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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과 바른 예배의 자세
제3계명 ┃ 신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표지 설명) 위엔 왕관 아래에는 하트
미리 보기 ┃ 4. 제3계명 : 바른 예배의 자세
1. 이름의 소중함 2. 이름을 부르는 것의 중요성 3. 신의 이름은 무엇인가. 4. 신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의 의미 5. 신의 이름의 오용 6. 신의 이름의 바른 사용 |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름을 소중히 여긴다. 자기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으쓱이: “소중한 나의 이름 나의 명예.”
그래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면, 명예훼손죄로 고발을 하기도 한다.
부들부들 : “감히 내 이름에 먹칠을 하다니...” 부르르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이름을 이용하여 범죄를 저지르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은 명의도용죄가 된다.
뻥남: “청와대 비서관이 내 친구인데 나한테 잘 보여야 해.”
이처럼 우리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 높이고자 한다.
야망남: “온 땅에 내 이름을 떨칠거야.”
회사도 마찬가지이다.
회사는 상표를 등록한다.
그런데 다른 회사에서 엉터리 물건을 만들어서 정품 상표를 붙이면
어떻게 되겠는가.
유사 삼숑 휴대폰을 만든 꿍꿍남: “돈 좀 벌어 볼까?”
모조품을 만드는 것은 상표를 도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회사들은
상표를 도용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이용당한 남자가 손에 폰을 들고: “당장 고발해! 도둑놈들.”
그런데 이 세상에서 반드시 명예를 보호해야 할 이름이 있다면 무엇일까.
아리송남: “그게 뭡니까?”
절대로 도용되거나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거룩한 이름이 있다면
무엇일까.
알게 되어 기쁨에 겨운남: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거룩하신 그 이름!”
신은 가장 높으신 분이며, 가장 존귀하고 위대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두손 바닥 모아 보호하며 : 하나님의 이름
인간이 신의 이름보다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고 하는 것은 죄이다.
“내 이름을 위하여”라고 하다가 발로 추방당하는 이
우리는 이름을 높여야 할 만큼 위대한 존재가 아니다.
하늘을 향해 손을 찌르며: “가장 높으신 분은 오직 신 밖에 업습니다.”
가장 위대하신 이름, 이름 중의 이름인 신을 높이는 것이 선이다.
그래서 신이 가장 힘쓰는 것이 바로 신 자신의 이름이다.
김화백: “신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도 바로 신의 이름을 합당하게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출 20:7절에는 십계명의 제3계명에 대해 이렇게 나온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망령”리난 말의 의미는 무얼까.
망령이라는 말은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이나 행동이
정상을 벗어나거나 벗어난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땅에 주저앉아 맛이 간 상태의 남자
즉 망령이란 말이나 행동에 일관성과 합리성이 결여된 상태이다.
쉽게 말해 정신이 불안정해서 횡설수설하는 것을 말한다.
치매 아버지가 아들에게: “내가 망령들었다고 해서 괄시하지 마라. 사장님! 형!”
아들: “아들인데....”
제3계명은 ‘신의 이름을 거짓되게 부르지 말라 혹은 신의 이름을 거짓되게 사용하지 말라’는 거다.
이럼 안됨: “신의 이름으로 맹세하노니 이번 주는 로또 당첨된다. 아자!”
이름은 존재 자체를 나타낸다. 그러니 신의 이름을 대하는 태도는 곧 신을 대하는
태도와도 같다.
“이건 아니야.” : “이번 선고에서 ○○후보 안 찍으면 신의 이름으로 저주한다.”
신의 이름을 존중하는 사람은 신을 존중하는 사람이다.
반대로 신의 이름을 무시하는 사람은 신을 무시하는 사람이다.
이것도 아니야: “내가 눈을 가리듯 세상이 안 보이듯 내가 부인하면 신도 없다. 히히히”
우리 나라의 풍습도 아버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
아버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아주 무례한 일로 여긴다.
무례아동: “아버지 이름은 김풍조입니다.”
노노손; “에라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
그러나 아들이 이렇게 말하면 예의바르다고 한다.
예의 아동: “아버지 이름은 김, 풍자 조자입니다.”
왜 하필이면, ‘김 풍자 조자’라고 나누어 말하는 것일까.
아버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기 위해서이다.
유대인 남자: “우리 유대인들도 신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부르려고 엄청 노력했습니다.”
출 20:2절에 나오는 신의 이름이 우리말 성경에는 서로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왜일까?
번역 종류 | 출 20:2 |
개역 성경 | ‘여호와’ |
공동 성경 | ‘야훼’ |
표준 새번역 | ‘주’ |
히브리 사람들은 글을 쓸 때, 모음은 적지 않고 자음만 적는다.
그리고 읽을 때 발음을 한다.
예를 들면, ‘서울’이라는 말을
‘ㅅㅇㄹ’이라고 적고 읽을 때는 ‘서울’이라고 발음한다.
ㅅㅇㄹ | 서울 |
히브리 성경의 יהוה
는 자음이 네 글자이다. 히브리인들은 이 네 글자를 발음하지 않고 대신
‘아도나이’로 읽었다. 오늘날은 ‘여호와’ 혹은 ‘야훼’로 발음한다.
유대인: “아도나이는 우리말로는 ‘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출 20:2의 신이 이름이 서로 다르게 번역된 거다.
개역 성경 |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
공동 번역 | 너희 하느님은 나 야훼다 바로 내가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 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하느님이다 |
표준 새 번역 |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
심지어 유대인들은 ‘하나님’이라는 말도 잘 쓰지 않고, 대용어를 많이 썼다.
특히 ‘하나님’이란 말 대신에 ‘하늘’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뭉게 구름 하늘 위를 가리키며: “하늘이시여.”
그래서 마태복음에 ‘하늘나라’라고 되어 있는 곳이 누가복음은 ‘하나님 나라’라고 된다.
마태: “하늘 나라.”
누가: “하나님 나라.”
이는 유태인들이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했는가를
보인다.
유태인의 증언: “그만큼 신의 이름을 귀중히 여겼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이렇게 신의 이름을 전혀 입에 담지 않고 사용하지 않는 것이
십계명의 제3계명을 바르게 지키는 것인가.
반문남: “다른 방법이 있나요?”
신은 신이 백성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도록 하려고 이름을 계시해 주셨다.
김화백: “제3계명이 의미는 신의 이름을 부르되, 함부로 부르거나 잘못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제3계명을 잘 알고 지키기 위해 다음의 순서대로 살피도록 하자.
첫째, 신의 이름은 무엇인가.
둘째, 신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셋째,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넷째, 신의 이름을 바르게 부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하늘을 응시하는 여: “가장 귀한 이름, 존귀한 이름.”
신의 이름에는 신에 대한 계시가 새겨져 있다.
신과 우리와의 관계, 신의 성품과 사역도 이름 속에 나타난다.
십계명 서문에 나타난 이름: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십계명에 나타난 신의 이름은 ‘하나님’과 ‘여호와’이다.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엘로힘, 엘의 복수형)이라는 이름의 뜻은 전능자로서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내포된다.
김화백: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이름의 세 가지 의미를 알려주셨습니다.”
첫째, 창14장에서 신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엘 엘욘)으로 계시한다.
“아브라함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리”(창 14:22)
둘째, 창 17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전능하신 하나님’(엘 샤다이)로
계시한다.
“아브라함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
셋째, 창 21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영원하신 하나님’(엘 올람)
으로 계시한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창 21:33)
그리고 여호와는 아브라함에게 그리고 모세에게 계시하신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신이 모세를 부르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라고 하시자 모세는 신께 하나님의 이름을 여쭙는다.
모세 :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그러자 신은 모세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의 의미를 이렇게 가르친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3:14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출 3:15
그러니 여호와의 의미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여호와 | 나는 스스로 있는 자 |
자존자 : 나는 나다 | |
I am who I am | |
I will be who I will be |
신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것은 신 이전에는 어떤 존재도 없었다는 말이고,
신은 자존하며, 자족하다는 의미이다.
김화백: “여호와라는 말은 무엇보다 언약적인 이름입니다.”
신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신으로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을 지키기 위해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구원하셨다.
종살이 사슬을 뚝! 끊는 도구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신 신을 말한다.
날고 있는 새: “약속하시고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담비: “언약의 하나님.”
구약 성경을 보면 여호와의 복합어로 여러 가지 이름이 제시된다.
여호와 이레 |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 |
여호와 라파 | 고쳐주시는 하나님 |
여호와 닛시 | 승리와 보호의 하나님 |
여호와 샬롬 |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 |
여호와 치드누크 | 의를 주시는 하나님 |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유태인 여: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신과 우리가 하나로 연결된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당시의 문화적 배경에 비추어 볼 때 특별한 의미이다.
옛날 십계명이 기록될 당시에 종주권 조약이라는 국제 조약이 있다.
궁금 꼬마: “종주권 조약이 뭐에요?”
이는 강대국 왕과 약소국 왕 사이에 체결되는 조약이다.
이 조약은 강대국 왕의 편에서는 보호를 제공해 주는 동시에 약소국 왕은
강대국 왕이 요구하는 충성의 조건을 지키는 거다.
강대국 왕: “나는 명예를 걸고 그렇게 하겠노라.”
약소국 왕: “우리가 침공받으면 보호해 주십시오.”
강대국 왕은 약소국의 왕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도움을 요청할 때,
조약에 따라 약속국을 보호하려 달려온다.
그렇게 되면 약소국의 침략국은 이제 강대국의 왕을 상대로 전투를 벌여야 한다.
완벽무장을 한 강대국 왕: “덤벼라, 조무래기들아! 내가 상대해 주겠다.”
따라서 약소국의 왕은 적과 대치할 때, 조약을 맺은 강대국왕의 이름을
부르면 자기의 힘만 가지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김화백: “강대국과 연합된 상태에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이름을 부르는 사람과 이름을 가진 사람이
하나로 연합되는 것이다.
하나님 (서로 악수) 이름을 부른자
신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언약을 통해 신과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신을 의지하고 신의 도움을 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를 부르는 거다.
믿음 ---> 예수를 부르는 자
우리가 예수를 부르는 건 곧 예수를 믿는다는 걸 의미한다.
선지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와 예수는 하나가 된다.
우리가 전능한 신의 이름을 부르면, 전능하신 신과 연합된다.
우리 (붙잡은 손) 하나님
그럼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며, 잘못되게 사용하는 건 무엇인가.
유태인 여: “신의 이름에 계시된 대로 믿지 않는 겁니다.”
예를 들면 자신의 힘으로 행복이나 부를 얻으려 노력할 때, 우리를 위해
준비하는 ‘여호와 이레’의 신을 부인하는 거다.
교만 남: “내 이름으로 살 거니까 신경 꺼 주세요.”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떤 집에서 살까, 무슨 차를 탈까를
염려할 때 우리는 ‘여호와 이레’의 신을 부인하는 거다.
불만남: “언제까지 중고 티고를 타야 하는가?”
또한 스스로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우리에게 의를 주시는
신을 부인하는 거다.
노력맨: “아자! 노력하면 안 될 것이 없다. 구원도 가능하다.”
그럼 구체적으로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는 건 무얼까.
김화백: “구약성경은 신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대표적인 사례로서
세 가지가 나타납니다.”
첫째, 점을 치거나 요술 등을 하면서 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건 신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예이다.
무당: “훠이 훠이 예수 이름으로 점치노니...” 딸랑 딸랑
이방 종교에서는 병을 고칠 때, 미래에 대한 점을 칠 때, 전쟁의 승리를 기원할 때
신의 이름을 부른다.
향불 앞의 점쟁이: “천지 신명이시여, 이번 전쟁에서 이 민족을 지켜 주세요. 재물로 쌀 천 석을 바치겠나이다.”
그러나 신은 신의 백성이 이방 종교처럼 각종 사술을 행하면서 신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를 금지하였다.
징계의 주먹 무당을 날린다: “퍽! 하지 말랬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를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
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점쟁이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신명기 18:9-14)
둘째, 신의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는 것도 신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거다.
거짓 예언자: “평화로다! 앞으로도 계속 평화로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령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점술과
헛된 것과 자기 마음의 거짓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렘 14:14-15)
신의 이름으로 거짓된 예언을 잘못은 교회사에서도 반복되었던 죄이다.
중세 시대에 신의 이름으로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고,
말을 탄 십자군 기사: “예수의 이름으로 쓸어 버리리라.”
또한 유럽과 미국에서 신의 이름으로 노예 무역을 하고,
노예 무역선에 실린 노예: “우리를 살려 주세요.”
최근까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신의 이름으로 인종차별 정책을 쓰는 것 등은
모두가 신의 이름을 빙자해 악을 범한 예들인 거다.
백인의 군화발이 흑인이 꽃을 밟는다. 꽃: “차별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 줄 알고 그러는 겁니까?”
이외에도 개인적인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신이 말씀하셨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떠벌이: “어젯밤 꿈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셨어. 들어 볼래?”
자신의 생각과 신의 생각을 잘 구분하지 못한 채 자기 마음 속에 떠 오르는 생각,
강하게 느껴지는 감동을 신이 주신 거라고 말한다.
떠벌이 간증: “제 생각이 신의 생각입니다. 신이 내게 잘 하라고 그랬어요.”
이런 것도 신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예이다.
명상 중인 남자: “나 지금 명상 중이에요. 하나님이 느껴져요.”
셋째, 거짓 맹세를 하면서 신의 이름을 이용하는 것이다.
법조인: “법정에서 거짓 증거하면 절대 안 됩니다.”
신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순간적인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는 시도는 신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죄이다.
사람들 앞에서 뻥치는 녀: “신의 이름으로 맹세하는데 전 거짓말 하지 않았어요.”
렘 선지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렘 5:2)
신약성경에도 예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죄를 짓는 경우를 소개한 사건이 있다.
김화백: “사도행전 19장의 유대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입니다.”
바울이 예수의 이름으로 수많은 기적과 능력을 행하자,
앉은뱅이 남자: “제가 걷게 되었어요!”
마술사들도 바울이 사용하는 예수의 이름에 특별한 능력이 있는 줄 알고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마술사: “예수의 이름 대단한데!”
이들이 귀신들린 사람을 향해 예수의 이름을 귀신을 쫓아내려 하자,
시험하는 자: “너흰 끝장이야. 예수 이름으로 너희를 저주하겠어.”
귀신들린 사람은 오히려 :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지만 너는 누구냐?”
하면서 이들을 혼내 준다.
구타하는 마귀이 팔: “넌 뭐하는 놈이냐?” 퍽...윽..
스게와의 아들들은 예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서도 예수의 이름을
사용한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예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한 거다.
스게와의 아들: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께요. 엉엉엉..”
예수에 대한 아무런 신앙고백도 없이 예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건
오히려 예수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행위이다.
부주의자: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멜로디가 좋아.”
또한 스게와의 일곱 아들은 마치 예수의 이름에 주술적인 힘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예수의 이름을 불렀다.
“예수 부적 붙여 봐. 액운이 사라져. 백만 원이야.”
예수 이름을 무슨 부적처럼 미신적으로 사용하려 한 것이다.
부적을 이마에 붙인 학생: “그런데 왜 성적이 오르지 않는 거지?”
예수와 인격적인 관계없이 이름만 쓰는 것은 예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거다.
국회의원 출마자: “교회 신자들에게 표를 얻으려면 예수 이름 좀 사용해야지.”
예수 이름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은 예수의 이름을
도용하는 행위이다.
도용남이 후원계좌에 돈을 넣으며: “예수 이름 붙이니까 돈이 좀 들어오던데요.”
요즘 분실된 주민등록증의 이름을 도용해 불법으로 휴대폰을 개설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끼눈 남자 폰 대화: “주민번호 모아서 스팸 메일을 왕창 보내자구. 사채 사업 아무나 하는거 아냐.”
신의 이름을 바르게 부르는 것 혹은 바르게 사용하는 건 무얼까.
이는 주기도문의 첫 번째 간구와 동일하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즉,
신의 이름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말과 마음은 밀접한 관계이다.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기 위해 아예 말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다.
입에 자크를 잠근 남: “난 입을 열면 실수 남발이니 아예 지퍼를 달자.”
비록 말을 하지 않더라도 마음 속에 신에 대한 잘못된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그것은 곧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름과 똑같은 죄이다.
입을 열어 맹렬히 나가는 추악한 죄악들
반대로 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 신의 이름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곧 신에 대한 바른 태도를 지니는 것이다.
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함 ------- 신에 대한 바른 태도
성경에서 말하는 신에 대한 바른 태도는 신을 향한 두려움을 가지는 것이며
신을 무한히공경하는 것이다.
지혜서의 대표인 잠언과 전도서는 우리 인생의 지혜를 이렇게 말한다.
잠언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전도서
신에 대한 두려움과 공경함이 없으면 어찌 되는가.
신을 가볍게 여기면 우리 삶도 가벼워진다.
하늘 위를 나는 풍선을 보며: “저러다 터질라.”
그러니 우리가 기도할 때, 찬송할 때,
대화를 나눌 때, 신에 대한 경외감 없이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친구들의 대화: “대화도 조심해서 하자.” “그래.”
무엇보다 신을 의지해야 한다.
즉 신을 믿는 것이다. 믿음의 핵심이 바로 신을 의지하고 신뢰하고
맡기는 것이니 말이다.
엄마 닭을 쪼르르 따르는 병아리들: “우리가 엄마 품을 파고 들 듯 하나님을 의지하세요.”
엄마 닭: “똑똑한 내 새끼들.”
지금까지 알아 본 십계명 1, 2, 3계명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자.
제1계명 | 바른 예배의 대상 |
제2계명 | 바른 예배의 방법 |
제3계명 | 바른 예배의 태도 |
제1계명처럼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를 드려야 할 바른 대상을
아는 것이다. 예배의 유일한 대상은 바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외에는 없다.
예배의 유일한 대상 -------- 삼위일체 하나님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한다 하더라도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제2계명처럼 신을 바른 방법으로 예배해야 한다.
김화백: “신의 신 되심에 합당한 방법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신의 형상을 만들어 예배할 수는 없다. 그것은 유일한 신의 합법적인
형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신을 예배드려야 함을 말한다.
거짓 신 <-----------공격 아자!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신에게 예배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도 아니다.
김화백: “제3계명처럼 바른 자세와 태도로서 드려야 하는 거죠.”
예배드리는 이에게는 신을 경외하는 마음, 신을 의지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고백자: “경외합니다. 사랑합니다. 주님~”
이런 마음을 가질 때,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신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을 수가 있게 되는 거다.
즉 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높일 수가 있다.
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수가 있다.
우리가 신을 경외하는 그만큼
신은 영광을 받으신다.
우리가 신을 의지하는 만큼
하나님은 영광을 얻으신다.
우리 마음 속으로 질문하여 보도록 하자.
“신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지?”
“신을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 거지?‘
STUDY GUIDE
4. 제3계명 ┃ 바른 예배의 자세
1. 제3계명은 무엇인가.
2. 이름과 이름을 부르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3. 신의 이름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4. 신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5. 신의 이름을 잘못 사용하는 경우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6. 어떻게 하는 것이 신의 이름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인가.
7. 내가 신을 바른 자세로 예배하려고 할 때, 가중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출처] 만화십계명(백금산/김종두), 부흥과개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