 끝까지 몰라주며 영화는 끝난다. 사장은 수고하였다며 여자가 짐 챙겨 가는 날, 마음에는 좀 있으면서도 표현하지 못하고, 동생이 새 기계 사라며 주고 간 뭉턱 돈을 여자에게 준다.
여자는 말없이 그 다발을 받아서 가고, 그 이튿날 사장은 기다리나 끝내 공장에 나오지 않는다. 여자가 안 나오는 공장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서 요란하게 기계 돌아가던 소리가 멈추며 영화도 같이 끝났다.
담담하고 조용하고 차분하니 말이 별 없는 내면의 연기들이 문학작품을 보는 것 같이 관객들을 조용하게 끌어들여서 젊은이들도 감동하며 열심히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우르과이라는 그 먼 나라도 어찌나 사는 게 우리네와 많이 비슷한지 놀라고, 우리네와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사는 모습이어서 남미도 가깝게 느껴졌다.
이모와 난 여자의 마음을 끝까지 몰라주는 홀아비 사장을 부산 말로
"문딩이 같은 영감테기!"
"생기기는 멀쩡하게 생겨서 우찌 그리 눈치코치도 없노! 그쟈? "
"옆에 있으면 한 방 팍 먹였으면 속 시원하겠더라" 하며 열을 올렸다.
헌 고물차 한 대와 허름한 공장, 허름한 호텔과 스산한 거리 풍경, 잘 생기지 않은 늙은 배우 3명, 돈 안들이고(저 예산으로) 짜임새 있는 좋은 영화 만들었다 싶다. 감독은 유명하다 하더니 능력 있다 싶고, 우린 준비 없이 그냥 나가서 운 좋게 좋은 영화 한 편을 흡족하게 보고 왔다.
국제 영화제가 아니면 볼 수 없는 먼 나라, 남미의 우르과이라는 나라의 영화를 잘 보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