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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금꽃 / 이용호 - 2020년 전라매일 신춘문예 당선작
‘꽃’이라 불리지만, 식물의 꽃이 아닌 꽃이 있다. ‘소금-꽃’이다. 이 소금-꽃이 피어나는 곳이 특별하다. 먼저, 바닷가 염전(鹽田)이다. 사각형의 소금밭 위에 잔잔한 물결이 일고, 열을 받은 함수 표면이 팽팽하게 당겨지면, 무채색 소금밭 함수 속이 꿈틀, 꿈틀거린다. 작은 결정들이 하나 둘 물 위로 떠오르고, 그것들이 서로 엉겨 붙으며 햇빛에 반사되어, 마치 꽃처럼 반짝인다. 그것을 염부(鹽夫)들은 ‘소금-꽃’이라고 부른다.
또 한 곳은 사람의 몸이다. 인간의 몸에서도 소금-꽃이 피어나는 것. 몸에서 배출된 땀이 말라서, 하얗게 보이는 것을 ‘소금-꽃’이라 칭하는 것이다. 뙤약볕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얼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삶의 꽃인 셈이다.
그 ‘소금-꽃’이 가장 뚜렷하게, 집중적으로 피어나는 곳이 있다. 곧잘 인생(人生)-길에 비유되는 마라톤(Marathon)이다. 42.195㎞를 달리며,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마라톤>이라는 스포츠 종목이다. 마라톤 참가자들의 몸에서는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땀이 솟는다. 온몸이 땀에 젖어버릴 정도이다. 그 땀의 결과물이 ‘소금-꽃’이다.
‘마라톤(Marathon)은 한 발 한 발 땀으로 쓴 시(詩)!’ 이 문장을 신문에서 발견하는 순간, 나는 무릎을 딱 쳤었다. 98%의 공감을 이룬 결과였다. 위 문장은 ‘마라톤-대회’를 보도하려는 신문의 기사 제목이었다. 마라톤을 표현하는 그 어떤 은유보다도 구체적으로 가슴에 와 닿는 문구였다. 한 발 한 발 내딛어, 약 오 만(50,000)번의 발걸음을 해야 다다를 수 있는 마라톤의 결승점. 42.195㎞, 약 100리(?)의 길이다. 수많은 땀방울이 요구되는, 그 고행(苦行)-길이 바로 한 편의 시(詩)란다. 땀으로 쓴 시란다. 참으로, 명문장이란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마라톤(Marathon)에게 결승선(성취감)을 요구한다. 이에 비해, ‘마라톤’은 사람들에게 ‘땀’을 요구한다. 마라톤은 꾸밈과 거짓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그 누구의 도움도, 그 어떤 편법도 허락하지 않는다. 몸과 마음, 어느 한 곳이라도 이상이 있는 자는 마라톤에 도전할 수 없다. 마라톤은 체력과의 싸움이지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쉽다. 오버페이스(over-pace)가 되어, 달리는 도중 길-바닥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 마라톤 출발선 위에 서면, 나는 신(神) 앞에 선 인간(人間)처럼 두려움을 느끼고, 진솔해진다. 동시에, 가슴은 짙푸르게 설레기 시작한다.
나의 마라톤 입문-기(入門-記)는 특별했다. 서른아홉(39)살 되던 해 봄, 나는 직장에서 해직(解職)되었다. 죄목은 괘씸죄였다. 나는 소위 ‘양심-선언’을 했다. 그 직장 내부의 부정부패를 막아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내부-반역자’로 취급하여, 그 조직에서 추방해 버렸다. 비로소, 세상의 낭떠러지 앞에 서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잿빛 우울증 뒤에 곧이어 뽀얀 불면증이 밀려왔다. 약을 먹지 않고는 하루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자살 충동까지 밀려오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마라톤(Marathon)을 알게 되었다. 그때가 막 마라톤의 붐(boom)이 일던 때였을 것이다. 무조건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초등학교 운동장을 홀로 달렸다. 세상에 대한 불만을 허공에 외쳐대며, 외롭게 달렸다. 타원형의 트랙을 수백, 수천 바퀴 돌았을 때, 비로소, 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시나브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마라톤’이 낭떠러지 앞에 서 있던 나를 붙잡아 주었다. 그렇게 10년 이상을 달리고, 또 달렸다. 하지만, 나의 마라톤에 관한 이력은 아직까지는 초라하다. 10여 차례의 <10㎞-달리기>와 <하프(half)-마라톤> 5회 완주. 그리고, 그것들을 기초로, 풀-코스(full-course) 5회 완주가 전부이다. 풀-코스(42.195㎞) 완주기록은 3시간 43분이다. 초라한 기록이지만, 내 나름으론 최선을 다한 결과이다. 마라톤을 완주(完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오버-페이스(over-pace)’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이란다. <초보자를 위한 마라톤 입문서>에서 배웠던 것. # ‘기록을 단 1초라도 단축해야만 한다.’ # ‘나는 남자다. 고로, 여성(女性)에게는 절대 지지 않아야 한다.’
이런 얄팍한 욕망에 ‘오버-페이스(over-pace)’란 늪에 빠지면, 완주는 거의 불가능하다. 마라톤-길 위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 그렇다면, 나이 39살 때, 내가 감행했던, 그 <양심-선언> 행위도 일종의 ‘오버-페이스’가 아니었을까…!?
인생길에 곧잘 비유되는 ‘마라톤-길’에 대해서 논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도 마라톤(Marathon)을 사랑한다. ‘마라톤은 땀으로 쓴 시(詩)’라는 신문기자의 의견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특히, 마라톤(42㎞) 길 위에서도 ‘35㎞’지점에 애착을 느낀다. 그 공간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발견했던 것.‘마(魔)의 35㎞!’
사람들은 이곳을 그렇게 부른다. 전문 마라톤 선수가 아닌 이상, 이곳에 이르면, 대부분 참가자들이 체력의 고갈로 기진맥진하게 된다. 이곳은 사람들이 진솔해지는 공간이다. 이곳에 이르면 대부분의 마라톤 참가자들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린다.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모두 땅에 내려놓고, 엉덩이에 흙을 묻히는 것이다. 이곳은 마라톤이란 인생-길에서 마지막으로 쉬어가는 ‘간이역’이다.
이곳은 ‘땀’의 공간이기도 하다. 땀에 전 옷이,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이 왠지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공간이다.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얼굴에서 빛나는 그 눈빛은 바로 앞 사람에게 보내는 최고의 경의(敬意)일 것이다. 이곳은 ‘타인과의 경쟁’이라는 의미마저 잠시 소멸되는 곳이기도 하다. 곧, 땀의 미학(美學)이 발현되는 곳.
‘마(魔)의 35㎞지점’. 이곳은 가슴속의 모든 상념을 땀으로 배출하고 무아경(無我境)이 되는 곳이다. 또한 이곳은 사람의 몸에서 특별한 ‘꽃’이 피어나는 장소이다. ‘소금-꽃’. 이곳에 도착한 사람들의 얼굴에서, 목덜미에서, 등에서 ‘소금-꽃’이 피어난다. ‘소금-꽃’이 핀 얼굴로 서로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지만, 대부분 말이 없다. 기진맥진한 탓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눈빛으로, 가슴으로 소통을 하는 것.
나: 고맙습니다, 이 고행(苦行)의 길에 동행(同行)해 주셔서.
너: 자랑스럽습니다, 내가 당신의 동행자라는 것이.
나: 정말, 마라톤(Marathon)은 인생(人生)-길을 닮았어요.
너: 마라톤의 가치는 기록보다 완주(完走)에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처럼.
나: 오, 당신의 눈썹 위에 ‘소금-꽃’이 피어났군요.
나: 아, 당신의 이마에도 ‘소금-꽃’이 피었네요.
처음 대하는 사람들끼리도 땀의 결실인 ‘소금-꽃’으로 소통이 되는 마법(魔法)의 공간인 것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시공간…?!
‘마의 35㎞’지점, 그곳은 나에게도 특별한 공간이었다. 잠시 쉬어 가는 간이역이었으며, 사색의 공간이었다. 특히, 검붉은 추억들이 여울져 흐르는 곳이었다. 이윽고, 이곳을 떠날 때면, 검붉은 추억이 발효되어, 새하얀 그리움이 밀려오곤 했었다.
첫 번째, 두 번째까지는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널브러져, 체면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누워서 자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세 번째 ‘마라톤-길’부터는 달랐다. 몸의 피로-도는 비슷했지만, 뭔가 달랐다. 마라톤에 대한 내공(內功)이 쌓인 결과였을까. 마음의 여유였을까. 길가에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그곳 주위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다. 논과 밭 속의 작물들이 보이고, 강변 마을이 보이고, 성당의 첨탑도 보였다.
동행자들의 뒷모습이 보이더니, 내 뒷모습도 보이는 것 같았다.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달려온 길이 보이고, 앞으로 달려갈 길도 보였다. 그리고, ‘땀’이 보였다. 내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땀과 동행자들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땀. 그리고, 땀이 말라 형성된 ‘소금-꽃’도 보였다.
세 번째 마라톤-길 위에서, 그 ‘마(魔)의 35㎞’지점에서 나는 그들을 용서했다. 괘씸죄라는 명분으로, 나를 세상의 낭떠러지 앞에 세웠던 사람들, 약 5년 동안이나 나를 불면증에 시달리게 만들었던 사람들, 내 머리카락을 반백으로 만들어 버렸던 사람들. 그 옛 직장 동료들을, 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용서했다. 결국 나는 그들을 ‘땀’의 이름으로, ‘땀’의 권위로, ‘땀’의 진실로 용서했던 것. 그들을 용서하고 나자, 내 가슴속에는 ‘소금-꽃’ 한 송이가 함초롬히 피어나고…!
‘마라톤은 한 발, 한 발 땀으로 쓴 시(詩)’
하지만, 나는 이 신문기자의 절묘한 표현에 짙푸른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마라톤은 시(詩)보다는 수필(隨筆)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수필 문학의 특성은 픽션(fiction)을 가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시(詩)와 소설(小說)은, 그 내용에 있어서, 얼마든지 픽션(fiction)을 가미할 있다. 무엇이든 얼마든지 꾸며낼 수 있다는 것. 수필-문학의 또 하나의 특성은 작가 자신이 그 작품 속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주인공 자신이 한 발-한 발 내딛고, 한 땀-한 땀 흘리며, 약 4시간 동안 주어진 ‘외-길’을 달려가야만 완성이 되는 마라톤은, 바로, 생생한 수필(隨筆)이다. 인생(人生)이 마라톤(Marathon)에 비유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마라톤이 한 편의 수필이라면, <마(魔)의 35㎞지점>은 한 편의 시(詩)다. 즉, 마라톤은 <마(魔)의 35㎞지점!>이라는 한 편의 시(詩)를 씨앗처럼 품고 있는 수필(隨筆)인 것. 그 수필의 주제는, 땀의 미학(美學)인, 바로 ‘소금-꽃’이다.
2) 망월굿 / 김애자- 202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강 가운데 생긴 섬마을이다. 태백산에서 태어난 내성천(乃城川)과 소백산에서 출발한 서천(西川)이 만나 마을을 휘돌아나가면서 물돌이동을 만들었다. 삼면이 물로 둘러싸인 수도리 모래사장에는 일 년 중 가장 달이 크게 보이는 정월대보름 달집이 세워진다. 달집을 태우면서 한 해를 시작하면 바라던 일들이 잘 이루어 질 것 같다.
어릴 적에는 설날보다 대보름이 더 신났다. 농한기의 쉼을 얻은 어른이나 방학을 맞은 아이들은 명절이라는 이유로 오랜만에 여유를 즐겼다. 낮에는 연날리기와 지신밟기로, 밤이면 쥐불놀이로 마을은 온통 축제로 들떴다.
절정은 달집태우기였다. 타오르는 불 앞에 소원을 걸어놓고 이루어지기를 빌고 다짐하는 것은 한 해의 농사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청년들은 긴 막대로 기둥을 세우고 달집의 뼈대를 만들었다. 집 안에는 불씨가 잘 살아나도록 솔가지며 마른나무, 관솔을 넣고, 밖에는 생솔가지를 쌓아 이엉을 얹어 새끼줄로 감는다. 아이들도 자기주먹 만한 꿈 하나씩 품고 땔감을 보태기 위해 고사리 손을 모았다. 집이 다 만들어지면 달이 보이는 쪽으로 문을 내고 보름달 모양을 만들어 달집 가운데 새끼줄로 매달아 놓았다.
“망월이야!”
환호성과 함께 불길이 솟아오른다. 붉은 너울의 끄트머리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자 농악대의 꽹과리소리가 자지러진다. 달집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도 불꽃의 춤사위와 풍악에 맞추어 몸을 흔든다. 보름달의 꼬리가 산 능선을 박차고 둥실 떠오르자 구름이 물러나면서 길을 터준다. 달은 온 세상에 환한 빛을 흩뿌린다.
불이 점점 무섭게 타 오른다. 선홍의 불빛이 검붉은 색이 되어 하늘로 사라진다. 거센 기세로 솟구치는 불길과 강 건너편 숲이 어우러져 신비로움을 더한다. 나무에 달아놓은 액막이 부적과 소원들도 활활 타 올라간다. 잡아먹을 듯 널름거리는 불의 혓바닥을 빠져나온 불똥이 탁탁 소리를 지른다. 마음속에 쟁여둔 사악함을 몰아내라고 죽비를 치며 호령하는 것 같다. 반백년이 지나는 동안 불뚝한 뱃가죽만큼 쌓아 둔 분노와 욕심의 찌꺼기를 서둘러 내 놓았다. 한기가 뼈마디를 쑤시는 겨울밤의 매서운 추위지만 불 앞에 있으니 어머니 품에 안긴 것처럼 따뜻하다.
검붉은 구름이 치솟는다. 땅의 소망을 신에게 전하기 위해 연기에 올라탄 불기둥이 하늘 길을 터준다. 농사의 풍요와 생명력을, 물과 여성을 품은 달이 이루어 주리라는 믿음 때문인가. 여인들은 고쟁이나 저고리 동정을 뜯어 불 속으로 던지며 다산을 기원한다. 풍악 소리가 더 크게 울리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모인 이들은 일제히 달집 주위를 빙빙 돌며 목이 터져라 강강술래를 불렀다. 불가에 쪼그리고 앉았던 내 어깨도 저절로 들썩거린다. 아랫도리가 후줄근하도록 아낙들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붉은 달빛이 흥건하다. 한껏 부풀어 오른 바다의 밀물처럼 내 안의 무엇이 일어나고 있었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비릿한 냄새와 축축한 느낌이 께름칙하다. 젖은 속옷을 보자 두려움과 서러움이 밀려들었다. 부끄러움에 온 몸이 오그라든다. 빨강 꽃잎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름적거리며 엄마 눈치만 살폈다. 낌새를 알아챈 엄마가 책상 밑에 숨겨 둔 흔적을 찾아냈다. 엄마는 달거리가 시작된 거라며 작은 소창 생리대를 만들어 주었다. 며칠 동안 선홍의 달빛을 경험한 나는 못할 짓을 한 것처럼 후미진 곳으로 숨어 다니며 식구들의 눈을 피했다.
가뭄이 심할 때 옛사람들은 붉은 빛이 선명한 소녀의 개짐으로 깃발을 만들어 기우제를 지냈다. 당신도 딸의 첫 생리를 신성하게 여겼는가. 엄마는 지저분하게 구겨진 개짐을 정성스럽게 신문지에 쌌다. 뒷마당 한쪽 진 곳에 땅을 파고 왕겨로 불을 피워 성인식을 치르듯 찬찬히 딸의 증거물을 태웠다. 달빛의 흔적이 다 탈 때까지 지켜보는 당신의 얼굴은 달보다 더 붉게 물들었다. 씨알을 품을 딸의 밭에 나쁜 기운은 재가 되고 막 피어나는 여체女體는 옥양沃壤이 되기를 염원했으리라.
달은 생명의 집이다. 씨를 품는 여인의 몸이며 땅이다.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차고 기우는 달의 정기를 받은 여인들의 몸에는 창조의 기운이 서려있다. 달집을 태워 액을 없애고 농사가 번성하기를 기원한 것처럼 여성은 생산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생리를 치르면서 자신의 몸을 정화시켰으리라. 보름달에서 완숙한 기운을 받은 여자가 달거리로 생명을 불러 후손을 얻으려는 것은 잉태의 근원이 달과 여인의 신비로운 조화에 있음이 아니던가. 여자의 힘이 달을 닮은 자궁에서 비롯된다는 옛 어른들의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땅의 소원이 달에 닿도록 풍악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너울거리는 불꽃 뒤로 보름달이 둥두렷이 떠올랐다. 달집 속에 매놓았던 달이 언제 뛰쳐나갔는지 동쪽 하늘에 성큼 올랐다가 다시 불 속으로 들어간다. 광기어린 꽹과리소리에 기죽은 듯 안팎으로 보이는 달의 모습이 처연하다. 시끄러운 소리 속에 표현 할 수 없는 적막감이 감돈다. 생명을 받고 헤어지는 모녀처럼, 뜨고 이우는 달처럼 생과 사의 비밀을 품은 이 땅의 여인과 농민들의 아픔을 다 끌어안느라 힘든 때문일까. 땅을 품고 사는 이들의 몸을 밟고 춤추는 세상사가 올해도 뾰족한 수를 보여줄 수 없는 듯 걱정스러운 얼굴이다.
깽 깨갱 깨갱 깽 하늘을 가르는 꽹과리소리가 천둥을 부르자 둥 두둥 구름떼가 몰려든다. 딱 따닥 딱 장구재비의 손놀림이 점점 빨라져 무아지경에 이르니 장대비가 쏟아진다. 지잉 지잉 천지의 기운을 한데 모은 바람이 파문을 그리며 골짝으로 퍼져나간다. 꽹과리, 북, 장구, 징의 사물四物을 앞세운 농악소리가 산천을 누비며 하늘로 올라간다. 불과 물과 달에 만취한 아녀자와 남정네, 늙고 젊고 높고 낮음의 경계가 허물어진 이들이 손에 손을 잡고 달집을 돌고 돈다.
“올해도 풍년이고, 내년에도 풍년일세. 쾌지나칭칭나네 쾌지나칭칭 나아 네에.” 땅의 함성과 하늘의 자비가 공중에서 얼싸 안고 춤을 춘다. 절정으로 치 닿는 망월굿의 오르가즘을 맛보며 나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땀으로 흠씬 젖은 육신이 땅의 품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개운하고 편안하다.
타오르던 불길이 사그라진다. 가물거리던 연기도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남은 불똥 몇 개가 튀어나가 어둠속에서 별처럼 반짝인다. 풍악도 시들해지고 웅성거리던 사람들도 하나둘 발길을 돌린다. 불길에 몸을 사르며 사라져간 달집의 흔적은 다시 어미의 품인 토양으로 돌아가 생명을 키우는 거름이 될 게다.
아직 다 못한 소원이 있는가. 모닥불 옆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는 이들을 뒤로하고 불야성의 도시로 향한다. 달집을 빠져 나온 보름달이 차창에 올라앉아있다. 더러운 것은 모두 태웠고 액운도 거두었다며 싱긋 웃는다. 달집에 달아놓은 소원은 다 들어주겠으니 안심하라며 성큼성큼 앞장선다. 돌아오는 밤길이 훤하다.
3)
황동나비경첩 / 이상수 - 2020년 영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화초장 위에 황동나비가 고요히 앉아있다. 흡밀吸密이라도 하듯 미동이 없다. 철심鐵心이 박힌 나비의 반쪽은 몸판에, 다른 쪽은 문짝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황금빛 날개가 팔랑거린다.
친정 안방에 놓인 화초장은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왔다. 두 칸짜리 문판에 단아하게 매화가 그려져 있고 황동나비 세 마리가 돋을새김 되어있다. 안쪽엔 해충의 침입을 막으려 한지를 덧발랐다. 위 칸엔 모시적삼을 비롯해 두루마기와 유건이 걸리고, 아래 칸엔 치마저고리며 처녀 때 손수 수놓은 베갯잇이 포개져 있다.
친정 부모님이 부부의 연을 맺은 것은 육십 년 전이었다. 열다섯에 가장이 되어 책임감 강한 아버지와 놀기 좋아하던 철없는 막내딸 어머니는 초례청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엔 으레 연애 기간을 갖지 못한 동갑내기 부부의 성격은 판이했다. 아버지는 섬세하며 꼼꼼했고 어머니는 대범하고 쾌활했다. 한 번 일을 시작하면 끝을 보는 아버지와 싫증이 나면 바로 그만두는 어머니의 동상이몽이 시작되었다.
두 분이 일하는 방식은 매우 달랐다. 어머니는 부지런히 몸을 놀리는 편이었고 아버지는 몸보다 머리가 부지런했다. 아버지가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있는 동안 어머니는 호미를 들고 논밭으로 내달렸다. 어머니가 보기에 아버지는 지나치게 굼떠 보이고 아버지가 보기에 어머니는 너무 조급해 보였다. 농촌에서 몸을 쓰지 않는 일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돈을 많이 벌어 식구들을 편안하게 해주겠다며 대처로 나가 옷가게를 차렸다. 머릿속으로 셈해 본 이익은 컸겠지만 날이 갈수록 손해를 보게 되었다. 한 번 시작한 일이라 어떻게든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 다급히 논밭을 팔아 그 손해를 메우려 했다. 그럴수록 밑 빠진 독처럼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어머니가 눈물로 아버지를 말렸지만 본전 생각은 아버지를 깊숙한 늪 속으로 끌어당겼다. 결국 마지막 남은 땅마저 넘기려하자 논바닥에 드러누웠다. 차가운 비는 어머니의 몸을 파고들었고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우리 마음에 파고들었다. 울며불며 매달리는 우리를 보더니 결국 아버지는 가게를 정리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사업에 대한 아버지의 꿈은 쉽사리 접히지 않았다. 어느 해, 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땅을 세내어 시멘트 블록 공장을 차렸다. 건물 한 채 없고 직원은 달랑 어머니뿐이라 딱히 공장이랄 것도 없었다.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는 길이면 어머니는 혼자서 젖은 블록을 나르고 있었다. 갓 찍어낸 블록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귀퉁이가 무너져 쓸 수 없게 된다. 어쩌면 어머니의 두 손에 들린 것은 젖은 블록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업인 지도 몰랐다. 아버지는 미수금을 거두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녔지만 사고로 몸을 다쳐 일 년도 못 넘기고 공장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다시 농부의 삶으로 돌아왔다.
육십여 년, 온갖 풍상을 겪은 화초장에는 세월의 더께가 앉아있다. 문짝은 헐거워지고 나비는 녹이 슬어 빛이 바랬다. 군데군데 갈라진 틈을 메운 흔적이 우툴두툴하다. 손바닥으로 쓸어보면 쓸쓸함이 묻어난다. 한사코 밖으로만 떠돌던 아버지와 그걸 말리려던 어머니의 시간이 아릿하게 전해져온다.
신혼 때 우리는 아귀가 잘 맞았다. 언제나 그러리라 의심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과 나의 관계는 헐거워지고 말았다. 갑자기 찾아온 실직과 그로 인한 어려움 때문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쌓인 피로로 집안을 제대로 챙기지 못할 때가 많았고 실적 때문에 괜스레 짜증을 부린 적도 있었다. 아귀가 잘 맞지 않고 자꾸 삐거덕거렸다.
그즈음이었을까, 친정집 윗목에 묵묵히 앉아있는 화초장이 새삼 눈에 들어온 것이. 그 전에는 낡고 색이 바래 별로 대수롭잖게 보았다. 친정에 들를 때마다 하도 낡아서 새것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며 괜히 어머니를 핀잔했다. 하지만 당신은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어릴 적, 잠결에 무슨 기척이 느껴져 눈을 떠보면 어머니가 화초장에 기대앉아 있곤 했다. 아버지와 고성이 오간 날이었을 것이다. 입으로는 무언가를 되뇌며 화초장을 연거푸 문지르고 있었다. 마치 어떤 의식을 치르는 사람 같아 보여 엄숙하기까지 했다. 아침에 일어나보면 경첩에서는 반짝반짝 윤이 났고 어머닌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 도시락을 쌌다.
여닫는 문은 물론이고 안경다리를 접었다 펴거나 피아노 뚜껑을 여닫는 데도 경첩이 쓰인다. 만약 그것들이 풀이나 노끈으로 만들어졌다면 얼마나 쉽게 망가질 것인가. 사교댄스에서 회전하는 축을 어느 한쪽 발끝에 두고 체중을 옮기면서 회전하는 것도 경첩이라 한다. 그러고 보면 어느 한쪽이 자신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잡아주는 것은 모두 경첩이라 할 수 있겠다. 반백 년을 함께 산 친정 부모는 이제 서로가 단단히 연결되는 방법을 안다. 헐거워진 화초장 문짝처럼 어느 한쪽이 떨어져 나가려 할 때 다른 한쪽은 그것을 단단히 붙잡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상대방을 신뢰하며 끝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아버지는 안정된 가계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벌였다.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아 절망도 했고, 그대로 주저앉아 일어서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그때마다 아버지를 잡아주었다.
그동안 밖으로 나돌며 나는 여러 가지 일을 전전했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하지 못하는 탓에 여러 직업을 전전했고 적응하는 동안 온 힘을 쏟았다. 그만큼 집안일은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저녁 땟거리며 아이들 챙기는 일까지 도맡아 했을 때 심정이 어땠을까? 변화를 싫어하고 질서정연한 것을 좋아하는 남편이 어질러진 집안을 견디고 나의 빈자리를 메우면서 늦은 귀가를 할 때도 남편은 반갑게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아버지의 잦은 사업실패로 헐거워지려 할 때마다 어머니가 붙들어 주었고 내가 돈을 번다는 핑계로 밖으로 나돌 때 붙들어준 것은 남편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경첩이 되어주었기에 화초장처럼 든든하게 가정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기와가루를 가져와 나비의 날개를 닦는다. 세 마리 황동나비는 여전히 단단하게 문짝을 붙잡고 있었다. 녹슬어 있던 황동나비가 날갯짓을 한다. 매화나무 위에 앉았다간 팔랑팔랑 안방을 날아다닌다. 나비가 날아간 자리마다 매화향이 가득 퍼진다.
4) 아버지 게밥 짓는다 / 김옥자 - 2020년 매일신춘문예 당선작
달무리 속으로 언뜻언뜻 구름이 흘러들다 사라지는 밤, 정월대보름 놀이를 하느라 한껏 들뜬 여흥이 가시기전 경광등을 켠 경찰차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제복을 입은 경찰이 차에서 내리더니 보호자를 데리러 왔다고 했다. 농한기를 맞아 도시에 사는 지인들과 관계의 밥을 짓고 집으로 돌아오다 아버지는 속도의 바퀴에 무참(無慘)하게 부딪쳤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오빠와 언니에게 당부의 말도 일러 둘 겨를도 없이 그 분들과 함께 병원으로 갔다. 위중했던 병세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어른들의 말이 적응되고도, 근 1년여의 투병생활이 지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진 대퇴부까지 석고 깁스를 하고 목발에 의지한 채 집으로 오셨다. 한 집안의 대들보이자 기둥처럼 튼튼했던 몸이 사고의 후유증 때문인지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왼쪽 어깨가 앞으로 치우치면서 게가 걷는 형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걸음이 빠르면 빠를수록 게걸음은 더욱 더 심하게 나타났다.
서식환경과 외향적인 특성이 다양한 게는 한 쌍의 집게발과 네 쌍의 다리로 종횡무진 갯벌을 오고 간다. 아버지 역시 푹푹 빠지는 세상 속에서 마른 곳과 젖은 곳의 경계를 넘나들며 세상의 파고와 맞서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파도가 지나간 자리엔 그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사고로 인한 정신적인 충격과 육체적인 상처를 지닌 채 당신의 건재함을 보이려는 듯 세상의 파고 속에서 잠시도 자신을 풀어 놓는 일 없이 게걸음을 치며 앞을 향해 나아갔다. 까치발을 든 민꽃게처럼 수게의 기개(氣槪)를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게딱지의 단단함 속에 자신의 가장 여린 부분을 감추고 도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썰물을 밀어낸 너른 벌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게가 숨구멍을 오가며 무기물을 걸러 내거나 갯지렁이 바다 생명의 사체를 먹이로 찾고 있는 중이다. 게가 먹이를 찾는 것이나 아버지가 세상의 바다에서 필요한 양식을 얻기 위해 게걸음 치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불편한 다리로 분주히 걷는 모습에선 언제나 인내의 짜디짠 냄새가 배어 있었다.
일 년 농사를 준비하며 관계의 밥 짓기를 하는 과정 속에서 품앗이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당신이 하고자 하는 방식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듯, 주위 사람들에게 지청구를 주며 완고함을 보이기 위해 게걸음은 지속되었다. 게가 옆으로 기어가다 길이 아닌 곳에 처박힐망정 당신 사전엔 굽힐 줄도 모르고 포기도 없었다.
게는 위험을 감지하거나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싶을 때 빈 소라껍질을 자신의 은신처로 삼거나 뻘 구멍 속으로 자신의 몸을 숨긴다. 하지만 아버진 그러지 않았다. 게는 몽글몽글 밥을 짓고 있었다. 뻘과 모래밭에 수 천 수만 개의 밥을 지어 놓았다. 연신 앞발 두 개를 얼굴에 비벼대며 거품을 물었다 뱉어 낼 때마다 게밥의 숫자는 늘어났다. 너울성 파도 한 번이면 와르르 쓸려나갈 저 밥들, 아버지가 지어 놓은 밥들은 수시로 파도에 쓸려 나갔다. 하우스 세 동의 배추 농사가 그랬고, 천오백 평 감자 농사가 가격 폭락으로 거센 파도에 휩쓸려 나갔다. 한우 값 폭락으로 반도 못 건진 비용들이 온전치 못한 아버지의 다리에 족쇄를 채우며 더욱 더 절름거리게 만들었다. 어린 게들의 왕성한 식욕을 위하여 아버지의 게걸음은 오금도 펴지 못한 채 세상의 바다에서 게걸음을 치며 내달려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의 몸은 옆으로 치우치며 점점 더 빠른 게걸음이 되어 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분명 당신은 똑바로 걷는다고 생각하셨을 게다.
게는 열 개의 다리중 하나라도 부러지면 게로서의 능력을 잃는다. 아버지는 교통사고 이후 다리만 와지끈 부러지고 깨진 것이 아니었다. 속도의 바퀴에 다리가 깨진 순간, 당신의 꿈과 희망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 아픈 다리와 함께 상실되었음을 철이 들고서야 알았다. 나와 가족들은 "아버지! 다쳐서 아픈 다리는 괜찮으시냐"고 묻지도 못했다. 아니 그 얘길 입 밖으로 꺼내질 못했다. 마치 금기사항이라도 된 것처럼 모두가 함구했다. 여러 번의 수술로 인해 살가죽 속에 뼈만 앙상하게 남은 다리를 어루만져 드리지도 못했다. 한쪽 어깨가 옆으로 치우치며 게걸음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긴 시간을 아버진 묵묵히 혼자서 감내해야만 했다.
철이 없어 아버지가 지어 놓은 보리 섞인 밥이 싫다고 투정을 부렸다. 소금기에 절은 짠내가 싫어 아버지의 고단함을 외면한 적이 많았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서야 삶은 짭조름 간을 맞추며 살아내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터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감추듯 어떤 상황이나 낯선 변화에 집게발을 번쩍 들어 대항하는 게처럼 단단한 날을 세웠던 아버지였다. 게는 늘 까치발을 들고 짠물 가득한 세상에서 분주히 움직인다. 그가 뻘 구멍을 아지트로 삼고 쉬는 시간 역시도 마른 곳이 아니듯 아버지의 쉼터 역시 그랬다. 게가 생존을 위해 밥을 짓느라 집게발로 연신 얼굴을 비벼대며 게거품을 무는 것처럼 아버지는 삶을 위해 고군분투 했다.
누구나 세상의 바다에서 게걸음을 걷는 형상이 되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세상을 향해 똑바로 걸어 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비틀거리며 게걸음을 친 것이 아니었나 싶다. 매사 어긋나버린 꿈을 향해 비틀거리는 모습은 보였어도, 아버지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거나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우리 가족을 지켜내었다.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온전치 못한 다리를 짜디짠 물에 담금질을 하며 게밥을 짓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게는 집게발로 연신 얼굴을 비벼대며 거품을 물며 몽글몽글 밥을 지어 놓을지언정 흔들리며 걸어 온 발자국은 남기지 않는다. 아버지가 평생을 일궈 놓은 밥을 퍼 먹고 있는 오늘, 여덟 형제가 그 자식을 위해 다시 세상의 파고를 넘나들며 또 다른 밥을 짓고 있는 중이다.
5) 댓돌 / 우광미 - 202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그곳은 성전의 들머리다. 저마다 순례길 같은 일상에서 지고 온 남루들을 벗어놓는다. 하루치의 자잘한 삶의 편린들을 정화시킨 후 비로소 맨발을 방으로 들인다. 또 날이 새면 어김없이 새로운 다짐을 찍으면서 나선다.
돌은 연장이 되기도 하고 염원을 담아 얹으면 탑이 되기도 한다. 성벽의 돌처럼 우러러봐야 할 정도로 높이 쌓은 것도 있고, 보일듯 말듯 나지막이 집 담장으로 둘러진 경우도 있다. 그 쓰임새가 다양하나, 집채를 오르내리도록 만든 계단인 댓돌은 유난히 살갑다.
비상하는 새들도 머무르며 쉼표를 찍듯이, 생각이 흐트러질 때엔 시골집에 와서 댓돌을 바라본다. 칼에 베인 시간처럼 빈집의 공허가 창백하다. 내 시간의 긴 침도 모 닳은 댓돌 위에 멈춰 있다. 각이 서 매사 반듯하던 젊은 날의 성정도 유연해졌는지 제 몸에 이끼꽃을 피웠다. 바닥의 애환을 알고 있는 듯 묵묵히 세월을 받아낸 낙수의 결마저 간직하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고요에 든다. 이렇듯 자신을 잘 바라볼 수 있을 때는 멈추어 있는 시간일 것이다.
해가 설핏해지자 산 그림자가 마당에 내려앉는다. 감나무 끝에 서성이던 바람이 댓돌 위로 먼 기억의 풍경들을 부려놓고 간다. 우듬지 까치 소리가 여명을 깨울 때부터 들리던 자분자분한 어머니 발걸음 소리. 뻐꾸기 울고 스무날만 지나면 풋보리를 먹을 수 있다던 외할머니 말씀이 문득문득 생각난다던 어머니. 보릿고개를 넘어가며 했다던 그 말이 어려움을 이겨내는 주문인 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힘겨운 시집살이에 속울음을 삼키며 친정으로 향하고픈 발걸음을 몇 번이나 여기서 바장였을까. “이별이 꼭 죽음뿐이랴.” 하시며, 집 나간 자식 흉몽이라도 꾸는 날이면 하얀 소금을 한 줌 댓돌 주변으로 뿌려 놓으시곤 했다. 아랫목 이불 속에 밥그릇이 따뜻하면 객지에서도 배곯지 않는다는 믿음, 신발이 가지런하면 어디를 가든 발걸음이 어긋나지 않는다는 믿음, 그것은 어머니 불변의 동종주술이었다.
하루의 일과 중 무시로 눈보다 정갈히 씻은 시어른 고무신을 섬돌에 올리는 일은 빼놓을 수 없는 의식이었다. 가족의 밥이 되고 자식의 책이 될 벼를 돌보기 위해 산모롱이 돌아 물꼬 트는 아버지의 흙고무신. 안쪽 바닥에 우산대 달궈서 눌러놓은 낙인은 끝까지 닳지 않는 바코드였다. 덤벙대며 마루로 뛰어오르곤 하던 오빠의 운동화는 사선으로 놓이거나 한쪽이 뒤집히기 일쑤였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조용히 챙겨놓았다. 마치 댓돌이 나의 영역이라고 무언의 주장이라도 하듯이. 어떤 허물도 절대 발설치 않는, 주소를 잡고 떠날 줄 모르는 정착의 의지가 굳건하다.
옆구리 맞대고 길게 늘어섰던 신발들. 그런 댓돌이 휑하니 비는 밤이 한 해에 꼭 하루씩 있었다. 음력 정초가 되면 날마다 무슨 금기가 그리도 많았던지. 그 중 신일(申日)에는 밤중에 귀신이 와서 신발을 하나씩 신어 보고, 그 중 딱 맞는 신 임자는 그 해에 병치레를 많이 한다고 했다. 그래서 초저녁이 되면 방 윗목에 신문지를 깔고 온가족의 신발을 나란히 늘여 세웠다. 늘 보던 신발을 방안에서 보면 색다르게 보였다. 아침에 나와서 말끔히 비어 있는 댓돌을 볼 땐 마치 새집에 온 듯이 낯설었다. 그만큼 댓돌은 신발이 놓여야 생명을 가지는 공간이다.
큰 건물의 댓돌은 마당에서 기단으로 오르는 계단이기도 하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도와 주는 디딤돌이다. 불국사의 연화교에 디딤돌마다 연꽃이 새겨진 이유도 그 위가 부처의 세계라는 암시이다. 진흙에 뿌리를 내린 채 티없이 향기를 피우고, 물 위에 잎을 펼치고도 젖지 않는 연화처럼 청정한 세계로 걸어가라는 뜻이리라. 대궐의 조계(階)에는 용이 새겨져 있다. 용이 통치자의 권위를 내보이기도 하지만 구름을 몰고 다니는 신성한 존재이기도 하니, 백성을 다스리는 이는 우로(雨露)를 골고루 내려 풍족하게 한다는 다짐일 터이다.
그에 반해 속계에 사는 서민의 집 댓돌은 조붓하다. 장식이 없고 밋밋하다. 화장기 없고 수수한 시골 아낙과 같다. 비록 열반을 향해 오르는 연꽃이나 세상을 다스리는 용 문양의 돌은 아닐지라도 댓돌의 적요는 본성이 지닌 포용력에 있다. 울타리 허술하게 치고 사는 서민들 정 붙이고 살아가는 속내야 어찌 연화장 세계나 대궐보다 덜하겠는가.
유년시절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은 두 장의 흑백 필름이 있다. 팔남매의 막내인 나에게 기억될 정도면 할아버지는 수를 하신 셈이다. 한 장은 누워 계신 모습이다. 이불을 잔뜩 당겨 덮은 까닭에 얼굴만 드러났다. 얼굴보다는 숱 많은 수염과 한 번도 벗지 않던 탕건만 기억난다. 또 한 장은 댓돌에 앉은 모습이다. 흰 바지저고리를 입고 다리에 행전을 두른 채, 마루를 배경으로 댓돌 위에 앉아 계셨다. 그분에게 댓돌은 일생 다스려온 영토를 내려다보는 성루이자, 피안을 바라보는 차안의 나루터였을지도 모른다.
댓돌은 밤이 되면 도량의 정례석처럼 정(靜)하다. 하루를 돌아보고 나쁜 기운은 별빛에 우려낸다. 고된 노동 후에 밥은 달고 잠은 깊은 법. 깊은 잠 속에서도 생의 무게에 신음하는 부모님의 숨소리마저 거두어 달빛에 씻어내는 정화수 막사발이다. 어제의 삶에 오욕이 달라붙었을지라도, 뉘우침으로 밤이 길었을지라도, 아침이 되어 신발을 꿰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을 부여해준다.
시간과 공간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댓돌 위에는 지난 삶이 남아 있다. 돌아봄과 되새김의 시간들이 머무르는 곳이다. 하루의 노동을 끝낸 달뜬 걸음이든, 일용할 양식에 매인 비루한 걸음이든, 끝내는 댓돌에 닿아서 멎는다. 내려간 만큼 삶을 절실하게 살아가게 하는 바닥의 의미를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장 낮은 자세로 좌정하고 있다. 가족들 차례로 떠나고 종내에는 어머니 혼자 오르내려도, 생각 속 신발만은 숫자가 줄어들지 않았던 댓돌이다. 이제 어머니의 신발도 정물이 되었다. 걷고 걷다 온 제자리.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날들이 채도를 잃은 가족들의 신발과 함께 저기 놓여 있다.
이 모든 희로애락을 듣고 갈무리한 댓돌에 앉아 지난 세월을 되작여 본다. 걸을 때에는 나아가는 일에만 전념했다. 바라보았던 건 앞쪽과 남은 거리뿐이었다. 멈추어 돌아본다. 인지한다는 것은 관찰하고 그 깊이를 가늠하는 일이다. 신발을 잘 벗어 놓으려면 고개를 숙여야 하듯, ‘지금 여기’ 자신이 서 있는 마음자리를 잘 살펴야 할 것이다. 겸허한 마음을 지니고 하심(下心)을 닦는 일이기도 하다.
마음 허허로운 날엔 댓돌에 올라 볼 일이다. 우리의 뒷모습이 저기 있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 가족들의 온기가 새겨져 있다. 시간을 거슬러 표정들이 살아나고, 귀 기울이면 속삭임이 들려온다. 모 닳은 댓돌은 우리집 호적등본이다. 칸이 부족해 너덜너덜한 우리 삶의 이야기가 깨알처럼 씌어 있다. 나 또한 언젠가는 하나의 정물로 들어앉을 것이다. 그날이 언제이건, 오늘도 이 제단을 조용히 쓸고 오른다.
6) 새 / 조혜은 - 2020년 한경 신춘문예 당선작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새를 보고 새를 볼 수 없을 땐 새를 상상해 왔다. 여덟 살 때부터 치기 시작한 피아노마저 건초염으로 오년 전 그만둬버리고 내게 취미라고는 새를 보고 새를 상상하는 것이 유일하다.
눈앞에 있지 않은 새를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사무실 내 옆자리의 후배는 신기할 정도로 새하얀 피부와 유독 새빨간 입술이 백문조를 쏙 빼닮았다. 뭐 때문인지 매사에 부루퉁한 얼굴로 혼잣말이 잦은 세탁소 주인아저씨는 새카만 까마귀를, 아파트 근처 편의점의 스물 남짓한 야간 알바생은 검푸른 눈매가 도드라진 동고비를 닮았다. 세상에는 새를 닮은 사람이 아주 많다. 개나 고양이를 닮는 것처럼 사람들은 새를 닮기도 하며 특별하거나 커다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왜 하필 새를 보는가 하면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책을 읽고 캠핑을 가고 맛집 탐방을 다닌다면 나는 새를 본다. 하필 새가 아니어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번식기나 월동기가 되면 주말을 이용해 순천만 습지나 남해 강진만, 창원 주남저수지, 강화도, 낙동강 하류 을숙도, 충남 태안 천수만 등 전국을 돌아다닌다. 아무리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오직 새를 볼 수 있다면 거리는 상관없다. 새를 보러 가는 길은 실제로 새를 보는 것만큼이나 설레고 즐거운 일이다.
새를 볼 때는 그냥 본다. 무슨 대단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고 잠시 생각을 멈추고 오롯이 새 자체에 집중한다. 새를 보기 전에 애써 걱정이나 고민을 내려놓을 필요는 없다. 뭘 하려거나 억지로 누군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눈앞의 새를 보면 된다. 숨죽인 채 새의 모든 행동을 주시하다보면 어느새 나는 비워져있다. 새를 보는 동안 나는 서서히 가벼워진다. 비어 있을 때 나 자신은 아주 가볍고 가벼운 것은 늘 옳다. 나는 끓어 넘치는 것을 혐오한다. 넘치는 것은 모자란 만 못하고 하등 무용하다. 화가 나거나 슬플 때 나는 새를 본다. 긴장했을 때도 새를 보고 황당하거나 창피할 때도 새를 본다. 새를 볼 수 없을 땐 새를 상상한다. 상상까지 새를 보는 일의 포함인 것이다.
사람들은 새를 보는 일을 일면 생소해하면서도 마뜩찮게 여기는 구석이 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새를 보는 일을 굉장히 수고롭게 생각한다. 일례로, 내가 주말에 새를 보러 간다고 하자 사수는 비꼬듯 말했다. ‘뭐? 새를 보러 간다고? 뭐 하러? 새를 보면 떡이라도 나와?’ 새를 보는 것을 하찮게 여기니 새를 보는 나도 하찮아 보였던 걸까. 떡이 나오냐니.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뭘 바라고 새를 보는 것이 아니다. 새를 봐도 내가 얻는 건 없다. 새를 보는 일은 지극히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새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문외한은 아니다. 새라고 다 같은 새가 아니라는 것을 새를 보고 구분할 정도는 된다. 그렇다고 또 자랑할 만한 수준도 아닌 것은 지구에는 팔천육백여 종의 새들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칠백여 종이 한반도에 서식하고 있는 걸 고려하면 그저 협소한 나의 생활 반경 내에서 꼭 필요한 만큼 보일 뿐이다.
봄이 되면 한반도에 날아와 번식하는 여름 철새, 겨울철에 머무는 겨울 철새, 봄이나 가을에 잠시 들렀다 가는 나그네새, 늘상 볼 수 있는 텃새가 있다. 이름만 들어도 익숙한 꾀꼬리, 뻐꾸기, 찌르래기, 제비, 소쩍새 등은 여름철새다. 겨울 철새로는 기러기, 고니, 두루미, 양진이, 말똥가리 등이 있고 노랑딱새, 흰눈썹지빠귀, 촉새, 긴발톱할미새 등의 나그네새와 박새, 딱새, 까마귀, 까치, 참새, 황조롱이 등은 텃새다. 가끔 나는 지구에 서식한다는 팔천육백여 종의 새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걸까 싶은데 이내 그것들을 다 보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좀 억울하고 허무해진다.
가만히 새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다. 새가 있고 새를 보는 내가 있다. 단출하고 홀가분하다.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새를 보고 있으면 지구에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는 오로지 새를 기다리고 새가 있으면 보고 또 기다리고 다시 본다. 저물녘, 녹아내리는 듯한 하늘을 무리 지어 비행하는 풍경 앞에서 자연스레 겸허해진다. 어떤 순간은 감히 카메라에 다 담을 수 없고 담으려는 찰나 지나가 버린다. 마치 인생의 가장 눈부셨던 순간을 잡아둘 수 없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사진 촬영을 하지 않는다. 탐조용 스코프나 망원렌즈 같은 전문적인 장비도 없을뿐더러 애초에 기록을 남기기 위해 새를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서 새를 본다는 건 저장이 아니라 비움이다. 비우고 또 비우는 과정이다. 내가 새를 보러 전국을 누비고 다니는 걸 아는 지인은 내게 새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 약속도 취소할 만큼? 사람보다 더? 나는 거의 평생 새를 봐왔으며 새와 견줄 비교대상은 없다. 때때로 사람들은 너무나 무심코 타인에게 가혹하게 군다. 새는 내가 가장 부서지기 쉬웠을 때 내게 왔다. 나의 최초의 새에 관한 기억은 열 살 때로 외할머니의 집 마당에 자그마한 새가 날아든 일이다. 눈 위를 디디며 자그마한 발자국을 남기던 녀석은 몸의 윗부분이 붉은 갈색이었다. 동작이 재빠르고 움직일 때마다 꽁지를 좌우로 쓸어댔다. 그것은 몹시 부드러울 것 같았으나 손에 쥐기엔 너무 작고 연약해 보였다.
그해 겨울, 나는 인천의 외할머니 집에 맡겨졌다. 아버지의 수술과 장기 입원 생활로 엄마가 나를 보살필 여력이 안됐기 때문이다. 나는 겨울의 눈 덮인 한적한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새를 쫓아다녔다. 지치는 줄도 모르고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푸르스름한 바닥위로 짙게 기울기 시작하면 슬금슬금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는 얌전히 앉아 공기놀이나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숨이 다 넘어갈 정도로 달리고 몸을 움직여 혼을 빼 놓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가만히 있으면 외롭고 슬프고 우울한 생각들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생각을 멈추기 위해서 나는 그 추운 겨울을 헤집으며 새를 쫓았다. 그러는 동안은 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두려운 상상과 망상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었다. 바짝 언 몸으로 돌아가면 외할머니가 상기된 내 얼굴을 몇 번이고 어루만지고 차가운 몸을 품에 보듬고 가만가만 어르고 달래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한 달 남짓 머물렀지만 때때로 나의 시간은 여전히 그때에 멈춰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해 겨울을 생각하면 하얗게 눈밭을 이룬 마당을 찾아들었던 그 작은 새와 함께 했던 풍경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겨울은 새에게 치명적인 계절이다. 헐빈한 겨울의 한 가운데에서 새들을 위한 안식처는 찾아볼 수 없다. 마땅히 몸을 숨길 수 없기 때문에 창공을 휘저으며 먹이를 찾는 포식자의 표적이 되기 쉽다. 천적들의 위협과 추위, 허기로부터 몸을 숨기려 날아든 녀석을 외할머니는 정성스레 거둬주었다. 아마도 나의 시간이 여전히 그해 겨울에 멈춰있는 느낌이 드는 것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평온했던 그 순간에 영원히 머물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날 차갑게 얼어붙었던 내 마음 위를 디디고 간 작은 발자국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언젠가 추락하는 새를 본 적 있다. 새를 볼 때는 그저 새를 볼 뿐이므로 새가 추락하는 동안 그저 지켜보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날개를 뒤집은 채 빠르게 추락하던 새는 능선 너머로 사라졌다. 그 이후로 나는 이따금 그 추락하는 새를 떠올리고 무기력함에 젖는다. 내가 어쩌지 못한 일들. 부정하고 불합리한 일에 대해 침묵을 강요당함으로써 부당함을 감내해야 했던 지난날. 세상은 참으로 불가해한 현상들로 끓어 넘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새를 본다. 새를 생각한다. 가벼워져라. 가벼워져라. 주문을 외운다. 날아가라. 날아가라. 훨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