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클림트 레프리카전시회>
'키스'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클림트 전시회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가야 볼 수 있었던 그의 전시회를 서울도 아닌 군포에서 해서 의아했지만, 진품이 아닌 레프리카 전시회라 해서 수긍이 되었다. 레프리카(replica)는 복제품을 의미한다.
그래도 반가웠다. 진품이 아니라도 진품과 같은 모조작들을 한 자리에서 죄다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것은 진귀한 기회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에서 태반의 작품을 직접 보았음에도 처음 보는 것처럼 몰두해서 보면서 다시 빠져들었다. 고마운 것은 진품처럼 유화물감의 결마저 붓질 자국마저 재현해내어 진품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느낌을 주었다는 것이다. 대표작 60점을 전시하여 클림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지간한 갈증은 풀 수 있도록 했다.
복제품이라도 좋으니 이와 같이 한 작가의 그림 모두를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자주 열리면 좋겠다. 어차피 어느 작가든 진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기회는 어렵기 때문이다. 관람객은 작품 전체를 감상하여 통찰력을 기르고 학생들에게 학습의 기회로 삼기에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전국에 특정 화가의 이름을 건 미술관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실제 가 보면 그 화가의 그림은 거의 없이 특별전이나 관련 행사를 하거나 아니면 거의 개점 휴업 상태로 있는 경우가 많다. 화가이름을 건 미술관이라면 화가의 지명도가 있어서 실제로 그 화가의 그림은 팔리고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 그래서 해당 화가와는 관계없는 궁색한 행사나 대리전으로 공간을 메워 기대하고 찾아간 관람객을 실망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웃 단원미술관에 가면 단원 그림이 없다. 지난 번에는 어렵게 몇 작품 진품을 볼 수 있었지만 아마 한 작품도 소장하지 못하고 있는 거 같다. 미술사의 봉우리인 단원이야 그림을 소장하기 어려우니 이해가 된다. 하지만 현대화가의 미술관도 작품이 별로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해당 화가의 상설작품전이 화가미술관으로서 가장 적절하나, 어려우면 이처럼 레프리카전을 하면 어떨까 싶다.
그러면 적어도 그 화가가 무슨 그림을 그렸는지는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고, 따라서 이름값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니라면 미술관 이름을 OO기념관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본다.
단일 화가에 대한 레프리카전을 개최하여 접하기 어려운 화가의 그림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기회를 제공하는 군포시의 시도는 특정화가 이름의 미술관의 방향을 제시한 셈까지 되어버렸다. 고마운 일이다.
관람기간 : 2020.1.7.~2.16.
관람료 : 5천원. 65세 이상은 50%할인
방문일 : 2010.1.9.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의 인상파 등의 미술을 접하고 오스트리아의 미술의 보수성에 반발하고 빈 분리파를 창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키스>,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베토벤 프리체>(벽화) 등이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키스>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그렇게 감동을 주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스트리아에서 진품을 봤을 때도 느낌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추사의 <세한도> 진품을 봤을 때는 머리칼이 서는 듯한 전율이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작품의 절반을 차지하는, 그가 제자 이상적에게 써준 화제를 굳이 해독하지 않아도 그 마른 붓질에서 오는 추사의 감정의 선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추사체에서는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데, 문인화의 대가 강세황보다 그의 문인화가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었다.
오스트리아는 미술의 나라가 아닌 음악의 나라다. 미술은 상대적으로 처져 있고, 예술성은 음악에 기울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미술이 약한 지역에서 자기 세계를 가진 클림트가 드러나 보이는 것은 당연한 거 같다. 그러나 자기 세계의 탄탄함이나 예술적 감동은 별개의 문제인 거 같다.
오스트리아는 음식도 맛이 없다. 먹을 만한 것은 굴라쉬 등 이웃 항가리에서 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모든 재능과 감수성이 음악에 집중해 있는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서 미술까지 기대하면 무리인가.
특히 비인이 가진 우아함, 정제됨, 깔끔함 등의 이미지는 저항이나 활기 정열 등과는 거리가 있다. 프랑스 파리의 자유로움, 열기 등이 오스트리아에서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일본인 여성들이 파리에 여행하면 지저분하고 불친절함에 '파리신드롬'에 걸린다는데, 깔끔하고 우아한 비인에 와서는 '비인신드롬'에 걸릴 일은 없다. 그리도 갈망하던 유럽, 그것도 그 중심이랄 수 있는 파리에 왔으니 '스탕달신드롬'에 걸려야지 웬 '파리신드롬'인가 씁쓸하기도 하지만, 미술도 그런 분위기를 반영하지 않을까 싶다.
<목가(우의&상징 시리즈)1884년
<목가(우의&상징 시리즈)1883년
<옛 부르크극장의 관람석> 1888년
<부채를 든 여인>(1917~1918)
<여자 친구들>(1916~1917)
<프레드릭 마리아의 초상>1916년
유럽의 일본 그림 열풍은 재미있는 미술 외적인 현상으로부터 촉발된다. 일본산 도자기의 포장지에 실린 판화를 보고 소위 일본주의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17세기 에도 시대의 부세화(浮世繪, 부세회)를 보고 일어났던 동양주의 열풍은 모네, 고흐, 고갱 등에게 유행처럼 번져 당시 유럽 화단을 풍미하던 일대 유행이 되었다.
부세화의 감각적이고 강렬한 색상은 이들을 사로잡았고, 평면적 화면 구성 등은 일본의 영향으로 평가된다. 1890년부터 10여년간 우키노에(부세회, 부세화)가 15만점이 넘었다고 하니 그 열풍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의 일본 취향은 동양을 신비화하면서 그 이면에 폄하하는 자기중심 의식이 담긴 오리엔탈리즘의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그 영향의 결과는 긍정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가벼운 그림들인데다 판화여서 대량 보급이 가능했기 때문에 일종의 민중의 풍속화로서 상층문화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유럽에 와서 엄청난 대접을 받으며 화단의 변화를 끌어낸 것이었다.
그러한 변화의 일단에 클림트도 있는 것이다. 화려한 색상이나 동양 인물 등의 모습에서 그러한 느낌을 감지할 수 있다.
거꾸로 동양에서는 유럽 유학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유럽의 화풍을 수용하였다. 중국의 국민화가격인 류하이수(유해속)도 그런 화가이다. 동양화를 주로 그렸으나 유럽 화풍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특히 색상의 처리에서 과감하게 받아들였으나, 왠지 겉도는 느낌이다.
일본의 오하라 미술관 컬렉션을 담당하였던 코지마 토라지로오는 직접 프랑스에 유학하면서 후원자의 힘을 배경으로 서양 그림을 수집하였고, 그것이 쿠라시키의 오하라 미술관 소장품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의 그림은 대단하지 않다. 유화 물감만 두터운 그림은 감동을 주지 못하고 철학적 배경도 빈곤하다.
그런 의미에서 클림트는 가벼운 부세화를 화풍에 제대로 수용한 점이 한 수 위다. 시기별로 다른 그림을 그리는 전격적인 화풍 변화의 모색도 창작 역량의 크기로 가늠할 수 있다. 그런 모색 속에서 대중과 호흡하는 일련의 그림을 생산해낼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그러한 변화들이 시대의 깊은 성찰을 반영하였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처녀> 1913년
<유디트2>1909년
<커다란 포플러, 또는 다가오는 뇌우> The great poplar 1903.
<공원> 1910년
<카소네의 교회>1913
<키스> 등의 작품이 유명하지만 오히려 마음이 가는 건 풍경화다. 그의 작품 중 1/4이 풍경화인데 대표작은 인물화이다. 풍경화를 중점적으로 그렸으면 더 많이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정원과 언덕꼭대기>1916
<자작나무>1903
북유럽에 가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가 자작나무다. 우리나라의 소나무와 같은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그곳의 국민 나무다. 하얀 기둥껍찔이 추위를 견디는 듯도 보이고, 항의하는 듯도 보인다. 하얀 기둥과 가지에 달린 푸른 잎사귀와 땅에 떨어진 붉은 낙엽이 강렬한 대조를 이룬다.
낙엽이 땅에 지는 가버리는 존재여서 가장 여린 색깔로 시들어야 할 듯한데 오히려 가장 강렬한 색깔로 날씨에 대응한다. 클림트는 이처럼 비트는 맛이 좋다.
대자연을 대하는 이런 인간의 대응이 키스 등의 인간들 군상에서는 무엇을 위한 꼬임인지 알기 힘들다.
*오스트리아 자작나무 숲
<해바라기>1907
<사과나무2> 1916년
<죽음과 삶>(1908~1916)
<손자수 모자와 깃털목도리의 여인>1909
<에밀리 플뢰게> 1902
<생명의 나무> 1905
<소녀의 반신> 연필 드로잉 작품. 드로잉 작품도 몇 작품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연필 터치로 잡아내는 사물과 인물의 섬세하면서도 날카로운, 개성 포착이 잘 드러나 있어 유화와는 다른 맛을 선사한다.
드로잉에서야말로 작가의 대상을 인식하는 태도가 민낯으로 잘 드러나지 않나 싶다.
군포예술회관 전경. 가끔 좋은 공연과 전시회를 연다.
#클림트 #클림트전시회 #클림트키스 #레프리카전시회 #군포문화예술회관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궁전 소개 브로셔와 전시된 원본 그림 <키스>다. 원본과 레프리카 그림 차이가 보이시는가.
브로셔는 벨베데레 안내문인지 클림트 안내문인지 헷갈릴 정도로 4개의 그림을 넣어 클림트 그림 안내 위주로 되어 있다. 오스트리아 국민 화가인 것이다. 4개의 작품 중 본 전시회에서 2개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클림트 그림을 보는 것은 오스트리아 그림 화풍을 이해하는 것이다. 당시 오스트리아가 놓인 유럽에서의 미술사적인 위치와 배경 및 클림트 탄생의 사회적 배경에 대해서는 다시 자료를 추가하여 살펴볼 예정이다.
*아래는 오스트리아에서 직접 찍은 진품 클림트 작품들이다.
위 작품들이 대부분 전시된 벨베데레 궁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