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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501-‘부부전임교수불가’는 ‘성차별’인가2
veritas 님께서 제가 지난 번에 쓴 “040303-‘부부전임교수불가’는 ‘성차별’인가?”라는 글에 대해 “doxa 님, 아직도 님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군요” 라는 제목으로 반론의 글을 주셨습니다. 이 전에 최인걸님도 “성차별 맞습니다” 라는 제목으로 반론의 글을 주셨습니다 만은. (최인걸님께는) 늦었지만… 어쨌든… 두 분께 답 글을 드립니다.
제 학문의 여정에서 만난 선생님 중에 한 분은 흑인 여성이셨습니다. Karen Bakers-Fletcher 라고 흑인 여성인데 문화비평을 통해 womanist theology 를 하시는 분입니다. [몇 년 전에 SMU 로 가셨습니다 만은…] 여성학 수업 중에…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강의 제목이 Womanism and Feminism이었고… 백인 여성교수와 함께 두 분이 진행하는 과목이었습니다.) 질문인즉, 남성이… 여성해방운동에… 주체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참여가 가능하다면 얼마나 혹은 어떻게 참여 할 수 있겠는가? 같은 맥락에서 백인이 흑인의 해방운동에… 부자가 가난한 자의 해방운동에 주체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또 참여가 가능하다면 얼마나 혹은 어떻게 참여 할 수 있겠는가? 두 분, veritas님과 최인걸님의 답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해방은 각종 억압으로 인해서 야기되는 “비인간적인 상황, non-human situation” 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각종” 이라고 함은 여러 가지가 있다는 뜻일 것인데… 예를 들면… 부정의한 사회 경제적 억압 (class-ism), 성의 다름에서 오는 억압 (sex-ism), 피부 색깔의 다름에서 오는 억압 (race-ism)은 일반적으로 크게 구분되는 세 가지 억압의 종류이고… 이 외에도… “비인간적 상황”을 야기시키는 여러 종류의 억압이 있을 것입니다. 가족관계, 부부관계에서 오는 억압도 그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다만 가족이나 부부관계에서 오는 억압은 그 ‘긴박함의 정도’에 있어서 class-ism, sex-ism, race-ism 과는 조금 구별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족이나 부부관계에서 오는 억압은 지난 번 글에서 예로 든 바와 같이 우리 사회 속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차별과 억압의 종류인 까닭입니다. 물론 이러한 차별과 억압의 종류도 고쳐나가야 할 문제인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지난 번 글에서 말씀 드렸습니다 만은… feminism 은 백인의 여성학이고 womanism 은 흑인의 여성학입니다. “가난한 흑인 여성”은… 가난하기 때문에 계급적으로, 흑인이기에 인종적으로, 여성이기에 성적으로 억압을 받는 억압의 종류 중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 세 가지 억압을 모두 받고 있습니다. 이들의 여성학은 (womanism) ‘부유한 백인 여성’이… 계급적으로 인종적으로 누릴 것 다 누리면서 단지 ‘성의 다름에서 오는 억압’을 다루는 여성학(feminism)…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code의 여성학입니다.
이 세가지 억압은 모두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사항이지만 그 중에서 급박하게 혹은 긴박하게 먼저 다루어야 할 것이 있다면… 어떤 종류의 억압이 되겠습니까? Clodovis Boff 는 주저없이 사회 경제적 억압, socio-economic oppression 을 꼽는데 …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 억압은 “infra-structural oppression”으로서 다른 모든 종류의 억압보다 우선 순위로 두고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억압은 다른 어떤 종류의 억압보다 더 처절한 “비인간적 상황”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Sobrino & Ellacuria, Mysterium Liberations, 75] 대통령 영부인으로서의 여성… 과 노동자로서의 여성… 이 갖는 “비인간적 상황, non-human situation”은 분명 다른 것입니다. “억압의 종류”도 문제가 되겠지만 그 억압으로 야기되는 “비인간적 상황”이 문제의 본질이 되는 것입니다.
Womanism 에서는 성의 차별로 인한 억압과 인종적인 차별로 인한 억압이 서로 상충될 때 … 그들은 주저 없이 성의 차별보다는 인종적인 차별에서 오는 억압과 먼저 맞서 싸웁니다. 이유는 성의 차별보다 인종적인 차별에서 오는 억압이 더 처절한 “비인간적 상황”을 가져 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60년대에 킹을 중심으로 한 흑인들의 시민운동은 성차별로 인한 여성운동보다 더 긴박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억압의 종류” 그 긴박함의 순위는 억압의 종류로 인한 “비인간적 상황” 그 비참함의 “정도의 문제”에 있는 것입니다. (bell hooks, Sisters of the Yam: black women and self-recovery 의 뒷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죄송하지만 지금 옆에 책이 없어 page를 적을 수 없습니다.)
Womanist 들이 인종적인 차별과 부정의한 사회-경제적 계급적 차별이 서로 상충할 때 어떤 것을 우선적으로 택할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인종적인 차별에서 오는 억압은 남성 여성 할 것 없이 부자 가난한 자 할 것 없이… 흑인인 그들 모두에게 처절한 “비인간적 상황”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회 경제적으로는 억압이 없지만 혹 인종적으로 차별을 받을 수 있는… 예를 들면 성공한 흑인 마이클 잭슨의 “비인간적 상황”과 인종적 차별은 없지만 사회 경제적으로 낙오된 어느 백인 홈리스 (거지)의 “비인간적 상황”과는 분명 다를 것이고… 어느 쪽이 더 “비인간적 상황”인지는 … 사람에 따라 틀리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흑인 중에는 거지 쪽이 더 나을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 만큼… 인종차별은 그들에게 큰 아픔을 주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역시 사회-경제적 차별에서 오는 억압이 더 클 것이라는 제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 (저의 경우) … 가장 긴급한 과제의 순위로… 부정의한 사회경제적 차별에서 오는 억압, 그리고 성차별이나 인종차별 등으로 그 우선 순위를 매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은 뒷자리에… 가족관계, 부부관계 등에서 오는 차별과 억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부부전임교수불가”는 성차별인가? 만일에 성차별이라면… 제게는 정치.경제.사회의 불의한 구조에서 오는 억압… 다음으로 중요한 이슈에 해당하는… 매우 민감한 이슈가 되는 것이고… 성차별이 아닌 가족이나 부부관계에서 오는 (물론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류의 인권 문제라면… 그 ‘긴박성’에 있어서 뒤쳐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부부전임교수불가”가 성차별인지 아닌지 하는 구분이 제게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하고.. 두 분께서는 저의 글에 대한 반론에서… “부부전임교수불가는 성차별이다”… 라고 주장하시는 것인데… 그렇게 설득력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먼저… 지난 번에 최인걸님께서 쓰신 글의 요지를 살펴 보면…
“부부라는 말과 성차별이라는 말을 단순히 사전적인 의미로만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것, 다시 말하면 “언어만으로는 남편과 아내라는 말이 상당히 중립적인 것처럼 생각될 수 있기에 성차별과는 상관이 없는 개념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 “부부를 남편과 아내(처)라고 생각하는 의식[은] … 남성중심의 부부관이 전제된 상황에서 … 명백한 성차별적 의식이 이미 내포되어있다”는 말씀… 그리고… “성차별이라는 것도 '성의 다름에서 오는 차별’ … 이라고 역시 언어적으로 단순히 이해될 성격의 것이 아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님께서 쓰신 데로
“가부장적 부부관에 (다시 말하면 현재의 사회분위기에) 이미 여성차별의식이 들어 있기” 때문에 “부부전임교수불가”는 성차별이다… 뭐 이런 요지의 말씀인데…
이런 투의 이야기는 학문을 하는 담론의 세계에서는 전혀 설득력을 갖지 못합니다. … 언어가 사전적인 의미로는 맞는데… 가부장적 사회분위기이기 때문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언어의 개념을 오히려 모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현재 여성학에서 남성중심의 언어(the male-oriented symbols)를 양성 평등의 언어로 바꾸기 위한 여성들의 노력이 처절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문화 분위기를 핑계로 언어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여성학의 취지(여성해방운동)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여성학 분야에서 언어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는 조금만 들여다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고… 만일에 ‘부부’라고 하는 개념이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언어라면… 그래서 차별적인 언어라면… 그래서 “비인간적 상황”을 느낀다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평등한 개념을 만들어 (혹은 발견하여) 제시해야 하는 것이고… (저는 성차별을 적극 반대하는 사람으로서 성차별적인 언어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또한 충분히 그러한 새로운 개념이 제시된다면 그것을 사용할 마음이 있습니다) … 그렇지 않다면 즉 차별적 언어가 아니라면 ‘부부’라는 언어를 남성들도 즐겨 사용할 수 있도록 그 평등적 의미와 함께 적극 홍보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다른 류의 수많은 여성 차별적인 언어들도 바꾸어 나가는데 힘을 써야 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저는 여기서 ‘정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전임교수불가”가 성차별인가? 하는 담론을 펼치는 것입니다. 님께서… “강남순 교수님의 복직을 위해 투쟁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될까 해서 몇 자 적어봤습니다” 라고 마지막에 적은 것은 강교수님의 복직을 위한 님의 간절한 뜻이겠지만 … 그 문제는 제게 관심 밖의 일입니다. 사실 이런 구절 때문에 답 글을 쓰기가 싫었습니다. 거듭 말씀 드리지만 저는 여기서 ‘정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전임교수불가”가 성차별인가? 하는 담론을 펼치는 것입니다. 게시판에 오르내리는 글들을 보면서… 정치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여성학의 담론적 측면에서… “부부전임교수불가”는 성차별에서 오는 “비인간적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다른 의견을 가진 여성해방운동에 호의적인 많은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선을 긋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도 하고… 해서.
[*저는 두 분 교수님 얼굴도 모르고… 학교 사정도 모릅니다. 두 분도 저를 모르실 것입니다. 혹 강 교수님과는 일면식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990년도 2월인지 3월인지… 드류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어느 집(기숙사)에선가 식사 한끼를 대접 받았는데… P박사님 집이었는지 K 박사님 혹은 H 박사님 집이었는지… 세 집 중에 한 군데는 틀림이 없는 것 같은데… (당시 세 분 중에서 저는 한 분만 알고 있었고 P교수님은 전혀 모르고 있던 터였습니다.) 그 때 혹 P교수님 집이었다면… 그리고 사모님께서 그 때 함께 미국에 계셨다면 혹시… 식사 한끼 대접을 받은 셈이 됩니다. … 제가 기억에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강교수님께서 P교수님의 부인이라는 사실도 이번 일로 알게 되었습니다 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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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Veritas 님께서 “doxa 님, 아직도 님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군요”라는 제목으로 반론의 글을 주셨습니다.
[* veritas 라고 하는 것은 제가 알기로 “진리”라는 뜻인데… 진리라고 하는 것은 “truth, 참됨”을 쫓는 것이고… “good-ness, 선함”을 쫓는 것이 아닙니다. “참됨”을 쫓는 것은 ‘학문’의 세계이고… 선함을 쫓는 것은 ‘정치’의 세계가 될 것입니다. 제가 이 곳에서 논하는 것은 ‘선함’의 문제가 아니라 ‘참됨’의 문제입니다. 즉, “복직해야 한다 혹 아니다”의 정치적 선의 문제가 아니라 “부부전임교수불가는 성차별인가 아닌가” 하는 veritas, 진의 문제입니다. 선의 문제를 미리 설정 해 놓고 veritas 를 맞추는 것은 본말에 어긋납니다. veritas 에 근거해서 선의 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순서가 될 것입니다. 님께서 이름에 더 충실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어쨌든…]
님께서 쓰신
“가족관계에서 파생된 인권유린과 성차별은 중복되는 판단영역입니다.” … “성차별은 명백한 인권훼손이기 때문에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명시적인 해악적 행위입니다.” … “여성의 권리는 "여성"의 권리이기 때문에 옹호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권리이기 때문에 옹호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구태어 인권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차별 금지법이 생긴 것은 현대 인류사회에 광범위하게 행해지는 여성차별 문제에 대한 보다 세심한 각론적 판단이 요구되었기 때문입니다.” … “현대 성차별 담론[은]… 근대 인권사상의 보편적 수용과정 이면에서 교묘하게 음성적으로 여성들을 희생시키고 차별 배제하는 결과들을 다루는 문제영역… [이라는 점… 때문에] … 성차별 논쟁은 매우 중층적인 정치 문화 종교 사회적 요인과 연계구조를 가지고 있으므로 전문적인 이해와 판단능력을 요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라고 쓰신 점에 대해서 동의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는 문화 속에서 중복되지 않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Clifford Geertz 의 말로 문화가 “중층 기술, thick description” 이듯이… 이 “중층”이라는 개념을 혹시 잘 알고 계신 다면 … (글 중에 ‘중층’이라는 말을 쓰셨길래… 제가 알기로는 그리 흔히 쓰이는 개념이 아닌데… 누구신가 갑자기 궁금해 지는군요 *^^*) … 그래서 Geertz의 “문화의 중층기술”적인 표현을 한다고 해도… 명명하는 priority 의 차이는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우표를 붙일 때 풀이 없으면 밥으로 붙입니다. 그래서 밥은 밥풀이라고도 합니다... 만은. 그래도 역시 밥은 밥일 것입니다. 우표를 붙인다고 해서 밥을 풀로 명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디에 더 priority를 두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차별인가? 부부간 혹은 가족간에 오는 인권차별인가? 사전적 의미까지 접어가면서 성차별로 몰아가는 것은 … 이 다음에… 다른 이슈들을 접하면서 정리하는데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글…
“감신 문제는 이렇듯 … “교묘하고 음성적으로” 성차별을 한 것이다” … “가족관계로 인하여 여성의 인권이 훼손되는 것은 단순한 인권침해가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에서 가족관계를 양성 평등하게 보지 않으려 하는 시각을 가지고 여성을 차별하는 관행적 남성중심적 성차별의 결과입니다. 그 피해자는 당연히 여성들이지요. 여성들의 인권이 침해당하기 때문에 이를 성차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라고 쓰신 점에 저는 “학교 문제”에 대해서는 현재 다른 자료나 정보가 전혀 없기에 제가 코멘트 할 입장이 아니고 (저는 앞서 밝혔듯이 세 분의 여성 분들이 쓰신 글을 읽고… 언어에… 즉 ‘부부전임교수불가’가 ‘성차별’로 인식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두 번째 요지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나 … “일반적인 인권침해”냐, “성차별에서 오는 여성차별”이냐 하는 문제는 사안에 따라 다르게 구별될 수 있는 것이기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인권침해라 할 때 그 반은 여성이요, 그 반은 남성이 됩니다. 그러면 여성의 경우는 모두 성차별이라 이름할 것입니까?
그리고 … 또 다른 글…
“교수직 박탈과 학문적 불명예”를 안겨주었습니다.”
라고 쓰신 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본인 되시는 두 분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제가 두 분의 자리에 있다고 하면… ‘불명예’와 같은 그런 생각은 안 할 것 같습니다. Witgenstein이 오늘의 Witgenstein 이 된 것은 배움 그 자체를 즐겼기 때문입니다 … 그는 러셀 밑에서 공부하다가 스승이 자신의 논문을 이해 못한다면서… 때려치고… 한적한 시골의 초등학교 교사로 내려가… 사색을 즐겼고… 글쓰기를 즐겼고… 드러나는 것을 싫어해서 책도 딱 세 권만 만들어 세 친구들과 함께 나누었고… 사후에… 그 친구들에 의해서 세상에 드러난 인물입니다. Augustine이 오늘의 Augustine 이 된 것은 명예스럽고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그러나 바쁜 수사학 교수직을 그만 두고… 목회자로서… 묵상하는 것을 즐겨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 은퇴식을 한 David Griffin 은 책을 쓰기 위해서 … 시간을 벌기 위해서 … 앞당겨 은퇴했습니다. “세계”를 가르치겠다고 하는 학자로서의 소명…을 앞세워서.
어쨌든 학자는… 배운 자는… 그 “스스로의 묵상 속에서 ‘세계’를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차별이니 억압이니 하는 그런 “비인간적 상황, non-human situation”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제게는 몇 년 선배되시는 것 같은데…) 두 분께 조언의 말씀을 드린다면… “벌린 일 (어차피 세운 깃발이 되었거든) 잘 마무리 하시고… 마무리 되거들랑… 교수 임용이 되든 안되든 간에… “세계”를 “정리”하는데 심혈을 기울여 주십사” 하는 말씀을 드립니다. 아시아 여성 신학자들… 홍콩인지 대만인지 곽푸란, 한국의 정현경… 그리고는 (제가 알기로) 이 미국 시장에 그렇게 알려진 사람들이 없습니다. 이들이 알려진 것도 그 사상의 깊이라기보다는 많지 않은 사람, 곧, 아시아인이면서 여성, 그리고 “영어”로 글을 썼다는 데 있습니다. 세상이 좋아져서 인터넷으로, 컴으로 영어 한 두 글자 치면… 주루룩 자료들이 뜹니다. 그런데 한국인 학자들의 글은 찾아 보기가 아주 힘듭니다. 제가 공부할 때에만 해도 한국인 이름은 눈 씻고 찾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아시아인이면서 여성학자… 그 희소성에다가 아시아라는 그 풍부한 신학 소스들… 그 얼마나 유리한 자리인지… 세계 시장에 교수님들의 작품 내놓고… 평가받고… “세계”를 무대로 우뚝 서시기를 바랍니다. 한국의 잘 던지는 투수가 미국의 박찬호보다 못한 것은 그 “시장성”에 있습니다. 눈을 세계로 돌리시고… ‘세계’를 읽는 세계적인 학자의 길을… 바라 보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님께서 쓰신…
“평소에 님의 글에 대하여 여러 측면에서 합리적 동의를 해왔던 사람으로서 감신대 총장과 교수인사위가 두 여성교수에게 가한 비인격적이며 제도적인 폭력을 성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하신 님의 견해에 유감을 표합니다.”
저는 학교 문제에 대해서 정보가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말씀 드렸듯이 게시판에 올라온 글 3편을 읽고서 그 오류를 지적한 것뿐입니다. 님이 보시기에 제가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밖에서 보는… 전혀 사심이 없이 제 3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 학교 문제에 대해서 보는 시각이 이렇구나… 하는 생각을 하시고, (정보를 잘 활용하셔서) 나름대로 저 같은 사람들… 잘 설득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저는 대체적으로 중간에는 자주 드는 사람이라… 사람들을 만나면… 저와 그렇게 의견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낍니다. 합리적이고… 이해할 만하다… 하면 저는 금방 넘어갑니다. 외고집이 아니라서 **^^** 마찬가지로… 혹 님께서 어느 한 쪽으로 너무 치우쳐 다른 쪽은 못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도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 감신대 총장과 교수위원회 혹은 두 분 교수님과 아무런 사이도 아닌 분은 아니시겠지요? 누구를 안다는 것… 친하다는 것… 때로… 사람을 눈멀게도 하는 법입니다.
주안에서 행복하십시요.
[* 죄송한 말이지만 지금 꼬박 4시간째 컴에 붙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판단을 전공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이러한 담론은 흥미도 있고… 제게 매우 유익한 것이기도 합니다. 제가 한국에 있었다면… 아마도 여기 저기서 정보도 얻고 해서 나름대로 “교수임용이 옳다 혹은 그르다”고 하는 판단까지 내리고 싶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기에 그 문제는 “유보”상태로 두겠습니다. 다만 ‘부부전임교수불가’는 여전히 제게 성차별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 글에 답 글을 주시는 것은 감사히 읽어 보겠지만 … 이렇게 시간 들여서 다시 답 글은 못 드릴 것 같습니다. 저도 이 곳에 할 일이 있어 왔는데…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기에… 혹 쓰고 싶은 글이 생긴다면… 잘 보관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 (한 2개월 뒤에나)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모두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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