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딸} 읽기 ⑧:
어떤 한 사람 믿음의 발자취는 죽은 후에도 증거로써 일한다. ①
朴埰同 (2015.03.15.07:44)
다음은 ‘김홍전 {성신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 (서울: 성약출판사, 2000)’ 64쪽에서 옮기는 글입니다.
어떤 유명한 선생께서는 “해명된 진리도 진리이다. 그러므로 해명된 진리도 진리로 받고 나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한 개인이 해석한 것이 진리다.’는 말이 아니라 ‘해명됐다면 그것이 교회의 확실한 도그마(dogma)로, 교회의 확실한 선언으로 교회적인 권위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페북}에서 {목사의 딸}이 거론된 뒤 {목사의 딸} 내용을 소개하는 출판사 광고를 읽자마자 ‘70이 넘도록 사춘기 유아와 같은 사고를 버리지 못한 채, 아버지 노아 허물을 들춰낸 함과 같이 아버지 허물을 들춰낸 {목사의 딸}, 패륜아 압살롬 같이 아버지를 저주하는 {목사의 딸}을 사서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인가?’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지난 3월 9일 월요일 저녁이었습니다. 목포 제일교회 한 해 후배, 연봉 많은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40이 다 된 늦은 나이에 수원 합동신학원을 졸업하신 뒤, 제 고향 땅 시골 미자립 교회에서 궁핍한 경제 환경에서도 묵묵히 주님과 양무리를 섬기시는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안부를 여쭈는 전화이기도 했습니다만, {목사의 딸} 때문에 답답한 마음으로 드린 전화이기도 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이 전화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형님이 지난번 전화에서 {목사의 딸}을 이야기해서 {목사의 딸}을 사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목사의 딸}은 박윤선 목사님 신앙과 신학을 오히려 높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말씀에 용기를 얻어 지난 12일 목요일 퇴근 뒤 기독서점에서 {목사의 딸}을 샀습니다. 그리고 {목사의 딸}을 읽으며 “{목사의 딸}은 박윤선 목사님 신앙과 신학을 오히려 높여주는 책”이라는 말씀에 ‘기쁨’으로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故 박윤선 목사님 이른바 “전처 자식들” 상처ㅡ어머니를 일찍 여읜 데서 온 상처ㅡ 때문에 가슴이 아프기도 했습니다만, {목사의 딸}을 통해 얻게 된 가장 큰 ‘기쁨’은 1954년 3월 18일 교통사고로 주님 품으로 가신 故 김애련 사모님, 김애련 사모님께서 걸어가신 신앙의 여정을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지지고 볶는”ㅡ박영선 목사님께서 즐겨 쓰시는 말씀ㅡ 지사충성至死忠誠의 여정, 성화의 여정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김애련 사모님께서 걸어가신 “지지고 볶는” 성화의 여정은 시간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박윤선의 하나님, 김애련의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 딸 김애련을 본받아 그 발자취를 뒤쫓아 나를 경배하라고 명령하시는 여정이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 김애련 사모님께서 미국에 있는 딸(춘자)에게 유서와 같은 편지를 쓰신 날짜가 소천하시기 바로 전날인 1954년 3월 17일인데, 317은 제 핸드폰 앞자리입니다. 318은 제 아내 핸드폰 앞자리입니다. 3·18···. 애써 암기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김애련 사모님을 부르신 날짜를 기억하게 됐습니다.
다음은 ‘안만수 대담 {박윤선과 140 인의 만남 ②} 조주석 편 (수원: 도서출판 영음사, 2013) 박성은 <아버지 정암을 회고하는 대담집을 읽고서>’에서 옮기는 글입니다.
엘리사의 마른 뼈에 죽은 사람이 닿자 죽은 자가 살아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열왕기하 13장 21절을 본문으로 해서 가정예배를 드릴 적에 “어떤 한 사람 믿음의 발자취는 죽은 후에도 증거로써 일한다.”고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아버지 박윤선 목사님도 그 시대의 아들이셨고 연약한 면이 당연히 있으셨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높아지고 낮아지는 것은 결국 하나님 하실 일이며 그것은 우리 몫이 아닐 것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 글들로 우리 삶에 유익이 되고 한 일꾼 뒤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보시기를 바라며 이와 함께 우리 복음의 사역에 적은 유익이라도 준다면 기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