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 영의 훈련을 위한 기초/ 생각과 마음의 차이에 대하여
1. 마음
이제 우리 자신에게로 와서 그릇인 우리는 어떠한지를 생각해 보자. 문제는 사람은 음료를 담는 병처럼 그렇게 단순한 용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은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세 위격은 물론 사람의 각 부분도 알아야 한다.
고후4:4-6절은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어두운데서 빛이 빛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 말한다.
고린도후서 4장의 각 구절을 보면, 사람의 각 부분이 얼마나 많이 발견되는지 놀랍다. 위의 고후4:4-6절에서 4절에는 생각이 있고, 6절에는 마음이 있다. 곧 생각과 마음을 이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세상 신은 믿지 않는 자들의 생각을 가리지만, 하나님은 믿는 이들의 마음 안으로 그분의 빛을 비추신다.
우리와 주님의 관계는 언제나 마음에서 시작하고 마음으로 유지된다. 물론 주님을 접촉하는 것은 영의 기능이지만, 이것은 마음에 의해 시작되고 또 유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은 우리 전 존재의 입구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방이 있는 건물도 하나의 출입구가 있고, 사람들은 언제나 그 출입구로 들어오고 나간다.
입구가 닫히면 모든 사람이 건물 안에 있는 방으로 들어갈 수 없지만, 일단 입구가 열리면 모두 그 건물에 들어가 각방을 사용하며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은 우리 존재와 분리된 또 하나의 독립적인 부분이 아니라 혼의 모든 부분(생각, 감정, 의지)과 영의 한 부분(양심)으로 이루어진 기관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그렇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전 존재의 입구가 되는 것이다. 곧 마음은 우리 존재의 입구도 되고 출구도 된다.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 마음을 통해 들어오고, 우리 안에서 나가는 것도 모두 마음을 통해 나간다.
2. 생각
생각은 영을 보조할 수 있기 때문에 비록 생각 자체의 지위가 영을 따라가지 못하지만 믿는 이는 반드시 영의 뜻을 살피고 읽으므로 약한 영을 보조할 수 있도록 항상 자기 생각을 정상적인 상태로 두어야만 한다. 영의 활동에 그 나름의 원칙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의 활동도 나름의 원칙이 있다.
생각이 자유롭게 작용할 때는 아주 가볍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생각이 활을 당기는 것처럼 지나치게 팽창되었다면 우리의 생각은 자유로이 작용할 수 없다. 원수는 우리의 생각이 영을 보조하여 영을 좇아 행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의 영이 약화될 때 아무도 영을 구출하지 못하도록 자주 우리의 생각을 지나치게 팽창시켜 정상적으로 작용하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은 다만 영을 보조하는 기관만이 아닌 빛을 얻을 수 있는 기관이기도 하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영 안에서 생각에 빛을 공급한다. 그래서 생각을 지나치게 사용하다 보면 성령의 빛 비춤을 받는 기능을 잃게 한다.
마귀는 우리의 생각이 어두워지면 온 존재가 어두워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는 우리의 생각이 안정됨 가운데서 일하지 못하도록 우리로 하여금 도에 지나치게 생각하게 한다.
영을 좇는 노정에서 믿는 이는 자신의 생각이 끝없이 선회하는 것을 억제해야 한다. 어떤 한 가지 주제나 어떤 걱정이나 근심 및 하나님의 뜻을 지나치게 생각하는 것도 생각이 감당하지 못하고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 안정된 생각을 유지해야만 영을 좇아 행할 수 있다.
생각의 위치가 이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믿는 이가 다른 사람과 동역할 때에는 다른 형제자매들의 생각(사상)을 중단시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사람의 생각을 차단시키는 것이 생각에 가장 해를 가져다준다. 성령께서 사람의 영을 통해 믿는 이의 생각을 인도하실 때 가장 두려운 것은 바로 그 인도가 사람에 의해 차단되기 때문이다.
믿는 이는 자신의 생각이 성령에 의하여 지시를 받아 인도되고 있을 때 간섭받는 것을 무척 꺼려한다. 만일 차단되면 생각은 팽창되기 때문에 영과 동역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을 자유함 가운데 보존시켜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 형제자매들의 생각도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형제자매와 대화하기 전에 그 사람의 ‘생각하는 노선’ 곧 ‘그의 생각의 흐름이 어떠한가?’를 먼저 탐지한 다음 그와 교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을 쓸데없이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3. 생각과 마음의 차이
이 부분을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카메라를 예로 들어 보겠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카메라 안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카메라 밖에 있는 형상을 카메라 안에 담는 것이다. 카메라에 하나의 사진을 담기 위해서는 밖의 렌즈와 안의 필름과 그리고 빛이 필요하다.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물체를 카메라 속에 담을 수 있다. 많은 경우 믿지 않는 자들이 복음을 들으러 왔을 때, “오늘 밤에는 이 사람이 틀림없이 구원을 받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과는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의 대적이 그의 생각을 가린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이해하는 기관인데, 사탄이 복음을 듣는 사람의 이해력을 어둡게 만들었다. 그가 아무리 좋은 사람이고, 지식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의 이해력이 어둡게 되고 가려진 것이다. 그의 생각은 여전히 텅 비어 있고, 그 속에는 아무것도 들어온 것이 없다.
우리가 말씀을 전하는 동안, 이 세상 신이 그의 눈을 가리지 못하도록 대적을 묶어 달라고 하나님께 더 많이 기도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렌즈의 덮개를 벗기는 것을 의미한다. 렌즈의 덮개를 벗긴 후에는 올바른 필름이 필요하다. 맞지 않는 필름을 사용하면 올바른 사진을 만들 수 없다.
필름은 바로 우리의 마음에 해당된다. 생각은 렌즈와 같고, 마음은 필름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적절히 조절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렌즈도 필요하고, 필름도 필요하다. 이해하는 생각도 필요하고, 받아들이는 마음도 필요하다. 마음은 순수하고 깨끗하며 올바르게 조절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렌즈를 통하여 필름에 비춰지는 빛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그리스도의 형상과 모양을 넣어 주기 위해 우리에게 비친다. 바로 이 그리스도의 형상이 질그릇 속에 있는 보화인 것이다. 이 예가 완전히 적절하지는 않을지라도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설명을 통하여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다루는지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렌즈와 필름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만일 모른다면 결코 좋은 사진을 찍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영적인 체험도 사진을 찍는 것과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사진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어떻게 우리의 카메라를 사용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조정하는 법을 모르고 있다. 사실상 그들은 그들 자신이 카메라인 것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엄격히 말한다면, 기독교란 사람들에게 이것저것을 하라고 가르치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란 우리 안으로 분배되어 들어오신 살아 계신 그리스도 자신이다. 주님께서 바로 물체이시오, 형상이시며, 우리는 카메라이다. 물체이신 주님께서 렌즈를 통해 필름에 거룩한 빛을 비추심으로써 우리 안으로 분배되어 들어오셔야 한다.
우리가 매일 매일, 순간순간 우리의 마음 안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신성한 빛이 생각의 이해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우리의 마음에 비추시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과 마음을 조정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영적인 체험이란 무엇인가? 영적인 체험이란 다만 그리스도의 사진이 카메라인 우리 안에 찍히고 우리의 영적인 필름 위에 새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의 렌즈는 거의 항상 가려져 있으며, 필름도 보통 부적절하게 조정되어 있다.
만일 우리가 그들의 필름을 본다면 거기에는 사진이 없다. 필름의 모든 사진은 텅 비어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사도 바울의 카메라를 열고 필름을 꺼내 본다면, 사진마다 그리스도로 충만한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렌즈를 어떻게 조절하며 필름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달려 있다. 곧 우리의 생각을 어떻게 다루며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합당하게 조정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우리가 이 일을 잘할 때, 신성한 빛이 우리에게 비칠 때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안으로 비춰질 것이다.
또한 우리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사진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경륜과 그 표적이다. 우리는 우리의 각 부분에 하나님을 담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우리는 생각과 마음 외에도 그 모든 다른 부분을 계속해서 더 알아야 한다. 다음 글에서 그 모든 부분을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첫댓글 와웅!!!
우리의 생각이 렌즈요~
마음이 필름이요~
그리스도의 빛이 들어와
사진을 찍히고 새겨지는 것이 영적 체험임을!!!
사진기에 비교해 주심이 신비하여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