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결문인 시리즈(4) 김기삼(金琪三) 목사
(시 1) 운무(雲霧)의 생애
나의 존재는 아담이란 죄악의 종자입니다./ 인생이란 고아입니다./ 나의 희망은 부귀-명예-장수 같은/ 뜬 세상의 영화였으며/ 나의 생명은 아침 햇빛에 사라지는 안개/ 바람에 날리는 뜬 구름입니다./ 오, 주여!/ 과연 그렇지요?/ 이것이 허무이지요.// 그 어느 때인가요?/ 슬픔에 북 바쳐 눈물 흘리던 밤/ 병고(病苦)에 신음하다 공포의 전율에 몸부림치던 밤/ 그 때 내게 가만히 속삭이던 말씀/ 너는 가리라. 멸망의 무덤으로/ 불타는 지옥으로// 그리고 말씀하셨지요./ 너는 버려라. 육신의 우상을/ 인형의 허수아비를/ 물질의 환상을/ 분토(糞土) 같은 티끌세상을// 그리고 따르라./ 예수를/ 십자가를/ 그러면 순간에서 영원으로/ 고통에서 즐거움으로/ 속박에서 자유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활천(1923.7호)
(시 2) 생(生)의 법열(法悅)
만물의 주재이신 하나님/ 나는 생의 환극(幻劇) 악마의 작란 처를 떠나/ 내 영은 끝없고 값없는 자유의 분(墳)으로/ 그윽히 파동치는 유량한 음악의 합주를 따라/ 한 찬미의 멜로디와 함께 흐르나이다.// 연애(戀愛)란 날리는 먼지가루 같이 웃고 울며 즐겨하듯/ 가소로운 옛날의 애달픔이여// 행복이란 눈먼 낙타를 타고/ 험준한 낭떠러지를 걸어/ 꿈 자취에 소멸한 동산을/ 꿈으로 그리며 헤매임이여!// 아, 이제 인간이란 가면을 벗고/ 적나라한 정화(淨化)의 영은/ 권태와 포만의 현실을 초월하였으랴.// 그 몸서리 중 나는 회색 우수(憂愁0의 옷을 벗고/ 활기찬 녹색 법열의 옷을 입은 나의 영은/ 멀고도 가까운 천국으로/ 고요한 달빛 헤치고 날아갑니다.// -활천(1924. 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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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긍암(肯岩) 김기삼(金琪三) 목사는 1901년 2월 5일 경남 동래에서 출생했다. 동래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대학 예과를 수료한 지성인으로, 1918년에 고향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으나. 1919년 3.1만세운동에 참여하여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일경에 체포되어 1년 6개월간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는 등 ‘대쪽 같은 성품’을 타고난 분이다.
그 후, 중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 그의 문장이 뛰어남을 안 일인 교장(이께다)의 소개로 당시 경성일보 편집국장을 만났으나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견습기자로 추천하자 실망했다. 그때 만난 고향 친구 박문희(성결교회 전도사)가 선교사에게 영어도 배우고 미국유학도 갈 수 있다는 말에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했다. 그러나 당시 경성성서학원은 오직 성경강해 위주로 가르쳤기 때문에 현대사조와 개혁사상을 추구하는 그의 기대에 어긋났고, 창세기강해 시간에 진화론을 두둔했다가 교수회의에 불려가 주의를 받고 자퇴했다.
그 후 고향에서 교편생활을 하던 중 1923년에 성결교회 한도숙 전도사와 결혼한 후, 아내의 복음주의 신앙에 영향과 감동 받고 회개를 통해 인격적 주님과 만남으로 변화되어 성결교회의 순복음신앙의 소중함을 깨닫고 성서학원에 복학하여 1937년에 졸업했다. 그는 황해도 해주교회 전도사로 부임하여 목회하면서 황해도 연합전도대회의 순회강사로 활동하여 많은 구도자를 확보했으며, 활천에 ‘순복음주의 신앙의 본질’이란 논설을 게재하여 성결교회가 순복음주의임을 주장한 후, 카토릭과 자유주의신학을 아울러 비판한 지성적 교역자였다.
1939년에 목사안수를 받고, 활천 집필인으로 선정되어 성결교회 복음주의 신학으로의 변증에 많은 논설을 발표하여 성결교회의 영성과 지성적 균형을 도왔으며, 1941년에 일본 오사카 이마사도성결교회 목사로 목회하던 중 1943년 2월에 재림론 때문에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2년 징역형을 받았으나 1년 후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그는 해방과 더불어 귀국하여 김해교회와 인천의 영화중학교 교장으로 후세의 신앙교육에 힘쓰다 6. 25사변으로 부산으로 피란하여 1953년 2월 피난지 부산에서 지성인을 위한 전도용 잡지 '새벽별'(Morning Star)를 자비로 계간 발행하여 논설과 단상, 교계시평, 교회순방기, ‘나의 교란기’(敎亂記)라는 일본에서 친히 당한 수난기록을 연재하였다. 이 교란기가 ‘주님 오실 때‘(마라나타)라는 이름으로 개작하여 1955년 기독교서회에서 발간됨으로 최초의 한국기독교의 역사적 종교소설로 기독교 문인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25년 전, 1930년 기독신보 현상소설에 당선된 ‘갱생의 봄’(한도숙 지음)이 있다. 부모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한 젊은 남녀가 나중에 함께 부흥회에서 큰 은혜를 받고 여자는 아프리카 선교사로, 남자는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는 영적인 봄을 맞는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김기삼 씨의 작품으로, 그가 아내의 이름으로 투고했다는 설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도숙 전도사는 그 후 시나 소설을 단 한편도 쓰지 않고 교회의 여성부흥운동에만 헌신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김기삼 목사는 성결교회 최초의 문인이 되겠지만, 좀 더 그 진실을 연구해 볼 일이다. 김기삼 목사는 평생토록 시와 설교, 신학적 논설 등 활천에 72편, 그리고 그가 창간한 ‘새벽별’을 통해 많은 시와 논설을 통해 교단의 순복음적 개혁을 계속 부르짖다가 1965년 3월 27일에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저서로는, 종교소설 ‘주님오실 때’(마라나타)(1955년 기독교서회 간)가 있다.
위의 시(1) ‘운무의 생애‘는 그가 거듭나기 전의 절망과 신앙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뇌하면서 차츰 지성에서 영성으로 전환되어가는 과정에서 쓴 시였으며, 1년 후에 발표한 ’생의 법열’이란 시(2)는 중생을 체험함으로 구원을 확신한 환희의 순간을 신앙고백적 시로 형상화시킨 것이다. 이 시들은 거의 90년 전에 쓴 시이기 때문에 어려운 한문이 많지만 이를 현대적인 글로 필자가 다듬어 보았다. 따라서 위의 두 시는 그의 생애의 전환점을 확인하는 일대 기념비적인 시이기 때문에 대비하며 읽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후 그는 시 10편(은밀한 성신의 기원, 생의 법열, 저 빛나는 새벽별 같이 등), 소설 1편(마라나타), 주옥같은 신앙논설 70여 편 등 성결교회의 신앙과 신학을 은혜와 진리, 영성과 지성을 함께 겸전하도록 힘 쓴 목회자였고, 문서전도자로서 성결문인의 길을 확실하게 닦은 선각자였다. 특히 그의 호가 긍암(肯岩)임을 1953년 그가 발간한 ‘새벽별’ 창간호에서 발견했다. 그는 고뇌하는 지성인으로 교회의 바른 길을 계속 비판하다가 1953년을 계기로 교단의 신앙과 신학을 긍적적으로 감싸 안은 노후(老後)의 삶에서 사도 바울과 같은 성숙한 인격과 신앙을 보여주었다는 의미에서 성결교회 큰 스승의 한사람이었다. (해설: 류재하 목사)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류재하: 시인, 아동문학가, 칼럼니스트이다. 한국아동문화 문학상, 한국계관시인상, 한국크리스챤문학 작가대상을 수상한 명예목사로, 현재 한국성결인물연구소 소장, 한국문인협회원과 국제펜클럽 한국본부회원, 한국아동문학회와 한국기독교문인협회 이사이며, 특히 활천문학회 고문으로 아동문학과 평론분과위원장을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