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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중생활 체험 김선구
며칠 전 대경상록아카데미가 주관하는 행사에 참여하여 속리산 법주사를 방문하였다. 햇살이 따가웠지만 살랑대는 바람결이 상쾌한 기분을 자아내었다. 경내에 들어서니 팔상전 오층 목탑이 긴 역사의 숨결을 뿜어내듯 의연하게 우리를 맞이하였다. 팔상전은 법주사의 상징이며 심장처럼 느껴졌다. 여기에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도가 보관되어 있어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마침 지나가는 바람결에 팔상전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우리 일행을 반기는 듯하였다. 저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의 위용이 법주사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보였고, 좌우로 뻗어나간 산세가 법주사 전체를 껴안는 듯 아늑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사찰 경내를 둘러보고 절 입구까지 되돌아오는 길이 자연의 정취를 느끼기 안성맞춤이었다. 옛날 운수납자(雲水衲子)로서 불법을 찾아 떠돌던 스님들이 오고 갔을 길이었다. 세월의 흔적을 더듬어보며 내가 겪었던 사중생활의 옛 기억을 함께 떠올려 보았다.
내가 대학생 시절이다. 합천 해인사에서 열흘간에 걸쳐 사중생활을 체험했었던 경험이 있다. 전국 대학생 불교연합회 학생들이 해인사에 운집하여 스님들이 수행하는 과정을 경험하는 수련대회였다. 입회 첫날 새벽 3시에 잠을 일깨우는 목탁소리가 들렸다. 얼른 일어나 시냇가의 차가운 물로 세수하고 법당으로 모였다. 전기가 없던 시절이라 아물거리는 촛불 몇 개가 법당 안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당시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이신 고암스님께서 내 팔뚝에 연비(煙匪: 향불로 살갗을 지짐)를 하고 송월(松月)이라는 법명을 내려주셨다. 이제 불제자로서 계율을 지켜야하는 서원을 해야 했다. 목탁소리에 맞추어 예불하고 독경을 외웠다. 학생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내는 합창 소리가 깊은 산속의 적막을 깨우고 새 날을 여는 듯 깊은 감흥을 주었다.
그러나 사중생활 중 잇따라 주어지는 수행과제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넓은 법당에 앉아 모두가 함께 참선에 들어갔다. 가부좌를 틀고 허리를 곧게 세워 화두(話頭)를 접하였다. 잠시 후 쏟아지는 잠의 욕구를 감당할 길이 없었다. 스님들이 긴 막대를 메고 감시병들처럼 움직이다가 잠을 못 이겨 꾸벅거리는 모습을 보이면 사정없이 내려쳤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렸던지 마치 지옥을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날이 밝아오자 빗자루를 들고 경내를 청소했다. 이것은 마음속의 잡념을 쓸어내겠다는 염원이며, 사람들의 발에 밟힐지도 모르는 미물(微物)들을 사람이 다니지 않은 곳으로 대피시키는 작업이었다.
이어서 아침 공양, 그 이후 청강과 수련, 점심때는 마지불공 그리고 오후에는 불경공부 등 하루 일정이 쉼 없이 이어졌다. 저녁때가 되자 법고, 운판, 목어, 범종의 순으로 예불이 진행되었다. 큰 북소리는 축생 고를 받는 생령(生靈)들에게 감로법을 전하는 절차이며, 이어서 울리는 운판소리는 하늘을 나는 새들에게, 목어소리는 바다 속 물고기들에게 부처님의 법음을 전달하는 염원이라 했다. 마지막 범종소리는 사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뜻을 담아 도리천의 내원궁까지 들리도록 33번을 친다고 하였다. 긴 여운을 남기며 울려 퍼지는 범종소리에 숙연해지는 마음으로 하루의 일과를 마쳤다.
이러한 고된 생활도 거듭되면서 차차 몸에 익숙해져 갈 무렵이 되자 또 새로운 과제가 부여되었다. 용맹정진과 부처님께 삼천 배를 올리는 것이었다. 용맹정진은 밤새 잠을 멀리하고 참선에 정진하는 수행이었다. 불법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과의 사투에서 이겨야 하는 수행과정 중의 하나였다. 밤새 좌선과 탑돌이를 번갈아 하면서 하룻밤을 지새웠다.
다음은 부처님 앞에 올리는 삼천 배였다. 삼백 번 절하고 10분 휴식이 되풀이 되었다. 처음은 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추어 질서 정연하게 진행되는 듯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법열(法悅)까지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일천 배를 넘어서면서 질서는 안중에도 없었다. 정신없이 엎드렸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이천 배를 넘어서자 생사의 구분이 없었다. 휴식하면 바로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누군가 나를 흔드는 기척에 눈을 떠 보니 스님 한 분이 저승사자 같은 얼굴로 나를 재촉하고 있었다. 탈진상태가 되고 보니 체면도 두려움도 없었다. 내가 삼천 배를 다 완수했는지 조차 관심이 없었다. 어쨌거나 대략 일곱 시간에 걸쳐 행하여졌던 대장정이 끝을 맺었다.
법당을 나서서 돌계단을 내려오려니 다리가 떨려서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계단 옆 난간 기둥을 붙들고 간신히 내려왔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없다. 아마 대충 씻고 잠에 빠졌을 것이다. 깊은 잠결 속에 도량을 도는 목탁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천근같이 무거운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잠시 뜸을 드렸다. 이대로 푹 꺼져버리고 싶은 마을을 가다듬고 일어나서는 기다시피 하여 법당에 다다랐다. 그런데 법당 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법상(法床) 위에 성철스님이 염라대왕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갑자기 벼락 치는 듯한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 당장 보따리 챙겨 집으로 돌아가거라. 너희들 같은 게으른 자 들을 불제자로 거두어들일 수 없다.”하는 요지의 책망소리가 법당 안을 진동 시켰다. 한참 후 성철스님의 지시가 내렸다. 게을렀음을 참회하는 뜻으로 부처님 앞에 108번 절을 하라고 하였다.
삼천 배에 비하면 108배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날의 108배는 삼천 배에 못지않은 고통과 고역으로 느껴졌다. 이어서 성철스님의 또 다른 지시가 내려졌다. 한 시간 동안 선채로 부처님께 잘 못했음을 빌고 용서를 구하라는 것이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다리가 떨려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는데 한 시간을 더 서 있으라니 저렇게 매정한 중이 있었나! 하고 속으로 욕이 솟아났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서 있으니 쓰러질 것처럼 다리가 떨렸다. 힘을 주고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으니 다리에 쥐가 나고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한 시간을 잘 버텨 냈다. 스스로도 대견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고통 속에 하루를 보내고 새날을 맞았다. 아침공양을 끝내고나니 가야산 정상까지 등산을 하고 오라고 했다. 그래야 뭉쳐진 다리근육이 풀린단다.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하는 우려에 찬 마음으로 등산길에 올랐다. 등산길 주변은 풍부한 시내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맑은 물소리를 들으며 산을 올라가는 느낌은 오랜만에 세속을 벗어버린 선객의 마음이 되어 상쾌하였다. 다리에 힘이 솟고 근육의 아픔은 잊어버렸다. 이윽고 정상에 올랐다. 마침 비가 내린 뒤여서 하늘을 몰려다니는 구름의 형상들이 극락과 지옥의 모습을 그려내는 듯 신비감을 더 하여 주었다. 산 밑을 내려다보니 인간 세상이 발아래 펼쳐졌다. 나도 모르게 환희심이 솟아났다. 그동안의 힘들었던 일들이 기분 좋은 추억거리로 다가왔다. 「산 정상에 휴식이 있다」는 말을 되새기며 가벼운 마음으로 산을 내려왔다.
이제 사중생활체험 과정이 끝났다. 무섭던 성철스님이 호탕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하였다. 기념촬영도 마다하지 않고 모두 응해 주었다. 인자함의 표상이신 고암스님, 강원의 명강사이신 일타스님, 훗날 한국 불교계의 큰 어른이 되신 지관스님, 법전스님 등 기타 고명한 스님들을 이때 접하고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수행과정 중 성철스님은 현대 물리학과 심리학의 이론을 불법과 연관 시켜 강설하였다. 특이한 경상도 사투리 억양과 난해한 강의 내용, 거침없이 쏟아내는 욕설이 귓전을 맴도는 것 같다. 훗날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 되었을 때 유명한 법어를 남기셨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인간의 좁은 소견으로 산과 물을 논하려 하지 말라. 산과 물의 참모습을 보려거든 마음을 닦고 깨우침을 얻으라는 뜻이리라.
사중생활을 통하여 얻은 경험들이 훗날 나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절로 향하는 마음속에는 언제나 이때의 경험들이 되살아나곤 하였다.
이제 자비하신 부처님 앞에 합장하고 앉아 정화된 마음으로 생각의 끈을 놓아본다. 발부리에 체이는 돌멩이 하나와도 깊은 인연이 있고,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신명의 은혜가 담겨있다고 하였다. 인연 따라 모였다가 인연 따라 흩어지는 것이 삼라만상의 이치이라 하였는데 과연 나의 본래 면목은 무엇이었던가? 오늘도 깨우쳐지지 않은 화두(話頭)를 붙들고 씨름 해보고 있다.
첫댓글 연간소식지에 올리시고 멋지십니다. 다만 글이 보이지 않아 다시 등록하셔야할 것 같습니다~
이 란은 수필장착반 학생들이 그동안 써 낸 작품들을 모아 조그만 책자를 만들기위하여 마련된 공간입니다. 글은 이미 마련되어 있습니다. "수필창작교실"에 들어가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작품 두편을 이란으로 옮겨 주세요. 드래그해서 .... 부탁합니다. 김정호드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수정에 들어 가서 영어를 지워보시기 바랍니다. 최상순드림
많은 경험과 느낌을 세세하고 정감있게 잘 쓰신것 같습니다 .작가로 나서도 되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과찬의 말씀! 갈 길이 아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