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장의 명소, 황계폭포에 가다

[정현규]

우리 고장의 명소, 황계폭포에 가다

황계폭포(黃溪瀑布)는 ‘합천 8경(景)’ 가운데 하나며, 또 영남지방을 대표하는 명품 폭포로 손꼽힐 정도로 우리 고장의 자랑거리다. 이 황계폭포는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감상한 후 감동의 글로 남긴 곳으로, 우리 고장을 소개하는데  빼 놓을 수 없는 명소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는 이 폭포수의 발원지인 허굴산(墟窟山, 682m) 산행과 연계해 전국의 산행객들이 자주 찾고 있으며, 인근의 합천댐과 합천호, 영상테마파크 등을 찾는 외지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특히 깊은 계곡과 물이 어우러져 무더위를 싹 씻어주는 여름 피서지로는 더 할 곳이 없다.

이 황계폭포는 마치 병풍처럼 둘러싸인 20m 정도 높이의 절벽 위에서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그 광경이 가히 장관이다. 그 아래로 30m 정도의 높이에서 경사면에 굴곡을 그리며 흘러내리는 모습 또한 일품이다. 이곳의 소(沼)는 명주실 한 꾸러미가 다 들어가도 닿지 않을 정도로 깊다하여 용(龍)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이곳을 찾은 옛 선비들은 이 절경에 도취하여 저 유명한 중국의 여산폭포(廬山, 강서성江西省 소재)에 비유하기도 한다.

♠ 합천의 8경 가운데 하나인 황계폭포의 위용

이 폭포는 합천읍에서 비교적 평지인 용주면소재지를 통하거나 합천호 방면에서는 넓은 성리 들판을 지나 꼬불꼬불한 황계재(고개)를 넘어 내리막 막바지에 우회전해서 찾아갈 수 있다. 그 큰길에서 황계폭포까지는 약 500m로,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입구에서부터 도로가 좀 좁긴 하지만 근래 잘 정비되어 있다. 그런데 합천에 중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성장기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 이곳을 찾아 걷던 그 추억의 오솔길은 흔적조차 없어 아쉽기 그지없다. 폭포에 오르는 계단이나 폭포를 감상하기 좋으라고 설치한 인공 구조물도 마찬가지다. 원래 갖고 있던 수려한 경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최소한에 그쳤으면 하는 바램이 앞선다.

아무튼 그리 높지도 않은 야트막한 산 속에 그리도 유명한 폭포가 자리잡고 있을까 싶다. 그런 의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싹 가시고 없어진다. 호기심을 갖고  냇가를 따라 나란히 포장된 입구의 길을 걸어 따라가면 먼저 아담하게 지어진 자연정(紫煙亭)이 맞이해 준다.

♠ 용주 – 대병 간의 황계재 입구에서 폭포 쪽 작은 길로 들어서면 근래 잘 닦은 진입로가 보인다. 이쯤  도로가 어딘가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

♠ 폭포 입구에 들어서면 산세가 보통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멀리 정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 정자가 바로 '자연정'이다.

♠ 아담하게 지은 '자연정'. 여름철 쉼터로서는 안성마춤이다.

이 정자는 인근 황계마을에 살고 있던 김녕(金寧) 김씨 집안에서 그들의 선조들이 노닐던 곳이라 하여 1810년경 처음 지었다가 이후 다시 고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정자 이름은 중국의 시성(詩聖) 이백(李白)이 지은 ‘望廬山瀑布’(망여산폭포)의 첫 구절인 ‘日照香爐生紫煙'(일조향로생자연)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이 황계폭포를 중국의 여산폭포에 비유한 것이다. 옛 사람들은 정자 이름 하나 짓는데도 이처럼 신중하게, 멋있게 짓는구나 하고 절로 탄복하게 한다.

♠ 허굴산에서 발원한 폭포수가 굉음을 내며 쏟아져 내리며 황계폭포는 장관을 이룬다. 소재지는 용주면 황계리이다.

그 옛날 내 노라는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이 여산폭포를 노래했는데, 그 가운데도 이태백의 ‘望廬山瀑布’(여산폭포를 바라보며)가 가장 압권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는 이 폭포를 보고 마치 하늘에서 은하수가 떨어지는 듯하다고 읊었다. 
 

日照香爐生紫煙(일조향로생자연)  해가 향로봉을 비추니 자줏빛 안개 일어나고

遙看瀑布掛前川(요간폭포과전천)  멀리 폭포를 바라보니 긴 냇물을 걸어 놓은 듯하네
飛流直下三千尺(비류직하삼천척)  날듯이 흘러 수직으로 삼천 척을 떨어지니
疑是銀河落九天(의시은하낙구천)  아마도 은하수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하구나.

이 시의 세번째 문장인 '飛流直下三千尺(비류직하삼천척)'이란 말도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유명한 글귀다.

이 정자를 뒤로 하고 폭포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계단을 통해 걸어 올라가다 보면 폭포의 상단이 보이기 시작하고, 이어 가까이 다가가면 폭포수가 떨어지며 내는 굉음과 그 장관에 압도당하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다. 
 
황계폭포는 대병의 악견산, 금성산(일명 봉화산)과 함께 3악(岳) 가운데 가장 맏형 격인 허굴산에서 발원한 물이 이곳까지 흘러와 20m 정도 높이에서 굉음을 내며 떨어져 생긴 폭포다. 이 폭포는 2단으로 되어 있는데, 위에서 떨어진 물이 돌 사이를 돌아 다시 30m 정도 높이의 경사진 암벽을 타고 내려가 깊은 소(沼)를 이룬다. 위의 폭포는 직폭(直瀑)이라면 아래 폭포는 와폭(臥瀑)이라고 해야 할까.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폭포 상류에 꽤 넓은 농업용 저수지가 건설돼  가뭄에도 끊임없이 쏟아 내리는 폭포수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 위는 직폭, 아래는 와폭이다. 와폭 아래는 깊은 소(沼)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근래 합천에서 살고 있는 필자를 찾아온 외부 손님을 안내해 황계폭포에 갔다가 이상한 형체의 동물을 발견했었다. 아래 그림이요. 하마, 아니면 악어 모양 일까요? 이도저도 아니면 뭐라 해야할까요?

하마라고 하기에는 볼륨이 너무 약하고, 악어라고 하기에는 너무 순하게 생겼을 뿐만 아니라 주둥이쪽이 좀 길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아무튼 깊은 물속에 몸통을 담그고서 큰 바위에서 위를 바라보는 이 동물 형상을 발견하고는 감상하랴, 작명하랴 잠시 즐거운 시간을 가져보았네요. 여러분께서도 기회가 닿으면 한번 감상해 보시길 권합니다.

♠ 이 동물의 정체는 과연?

오늘날 이 황계폭포의 암벽은 많이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 자세히 들여다 보면  ‘黃溪飛瀑’(황계비폭)이라는 멋진 글자가 크게 음각되어 있고, 또 이곳을 찾았던 몇 사람의 선비 이름도 발견할 수가 있다.

♠ 폭포의 오른쪽 절벽에 새겨진 ‘黃溪飛瀑’ 네 글자. 그런데 오랜 풍상에 글씨들이 많이 훼손돼 찾기가 쉽질 않다.

♠ 폭포수 안의 절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곳을 찾았던 선비 몇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오늘날까지 이 폭포를 찾은 시인묵객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 가운데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에 이 황계폭포를 자주 찾은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을 빼놓을 수가 없다. 남명 선생은 이황 퇴계 선생과 쌍벽을 이룰 만큼 유명한 대학자로 1501년 합천군 삼가면 토동(외토리)의 외가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러다 벼슬을 하는 부친을 따라 5살 때 한양으로 옮긴 그는 몇 차례 벼슬할 기회가 있었으나 조광조(趙光祖)의 무오사화(戊午士禍) 등 현실을 지켜보다 자신의 평생 신조인 경(敬 : 마음을 맑고 밝고 청빈하게 하는 것), 의(義 : 불의를 보면 과단성 있게 행동․실천하는 것) 사상을 현실정치에 접목시키는 데는 한계를 절감하고는 삼가로 되돌아 왔다.

선생은 부친의 3년상을 마친 후 처가가 있는 경남 김해에서 생활하다 48세에 다시 삼가로 돌아와 61세에 산청으로 옮기기 전까지 약 13년간 삼가에서 머물렀다. 여기서 뇌룡정(雷龍亭)을 짓고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며 제자를 양성하다 가끔 대병면 대지리에 살고 있는 7살 위의 절친한 벗인 사미(四美) 문경충(文敬忠, 1494~1555)을 찾았다고 한다. 이때 제자들과 함께 말을 타고 황계폭포에 들린 것이다. 이때면 삼가 뇌룡정을 출발해 삼가면의 두모, 하판리와 용주면 공암, 장전을 거쳐 황계폭포를 찾은 다음 대병면 장단, 양리, 유전리를 거쳤으며, 또 그 길로 되돌아가곤 했는데, 이 폭포의 절경에 감탄한 남명 선생은 시 두 수를 후세에 남겼다.
 
황계폭포(1)

投璧還爲壑所羞(투벽환위학소수)  둥근 옥(큰 물줄기)을 던져 돌아오는 것은 작은 개울의 부끄러움

                                                 일세
石傳糜玉不曾留(석전미옥부증유)  돌이 펴진 곳에 미옥(糜玉)이 머물 수 없는 법.
溪神謾事龍王欲(계신만사용왕욕)  용왕(간신)들 뜻에 따라 계신(溪紳, 임금)은 국정을 방종(放縱)

                                                 하여
朝作明珠許盡輸(조작명주허진수)  아침에 짜른 명주를 다 실어 가도록 허락했구나.

황계폭포(2)

懸河一束瀉牛津(현하이속사우진)  달아맨 듯한 한 줄기 물이 은하수처럼 쏟아지니
走石飜成萬斛珉(주석번성만사민)  흐르던 돌이 만 섬 옥으로 변하였다네.
物議明朝無已迫(물의명조무이박)  내일 아침엔 사람들 논의 그리 각박하진 않으리
貪於水石又於人(탐어수석차어인)  물과 돌에 탐을 냈는데 사람에게 탐을 내랴.

이렇듯 자연과 인간의 내면에 대해 깊이 성찰해온 대학자로서 황계폭포의 절경과 그 속에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소멸된다는 남명 자신의 인생관, 세계관을 노래한 것으로 보인다.
선생은 노년에도 이곳에 들러 시 한 수를 또 남겼다. 아마도 가을 단풍이 물들 무렵인가 보다. 제자인 문인 김우굉(金宇宏 : 1524-1590)에게 준 시라고 한다.

老夫頭面已霜乾(노부두면이상건) 늙은이 머리 이미 서리가 말랐는데
木葉黃時上得山(목엽황시상득산) 나뭇잎 물들었을 때 산에 올랐네.
雙栢有枝柯幹好(쌍백유지가간호) 두 그루 잣나무의 가지와 줄기 좋으니
莫言庭際秀芝蘭(막언정제수지란) 뜰에 지초와 난초 빼어났다고 말하지 말게나.

500년 전 남명 선생이 자주 찾아 노닐던 황계폭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하얀 은하수를 품어내고 있으나 그의 발자취는 찾을 길 없다. 다만  그가 지은 두 번째 시가 자연정 옆의 조그만 화강암에 새겨져 후세에 황계폭포의 가치를 더해 주고 있다.

♠ 자연정 옆 화단에 남명 선생이 쓴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다. 남명의 두 번째 시가 후세 사람들에게 더 가슴에 와 닿는가보다.

근세에 들어와 이 황계폭포를 찾은 인물을 꼽으라면 백산(白山)  안희제(安熙濟, 1885~1943)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이름난 독립운동가로서 을사늑약을 체결한 1905년에 지은 것으로 밝혀졌다. 백산 선생의 이 한시 ‘황계폭포’는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의 핍박으로부터 답답한 심경을 엿볼 수 있다.

♠ 백산 안희제 선생. 독립운동가·민족기업가·교육자·언론인

黃江葭露白 倻岑樹雲蒼(황강가로백 야잠수운창)
   황강의 갈대 이슬은 희고 가야산 숲 구름은 푸르구나

俛仰山水裏 所謂宛在央(면앙산수리 소위만재앙)
  위아래 산수를 두루 보니 이른바 물 가운데 있는 듯 하고

渺茫迷津筏 招招願須卬(묘망미진벌 초초원수앙)
  아득히 희미한 나룻배에선 손짓하며 불러 나를 기다리네

始看滄海大 喟然徒望洋(시간간창해대 위연도망양)
  비로소 창해의 넓음을 보나니 그저 큰물 쳐다보며 탄식할 뿐

이 시는 백산 선생이 19세이던 1903년 7월부터 의령, 합천, 삼가, 진주, 하동 등지의 선비들과 지리산과 섬진강 일대를 유람하며 32수의 한시를 남겼는데, 이 시는 을사늑약 전후의 암울했던 시기인 1905년경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黃溪分韻得香字’(황계분운득향자)라는 제목의 이 시는 세 수로 구성돼 있는데, 황계폭포의 장쾌한 경관에 대한 감탄과 유람에서 자극받아 국난 타개의 큰 뜻을 품고 학문에 더욱 정진할 것을 다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의 고전인 '시경' '장자' 등을 인용하며 벅찬 마음으로 폭포를 바라보며 후일에 독립운동의 뜻을 세웠음을 엿 볼 수 있다.

♠ 한시가 수록된 문집 원본이다.

이렇듯 황계폭포는 우리 고장의 자랑이요, 예부터 오늘에 이르렀듯이 또 후세에까지 쉼 없이 흘러내리며 우리의 후손들이 애용하는 힐링의 명소로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도움 글 : 경남신문사, 국제신문, 부산일보, 인터넷합천신문사, 의령군청 홈페이지

♠ 유난히도 추운 날씨였던 2018년 1월 중순, 이 황계폭포가 얼음으로 뒤덮혔습니다.

얼마나 강추위는지를 알 수가 있는데요... 이 거대한 얼음기둥 내부로 폭포수는 끊임없이 흘려내려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