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거리 Y다방 이야기/강광석
강진군 성전 Y다방에 아가씨 두명이 새로 왔습니다. 전에 한명이 일하다가 장사가 안돼 그만두었는데 석달 지나 두명도 아닌 두명이 왔습니다. 약간 나이가 많고 더 가벼워 보이는 최양과 더 어리고 무거워 보이는 키 작은 성양입니다.
시골 면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의상과 전에 경험하지 못한 직업적 자세는 일순간 성전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카센터에 아침 첫 손님으로 갔는데, 만약 그 사람이 평소에 펑크 때운 값을 외상으로 하지 않고 성실하게 현금거래한 사람이면 ‘당신은 나의 귀한 손님입니다’라는 감사의 표현으로 배달 커피를 먹게 될지 모릅니다. 그리고 최양이나 성양을 만나게 됩니다. 만약 펑크 값을 평소 외상하지 않은 사람이 40먹은 노총각이거나 30대 애인 없는 떠꺼머리 총각이라면 그 현기증 나는 분내와 차마 눈 둘 곳 없는 아슬한 의상에 아찔해 의식의 끈을 놓고 말지도 모릅니다. 고추 탄저병 약을 사러 농약상에 가서, 그 농약상의 40대 안주인이 없거나 혹은 안쪽에 늘 앉아 컴퓨터를 하는 아들이 배달을 나갔다면 50대 바깥주인은 다방에 냉커피를 시킵니다. ‘서비스 한잔 더 가져오고, 성양은 바쁜가’ 합니다. 한잔에 3000원 하는 ‘성양표’ 냉커피는 봄바람처럼 가볍고 장마철 바람처럼 질펀합니다. 숟가락이 유리 커피잔을 때릴 때 진열된 살충제가 일제히 일어나 환호성을 지릅니다.
-새 아가씨들에 마을이 활기-
성전 삼거리를 지날 때 Y다방 오토바이가 두대였는데 돌아오는 길에 한대밖에 없으면 최양이 배달나갔나 궁금하고, 두대 다 없으면 둘 다 어디 갔나 절로 궁금해집니다.
농사일 마치고 가장 붐비는 어른들의 휴식 장소가 복지회관인데 여기에도 찬바람이 불어 가끔 장기 상대가 없어 1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장담할 순 없지만, 왕년에 한번쯤 백구두에 청춘을 걸었을 60대에서부터 평생 농사일 말고는 해본 일 없는 고진한 70대의 어르신들까지 적어도 한번은 Y다방에 들렀을 것입니다. 열두명이 앉을 수 있는 다방에 문을 열고 들어서서 만약 앉을 자리가 없으면 간이 의자를 끌어와 끼워 앉든가, 아니면 ‘혹시 영풍에 김영감 안 왔는가’라고 묻고는 그 다방에 앉아 있지 않아도 할 일이 많다는 것이 보일 정도로 바쁘게 문을 닫고 나와야 합니다.
면장이 왔다 갔는지 알 수 없고 조합장이, 파출소장이 왔다 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적어도 그분들이 성전의 의식흐름을 면밀히 관찰하고 주민들의 관심사를 챙기는 일에 게으르지 않는다면 실태조사 차원에서 한번쯤 차를 시켰거나 일부러 약속을 Y다방에서 잡았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약간 어른티 나는, 타 면 출신 고등학생 몇 명이 토요일 방과 후 다방에 들렀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교장에게 확인하지 못했지만 오토바이 배달원 아가씨의 운전솜씨를 유심히 보는 학생들이 실험적으로 휘파람을 불었다는 것은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오토바이 모자를 쓰지 않았다고 단속한 경찰관이 지역유지들에게 항의를 받았다거나 적어도 협조요청을 받았는지, 오토바이 가게 젊은 주인이 한달에 한번씩 엔진오일을 넣어주고 공짜커피를 먹는지 알 수 없습니다. 성양이거나 최양이거나 영화 ‘너는 내운명’처럼 느리고 성실한 사람과 길고 알찬 사랑을 나누게 될지, 그런 기대가 가능한지 알 수 없지만 지역청년들의 면 소재지 외출이 이전보다 잦은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곳 농촌에 오래 머물러 주길-
최양도 성양도 결국 성전을 떠나겠죠. 경영상의 이유로 또는 일신상의 이유로 그렇게 성전 사람이 떠났고 성전 사람이 아닌 사람도 떠났습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사라진 5일장은 다시 서지 않았고 그것은 농촌의 운명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떠난 사람들이 그리움이 되고 5일장이 추억이 될 즈음 낡은 사진 속의 컬러 스카프처럼 그녀들이 왔습니다. 어린아이 울음소리처럼, 초등학교 운동회처럼 반갑고 설레는 일입니니다. 오래 머물기를 바랍니다. 경영상의 이유도 일신상의 이유도 비켜가길 바랍니다. 잠깐 농촌의 속도가 그 숨을 돌리고 시간이 더디게 아주 더디게 간다면 우리도 결국 먼시대의 그리움이 되고 추억이 되는 운명의 아픔을 잠시 잊을 수 있겠습니다
[출처]경향신문, 07.07.11
***생각하기***
썰 : 의견이나 생각, 이야기 따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
삼거리 Y다방 이야기는 썰이다.
썰이 점잖은 말은 아니다.
세간에 떠도는 소문, 이야기, 의견들을 아울러 말할 때 썰이라 한다.
삼거리 Y다방 이야기는 강진군 성전 주변의 썰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짧은 그 안에 많은 인물들과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다큐멘타리 한편을 찬찬히 본 듯한 여운이 남는다.
썰임에도 리얼리티를 확보한다.
Y 다방이 인물과 공간과 에피소드들의 허브 역할을 한다.
Y 다방은 강진군 성전에 실존하고최양도 성양도 면장도 오토바이도 농약상도 조합장도 노총각도 70대 농사꾼도그 주변에 있기 때문이다. 해서 썰들도 실재가 되어 묻어간다.
강광석의 글에서 썰이 글이 되는 방법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