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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0 일 토요일 도봉산
도봉산역 – 보문능선 – 우이암 – 도봉주능선 – 자운봉 – 포대능선 – 망월사 – 망월사역
산행거리 : 약 11 km 산행시간 : 약 7 시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227807
· 거리 11.5 km
· 소요 시간 7h 21m 3s
· 이동 시간 6h 3m 12s
· 휴식 시간 1h 17m 51s
· 평균 속도 1.9 km/h
· 최고점 750 m
· 총 획득고도 588 m
· 난이도 보통
프로로그
지난 금요일 동생 상미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요일 저녁에 엄마가 토하고 설사하고 난리가 났었다 한다. 엄마집에서 가까운데 살고 있는 사촌 형수님이 급히 찾아가서 씻겨드리고 안정을 찾게 했다 한다. 아마도 평소에 안드시던 쇠고기를 구워드렸는데 소화력이 약한 위장에 낯선 음식이 들어 와 그런 사단이 났는가 보다. 올해 연세가 89세이니 100세 시대라는 것을 두고 말한다면 아직 여생이 10년 쯤은 남은 시기이지만 먼 옛날로 기억되는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해방을 맞고 육이오 전쟁도 겪으면서 파란 많은 삶을 살았으니 이미 몸은 지탱하기 힘들 만큼 병들고 노쇠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도봉산입구 가로수는 벌써 가을옷을 입고 등산객을 맞는다.
한 달에 한 번씩 찾아 가면 반가와 하시고 자동차로 가까운 마곡사라도 함께 가면 네 덕에 바람도 쐴 수 있어 좋다고 하는데 벌써 1년 전부터 변을 흘리는 일이 잦아져 멀리 다닐 수 없는 처지가 되셨다. 기억력도 많이 약해져서 옛날 일은 어느 정도 기억을 하는데 근래에 일어난 것은 어제였는지 오늘이었는지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빨리 가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쥐똥나무는 열매 모양이 쥐똥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어렸을 때 쥐똥나무 가지로 고무줄 새총을 만들었었다.
그 동안 대간산행에다 설악산, 지리산을 찾는다고 추석 때 찾아뵙고 나서 찾아가지 못했다. 이번에도 원래 현오님과 지리산에 갈 계획이었으나 그게 취소되고 또 자유인 오지산행팀을 따라 설악산 토왕성 폭포로 가려고 하였으나 인원이 다 차서 자리가 없다 한다. 늘 머릿속에 유구에 가 보려는 생각이 있던 터라 모든 상황이 내게 시간을 내게 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가을은 우리 곁에 깊이 들어 와 앉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토요일마다 하는 재활용 분리수거 작업을 하고 그 동안 시골에서 얻더다 먹었던 빈 김치통도 챙겨 차에 싣고 집을 나섰다. 그는 중에 계롱산이나 천안 광덕산에 들러 짧은 산행을 하고 갈 생각으로 배낭에 과일과 빵 그리고 물을 넣어서 9시 좀 넘어서 둔촌동을 지나칠 무렵 갑자기 앞유리 너머로 연기인지 김인지 희색 연기가 보일 듯 말 듯 보이길래 다른 차에서 나는가 보다 하고 주위를 살펴 보다 그 연기의 발생지가 내 차의 본니트라는 것을 금방 알아 차렸다. 차를 돌려 집 근처 정비소에 갔더니 기름과 오일과 물이 뒤죽 박죽 엉켜서 당장 벤츠 서비스센터로 가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모처럼 잡은 유구행 나들이가 무산되고 난 엄마에게 상황 설명을 드리고 좀 여유있게 근교에 있는 산을 찾아가기로 했다. 일단 복잡한 머리속이 좀 정리가 되고 난 집에 들어가 영윤의 추천을 받아 도봉산에 가기로 했다. 서울에 있으면서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가까이 하지 못하는 산, 그 모습은 기암괴석으로 치장하고 뭇사람의 접근을 물리칠 것 같은데 막상 다가 가면 언제나 많은 것을 듬뿍 안겨주는 도봉산이다.
산행기
도봉산역에 도착하니 해가 중천에 떴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벌써 산행을 마치고 하산주겸 점심을 먹을 시간이다. 도봉산 입구는 늘 등산객들로 붐빈다. 세계에서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등산객이 찾는 산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천만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서울에 있어 북한산, 관악산과 더불어 수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닿는 곳이다. 그런 만큼 이 곳 주민들도 산에 대한 자부심이 각별하였고 조선 태조 이성계가 서울에 수도를 정한 이후 도봉과 원도봉에서는 서로 자기네가 원조라고 우기는 다툼이 이어졌다 하니 이 산이 갖고 있는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인지 미뤄 짐작할 수 있겠다.
도봉산 입구에서 산행 코스를 보고 어디로 올라가 어디로 내려올까 계획을 세운다.
평소 도봉산에 오를 때는 녹야원으로 들어가 은석암을 거쳐 다락능선을 탔었는데 이번에는 거꾸로 왼편으로 들어가서 보문능선을 타고 올라가 도봉주능선으로 가는 데까지 가 보자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힘이 부칠 때까지 또 해가 서쪽으로 떨어질 때까지 걸어보고 싶었다. 시간이 정오쯤 되니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의 수가 엇비슷하다.
능원사 담장 안에도 가을이 한창이다.
화사한 봄날이라는 말이 있지만 화사한 가을날이라는 말은 들어 보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화사한 가을날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 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 햇살이 따갑지 않고 오히려 선선하다. 햇살에 매달려 있는 단풍잎 색이 아주 곱다. 붉은 빛은 더욱 빨갛고 노랑 빛은 더욱 노랗다. 형형색색 (形形色色) 만산홍엽(滿山紅葉)이라는 문구가 딱 어울릴 만한 풍광이다.
찔레나무 열매를 보고 찔레꽃을 연상할 수 있나요?
좀작살나무 열매를 보면 그 꽃을 볼 수 있다. 보라색을 얼마나 좋아 하기에 꽃도 열매도 보라색만 고집할까?
누리장나무 열매
바야흐로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산에 들어 서자 마자 좀작살나무가 자주 눈에 띈다. 봄에 꽃이 피었을 때 의젓쟎아 보여 열매나 제대로 맺을까 싶었는데 어느 새 여름을 나고 저렇게 예쁜 보라색 열매를 달고 있다. 꽃도 예쁘지만 열매는 마치 영롱한 구슬같다. 냄새가 거북하지만 어린 잎을 나물로 먹을 수 있는데다 꽃이 예쁜 누리장나무도 까만 열매를 탐스럽게 맺고 있다. 이제 산에는 팥배나무 열매와 도토리 등 온갖 열매와 씨앗이 땅에 떨어져 땅속에서 후손을 키워낼 준비에 들어갈 것이다.
소의 귀처럼 생겼나요? 우이암(牛耳岩)의 모습이다.
멀리 도봉산의 주봉인 만장봉과 자운봉 그리고 선인봉이 나무 사이로 가끔 보이지만 좀처럼 조망이 열리지 않더니 보문능선이 끝나갈 즈음 왼편으로 마침내 조망이 활짝 열리고 상계동 아파트 촌이 희색빛으로 흐릿하게 보이고 그 능선을 따라 오른 끄트머리에 큰 바위가 불쑥 올라 와 있다. 누군가의 눈에 그 바위 모습이 소의 귀처럼 보였는가 보다. 이를 우이암(牛耳岩)이라 부르고 그 아래 동네 이름이 자연스럽게 우이동(牛耳洞)이 되었다.
진달래 나무 단풍이 떨어지고 내년 봄에는 또 화려한 꽃이 핀다.
가을은 이제 도봉산을 온통 덮어 버렸다. 그리고 이 화려한 채색은 앞으로 짙은 갈색으로 바뀌고 하얀 눈을 덮어 쓰고 긴 겨울을 보낼 것이다. 우이암 주변으로는 흔한 참나무 잎이 노랗고 붉은 빛으로 수 놓았다. 인간의 솜씨로는 도저히 흉내낼 수조차 없는 예술 작품을 조물주는 우리가 알아차리지도 못하도록 순식간에 만들어 버렸다. 간간이 푸른 소나무가 구색을 맞춰준다.
도봉산 주봉이 한눈에 올려다 보이고 우이암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곳에 시야가 활짝 트이는 조망 바위에 올라 점심을 먹는다. 오후 한 시가 넘었으니 배가 고플 때가 되었건만 약간의 갈증만 느낄 뿐 허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빵과 과일을 꺼내 놓고 커피를 마시면서 황제보다도 더 멋진 점심을 먹는다. 세상에 누가 이처럼 멋들어진 풍광을 보면서 점심을 즐길 수 있을까. 산위에는 날씨가 선선할 것 같아 두거운 겉옷을 들고 왔으나 정말 봄날처럼 따뜻하다. 여유있게 바위에 누워 한 숨 자고 싶은 기분을 뿌리치고 일어 섰다.
점심을 먹었던 바위 너머로 보이는 도봉산 주능선과 주봉
우이암 전망대에 올라 사방으로 숱하게 보이는 바위 봉우리를 둘러 본다. 자운봉(紫雲峰)은 안개 낀 모습이 보랏빛으로 물든다고 그렇게 부르는 것 같고, 도봉산 최고봉인 만장봉(萬丈峯)은 그 높이가 엄청 높다는 표현인 듯 하고 이와 같이 서 있는 선인봉(仙人峰)은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신선들의 놀이터라는 얘기겠지. 지금이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고 계단을 설치하고 발판을 부착하는 등 안전시설을 잘 만들어 놓아 맨발로도 쉽게 오르내리는 도봉산이지만, 그 옛날 조선시대에 험한 길을 뚫고 올라와 바위로 이루어진 정상을 가까이서 보는 감회가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그런 곳까지 올랐으나 막상 암봉 꼭대기에는 이르지 못하고 하산하면서 석양빛에 비치는 보라색 안개에 휘감긴 산봉우리가 만장 절벽을 이루고 있어 인간이 갈 수 없고 다만 신선이 되어야 날아서 오를 수 있는 봉우리라고 감회를 읊었을 법 하다.
팥배나무 열매
오늘날 좋은 장비를 갖추고 어렵지 않게 선인봉에도 기어 오르고 자운봉은 심지어 어린 아이까지 오르 내릴 수 있을 만치 접근이 쉬운 도봉산이 되었다. 매 주말마다 크고 작은 사고로 산악 구조대의 신세를 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며 암벽을 오르다 목숨을 잃는 경우도 왕왕 발생하지만 도봉산은 등산객의 발걸음을 막지 않는다. 내가 산에 오르는 도중에도 선인봉 아래에서 조난 사고가 발생했는지 구조헬기가 바삐 움직인다.
저 단풍의 색깔을 누가 정할까. 빨간색에 노랑을 섞어서 뿌려놓은 듯 하다.
도봉주능선을 따라 자운봉 방향으로 가다 보면 왼쪽으로 산 능선을 따라서 커다란 바위 다섯개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멀리서도 눈에 띈다. 바위 다섯 개가 있다 하여 오봉능선(五峯稜線)이라 부른다. 먼 옛날 저 바위 능선도 흙으로 덮여 있었겠지. 수 많은 세월동안 빗물에 씻기고 바람에 날려 단단한 부분만 저렇게 남겨진 모습을 우리 인간들은 그저 바위 생김새를 보고 무엇을 닮았다는 둥 신선이 노닌다는 둥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급기야 그 바위에 신령이 들어 있다고 믿으면서 바위를 향해 절하고 기도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를 부추겨 상업적 이익을 얻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 왔고 지금도 많은 것은 아니나 없어지지는 않았다.
북한산이 역광을 받아 실루엣으로 비친다
자운봉으로 오르는 길목에 크고 작은 암봉(岩峰)이 여러 개 있는데 몇 개는 비탐방로로 지정하여 접근을 못하게 막았다. 두 명 이상이 함께 로프 등 암벽등반 장비를 갖추고 허가 신청을 해야 그 루트로 오를 수 있다. 할 수 없이 우회로로 돌아가면 산길은 한참 아래로 내려 갔다가 다시 올라 간다. 그늘진 숲을 지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절정에 오른 단풍을 감상할 수 있다. 단풍은 이렇게 햇볕이 직접 들지 않고 물기도 풍부한 계곡이나 음지에서 더욱 예쁘게 피어 난다. 지금도 햇볕이 여과없이 내리쬐는 양지에는 단풍잎이 말라서 오그라 들었다.
오봉능선
다른 때 같으면 자운봉 정상에까지 오르지 않을 터인데 기왕 도봉산 유람을 하는 김에 쇠난간을 잡고 잠시 정상에 올라 본다. 90년 여름 독일에서 귀국하여 노원구 있는 처형집에서 잠시 지낼 때였던가. 별반 등산 장비도 갖추지 않고 미나와 미리를 데리고 이 정상에 올랐던 기억이 희미하다. 미리를 목에 들쳐 매고 올라갔던 것 같다. 지금은 그럴 힘도 없고 용기도 안날텐데 당시에는 어떻게 그런 생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신선대에 오르는 바위길이 지금 난간이 설치된 곳 말고 정면에서 오르는 길이 하나 더 있었다. 지금은 이 길을 막아 놓아서 오르지 못한다.
우회로로 돌아가는 길에는 단풍이 더욱 아름답다.
처녀치마가 겨울잎을 달고 있다. 내년 봄에 꽃대를 올리고 치렁치렁한 치마를 입고 있을 것이다.
서덜취
좀꿩의다리 씨앗
자운봉에서 내려와 사패산쪽으로 가려면 길이 두갈래로 갈라진다. Y 계곡이라고 하는 암릉으로 이어진 계곡길이 그 하나요, 왼편으로 조금 내려섰다가 다시 포대정상으로 이어지는 우회길이 또 다른 하나다. 주말에는 Y계곡이 복잡하여 정체되므로 포대에서 자운봉쪽으로 오는 길만 열어 놓아 일방통행길이다. 잠시 Y계곡 끝 바위에 올라 만장봉 쪽을 바라보며 과일을 먹으며 쉬었다. 젊은이 둘이 친구 사이인 듯 바위에 올라 사진찍기 놀이를 하는데 나도 덩달아 한 장 얻었다. 산에 오면 누구나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너그러워지는건 우리 현대인의 깊은 내면에 숨어 있는 아득한 원시시대의 향수가 피부를 뚫고 나와 맑은 대자연의 공기를 숨쉬는 것이다. 산에서는 이렇게 낯모르는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도 좋고 사진을 찍어달라고도 하고 찍어주기도 하면서 걷는다.
신선대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 한국에서 5년 째 살고 있다는 미국인이 사진 찍어 드릴까요? 하고 인증샷을 찍어 준다.
포대능선
포대정상에 이르자 해가 김포쪽으로 많이 기울어 구름낀 서쪽 하늘에 옅은 노을이 걸려 있다. 포대능선이라는 이름은 우리나라가 처한 근대사의 민낯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도봉산 정상 뿐만 아니라 북한산 줄기도 실루엣처럼 비쳐지는 곳, 그 반대 쪽으로는 사패능선을 그리고 멀리 앞쪽으로는 수락산과 불암산이 가까이 보이는 멋진 능선이다. 그 아름다운 능선의 이름이 포대능선(포대능선)이다. 국립공원에서 설치한 설명서에는 이곳에 대공포부대가 주둔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써 있다. 그러나 대공포부대가 언제 생겨서 언제 철거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포대정상에서 바라 본 사패능선
내가 중학교 다니던 1976년 경으로 기억된다. 서대문구 홍제동 산동네에서 혼자 자취하며 살고 있었다. 가을날 짧은 해가 어스름하게 서쪽으로 기울어 갈 무렵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고 인왕산을 비롯한 주변 산위에서 공중으로 연속적으로 포가 발사되었다. 그 불빛이 어두운 하늘에 긴 사선을 그으며 올라가고 그 뒤를 따라서 굉음이 들려 왔다. 서울의 높고 낮은 산봉우리에 그런 대공포 시설이 설치된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1976년 10월 대공포 사격에 대한 진상 : https://www.youtube.com/watch?v=OH3SA0r1uPQ
가을 단풍이 이정도면 황홀하지 않은가.
노을빛이 점점 짙어간다.
그 후 소련을 비롯한 중국 등 공산국가들이 잇달아 개방되고 자본주의를 접목한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전세계가 냉전체제에서 벗어나는 정치적 봄이 찾아 왔고, 최근 들어 한반도에도 남북이 대화를 통해 긴장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이어지면서 남한의 산 정상을 차지하고 있던 군부대들도 조금씩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경관이 수려하고 정상의로서의 상징성을 가진 몇 몇 산봉우리에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으며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몸에 배인 안보의식으로 그에 대한 어떠한 말 한 마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의 ‘남침위험’이라는 것은 그 실현 가능성이 아주 낮다고 해도 아무도 섣불리 언급할 수 없는 아주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포대능선에서 망월사를 거쳐 원도봉으로 하산한다.
망월사(望月寺)
그런 포대능선을 따라 사패산 방향으로 걸어가는 동안 해는 구름아래 붉은 흔적을 남기고 지평선 너머로 바삐 내려간다. 산속에서는 해가 빨리 꺼지고 어둠이 일찍 찾아 오는 법이다. 사패산까지 2.5 km 남겨 놓고 망월사 쪽으로 하산길을 잡았다. 작년 가을 사패산에 올라서 도봉산으로 넘어 가다가 날이 어두어 이 망월사 계곡으로 내려간 적이 있다. 경사가 급하지 않고 도중에 망월사가 있는데다 등산객도 뜸한 한적한 코스라서 더욱 정감이 간다. 망월사까지 이르는 짧은 등로에도 절정에 오른 단풍이 해 진 산기슭에 빛을 던진다.
산을 오를 때 만난 한 산객이 망월사에서 바라보는 가을 풍경이 제일 멋있다 하는데 이 풍경을 말하는 걸까?
망월사에서는 포대능선이 가까이 올려다 보인다. 중들은 어찌 이렇게 경관이 수려한 산속에 절을 짓고 사는 방법을 선택했을까. 절 건물 뒤로 높다란 바위가 울긋 불긋한 단풍을 휘감고 빼어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고풍스런 본당 처마 밑에는 낙가보전(대답할 诺 부처이름 迦 寶殿)이라는 초서체로 쓴 현판이 멋들어지게 걸려 있다. 망월사는 신라 선덕여왕때 해호선사(海浩禪師)가 창건하였으며 당시 신라의 수도였던 월성(月城)을 바라보며 신라가 삼국통일을 완성하고 번성하길 바란다는 뜻이라 한다. 이후 건물은 세월에 쓰러지고 또 새로 지어지길 반복하다가 1950년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소실되었던 것을 1987년부터 1993년까지 능엄 스님께서 불사를 일으켜 지금 있는 건물들을 새로이 지었다 한다.
낙가보전
절 안으로 들어가는 문에는 제법 큰 글씨로 “소원지 한 장 들고 가세요 – 소원지 한 장 3000 원”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요즘은 불교 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가 인간의 지엄한 도(道)를 얻으려 하기 보다는 돈을 얻으려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런 얘기를 친구한테 했더니 자기 친구가 신자라서 절의 속성을 잘 아는데 요즘은 중들도 월급받아 살아가는데 그러려면 일정한 매출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옛날 중들이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염불을 낭송하고 시주를 받아가던 시절이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제는 종교의 역할이 점점 줄어 들면서 저런 방식으로 명맥을 유지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씁쓸하다.
절에서 소원성취를 3천원에 팔고 있다.
날이 어두운데다 시간이 늦어 절을 둘러 보지는 못하고 지나가는데 범종루위로 초저녁 달이 휘영청 떠 있다. 영산각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외는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산능선에 걸려 있던 햇빛은 계곡까지 미치지 못해 나무그늘 아래는 길이 희미하게 보일 만큼 어둑 어둑하다. 뜰 아래에 보살 한 분이 서서 맨손 체조를 하고 있기에 그냥 다가가면 놀랄까 저어하여 이 길이 하산길이 맞느냐며 길을 물었더니 정색을 하며 이렇게 늦게 산에 다니면 위험하다며 오히려 나를 걱정해 준다. 이곳에 멧돼지가 자주 출몰한다는 것이다. 어짜피 멧돼지야 맹수축에 들지 않는 야생동물이니 서로 경계만 잘 한다면 해롭지 않을 터이다. 꼭 다행이라고 말하기는 뭣하지만 우리나라 산야에 호랑이, 늑대, 곰 같은 맹수가 없으니 그나마 산길을 안심하고 다닐 수 있어 좋다.
망월사(望月寺) 종루와 그 위에 떠 있는 달. 망월사는 신라의 수도였던 월성(月城)을 바라본다는 뜻이라고 한다.
망월사에서 내려가는 길은 더욱 어두워 스마트폰의 램프를 밝히면서 걸어야 했다. 얼마쯤 내려오니 널찍한 빈 공간이 나오는데 그 한켠에 이곳이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3살때인 1963년부터 40세인 2000 년까지 37년간 살았던 집터라는 설명문을 세워 놓았다. 그러고 보니 엄홍길 대장이 나와 갑장인 모양이네. 이런 곳에 산다고 하여 모두 다 엄홍길 대장처럼 뛰어난 산악인이 되는건 아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평소 산을 가까이 하고 산을 알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얼마 전에 히말라야 등반 중 4명의 동료와 함께 사고를 만나 운명을 달리 한 김창호 대장의 등반 스타일과 달리 매사 조심스러워 다른 산악인과 달리 오랫동안 산악활동을 할 수 있는 거라는 친구의 말이 떠 오른다. 산은 우리에게 힐링을 제공하는 안식처이지만 무리지어 다니면서 험산 산에 들었을 때 공명심에 산을 정복하려 든다면 아주 작은 몸짓이 큰 사고로 이어져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산은 조심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친절하지만 자기 분수를 모르고 함부로 뛰어 드는 사람에게는 아주 엄한 채찍을 휘두를 것이다.
원도봉 주차장이 가까워 지면서 맑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늘어 선 식당들이 보인다. 토요일 늦은 시간에 이곳으로 내려오는 산꾼은 나 하나 뿐인데 아직도 불을 밝히고 혹시 올 지 모르는 산꾼을 기다리는 식당도 몇 개 보인다. 북한산이나 도봉산쪽에는 국립공원 안에 있던 식당이며 상가를 모두 철수 시키고 건물을 헐어 공원으로 가꾸어 놓았는데 이 원도봉에는 아직도 영업을 하는 식당이 꽤 여럿 남아 있고, 폐업을 하였으나 건물이 흉물처럼 남아 있는 것도 보인다. 요즘은 등산객들의 환경에 대한 인식이 많이 높아져서 계곡물을 함부로 더럽히지 않는데 정화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식당들이 계곡 가까이 지어져 깨긋한 물의 오염원이 될까 저으기 걱정스럽다. 적어도 국립공원 울타리 안에서 만이라도 환경을 오염시킬 만한 상업시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늦은 시각까지 산에서 내려올 손님을 위해 문을 열어둔 식당
7시가 다 되어서 망월사역에 도착하여 오전 11시 30분에 시작한 약 7시간의 산행을 마무리했다. 울긋 불긋 아름답다는 표현 말고 더 멋진 말이 떠 오르지 않는 단풍산행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큰 의미로 다가왔다. 햇빛에 투영되는 붉은 단풍은 뜨거운 계절 온 정성을 바쳐서 주어진 소임을 다 하고 뒤이어 성장할 잎과 나무를 위해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불사르는 사육제의 향불이다. 몸이 죽어야 비로소 다시 태어난다는 큰 진리를 몸소 실천하는 부처님과 같은 것이다. 10월 20일 밤 가을이 또 하루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