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스치듯 <알쓸범잡>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습니다.
과학자, 심리학자, 법학자 등이 "범죄", “조폭들의 의리”에 대해 다양한 시선으로 말하는데
그 중 제 생각을 붙잡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군이 독일군을 조사했습니다.
사망률이 연합군보다 독일군이 훨씬 높았는데 탈영률은 거의 없었습니다.
영국은 “나치의 허구”를 선전했지만
전쟁 후 독일 포로를 연구하면서 그 일들이 별 소용 없었던 것을 알게 됩니다.
독일군이 싸웠던 힘의 원동력은 나치의 우수성이 아니라
동지애였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거창한 것을 위해 목숨을 내놓기는 쉽지 않으나
가까운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는 생명도 내놓을 수 있습니다.
9.11 테러, 파리테러 등을 보면 형제들이 함께 가담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잘못된 동지애는
자기 집단에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타인의 고통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조폭들의 의리는 자신의 조직에는 한없이 희생적이지만 타집단에게는 무자비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안타까운 것은
말단 조직원들은 자기집단에 대한 애정과 희생이라도 존재하지만
조직의 수장은 그 감정을 이용할 뿐 정작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는 사실입니다.
저에게는 이 내용들이 종교에 적용되었습니다.
우선 이단들이 이용하는 것 역시 이런 집단의리입니다.
처음에는 기성 종교를 공격하며 동질감 가진 이들을 포섭하고,
외로운 이들을 모아 그들의 삶의 문제를 서로 돕는 집단 연대감을 형성합니다.
그렇게 뭉친 집단은 자신들의 신앙적 오류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기성종교라는 공격의 대상이 분명하고, 그것을 허물고
포교의 숫자를 채우거나, 지상천국을 만드는 식의 자신에게 부여된 목표를 위해 매진하게 됩니다.
자신들의 모든 재산과 시간을 단체에 바치기 때문에 이 단체로부터 벗어나기 더 어려워지고,
반대로 이 단체로부터 지원받는 것이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에 더 의존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막대한 이익은 집단 총수와 소수의 인원들이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단지 이단들만 이런 심리를 이용할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교회들 가운데도 이런 동지애, 의리를 이용해서 조직을 키우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셀모임이 신앙모임보다는 교제의 시간으로 변질되면서
결국 소속감과 유대감을 강화시키는 면으로 가치 이동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경험을 한 사람들은 교회를 옮기더라도 동일한 소속감을 주는 다른 교회를 찾기 어려워서
결국 떠돌이 종교인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감격이 있는 신앙인이라기보다는
사람의 연대감을 좇는 종교인이라 말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런 경우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 하기 보다는 사람과 조직에 복종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모든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로 만드는데
조직에 복종하는 이들은 내 교회만이 특별하고 귀하게 여겨집니다.
우리 목사가 최고, 우리교회가 최고,
이런 경우 개 교회는 양적으로 성장할 수 있으나 그것이 교회의 몰락의 시작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