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발레와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 신입생 때였다. 너무나 환상적인 국립극장 라이브 공연을 맛본 것을 계기로 나는 발레 마니아가 됐고, 국내외 발레 공연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세웠던 일생의 목표가 세계 3대 발레단(뉴욕시티, 런던로얄, 모스크바볼쇼이) 공연을 직접 보겠다는 것이었다. 뉴욕과 런던까지 가서 공연을 봤지만 소련과 수교가 단절돼 있었던 터라 볼쇼이발레 공연만은 미제로 남겨둬야 했다. 그러다가 1986년 사무관 시절 프랑스 정부 초청으로 파리에 갔다가 볼쇼이 순회공연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미 티켓이 매진돼 관람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매표소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개막 10분 전에 기적처럼 표를 구할 수 있었다. 나의 꿈은 파리에서 완성됐다.”
임충식 신용보증재단중앙회 회장은 고위 공무원 중에서 발레와 오페라 등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은 인물로 유명하다. 딱딱한 중소기업 시책을 설명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부분적으로 발레와 오페라 이야기를 사례로 들더니 이제는 아예 ‘중소기업과 문화예술’을 주제로 전문적으로 강의하는 명강사의 반열에 올랐다. 실제로 임 회장은 태도와 관점을 중시한다.
“우리가 회로 먹는 해산물 중에 해삼(海蔘)이 있다. ‘바다에서 나는 삼’이라는 뜻으로, 몸에 좋다고 여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영어권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통용된다. 예컨대 sea ginseng(바다의 삼)이 아니라 sea cucumber(바다의 오이)로 표기한다. 안개꽃은 글자 그대로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정작 영어로는 baby's breath(아기의 숨결)가 된다. 우리가 느끼는 이미지인 안개와 전혀 관계가 없다. 이런 사례는 또 있다. 제주도 여미지 식물원에 가면 용설란(龍舌蘭)을 볼 수 있다. ‘용의 혀처럼 생긴 난초’라는 의미인데, 정작 영어로는 century plant라고 표기한다. 100년에 한번 꽃을 피워서 그렇다고 한다. 동양은 꽃의 모양을, 서양은 개화의 주기를 주목한 것이다.”
마리아 칼라스와 예프게니 키신처럼 배우고
그러면서 임 회장은 자신은 어떤 자세와 태도로 인생을 살아가느냐를 매우 중시하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주변의 사물과 사안을 어떤 관점과 시각으로 바라보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와 차이를 가져온다고 믿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임 회장은 이어서 한 명의 성악가(마리아 칼라스)와 세 명의 피아니스트(예프게니 키신, 레온 플라이셔, 당 타이손)를 소개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디바 중 디바’로 평가받는 마리아 칼라스(1923~1977)는 절망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항상 비전과 목표를 분명히 세웠던 인물이다. 뉴욕 맨해튼에서 가난한 그리스 이민자의 딸로 태어난 칼라스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10대에 부모의 이혼이라는 아픔까지 겪었다. 22세 때는 자신의 뛰어난 재능만 믿고 메트로폴리탄 오디션에 응시했다가 보기 좋게 떨어지기도 했다. 실망과 낙담이 컸겠지만 ‘반드시 메트로폴리탄의 프리마돈나로 돌아오겠다’는 확고한 목표를 세우고 이태리 유학을 감행했다. 비행기나 여객선이 아니라 화물선을 이용한 ‘눈물의 유학’을 떠났던 칼라스는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목표를 달성했다. 무려 95~100kg에 달했던 체중을 58kg까지 뺐을 정도로 의지력도 강했던 것 같다.”
임 회장이 두 번째로 소개한 인물은 당대 최고의 천재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1971~)이었다. 키신은 두 살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해 신동(神童)으로 불렸을 뿐만 아니라 17세 때 이미 지휘자 폰 카라얀과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한국에서도 세 차례 공연을 했는데, 임 회장이 주목한 것은 ‘천재의 피나는 연습’이었다.
“키신은 모든 부분을 꼭꼭 씹어 연습했다. 한 마디 한 마디 10여 차례 반복하며 마음에 들 때까지 다시 쳤다. 왼손과 오른손을 나눠 몇 번이고 따로 쳤다. 1악장 ‘기초 공사’를 마치고 2악장으로 넘어갔다. 무대 뒤로 들어가 땀에 젖은 셔츠를 갈아입고 다시 나왔다. 2악장을 지나 3악장으로, 다시 1악장으로 돌아와 앞서 연습했던 대목을 몇 번이고 연습했다. ‘시간이 다 됐다’는 통보를 받을 때까지 피아노 앞을 결코 떠나지 않았다. 그는 아쉬운 듯 악보 가방을 집어 들고 다음 연습 장소로 향했다. 키신은 지금껏 50여 장의 앨범을 냈고, 한 해 70여 차례 공연하는 일류 피아니스트. 하지만 연습시간만큼은 초보자와 다를 바 없었다. 흔히 ‘천재’로 알려진 키신의 진짜 얼굴은 ‘연습벌레’였다.”(중앙일보 2011년 11월 16일자)
임 회장은 지난해 예술의전당에서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가 이끄는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던 키신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당시 키신은 몇 분간에 걸쳐 눈을 감고 고개를 젖힌 채 건반을 보지 않고 신들린 듯이 연주했다. 하지만 청중을 매료시킨 최고의 연주는 최선의 연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키신은 진정한 프로의 정신을 보여준 것이다.
“레온 플라이셔(1928~)는 인간 승리의 교훈을 던져준 인물이다. 1952년 미국인 최초로 세계 3대 피아노 콩쿠르(쇼팽, 차이코프스키, 퀸엘리자베스)에서 우승한 플라이셔는 유럽에 대한 미국인의 예술적 열등감을 해소시켜준 영웅이었다. 박세리와 김연아가 LPGA와 피겨스케이팅에서 첫 우승했을 때의 한국을 연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하지만 전성기를 누리던 30대의 플라이셔에게 불행이 찾아왔다. 피아니스트에게는 생명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오른손이 마비된 것이다. 자서전에 ‘암석처럼 화석화됐다’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정신적 충격은 엄청났고, 연주를 못하게 되자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플라이셔는 문득 남은 왼손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그리고 부단한 연습을 통해 ‘왼손의 달인’이 됐다.”
레온 플라이셔와 당 타이손처럼 살아라
인간 승리의 드라마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왼손 하나로도 피아노를 멋지게 연주하게 된 플라이셔는 마비된 오른손에 주목했고, 발상을 전환했다. ‘잘 움직이던 손이 마비됐다면 언젠가 마비된 손이 다시 움직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재활운동에 착수한 지 40년 만에 마비됐던 오른손이 회복됐다. 이를 기념해 제작한 음반의 이름이 바로 ‘two hands’였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인물은 베트남 출신의 피아니스트 당 타이손(1958~)이다. 타이손은 22세이던 1980년 동양인 최초로, 아니 백인이 아닌 사람 중 최초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해 세계 음악계를 경악케 했다(한국 최고 성적은 ‘2위 없는 3위’). 하노이에서 음대 교수인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타이손은 베트남전쟁이 발발하자 시골로 피난을 갔는데, 거기서도 중고 피아노를 구해 연습을 계속했다. 미군이 마을까지 포위해 오자 이번에는 그 중고 피아노를 끌고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 소리가 퍼져나가는 것을 방지하려고 동굴 안에서 촛불을 켜놓고 연습하기도 했다. 미군이 수색작전에 나설 때는 널빤지에 건반을 그려놓고 손가락만 가지고 연습을 했다. 그 무엇도 타이손의 피아노 연습을 막을 수 없었다.”
임 회장이 타이손을 소개한 메시지는 명확하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든 회사에 출근하는 사람이든 환경 탓은 하지 말자”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연습한 사람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사실을 기억한다면 못할 일은 없어 보인다. 실제로 임 회장도 2010년 쇼팽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타이손 연주를 들으며 프로 의식으로 무장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중국의 류 웨이라는 청년은 감전사고로 양 팔을 잘라내야 했다. 정상으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타인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자 자살을 꿈꿨는데 자살조차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을 바탕으로 다시 일어난 그는 세계 최고의 발가락 피아노 연주자가 됐다. 나는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는 말을 좋아한다. 우리는 영원히 살지도 못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내일 죽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느긋한 자세로 배우고 절박한 자세로 산다면 충실한 인생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피천득 선생의 수필에 나오는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 낸다’는 구절도 명심하자.”
정리=정지환 인간개발연구원 편집위원/감사나눔신문 편집국장 lowsaejae@gamsa.or.kr
임충식 회장의 약력
▲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졸업 ▲ 美 델라웨어대 정책학 석사 ▲ 세계차세대지도자포럼 한국대표 ▲ APEC 중소기업분야 Coordinator ▲ 캐나다 국립연구원(NRC) 객원연구원 ▲ 서울지방중소기업청장 ▲ 중소기업청 기술혁신국장 ▲ 광주전남지방중소기업청장 ▲ 지방중소기업청장협의회 회장 ▲ 중소기업청 차장 <상훈> 중앙공무원교육원 고위정책과정 수석졸업(대통령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