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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도리가르친 성인" 공자고향과 맹자고향
그리고 하늘아래뫼 "태산"에서
淸代 압구정거리 임치의 "주촌 고상성"과
"칭다오"문화탐방-산동 일주 8일에 초청합니다
태산-공자-맹자-청도-강태공-주촌고상성-천목온천휴식(7박8일) |
여행경비 |
▣ 579,000원 |
포함사함 |
▣ 왕복선박료/인천, 연대 항만세/유류할증료 ▣ 호텔/공부가연 특식1회/1일3식(특식포함) ▣ 전용차량비/입장료/현지가이드,발마사지1회 ▣ 여행자보험1억원 |
기준환율 |
▣ $1=₩1,100(환율변동에 따라 요금 조정) | ||
쇼핑정보 |
▣ 노 쇼핑 / 노 옵션 | ||
모객인원 |
▣ 40명 이상(최소 35명 이상 출발) |
불 포 함 |
▣ 가이드및 운전기사팁 $300나누기 n/1 ▣ 중국단체비자 2만원[여권사본제출] |
행사일자 |
▣ 2011년 02월 2일(화요일)~2011년 02월 8일[7박8일] | ||
특기사항 |
◈ 일정에 필요한 모든 비용이 포함되어 노 쇼핑, 노 옵션 일정입니다. ◈ 구정성수기에 떠나시는 산동성내륙일주상품으로 년중 최저특가로 계획하였습니다 ◈ 예약 후 3일 이내에 예약금 10만원 입금과 여권사본을 팩스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 한. 중. 일 페리 중 최고급시설을 갖춘 독일건조호화선 향설란 1등실이용 선내시설-면세점/레스토랑/커피숍/나이트클럽/매점/명품점/수영장[동계오픈불가]/ ▷ 태산,에 이어 곡부의 공자유적,추현의 맹자고향 관람과 임치의 청나라 상가 "주촌 고상성"탐방 ▷ 공자 가문에서 손님을 접대하던 전통 연회음식과 접대주인 공부가연과 공부가주로 특식제공 ▷ 노 옵션, 노 쇼핑으로 알찬일정과 거품 없는 비용 ▷ 피로를 말끔하게 풀어주는 중국식 전통발마사지 1회 |
날자 |
지 역 |
교통편 |
시간 |
일 정 |
식 사 |
제1일 2/01 (화) |
인천 |
- 향설란 |
16:00 17:30 - 18:00 |
인천항 제 1국제여객터미날 집결(1층 수협은행 앞)
독일건조 크루훼리 향설란 탐승수속-객실배정 ☞ 면세점/레스토랑/커피숍/라운지/잡화점/사우나/오락실/노래방 석식(선내식당) ☞ 서해안의 밤바다를 감상하며, 옌타이로 항진-자유휴식 |
석:선내식 |
숙소 : 향설란1등실[침대4,샤워,화장실,위성TV] | |||||
제2일 2/02 (수) |
- 연대 - - - - - - 제남 |
- 전용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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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0 10:00 11:00 전 일 - - -
19:00 |
기상 / 조식(선내식당) 연대항 도착 / 입국수속후-가이드 미팅 후 치박 이동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수도였던 임치도착 ☞ 제나라 초대왕-강태공사당 탐방 제남으로 이동(-2시간소요) 산동성의 성도인 제남도착-석식후(한식-삼겹살) 호텔 휴식 |
조:선내식 중:현지식 석:삼겹살 |
숙소 : 태안 국제호텔(4성급) 또는 동급 | |||||
제3일 2/03 (목) |
태안 - 태산 - - - - - - 곡부 |
전용버스 -
케이블카 - - - - 전용버스 |
05:30 07:30 08:00 - - - - - 16:00 17:30 19:00 |
기상 / 조식(호텔식) 후 태산 도화곡으로 이동[2시간]-도화곡 케이블카탑승 天街이동 중국의 황제를 유혹하던-태산명소탐방 / 2 시간) ☞ 각석문[刻石文]: 태산 일대에 새겨져 있는 각석은 1,800여곳인데 강희제,한무제,당대의 대표적 시인 두보와 이태백등의 石文관람 ☞ 천가-남천문-벽해사-옥정[1,523M]-케이블카 하산
하산완료 후 곡부로 이동(1시간) 곡부도착 / 중국식 전통발마사지-60분(팁-5$ 별도) 석식(특식-공부가연과 공부가주) / 호텔휴식 ☞ 공부가연-공자 가문의 전통적인 손님 접대용 연회음식 |
조:호텔식 중:도시락 석:특 식 |
숙소 : 권리빈사호텔(4성급) 또는 동급 | |||||
제4일 2/04 (금) |
곡부 - -
ㅏ추현 - -
치박 |
전용버스 |
07:00 08:00 - - - - - 12:00 14:00 - 18:30 |
기상 / 조식(호텔식) 후 공자 유적지 관광(약-4시간) ☞ 공부: 공자 후대들이 대대로 거주하고 있는 저택으로 청조 황제궁실에 버금으로 가는 큰 관저 ☞ 공묘: 공자를 기념하고 유가학설을 표창하는 사당 ☞ 공림: 공자 및 공자후대의 묘지로써 10만여 개의 무덤으로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가족 묘지) 중식(현지식) 후 추현 이동(버스-1시간)-맹자님고향 방문 ☞맹부,맹묘,아성전 등 답사 제남경유-황하뚝길에서 직접 황하강변의 물을 적셔보고 치박도착 석식(현지식) / 호텔휴식 |
조:호텔식 중:현지식 석:현지식 |
숙소 : 치박 제도호텔(4성급) | |||||
제5일 2/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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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박 -
주촌 - - - 청도 |
전용버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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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0 08:00 09:30 - -
- 14:00 15:00 18:00 |
기상 / 조식(호텔식) 후 청나라시대 실크로드 번화가를 재현한 고색창연한 거리 주촌이동 고상성 청대 옛 상업거리 탐방 ☞ 청나라 은행,옛서양담배판매점,실크로드를 통한 문물판매점 -청나라의 고적대공연 등 다양한 청대의 문물등 이색적 볼거리가득 ☞ 현지식으로 중식후-중국3대 무역항인 청도이동[3시간] 시간이 되면 5,4광장,져스코등 관람후 석식(현지식) / 호텔휴식 |
조:호텔식 중:현지식 석:현지식 |
숙소 : 청도 세기문화호텔(4성급) 또는 동급 | |||||
제6일 2/06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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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
전용버스 -
- - - - 전용버스 |
07:00 08:00 09:00 -
14:00 17:00 18:30 |
기상 / 조식(현지식) 청도 명소관광 ☞ 찌모루시장-세계각국 명품 짝퉁상품의 전시및 판매장 -유럽풍의 칭다오도시가 한눈에 "소어산"공원 -세계건축물 박물관 "팔대관풍경구" 관광 옌타이 이동[3시간]- 석식후 야시장 관람후 호텔이동 호텔휴식 |
조:호텔식 중:도시락 석:한 식 |
숙소 : 라마다프랴자 특급호텔 | |||||
제7일 2/0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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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연대 |
전용버스 - - - - - 향설란 |
07:00 09:00 -
- 13:00 15:30 18:30 |
기상 / 세계각국의 요리가 가득-특급호텔 부풰조식(현지식) 옌타이 명소관광 ☞ 월량만과 동포대 돌아보기 ☞시대광장 보보고상가[스포츠용품 이미시장] ☞대윤발 마트 옌타이항 이동-향설란탑승수속후 석식 및 자유시간 |
조:호텔식 중:현지식 석:선내식 |
숙소 : 향설란 1등실[침대4,샤워,화장실,위성TV] | |||||
제8일 2/08(화) |
인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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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0 07:00 11:00 |
기상 / 일출감상 조식(선내식) / 하선준비 인천항도착 / 하선 / 입국 후 해산 |
조:선내식 |
◈ 상기 일정은 항만,훼리또는 현지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습니다.
신청방법-꼬리말로 연락처/단체비자유무/인원 댓글달기
여행경비 : 하나은행 238-910216-06007 김영태
여권사본팩스-02]536-3673 기타문의 02]535-0114 010-9315-2172/011-9035-1502
태산과 공자님고향을 방문하면서-미리 알아본 이야기
1.공자고향-공자님 앞에서는 황제도 무릅을 꿇는다
▒ 공자님 고향에는 철로가 못 들어온다 ▒
곡부는 예로부터 큰 도시였으나, 철로가 통과하지 않아 경제발전이 잘 이루어지지 않었다. 성스러운 곡부에 철로가 들어오면 지맥[地脈]을 끊는다는 생각 때문에 철로를 못 들어오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태안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던 철로는 "ㄷ"자 모양으로 곡부를 피해가고있다.
▒ 자금성에 뒤지지 않는 공묘의 위용 ▒
곡부의 공묘는 공자의 위패를 모셔놓고 제사지내는 중국 최대의 사당이다. 공자의 업적을 표현하는 데 하나의 칭호로는 부족해서 지성묘[至聖廟],문묘[文廟],대성전[大成殿]이라는 많은 이름을 붙였다. 대성전은 북경의 자금성의 태화전,태안의 대묘와 함께 중국의 3대 고궁으로 불린다.특이한것은 이 궁전들은 중국황제의 상징인 기둥이 모두 황금색으로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새겨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옛날 역대황제들이 이곳 대성전을 들렸을때에는 제자들이 대성전의 황금기둥을 비단으로 가려서 황제들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했던 이야기가 전해온다.
▒ 세계에서 가장 큰 가족묘지 공림 ▒
공자사후 그 후손들의 가족무덤인 공림은 면적 60만평에 공자직계가족의 무덤수만 10만기나 되는곳이다.
공림 입구의 지성문을 들어가면 수수교[洙水橋]가 나온다. 이 다리가 놓여있는 수수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공자는 73세가 되자 죽음을 예감했다고 한다. 공자는 묘지의 풍수가 후손의 미래에 직접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친히 돌아다니며 묘자리를 찾았다. 결국 곡부 성 부쪽의 사수[泗水]근처의 18경[頃]의 토지로 결정했다. 공자의 제자인 자로는 이곳의 풍수는 좋으나 앞에 강이 없습니다"라고 했고 이에 공자는 "바쁠것이 없다" 진나라의 한 사람이 강을 파줄것이다"라고 하면서 이곳을 묘역으로삼았다
2.하늘아래 뫼-태산, 중국의 황제를 유혹하다
▒ 태산 각석문[刻石文]에서 역사의 별들을 만나다 ▒
태산이 주는 감흥은 어느 곳에서보다도 강렬하고 진하다. 수 많은 역사의 인물들이 올랐던 역사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곳에서 그옛날 이곳을 올랐던 사람들과 시간의 거리를 뛰어넘어 대화를 나눠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흥분하기에 충분한 곳이다. 태산에서 그러한 흥분을 일으키는 첫 번째 장면을 무엇일까? 그것은 바위에 새겨진 글씨들이었다. 태산의 바위란 바위에는 수많은 세월동안 중국 역대의 제왕과 정치인, 시인들이 남긴 글들로 빈자리가 전혀 없다.너무나 많은 글씨가 새겨져 있기 때문에 자연훼손이라고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이 경우는 절대로 그런 것 같지않다.
선사 시개인이 남긴 암각화를 자연훼손이라고 하지 않는것처럼....
현재 태산 일대에 새겨져 있는 각석은 1,800여곳 이라하는데 그 가운데 비석이 800여 개, 마애석각이 1,000여개 정도나 된다고 하니, 정말 수없는 사람이태산을 사랑하여 남긴 생채기였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각석의 대부분은 역대 황제가 봉선의식을 행할때의 시문,사묘를 창건하거나 중수할 때의 기록과 태산을 칭송하는 시문들이다, 그 글들은 수천자로 이루어진 장편도 있고,
한 글자로 된것도 있으며,황제의 것도 았고,이름 없는 민초의 것도 있다.
한무제는 후대인들이 자신의 업적을 평가하라고 무자비[無字碑]를 남겼다. 마치 당대의 여걸 측천무후와 마찬가지로....주은래의 부인인 등영초의 글시도 있다. 그년는 "태산에 올라 조국의 강산을 내려본다"고 썼는데, 그 글에서 몸서리칠 정도로 감개무량하는 그녀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
태산에 쓰여진 글중에서 가장 눈길을 끈 글씨는 청대 강희제 시기에 쓰여진 "과연[果然]이라는 한 마디였다. 이 글을 남긴 묵객은 과거의 선인들이 좋은 말을 모두 골라썼기에 할말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문학적 재능이 부족했던 탓일까? 일물일어설이라는 말이 있듯이 백마디 말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숨이 막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을 그 한 마디는 태산을 평가한 어떤 글보다도 적절하게 느껴진다.
중국의 시인들이 이곳 태산을 오르지 않았을 리 없다. 1,200년 전 이곳에 올랐던 당대의 대표적 시인 두보와 이테벡의 시를 통하여 태산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닐까?
- 망 악[望岳]- 두보
태산은 과연 얼마나 큰 것인가?
제*노의 두 지방에 걸쳐 푸른 모습이 끝이 없다.
조물주는 신묘하고 빼어난 기운을 모아놓앗고
태산의 남쪽과 북쪽은 아침, 저녁이 다른데
첩첩 구름이 생겨나니 마음은 깨끗이 씻기고
눈 가장자리로 철새들이 들어온다.
반드시 산꼭대기에 올라
뭇 산들이 얼마나 작은지를 내려다보리라
이 시는 두보가 태산의 정상까지 꼭 오르겠다는 마음자세를 표현한 것이다. 아마도 두보는
"공자께서 東山에 오르고 나서 노나라가 작다고 여겼고, 태산에 오른후 천하가 작다고 여겼다"
는 말을 몸소 체험하려 했던것같다.
이백은 태산의 아름다운 계곡에 대한 느낌을 표현했는데, 그의 시를 읽으니 또다시 태산을
오르는 듯한 착각이 든다
-유태산[遊泰山]-이백
초여름 사월 태산에 오르는데
가는 곳마다 돌이 평평하여 현종께서 가시는 길이 열려있다
여섯 마리 말이 만길 골짜기를 지나고
산골짜기 구불구불 둘러있다
말발굽의 자취는 푸른 봉우리를 두르고
지금까지도 푸른 이끼에 가득하다
폭포 물줄기 높은 봉우리에서 흩뿌리고
물 경사 급하니 소나무 소리 애달프다.
북쪽을 보니 병풍같은 봉우리 기묘하고
절벽은 동쪽을 향해 꺽여 있다.
동굴 문의 돌문 닫히고
땅바닥에서 구름과 벼락이 일어난다
높이 올라 동쪽의 봉래섬과 영주를 바라보며
휘황찬란한 금은대를 상상한다.
남천문에서 휘파람 길게 부니
만리의 깨끗한 바람이 달려온다
옥녀 너덧이
구천에서 옷자락 나부끼며 내려와
함박 웃음을 머금고 흰 손을 내밀어
내게 유하배를 건넨다
머리 숙여 두번 절하고 술을 마셨는데
신선의 재질 없음이 부끄럽다.
그러나 초연하게 우주를 작게 여기고
썩은 세상을 버리는데 어찌 근심하랴.
▒ 태산에서 신권을 빌려 통치를 강화하려는 중국의 제왕들 ▒
중국인들은태산이라는 말만 들어도 흥분한다.아주 높은 산은 아니지만 광막한 평원지대에서 생활했던 화북인들에게는 태산이 명산중의 명산으로 꼽히는 것은 당연하다. 비록 높이 1,532m 불과 하지만, 사실 히말라야나 알프스를 보았던 사람이 태산을 본다면 그냥 그저 그런 산으로 여길 수 있다. 이것 또한 황토대지에 갇혀서 살아온 중국인들의 세계관이 아니겠는가?
역대 제왕들에게는 평생 이곳에 올라 봉선의식을 행하는 것이 꿈이었다
하늘 가까이 가서 신과 대화하고 싶어서 였다.
진시황도 올랐고,한무제를 비롯 72명의 황제들이 올랐던 태산-산으로서 의미보다 더 중요한
역사의 산실로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것이다
윗 사진은 國泰民安 석각은 대황제들이 태산에 올라 봉선의식을 행하면서 태산을 안고 있는 태안市의 뜻을 따서 泰[국태] 安[민안]으로 나라가 태평하고 국민이 잘사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태안이란 도시명을 지었던 것이다
또하나의 볼거리 임치 주촌 고상성에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