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양사람 이마두(利瑪竇)가 동양에 와서 천국(天國)을 건설하려고 여러 가지 계획을 내었으나 쉽게 모든 적폐(積弊)를 고치고 이상(理想)을 실현하기 어려우므로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만 하늘과 땅의 경계(境界)를 틔워 예로부터 각기 지경(地境)을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들로 하여금 서로 거침없이 넘나들게 하고 그 죽은 뒤에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돌아가서 다시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으니 이로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 모든 기묘한 법을 받아내려 사람에게 알음 귀(耳)를 열어주어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묘한 기계를 발명케하여 천국의 모형(模型)을 본 떴으니 이것이 현대의 문명이라. 그러나 이 문명은 다만 물질과 사리(事理)에 정통(精通)하였을 뿐이요 도리어 인류의 교만과 잔포(殘暴)를 길러내어 천지를 흔들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로써 모든 죄악을 꺼림없이 범행하니 신도의 권위가 떨어지고 삼계가 혼란하여 천도(天道)와 인사(人事)가 도수를 어기는 지라 이에 이마두는 모든 신성(神聖)과 불타(佛陀)와 보살(菩薩)들로 더불어 인류와 신명계의 큰 겁액(劫厄)을 구천(九天)에 하소연하므로 내가 서천서역대법국천계탑(西天西域大法國天階塔)에 내려와서 삼계를 둘러보고 천하에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에 그쳐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彌勒金像)에 임(臨)하여 삼십년을 지내면서 최수운(崔水雲)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大道)를 세우게 하였더니 수운이 능히 유교의 테밖에 벗어나 진법을 들춰내어 신도(神道)와 인문(人文)의 푯대를 지으며 대도의 참빛을 열지 못하므로 드디어 갑자년에 천명과 신교를 걷우고 신미년(辛未年 1871)에 스스로 세상에 내려왔노라(대순전경 5:12) |
천사 경석과 공우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통정신(通精神)이 나오노라 나의 일은 비록 부모 형제 처자라도 모르는 일이니 나는 서천서역 대법국 천계탑 천하대순(西天西域 大法國 千階塔 天下大巡)이라 동학주에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이라 하였으니 내 일을 이름이라 내가 천지를 개벽하고 조화정부(造化政府)를 열어 인간과 하늘의 혼란을 바로 잡으려하여 삼계(三界)를 둘러 살피다가 너의 동토(東土)에 그쳐 잔피(殘疲)에 빠진 민중을 먼저 건지려 함이니 나를 믿는 자는 무궁한 행복을 얻어 선경의 낙을 누리리니 이것이 참 동학(東學)이라 궁을가(弓乙歌)에 「조선강산명산(朝鮮江山名山)이라 도통군자(道通君子) 다시 난다」하였으니 또한 나의 일을 이름이니라 동학신자간에 대선생(大先生)이 갱생(更生)하리라고 전하니 이는 대선생(代先生)이 다시 나리라는 말이니 내가 곧 대선생(代先生)이로라 또 가라사대 예로부터 계룡산(鷄龍山)의 정(鄭)씨 왕국(王國)과 가야(伽倻山)의 조(趙)씨 왕국과 칠산(七山)의 범(范)씨 왕국을 일러오나 이 뒤로는 모든 말이 영자(影子)를 나타내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정씨를 찾아 운수를 구하려 하지 말지어다 하시니라(대순전경 3:22) |
선천에는 상극지리(相克之理)가 인간사물(人間事物)을 맡았으므로 모든 인사가 도의에 어그러져서 원한이 맺히고 쌓여 삼계(三界)에 넘침에 마침내 살기(殺氣)가 터져나와 세상에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키나니 그러므로 이제 천지도수를 뜯어고치며 신도를 바로잡아 만고의 원을 풀고 상생의 도로써 선경을 열고 조화정부(造化政府)를 세워 하염없는 다스림과 말없는 가르침으로 백성을 화(化)하며 세상을 고치리라(대순전경 5:4) |
임인(壬寅)년 사월에 천사 김형렬(金亨烈)의 집에 머무르사 형렬에게 일러 가라사대 시속(時俗)에 어린 아해에게 개벽쟁이라고 희롱하나니 이는 개벽장(開闢長)이 날 것을 이름이라 내가 삼계(三界)대권(大權)을 주재(主宰)하여 천지를 개벽하며 무궁한 선경의 운수를 정하고 조화정부(造化政府)를 열어 재겁(災劫)에 싸인 신명(神明)과 민중(民衆)을 건지려 하니 너는 마음을 순결히 하여 공정(公庭)에 수종(隨從)하라 하시고 날마다 명부공사(冥府公事)를 행하시며 가라사대 명부공사의 심리(審理)를 따라서 세상의 모든 일에 결정되나니 명부의 혼란으로 인하여 세계도 또한 혼란하게 되느니라 하시고 전명숙으로 조선(朝鮮)명부 김일부로 청국(淸國)명부 최수운으로 일본(日本)명부를 각기 주장케 한다 하시며 날마다 글을 써서 불사르니라 (대순전경 4:1) |
다시 비에 물을 적셔 그 방벽(房壁)에 인형을 그리고 그 앞에 청수를 놓고 꿇어앉으사 상여(喪輿) 소리를 하시며 가라사대 이마두(利瑪竇)를 초혼(招魂)하여 광주 무등산 상제봉조(上帝奉詔)에 장사(葬事)하고 최수운(崔水雲)을 초혼하여 순창 회문산 오선위기(五仙圍碁)에 장사하노라 하시고 종도들에게 이십사절(二十四節)을 읽히시며 가라사대 그 때도 이 때와 같아서 천지의 혼란한 시국(時局)을 광정(匡正)하려고 당태종(唐太宗)을 내고 다시 이십사절을 응(應)하여 이십사장(二十四將)을 내어 천하를 평정(平定)하였나니 너희들도 장차 그들에게 못지 않은 대접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대순전경 4:162) |
하루는 약방 마루에 앉으시고 유찬명을 마루 밑에 앉히사 순창오선위기(淳昌五仙圍碁)와 장성옥녀직금(長城玉女織錦)과 무안호승예불(務安胡僧禮佛)과 태인군신봉조(泰仁群臣奉詔)를 쓰이시고(대순전경 4:154) |
딥 스테이트(deep state, 심층 국가)- 서구 근대국가의 구조
I 서구 근대국가의 구조: 딥 스테이트(deep state, 심층 국가) I
신현철/국제정치 평론가
[편집자주] 국제완정 신현철 대표 작가는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트럼프 대 반 트럼프 전선 사이의 격렬한 갈등 뒤에 ‘딥스테이트’가 있음을 해설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즈와 파이낸셜타임즈와 같은 딥스테이트 정책 홍보 기관조차 딥스테이트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설명합니다. 이들은 딥스테이트를 좁게 개념 설정함으로써 이면에 뻗쳐있는 딥스테이트의 실체를 은폐하고 물타기 하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또 현재의 모든 정치분석은 실체(딥 스테이트)를 거론하는 것을 외면함으로써 지구 상에서 벌어지는 다종다양한 사건의 작동 구조를 밝히는 데 실패했다며 진정 문제를 정면으로, 진짜 국가를 들여다봄으로써 세계민중의 전진에 올바른 시각을 제공해야 할 시점이라고 설파합니다. 이 주제는 지소미아 방위비인상으로 복잡한 국면에 들어선 한-미-일 삼각관계의 실체적인 작동메커니즘을 들여다보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시론적 글이며 주요 논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밝힙니다. |
1
근착 뉴욕타임즈와 파이낸셜타임즈는 미국에 ‘그림자 정부(shadow government)’와 비스무리한 ‘딥 스테이트(deep state)’가 존재함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것이 트럼프 대통령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1) 이건 너무너무 이상한 현상에 해당한다. 그간 딥 스테이트니 뭐니 하는 말을 꺼내면 덜 떨어진 음모론자 취급을 하며 경멸을 날렸던 그들이다. 이제 지들이 스스로 앞장서서 ‘음모론’을 설파하는 것이다. 이 같은 영미 주류언론의 ‘음모론 수용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 이 글 목적이다.
2
이 글을 수월하게 읽기 위해선 일단 ‘딥 스테이트(deep state)’라는 용어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뉴욕타임즈와 파이낸셜타임즈는 이 용어를 (1)“선출되지 않은 관리 집단”쯤으로 가볍게 정의하며, 선거를 통해 백악관에 입성한 트럼프와 대비시킨다. 딥 스테이트의 내부 조직위계상 반(反) 트럼프 하위 관료집단에 오더(order)를 내리는 윗선이나 ‘몸통’ 같은 것은 밝히지 않으며 아무런 언급이 없다. 하나의 거대한, 국가 내 마피아 조직의 전모 같은 것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하지 않는다. 그저 송사리, 피라미 급 행정 관리 몇 명을 예로 들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딥 스테이트라며 딥 스테이트 범위를 최대한 축소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영미 주류 미디어가 그동안 그런 게 절대 없다며 그 존재를 강력히 부정했던 딥 스테이트를 ‘드디어’ 인정했다는 점이다. “그때는 없었는데, 지금은 있다!”는 것이다.
‘딥 스테이트(deep state)’ 개념이 어떤 것들로 정의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3
미 의회 예산 위원회에서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딥 스테이트: 헌법의 몰락과 그림자 정부의 등장 The Deep State: The Fall of the Constitution and the Rise of a Shadow Government』이란 책을 저술한 마이크 로프그렌(Mike Lofgren)은 이렇게 말한다. (아래 인용은 필자의 설명이 조금 추가된 인용임을 밝힌다.)
“원래 “딥 스테이트(deep state)”라는 용어는 서구 가치 추종 세속주의 케말리즘을 수호하기 위해 군부가 터키 정치 배후에서 ‘비밀스럽게’ 버티고 있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주조된 개념입니다. 터키 정치에서 딥 스테이트는 케말리즘에 도전하는 이슬람 세력이 권력으로 접근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2)정보기구, 군부, 사법부, 조직범죄 내부의 고위직 담당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국 소설가 존 르 카레(John le Carré)는 그의 최근 소설인 『미묘한 진실 A Delicate Truth』에서 한 인물이 딥 스테이트를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 . . . 그건 말이죠, (3)영국 정부와 영국의회에게조차 허락되지 않는 최고급 기밀 정보에 접근이 허용되는 은행, 산업, 무역업계의 비정부 내부 인사들을 말하는 겁니다.”
저는 이 용어를 (4)공식적 정치 과정을 통해 표현되는 유권자 동의에 구애 받지 않고 미국을 실제로 지배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진, 정부의 최고위층과 금융 및 산업의 최상위층이 결합된 조직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하려 합니다.” 주2)
대략 4가지 정도 용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4
『뉴 레프트 리뷰 New Left Review』류의 글을 게재하며 전형적 서구 문화맑시즘 좌파 입장을 떠들어대는 《자코뱅(Jacobin)》이란 웹진이 있다. 여기에 라파엘 카차투리언(RAFAEL KHACHATURIAN)의 「딥스테이트 파헤치기 Ditching the Deep State」라는 기사가 2017년에 실렸다. 주3)
기사 결론은 딥 스테이트(deep state) 같은 것은 없으니 헛소리 말고‘아닥’하라는 것이다(‘아닥’은 “아가리 닥쳐!”의 약자다). 그 따위 “음모론”에 현혹되지 말고 ‘계급투쟁’이나 열심히 하라는 충고 가득한 글이다.
딥 스테이트(deep state)는 우리말로 하면 ‘심층국가’다. 이는 ‘국가 안의 국가(state within a state)’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이는 공식적 국가조직 밖에서 국가를 조종하는 별도의 파워 네트워크를 있음을 전제한다. 미국 사회학자 찰스 라이트 밀즈(C. WRIGHT MILLS. 1916∼1962)의 ‘파워 엘리트(Power Elite)’와도 맥락을 같이하는 유사한 개념이다.
5
라파엘 카차투리언은 딥 스테이트라는 개념이 두 가지 측면에서, “계급투쟁을 가로막는 유해한 시각”이라고 단정한다. 첫째는, 딥 스테이트라는 개념을 인정하게 되면, 배후에서 국가를 움직이고 조종하는 단일하고 통일된 ‘핵심 행위자’ 혹은 ‘수직적 위계 네트워크’를 상정하게 되는데, 이는 “국가가 다양한 경제적 이해를 배경으로 하는 계급들 간 투쟁의 장”이기 때문에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국가론 교리에 따르면 이런 답이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그는 논지를 강화하기 위해 그리스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니코스 풀란차스(Nicos Poulantzas)를 동원한다. 그가 『국가, 권력, 사회주의(State, Power, Socialism)』에서 “국가를 균일한 사다리나 피라미드에서처럼 최상위 권력 중심이 꼭대기에서 밑바닥으로 내리꽂듯이 의지가 하향 관철되는 동질적이고 위계적인 권력 분포에 기반한 완벽하게 통합된 기제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기 때문에 딥 스테이트 같은 건 있을 수 없다고 확언한다.
6
그보다는 오히려 국가를 “사회 세력들의 잠정적이고 역사적으로 우발적인 결정체(crystallization)”로 파악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즉,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회 세력[계급]들이 정치적 안정의 시기에는 서로 제휴(계급 타협)를 하는 ‘휴전 모드’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정치적 갈등 시기에는 세력[계급]간 난투가 벌어지는 ‘전쟁 모드’로 전환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를 ‘가변적 존재’로 파악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쉽게 말해, 국가란 제각기 다른 세력[계급]들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이라는 변증법적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많은 부부들이 이러한 존재방식으로 생활하고 있다. 화해와 싸움은 상황 종속적으로 발생한다. 그래서 계급간 역학관계에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정치 지형이 바뀌는 관계로 “그때 그때 달라요!”라고 말할 수 밖에 없게 된다.
7
풀란차스의 국가론은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론이다. 이러한 발상은 마르크스주의 논리 자체와도 충돌을 일으킨다. 아니, 계급사회에서 계급간 역학관계는 ㅡ 물론 미세한 파동은 있겠지만 ㅡ 이미 피지배계급의 종속으로 ‘쑈부’가 난 상태에서 이미 갑(甲) 위치에 올라선 지배계급이 자신을 영속적 ‘언터쳐블(the untouchable)’로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물 샐 틈 없이 네트워크화 한다는 것은 상식 중 상식에 속한다. 그들이 시스템을 통해 그리고 특혜와 반칙과 불법[초법]을 통해 부와 권력을 집중시키기 위해 국가를 찰흙 만지듯 조물딱거리며 ‘계급적으로’ 혹은 ‘파워 엘리트의 구미에 맞게’ 국가를 조형(造形)해 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무슨 프리미어 리그도 아니고 국가라는 경기장에서 계급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오손도손 각축을 벌인다는 풀란차스의 발상은 도대체 뭔가?(꺄우뚱 *_*;;)
물론 지배블록은 유화 국면을 만들어 ‘연성 통치’를 할 때도 있고, 찍어 누르기식 ‘공안 통치’를 할 때도 있다. 이 같은 지배 양태의 국면적 변화를 ‘계급 간 각축’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8
마르크스주의의 수많은 오류들은 기본적으로 사회를 ‘계급’으로 찢어진 걸레 같은 것으로 보기 때문에 발생한다. 계급의 범주 안으로 포섭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모든 사회학적 범주는 기각 당한다. 따라서 엄연히 존재하는 지배층의 촘촘한 네트워크 ㅡ 세계를 코스모폴리탄적으로 연계시키며 해외와 국내를 결합시키고 동시에 국내 통치 분파들끼리 맺고 있는 다면적 네트워크 ㅡ 마저 가볍게 외면해 버린다. 그저 입만 열면 ‘계급’이다. 이는 마르크스주의가 ‘계급종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현상이다. 눈에 뻔히 보이는 것도 안 보인다고 말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이런 계급으로의 경도 경향은 딥 스테이트의 존재 부정이라는 인식 오류가 ‘우발적 오류’가 아니라 ‘의도된 오류’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게 해준다. 왜냐하면 요란한 꽹과리 소리처럼 계급투쟁 ‘설레발’을 치지만, 막상 자본가계급 대마왕들의 네트워크인 딥스테이트에게는 마치 미사일방어(MD)시스템 아이언 돔(Iron Dome, 강철 지붕) 같은 철벽 쉴드를 쳐주기 때문이다.
조무래기 자본가계급은 타도의 대상인데 그들의 대마왕 네트워크인 딥 스테이트는 타도의 대상이 아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근대 급진정치의 표상인 마르크스주의가 자본가계급의 대마왕들에게 필요한 이유다. 사상적 위장 술책(false flag)으로 아주 딱이기 때문이다. 혁명을 외치지만 그들의 정치이론에는 딥 스테이트라는 개념이 들어있지 않다. 가장 혁명적으로 전복이 요구되는 것은 방치한다. 그래서 딥 스테이트는 그냥 ‘음모론’으로 무시된다. 계급의식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은 덜 떨어진 놈들이 씨부리는 헛소리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된다.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이 따위 사람들이 썼다고 주장되는 모든 저작들에서 ‘딥 스테이트’라는 개념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만약 그들의 “원전”이 모두 디지털화되어 검색이 가능하다면, ‘딥 스테이트’를 검색어로 집어 놓고 엔터(enter)를 치면 어떤 결과가 나올 지 몹시 궁금하다. 아마 ‘결과 없음’이 뜰 것이다.
9
그동안 딥 스테이트의 존재를 부정해 온 것은 마르크스주의자들뿐만 아니라 그들이 증오하는 자본가계급이 장악하고 있는 영미 주류 매체 또한 마찬가지였다. 딥 스테이트를 말하는 순간 그(녀)는 ‘또라이’ 취급을 받게 된다. 그래서 모두 뭔가 조금씩은 눈치는 채고 있지만 모르는 척 쉬쉬하며 지냈다. 아니, 알기를 거부하며 살아왔다. 그런 거 알아봐야 사회부적응자로 낙인이 찍히는데 뭐 하러 굳이 그런 걸 알려고 하겠는가! 달리 할 것도 많은데 말이다.
10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네오콘 대변지인 미국 뉴욕타임즈에서 “국가 안의 국가”인 딥 스테이트가 있다고 ‘고백’을 해버린 것이다. 주4) 이건 미국 미디어 역사 상 그 어떤 사건에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메카톤급 이변이다. 케네디가 암살 당해도 멀뚱멀뚱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던 그들이, 9/11이 벌어져도 ‘아닥’하고 있던 그들이 트럼프 대통령과 딥 스테이트 사이에 탄핵 전쟁이 벌어졌다며 공개적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 동안 딥 스테이트 같은 것은 절대로 절대로 없다고 감추고 감추어왔던 그들이 도대체 무슨 의도로 그런 고백을 한 것일까?
딥 스테이트 기관지 같은 논조로 일관하며 트럼프를 탄핵하지 못해 안달이었던 뉴욕타임즈가 딥스의 존재를 마침내 인정해 버린 것이다. 기사 내용은 딥 스테이트와 전쟁을 벌이는 트럼프의 몰락을 경고하는 글이다. 그 동안 딥 스테이트의 존재를 말했던 사람들을 “음모론자”라고 몰아세웠던 그들이 기존 입장을 뒤엎고 딥 스테이트가 실제로 존재하고 있음을 ‘고백’하며, 그들이야말로 트럼프를 비롯한 미국 대통령들이 “국가 이익”을 무시하고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교정해주는 역할을 하는 “공복(civil servants)”이며, 선거를 통해 백악관에 입성한 “무책임한” 대통령이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옆에서 보좌해주는 ‘빛과 소금 같은 존재’라고 치켜세웠다. 그리고 이러한 선량한 공복들을 딥 스테이트의 스파이라며 대거 숙청하는 트럼프 대통령이야말로 미국의 이해를 좀먹는 “암적 존재”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주5)
11
아마도 뉴욕타임즈는 이제 더 이상 숨길래야 숨길 수 없을 만큼 정체가 드러난 딥 스테이트의 존재를,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그냥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정면 돌파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 트럼프 세력이 그간 딥 스테이트 세력이 벌인 워싱톤 정치인 협박조종 청소년매춘 엡스타인 사건은 물론 머지 않아 네오콘 주도로 벌인 9/11도 폭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감지한 것으로 추측된다. 트럼프가 궁지에 몰리면 쓸 극약 처방이 있다는 것 정도는 그들도 알 것이다. 특히 딥 스테이트의 작품으로 거의 확실하게 추정되는 9/11이 ‘공식적으로’ 까발려지게 되면, 미국 정치판은 허리케인 폭풍 그 이상이 불어 올 것이다.
따라서 딥 스테이트 기관지로 간주되던 뉴욕타임즈와 기타 매체들은 이참에 그간 음모론으로 치부되었던 딥 스테이트의 존재에 대해 정식으로 ‘담론 시민권’을 부여해주자는 계산이 들어간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기존의 “음모론”에서 딥 스테이트를 “커튼 뒤에서 암약하며 미국을 망치는 악의 무리”로 묘사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로, 딥 스테이트 구성원들이야말로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하는”, 미국의 국가 이익을 지켜내는 ‘애국 수호천사’라는 찬사 에드립을 날리며 프로파간다를 치고 있다.
12
이는 우리 군가 「너와 나」를 생각나게 하는 프로파간다다.
“빰빠밤빠, 빰빠밤빠, 빠아라바람빠 . . . ♩♪♩♬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
침략의 무리들이 노리는 조국 . . .
내 부모 내 형제 내 조국 위해
너와 내가 부릅뜬 눈 망루가 되고
너와 나의 충정 속에 조국은 산다
(「너와 나」. 김성용 작사/김강섭 작곡)
비단 뉴욕타임즈 만이 유일하게 미국이라는 빙산의 하단부에 딥 스테이트가 부착되어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 또한 고백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주6) 뉴욕타임즈 기사가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인 10월 23일에 나갔고 이틀 후에 파이낸셜타임즈 기사가 이틀 후인 10월 25일 연이어 나갔으니 ‘연쇄 기사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바야흐로 딥 스테이트의 존재에 대한 ‘고백’과 ‘찬양’이 영미 주류 미디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즉 우발적 사건이 아닌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13
파이낸셜타임즈에 딥 스테이트 기사를 쓴 에드워드 루스(Edward Luce)는 딥 스테이트를 “선출되지 않은 관료집단(unelected bureaucrats)”이라고 정의하면서, 이러한 “전문가 집단”에 ‘해꼬지’를 가하면, 앞으로 미국 행정부는 결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더불어 “미국의 정치 DNA에 깊숙이 뿌리 박힌 관료주의에 대한 적대감은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몹쓸 유산”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뉴욕타임즈 기사와 대등소이한 주장을 담고 있다.
14
이렇게 영미 주류 매체들이 딥 스테이트의 존재를 고백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관심은 딥 스테이트의 개념을 올바로 정립하는 것이다. 딥 스테이트가 최근에 벌어진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서구 근대사를 관통하며 존재해왔던 역사적 이력을 가진 ‘통시적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딥 스테이트는 거대한 국가(꼬끼리)마저 꿀꺽 삼켜버리는 무시무시한 존재다. 쌩떽쥐뻬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보아뱀 같은 존재다.
15
영미 주류 매체들의 연이은 고백은 일단 ‘가짜 고백’이라는 점부터 지적해야겠다. 왜냐하면 그들은 딥 스테이트를 단지 “선출되지 않은 관료집단(unelected bureaucrats)”으로 한정하기 때문이다. 이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백악관 내부를 장악하고 있는 관료 집단은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미제국의 국제금융과 산업과 무역과 대외정책과 전쟁에 관한 거의 모든 결정권을 장악한 이들이 딥 스테이트이다. 트럼프를 백악관에서 축출하기 위한 탄핵 전쟁에서 직접적으로 겉으로 드러나는 딥 스테이트 세력은 CIA(중앙정보국), FBI(연방수사국), NSA(국가안보국)가 대표적이다. 특히 NSA(국가안보국)는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프리즘 프로젝트(PRISM project)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딥 스테이트가 단순히 국가운영에 영향력을 미치거나 혹은 배후에서 조종하거나 하는 차원을 넘어 전지구적인 사찰과 감시를 통해 세계를 움켜쥐겠다는 야욕을 가지고 있음을 명백히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주7)
16
딥 스테이트는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미국인들과 전세계인들을 감시하고 사찰한다. 그런 권리를 누가 주었는가? 그런 흉악한 감시와 사찰과 요인 암살 같은 걸 하라고 그 누구도 그들에게 권리를 부여해 준 적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개의치 않고 한다. 모두 심각한 불법이다. 딥 스테이트는 우리 생각보다 수십만배는 더 위험한 존재들이다. 필자가 가끔 미국을 “악령에 점령된 국가”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선량한 미국인들과 아름다운 미국의 자연과 자원을 오직 소수의 딥 스테이트 이너써클이 강탈해 그들의 세계지배 야욕 달성을 위해 희생시키는 악마적 전체주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악령’은 다름 아닌 딥 스테이트를 지칭하는 것이다.
17
미국 국민들 손으로 직접 선출한 합법권력인 트럼프 대통령이 부질없는 해외 전쟁을 접고 내치(內治)에 힘쓰겠다는데 이를 무슨 ‘범죄 행위’나 되는 것처럼 물어뜯으며 발광난동을 부리며 탄핵을 모의하는 ‘국가 안의 국가’인 딥 스테이트를 제거해야 할 것 아닌가! 그냥 그대로 놔두는 게 바람직한가? 선거권력 이면에서 권력 본좌를 차지하고 앉아서 그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고 패륜을 일삼으며 세계를 망치는 ‘딥 스테이트 절대 왕정’과 지구 전역을 들쑤셔가며 저지르는 그들의 ‘폭정’을 이대로 놔두어야 하는가?
끊임없는 전쟁 부채질과 군산복합체의 무기팔이, 미국이 지어 놓은 900개의 해외 군사기지, 9/11, 실물경제를 불구로 만들고 망가뜨리는 바리새 금융시스템, 세계인을 날품팔이로 만들어 버린 신자유주의, 초국적 기업들이 국가를 얕잡아 보며 진행하는 패륜적 산업 독점, 식량 독점, 의료 독점, 에너지 독점, (군사)기술독점, 부동산 독점, 그리고 무한대의 이윤 실현 독점, 맥도널드 쓰레기 문화의 전지구적 확산에 따른 아메리카 좀비들의 기하급수적 배양. . . 이 모든 걸 모두 그냥 이대로 방치하며 놔두어야 하는가???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며 모르는 척 그냥 놔두어야 하는가? 그리고 이런 골치 아픈 일보다는 다른 돈 되는 ‘영양가’ 있는 일을 찾아 그 쪽으로 우리의 관심을 돌려야 하는가?
18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조사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딥 스테이트의 존재를 손사래를 치며 부인하는 정치이론은 결과적으로 딥 스테이트에게 쉴드를 쳐주는 임무를 부여 받은 이론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서구 근대 사상 모두가 여기에 해당한다. 서구 근대 정치이론에는 딥 스테이트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현실에는 존재하지만 그들 이론은 현실을 외면한다. 그들에게 “정치란 오로지 세력[계급]들의 조화로운 혹은 갈등적인 각축”에 불과하다. 이렇듯 눈앞에 버젓이 전개되는 현실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엉터리 서구 근대 정치이론들은 물론이고 이에 기생하는 정치세력들 또한 엉터리이기는 마찬가지다. 눈 앞에 뻔히 보이는 현상도 이해하지 못하고 또 딥 스테이트 당사자들이 자기 정체를 보란 듯이 밝혀도 이조차 눈치 채지 못하는 둔감한 이론들이 무슨 놈의 이론인가, 미신이거나 종교지. 과학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비과학적이고 비현실적이 이론들이 자신의 이론은 “과학적”이라며 사기를 치기 시작한 지도 어언 100년이 넘은 것 같다.
19
예수 존재를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처럼, 딥 스테이트의 존재를 부인하는 근대 정치이론은 이제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 정치이론뿐 아니라 근대 사회과학 분석 패러다임이 모두 무용지물이 될 판이다. 근대에 출현한 서구 정치 이론들은 한결같이 “투명한 경기장에서 사회세력들이 경합을 벌인다”는 동화식 서술을 채택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라는 빙산 덩어리에서 비가시적인 하단부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오직 눈에 뵈는 상단부를 자기완결적인 메카니즘을 가진 것으로 간주하여 그것만을 바라본다. 그래서 그 이론들을 접하면 모두 국가의 실제 운전자를 시야에서 ‘뿅’하고 사라지게 만들어 도대체 누가 우리의 삶을 이렇게 고달프게 만드는지, 누가 진짜 결정권자인지 모르는 채로 우리를 순종적 양떼로 길들인다. 그게 근대 정치이론들이 존재하는 이유다.
20
사실 딥 스테이트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서구 근대 시기 자체가 바로 딥스테이트적 국가 운영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세말 근대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초국적 상업 네트워크 세력은 유럽을 집어삼키고 유럽에 딥 스테이트 국가 운영을 이식하여 인공적 암흑 맘몬 근대를 심어 놓은 장본인들이다. 지금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곧장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무수히 많은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장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긴 호흡으로 임하겠다는 마음자세를 가지길 권한다. 《완정문고》 해설에서 이 문제는 계속 논의될 것이다.
21
권력의 수원지를 잘못 인식한 채 구성되는 모든 사회정치이론을 과감히 폐기하고 새로운 정치권력이론 패러다임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 작업을 위해 우리는 서구의 중세와 근대를 비교하며 톺아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국가 안의 국가인 딥 스테이트의 원형이 중세말 근대초부터 본격적으로 출현했기 때문이다. 상인 네트워크가 국가를 포위하여 가공할만한 위력으로 전유럽을 잠식하는 지경에 이르러 급기야 유럽사를 중세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결정짓게 되는 출발점이 바로 근대이기 때문이다.
22
초국적 상업 네트워크는 코민테른(Communist International, Comintern, 1919-43) 같은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혹은 제3인터내셔널이라고 불리우는 코민테른의 목표는 주지하다시피 세계혁명을 통한 전세계의 공산화다(그러나 스탈린은 세계혁명 노선을 폐기하고 코민테른을 해체한다. 그 전에 볼쉐비끼 올드보이들을 모조리 숙청해버린다). 그러기 위해선 각국 공산당들이 해당 국가의 여러 사회영역에 합법적 혹은 비합법적 경로를 통해 침투해야 한다. 사실은 공산당 조직 자체가 ‘맹아적 딥 스테이트’이다. 마찬가지로 초국적 금권 네트워크는 코민테른과 같은 별도의 코스모폴리탄적 세계조직을 가지고 있으며, 해당 국가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현대의 공산당 조직처럼 내부에 꼬마 지령조직을 가지고 있다. 영국혁명 시기에는 주로 기독교 탈레반에 해당하는 퓨리턴 조직이 그 역할을 떠맡았고, 프랑스혁명 시기에는 프리메이슨 조직이 그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은 모두 공산당이 출현하기 이전 시대에, 그에 상응하는 역할을 수행했던 딥 스테이트 하부조직이다.
23
초국적 상업 네트워크는 유럽 핵심 국가들을 하나씩 장악해 들어가면서 숙주로 삼았다. 이러한 딥 스테이트의 일반 운동은 그 특유의 기민함으로 서구 중세 왕정을 마침내 모조리 무너뜨렸다. 그리고 왕정의 정신적 골간인 종교를 지우고 공화국 시스템을 이식하여 서구 근대를 설계했다. 넓게 보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기 역시 당시 형성된 ‘근대 질서’의 역사 공간에 해당한다.
서구의 근대 민주주의 공화국은 기본적으로 비공식 영역이 공식 영역을 관리하는 수동적 정치체다. 중세 왕권은 투명하게 행사되었고 많은 제약이 있었다. 그러나 근대의 공화국 정체에서는 표면과 심층이 분리되는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표면국가’와 ‘심층국가’로 이원화되었다. 앞서 언급한 니코스 풀란차스(Nicos Poulantzas)가 『국가, 권력, 사회주의(State, Power, Socialism)』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국가의 전부’라고 알고 있는 ‘표면국가’는 “사회 세력들의 잠정적이고 역사적으로 우발적인 결정체(crystallization)”인 것처럼 한껏 ‘쑈’를 펼치면서 우리들 혼을 쏙 빼놓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면국가의 질서는 심층국가(딥 스테이트)의 운동 과정에서 만들어진 ‘부산물’에 불과하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24
다시 말해, 심층국가는 ㅡ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ㅡ “균일한 사다리 혹은 피라미드에서처럼 최상위의 절대 권력이 꼭대기에서 밑바닥으로 내리꽂듯이 의지가 하향 관철되는 동질적이고 위계적인 권력 분포에 기반한 완벽하게 통합된 기제”인 반면에, 표면국가는 다른 세력들이 공정하게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각축장으로 보이게끔 만드는 기제라는 것을 명확히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25
따라서 우리는 서구 근대 역사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겪으면서 심층국가가 확립되었으며, 이 심층국가의 정체와 특징을 입체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 표면국가가 국가의 전부라고 맹신하며 죽자사자 그것만 들여다 본다고 해서 무슨 뾰족한 답이 나오는 게 아니다. 우리가 지금 진정으로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는 위력적인 정치이론을 만들어 삶을 개선하고자 한다면, 표면국가와 심층국가를 아우르는 ‘통합 이론’을 만들어 내야 한다.
심층국가의 권력이 단일체적(monolithic) 구조를 가졌는지 아니면 혼종적(hybrid) 구조를 가졌는지 주8), 심층국가 내부의 민족적 분포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심층국가는 표면국가에게 어떤 방식으로 어젠다를 관철시키는지 주9) 등등 너무나 많은 의문들에 대답을 주어야 한다.
26
결론을 내리자. 우리가 가장 궁금한 것은 바로 트럼프의 정체다. 뉴욕타임즈 말대로 그가 미국과 세계를 망치는 자본대마왕 클럽인 딥 스테이트와 혈투를 벌이며 싸우는 투사인지, 아니면 그냥 싸우는 척만 하면서 정치적 주의분산을 위해 적당히 ‘쑈’를 일삼고 있는 건지 그것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게 가장 실천적 함의를 가지는 판단 영역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후자(쑈맨쉽)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많이 드는데 그래도 혹시 전자(투사)가 아닐까 하는 희망 섞인 기대도 완전히 버리긴 어렵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트럼프는 ‘아수라 백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ㅡ [완정]
◇ 글쓴이: 신현철
국제정치완전정복 대표작가, 국제정치 분석가
지정학적 연구 분석틀을 바탕으로 국제정치의 이면을 파헤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유라시아 시대의 도래를 준비하여 ‘전통주의’적 시각에 입각한 새로운 국제정치학 패러다임을 모색한다.
[글의 출처]
http://www.signal.or.kr/news/articleView.html?idxno=10866
(진영 논리)에 갇혀 있으면 좀비가 된다. (~^!^~)
국제 관계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종교와 이데올로기의 색안경들을 모두 버려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 사회라는 곳 자체가 철저히 이익의 관점으로 움직이는 곳이기 때문에 큰 그림을 그리는 자들에게 종교와 이데올로기는 단지 일을 진행시키는 명분과 구실을 만들어주는 일종의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동의 평화와 화합으로 선전되었던 아브라함 협정, 그 이면에는 천연가스를 이용한 큰손들의 에너지 패권 장악과 유라시아 실크로드 구축이라는 그들의 거대 목표가 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외교정책 중 특히 대 이스라엘에 관한 정책들은 매우 각별했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순방국은 관례상 매우 큰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트럼프의 첫 순방국은 이스라엘이었습니다. 또한 취임 이듬해인 2017년에 그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선포합니다. 2020년 8월 트럼프와 쿠슈너의 합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아브라함 협정은 사실상 아랍에미리트와 이스라엘 간의 평화 협정이었습니다. 미국 어느 대통령도 하지 않았던 방식의 대 이스라엘 외교를 추진했던 트럼프, 그 막후의 실세는 바로 트럼프 임기 당시 백악관 선임 고문이자 이방카 트럼프의 남편인 ‘제러드 쿠슈너’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