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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⑨ - 덮개
(사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 53: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지난 주일에는 휘장을 통하여 지성소와 성소 그리고 성막 뜰이 나눠지므로 성막은 세 부분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이는 성도의 성숙도에 따라 들어가는 장소가 다릅니다. 대제사장만이 지성소에 들어 갈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신의 몸을 속죄 제물로 드리므로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았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겨져 내림으로 예수 안에 있는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지성소 신앙을 가질 수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지성소 신앙은 균형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심판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균형이 잡혀야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십자가의 신앙입니다. 십자가는 엄중하고 두렵기 그지없는 불의 심판과 죄에 대한 용서 그리고 한량없으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것을 균형 있게 보여주기에 날마다 십자가를 적용하는 믿음이 우리들에게 필요합니다. 지성소 신앙은 겸손을 통하여 이룰 수 있습니다. 겸손은 처음과 나중 되시는 예수님을 본받아 끝까지 믿음의 자리에 서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기다릴 줄 아는 자세입니다. 내 시간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대에 나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방법에 나를 맞추는 것 이것이 겸손입니다. 지성소 신앙은 보이지 않는 것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지성소 안에 있는 법궤를 대제사장을 열어보지 않고 그 안에 있는 것을 믿습니다. 이처럼 부활도 은혜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보지 않았지만 이를 굳건하게 믿고 행진하여 나가는 것 이것이 지성소 신앙을 이루는 요소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성막을 덮고 있는 덮개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덮개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면에 속하여 현재적인과 장차 이뤄질 미래적인 것이 있어 볼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누구나 볼 수 있는 덮개입니다.
보이는 덮개는 2종류가 있습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겉 덮개와 택함을 받은 제사장만이 볼 수 있는 성소안의 덮개입니다. 지성소와 성소의 높이는 10규빗으로 4.5m 정도 되고 성막뜰 울타리 높이는 2.5m입니다. 결국 성막의 2m가 높기 때문에 그 모습을 밖에서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먼저 해달의 가죽으로 만든 겉 덮개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 겉 덮개는 해달의 가죽으로 만들었습니다. 해달은 갓 낳았을 때에는 검은색이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털갈이를 하여 등면은 짙은 갈색 또는 회흑색으로 변하고, 흰색 솜털이 빽빽합니다.
출 26:14 해달의 가죽으로 그 웃 덮개를 만들지니라
정말 겉으로 보기에 성막은 보잘 것 없는 텐트에 불과합니다. 성막의 내부는 모두 금으로 오늘의 가치로 따지면 평당 20억이 이른다고 합니다. 그러면 지성소 6평 성소 12평 합이 18평이면 360억원이 넘는 엄청난 보물이 숨겨 있지만 외모는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모습이 그러 합니다. 내적으로는 고귀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외모로는 초라한 분이셨습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사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 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무명의 나사렛에서 자랐습니다. 무명의 여인에게서 태어 나셨으며, 목수의 아들 이셨습니다. 마구간의 그의 탄생의 장소였으며, 길거리에서 나서 길거리에서 살다가 길거리에서 죽으셨습니다. 흠모할 것이 전혀 없는 모습입니다. 그 예수님은 죽으셨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성도를 지키고 계시는 것입니다. 해달은 육지와 바다를 넘나들면서 살고 있기에 그의 가죽은 광야의 비바람을 능히 견딜 수 있도록 하십니다.
성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린도후서 4:7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 예수님으로부터 엄청난 보배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보배를 빼앗기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당신의 생명을 내주어 이 세상의 풍파에서 지켜 주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해달의 몸길이는 수컷이 약 2.5m까지 성장하고, 암컷은 약 1.3m로 작습니다. 몸무게는 수컷이 180~270㎏, 암컷이 43~50㎏ 정도이고 이 가죽으로 만든 덮개를 만들려면 300마리의 가죽이 필요한데 가죽이 어떻게 생겼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애굽에 있을 때에는 그 가죽을 구하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있는 장소가 사막인데 사막에서 해달의 가죽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생겼을까요? 아마 애굽에서 나올 때에 가지고 나왔을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소를 신성시 하였기에 소가죽으로 신을 만들지 않고 물개 즉 해달의 가죽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광야에서 신을 만들어 신기 위하여 준비하여 온 것을 성막을 만드는데 필요하기에 가져 오라 하였더니 저들이 자원하여 가져왔습니다. 여기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철저히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됩니다. 성막을 만들라고 명령하실 때는 그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시고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은 어쩌면 광야생활이 짧으리라는 판단을 했기에 주저 없이 가죽을 바쳤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하심을 순종할 때 거기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서 보장해주시는 모습이 신명기 나옵니다. 29:5에서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게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 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택하신 제사장만 볼 수 있는 덮개입니다.
출애굽기 26:1에서 “너는 성막을 만들되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 놓은 열 폭의 휘장을 만들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덮개는 성소와 지성소를 덮고 있습니다. 크기는 가로 20m 세로14m의 큰 덮개입니다. 청색은 생명 되신 그리스도, 자색은 왕 되신 그리스도, 홍색은 고난당하시는 그리스도, 백색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덮개의 직조 방법은 카펫을 짜는 방식을 사용하였을 것으로 봅니다. 천사그룹을 수놓는 방법은, 천위에다가 수놓은 것이 아니라, 직조할 때에, 실의 색깔을 배합하여 직조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강화의 화문석을 만드는데, 물들인 왕골로 무늬를 놓아서 만듭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덮개 직조하였던 것입니다.
문명이 발달한 이 시대에도 손으로 수 작업한 카펫이 고급품으로 인정받아 고가에 거래되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까, 인도에서 실크 카펫은 3평 정도를 짜는데 4명이 2년에 걸쳐서 짜는데 그 가격이 2만 2천불 우리나라 돈으로 2,400만원 이라고 합니다. 그런 식으로 따진다고 하면 이 덮개는 85평정도 되고 가격으로 환산하면 6억 8천만 원 됩니다. 상상해보십시오! 성막 안에서 보면 천정인 덮개로, 백색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화려하게 만든 덮개가 있습니다. 금으로 만든 널판이 둘러쳐져 있고 금 촛대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통하여 금으로 만든 진설병상 금향로가 보입니다. 어마어마한 가치는 물론이려니와 광야생활에서 황량한 들판만 보았던 제사장의 눈에 그 화려함은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성도에게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십니다. 천국은 아무에게나 열려져 있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만 열려져 있고 깨닫게 됩니다. 성령의 Illumination 즉 조명(照明)으로만 하나님 나라는 보입니다. 마태복음 11:12에서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원문성경에 보면 재미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비아제타이 카이 비아스타이 (βιάζεται καὶ βιασταὶ) 영어로는 “the kingdom of heaven has been forcefully advancing, and forceful men lay hold of it.” “강제적인 공격력을 지닌 자가 완간하게 천국을 장악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천국을 경험한 사람만이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침노는 전쟁 용어입니다. 전쟁을 치르는데 있어 전력을 기우리지 않고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천국이 너무나 좋기에 자기 것을 다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서 돌진합니다. 하나님나라가 보이지 않기에 세상의 것이 더 커 보이고 소중하게 보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경험해 보십시오! 그러면 삶의 가치관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것을 쟁취하기 위하여 나의 것을 아끼지 않습니다. 천국은 세례요한의 때부터라고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이 외쳤던 복음은 회개입니다. 회개라는 메타노이아(μετανόια)라는 단어는 메타는 Change 변화를 말합니다. 노이아는 정신, 마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내 마음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끝임 없는 자기 복종이 필요합니다.
로라 슐레징어의‘인생을 망치는 7가지 변명'중에서 <그러므로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바른 목표와 푯대를 가지는 것입니다. 올바른 삶의 방향으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개-“메타노이아”(μετανόια)입니다. 자기 포기없는 천국은 없습니다. 자기 복종 없이 천국은 열려지지 않습니다.
셋째는 감춰진 염소털로 짠 흰색 덮개입니다.
염소 털로 실을 만들어 짠 흰 덮개가 안쪽에 드리운 덮개 위에 덮이게 됩니다. 크기는 가로 22m 세로 15m로 수놓은 덮개 위에 덮어야 했기에 가로 세로 각각 1m씩 크게 만들었습니다. 양이나 염소는 가장 많이 제물로 쓰인 짐승입니다. 레위기16:6~10에서 염소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 “아론은 자기를 위하여 속죄제를 드릴 때 염소 두 마리를 취하여 여호와 앞에 두고 제비뽑되 하나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뽑은 염소는 산 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속죄일을 보내는 방법입니다. 속죄일은 이스라엘 달력으로 7월10일인데 염소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한 마리는 번제로 드리고 한 마리는 멀리 광야로 쫓아냅니다. 이스라엘 온 회중의 죄를 염소한테 지고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 염소가 광야로 감으로써 이스라엘 회중은 죄하고 관계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온 회중의 죄를 짊어진 그 염소는 광야로 가서 결국 들짐승에게 찢겨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염소 털은 버림받은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25:32~33에서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전통에 의하면 염소가 수치를 상징하는 방면에 양은 명예를 상징했습니다. 양은 당시 사람들이 볼 때 두 마리의 수컷이 한 마리의 암컷을 위해서 싸웠을 때 양이 새끼를 낳으면 승자를 위해서 마지막까지 지켜 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아 남자는 저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해서 양을 명예로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염소는 두 마리 수컷이 한 마리 암컷을 두고 싸워서 한 마리를 이기면 그 한 마리가 암컷을 차지하여 교미하고 난 다음에 버리고 패자에게 넘겨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또 다른 암컷을 찾아 떠납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남자가 가족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했는데 염소를 보면서 이것은 도저히 남자가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치라는 개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들의 수치를 대신 걸머지시고 아세살 염소가 되셨습니다. 그의 공로가 우리를 덮고 있습니다. 그의 공로로 죄인 되었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의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 의로움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감취인 비밀입니다. 고린도전서 15:51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우리가 예수님의 완벽한 의로움으로 예수님의 신성으로 변화되는 것은 비밀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감추어진 것입니다. 그러다 우리 주님 오실 때에 홀연히 다 변화될 것을 말합니다. 순식간에 아토모(ἀτόμῳ)는 백만분의 1초를 말합니다. 이것은 시간의 개념이 아닙니다. 시간이라는 수직적인 흐름에 익숙한 사람들이 영원의 세계로 접속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알라게소메다(ἀλλαγησόμεθα)는 변화를 말하는데 이는 근본적이 질적인 변화를 말합니다. 우리 주님이 오실 때 완벽하게 바뀝니다. 도무지 변화될 수 없을 것 같은 죄인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넷째는 감춰진 수양가죽에 붉은 물을 들인 덮개입니다.
붉은 수양 가죽(the cover of ram)은 곧 온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수양의 가죽은 천연적으로는 붉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붉게 물들여야 했는데요. 성막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부터 피 뿌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수양의 가죽에 붉은 물을 들여 덮개를 만들었다는 것은 믿음의 성도들을 끊임없이 보혈의 능력으로 지켜 주시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천 년 전에 갈보리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은 오늘날도 우리에게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네 개의 덮개를 만드는데 있어 제일 안 쪽에 있는 덮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짐승들이 죽임을 당해서 얻어진 것입니다. 해달, 염소, 그리고 수양입니다. 짐승을 잡을 때 엄청난 피가 흘러 나왔을 것입니다. 결국 성막은 피로 범벅이 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하여 죽어야 내가 살아납니다. 그러나 누군가라는 명제 앞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습니다. 죄인의 죽음으로 내가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죄 없으신 피여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분이 누구일까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성경에 많은 기적들이 기술돼 있지만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됐다는 구절에 대해 많은 과학자들은 '예수를 신성시하기 위해 꾸며낸 얘기'라는 평가를 내려왔었습니다. 과학적으로 남성의 도움 없이 여성이 잉태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예수의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할때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마리아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는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시라.”(마태복음 1장 18~21절)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방송매체인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National Geographic Channel)이 최근 스페인 오비에도 성당에 보관돼 있는 '예수의 얼굴 수건' (Sudarium of Oviedo.)에 묻어 있는 피를 전문연구소에 의뢰해 DNA를 분석한 결과 혈액형이 AB형이라는 것과 함께 모친 쪽으로부터 이어받은 22개 염색체와 남성(XY) 염색체 1개 등 23개만이 추출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부친 쪽으로부터 받게 돼 있는 23개 염색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합니다. 피 속에 모계의 유전자만 발견됐다는 것은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됐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것이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예수의 피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유전자 검사는 백혈구가 살아 있어야만 가능한데 사후 2천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피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요, 피 속 유전자 검사에서 모계 쪽 염색체만 발견됐다는 것 또한 기적이라는 게 과학자들의 평가입니다.
예수의 피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살아있어 그 피로 계속적인 영향을 받게 됩니다. 히브리서 9:22에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하엿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죄의 영향력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죄를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우리는 치열한 영적 싸움에 직면하여 살고 있습니다.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우리의 대적자 마귀는 할 수만 있으면 믿는 자를 유혹하여 넘어뜨리려 합니다. 사나운 사자는 죽은 자에게 덤비는 것이 아니라 산 자를 대상으로 삼습니다. 베드로전서 5:8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동물의 왕국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사자가 어떻게 먹이를 찾는지를 보여줍니다. 무리 중에 가장 연약하게 보이는 것을 대상으로 삼아 전력 질주하여 쫓아갑니다. 주변에 다른 짐승은 안중(眼中)에 없습니다. 그러고는 목표물 대상의 목덜미를 물어뜯습니다. 한번 물은 것은 절대로 놓지를 안습니다. 이것이 마귀의 속성입니다. 누가 자기의 힘으로 마귀의 세력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못 이깁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를 이 영적인 전쟁터에 보내셨습니다. 이 전쟁은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승리의 비결이 오늘 덮개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입니다. 그 보혈이 마귀의 진을 이기셨습니다. 이기신 그 능력이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의사 3명이 공동으로 집필한 <의사들, 죽음을 말하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들은 Non Chritian입니다. 그런 그들이 사후세계에 대하여 “사후세계는 분명히 존재하는 장엄하고도 장대한 세계 … 우리가 죽어서 육신을 벗어나면 진동하는 에너지체로 존재하게 되는데, 진동하는 주파수에 따라서 비슷한 곳으로 가게 된다는 것이죠. … 즉, 에너지 형태로 사후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영원한 세상이 있음을 인지(認知)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나의 이성이 이를 부인한다 하더라도 죄에 가려 영원한 세상이 가려졌을 뿐이지 영원한 세상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영원한 세상은 지옥과 천국으로 이뤄졌습니다. 마크갤리의 <God Wins - 하나님이 이긴다.>라는 책에서 주장하기를 하나님은 완벽한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그 분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함을 받은 인간을 지옥에 보내실 리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지옥을 부인합니다. 지옥을 부인하면 천국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부인되어야 합니다. 지옥이 없다면 예수님이 굳이 십자가의 저주를 받으실 필요는 전혀 없기에 그러합니다.
한국이 전 세계에서 키프로스에 이어 자살 증가율 세계 2위라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스위스 제네바 유럽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 세계에서 매년 약 40초에 한 명꼴인 80만 명 이상이 자살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죽음으로서 오늘에 둘러쳐져 있는 환경을 벗어날 수 있다는 착각입니다. 하나님나라는 이기는 자가 들어갑니다. 이 이김은 오직 우리의 믿음인데 그것은 예수님의 피가 오늘도 살아서 놀라운 능력으로 악의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성막의 덮개는 철저한 보호와 믿음에서의 승리를 보장해주고 있는 상징입니다. 그 성막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그 분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을 때 우리는 믿음의 승리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