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도 피곤해서 흐물흐물 눕고만 싶은 날이었다.
오늘은 '수원성지'로 가기로 했는데 출발하기엔
좀 늦은 시간이어서 포기했다.
다시 누워 한숨 자고 일어났다.
매주 한 번의 순례를 하기로 했는데
처음 순례에서 덤으로 찾아간 만어사에서 두려움이 많았던 탓일까,
별로 순례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퍼뜩 떠오르는 생각,
"오늘은 가까운 대구지역의 성지를 가보는거야.
오전시간은 이미 지났어도 오후 시간만으로도 충분해."
서둘러 떠날준비를 했다.
에너지를 충전하려고 밥도 평소보다 많이 먹어 두었다.
11시 30분 출발!
떠남에 대한 설렘으로 흐물거렸던 몸은
마치 피가 돌듯 생기가 돌았다.
버스타고 구미역으로 가서 표를 끊었다.
카드 발매기에서 카드로 표를 처음 끊어 보았다.
여러번 시도해보아도 카드 긋는 것이 잘못되었는데
옆에 있는 아줌마에게 물어보고 비로소 할 수 있게 되었다.
할려고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는데 그동안 나는,
사소한 일이나 내가 관심 없는 것들에 대해선
"나는 못해"하고 항상 남을 의존하거나 뒤에 물러서
안일하게 살아왔다.
12시 39분 동대구 출발 1시 14분에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오늘 순례 코스는 대구 시내에 있는 성지, 복자성당-
계산성당- 관덕정- 성모당 등 네 군데를 둘러보기로 했다.
먼저 복자성당을 가기위해 전철을 이용할까하다가 걸어서 가기로 했다.
역 앞에서 왼쪽으로 가야는지 오른쪽으로 가야는지도 모르면서
내 육감에 따라 무조건 왼쪽으로 갔다.
가다가 마침 경찰아저씨를 만나 성지순례 책자에 나와 있는
길안내표를 보여주며 복자성당 가는 길을 물으니
내가 가는 길로 계속 가다가 다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복자성당 이정표는 어디에도 없었다.
여러 명의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애써 걸어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수고도 하며 어렵게 복자성당에 도착했다.
동대구역에서 도보로 20분쯤 걸릴거라했는데
내가 길을 멀리 돌아서 갔는지 1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사람저사람에게 물어보고 여기저기 헤매다가 찾은 복자성당 표지판이 반가웠다.
병인박해때 순교한 허인백 야고보, 김종륜 루카, 이양등 베드로의 묘소.
이 세분의 순교자는 현재 '하느님의 종' 125위에 선정되어 시복시성이 추진중에 있다고 한다.
봉곡성당 초대 신부님이신 김명섭 그레고리오신부님과
우리 신자들이 이곳에서 순례미사를 드렸던 기억이 났다.
병인순교 100주년 성당으로서 교구민의 헌금으로 1970년에 봉헌된 복자성당
성당의 외형은 김대건 신부님이 중국에서 올 때 타고 온 배를 상징한다고..
잠깐 성당에 앉아 쉬었다.
내 뜻을 이기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 지게 해주시길
내가 지닌 엄마의 자리, 아내의 자리, 딸의 자리, 며느리의 자리,
이웃의 자리, 신자의 자리에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 드렸다.
성당은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잘 정돈 되어 있었다.
'지속적인 성체 조배실'도 있었다.
그런데 왠일인지 열쇠가 잠겨 있어서 들어가보진 못했다.
성당안에서 밖에서
기도하는 자매님들의 모습이 더욱 경건한 성지분위기를 자아냈다.
기도는 집에서나 길을 가면서나 아무데서나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기도의 기가 가득 베인 거룩한 공간에서 하는 기도는
훨씬 더 깊게 침잠할 수 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보다도
도서관에서 하는 독서나 공부가 훨씬 능률도 오르고 효과가 크듯이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가 성지순례 확인도장을 받은다음
배낭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 계산성당으로 출발했다.
가능하면 네 군데의 성지를 일일이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종각
사거리에서 자전거를 타고있는 젊은 새댁에게
'매일신문사' 가는 길을 물으니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계산 성당은 매일신문사 바로 옆에 있다.
그녀가 가르쳐준대로 무조건 큰 길을 따라 쭉 걸었고
육교- 종각- 교보문고를 지났다.
시원하게 쭉 뻗어있는 가로수 길을 걷는 것은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많이 걷는데도 도무지 피곤하지 않았다.
1시간 조금 넘게 걸어서 계산 성당에 도착했다.
계산 성당은 서너번 가본 곳이지만 성지순례 목적으로 간 건 처음이다.
계산 성당은 대구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다.
신나무골에서 사목하던 김보록 신부가 대구 본당을 설정하고
1899년에 한옥성당을 봉헌했다. 그 뒤 한옥성당은 화재로 소실되고
1903년에 현재의 고딕식 성당건물이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되었는데
1911년에 주교좌 성당으로 지정되면서 종탑을 높였고
그 뒤 몇차례의 보수를 거치면서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기도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카메라 셔터 누르는 것이 죄송했다.
배낭이며 모자를 다 내려놓고 홀가분한 상태로 편히 쉬었다.
하느님안에서의 쉼은 그 자체로 평화와 행복이다.
이곳에서도 역시 순례 확인 도장을 받고 나왔다.
사무실 아가씨한테 관덕정을 가는 길을 물어 보았다.
관덕정은 우리 성당 예비신자 성지순례 코스 중 한 곳인데
예비신자 교리 봉사자를 하면서 여러번 가본 곳이다.
그런데 혼자 가는건 처음이어서 방향 감각조차 없다.
길치인 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 가본 곳은
아무리 여러번 가본 곳이라도 길에 전혀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혼자선 전혀 길을 몰랐다.
남편과 함께 고향을 오간게 27년인데도
아들이 차를 몰고 둘이서 고향에 갈 때
나는 길을 몰라서 아들에게 길을 안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요즘 혼자서 낯선 곳에 가보게 되면서 많이 좋아지고 있다.
혼자서 무언가 한다는건 온전한 내 책임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만큼 세밀히 보게 된다는 걸 알았다.
나는 내게 맡겨진 일은 완벽하게 해내려는 근성이 있어서
스스로 정한 '나홀로 순례'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고있다.
계산성당에서 나오자마자 만난 곳
시인 이상화의 고택이라니
반가운 마음에 멈춰섰다.
민족저항 시인 이상화 고택으로 들어서는 골목이다.
현대백화점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관덕정을 물어보니 모른단다.
마침 수녀님 두 분이 지나가셨다.
관덕정에 가시는 수녀님일지도 모르니
뒤따라 가면 되겠다 싶어 뛰어갔다.
그런데 왠걸 골목길로 들어서시는데 그 길은 한약방 골목길이다.
다시 백화점 앞으로 가서 길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길건너에 있다고..
큰길을 건너 조금 걸어가니 바로 관덕정이 나왔다.
마치 보물찾기에서 보물을 찾은 것처럼 반가웠다.
관덕정은 대구대교구 제2주보이신 이윤일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이며
많은 신앙 선조들이 참수 치명 당한 곳이다.
순교기념관은 불이 꺼져 있었다.
여러번 돌아본 곳이어서 그냥 내려와 지하성당으로 갔다.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지하 성당
잠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참혹한 고문으로 죽임까지 당하면서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다간 순교성인들을 생각했다.
나는 얼마나 나약한 사람인가?
나는 외적으로만 그리스도인이다.
매순간 내 뜻, 내생각을 버리지 못하여
하느님의 뜻, 다른 사람들의 뜻은 내안에서 항상 죽임을 당한다.
왜 나는 내 뜻이 항상 옳다고만 생각하는 걸까.
내 옳음주의.
그것은 하느님을 거스르는 주의다.
나는 완전하지 못할뿐만이 아니라 부족한 것이 많다.
그런 내가 어찌 내 생각이 다 옳다고 생각하거나 말할수 있는가
내 생각, 내 뜻을 버리는 것이 하느님의 뜻을 사는 길이다.
나를 버리는 연습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연습의 여정은 길 것이다.
오래 묵은 습관들을 지우고 하느님의 뜻을 사는 연습이다.
옳다는 내 생각을 버리려면 정신적 고통이 따른다.
내 안에 길들여진 습관이란 존재가 불안해한다.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오랫동안 살아온
습관이란 괴물은 뭐든 자신의 뜻대로 해야지만 편안해 한다.
그래서 습관을 거스르기 위해서 고통이 따르는 것이다.
그 고통을 인내할 줄 알아야 하는데
나는 인내로 길들여지지 못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아주 조금씩 인내할 줄 알게 되었다.
인내하는만큼 꼭 그만큼씩 나를 버리고 있는중이라고 할까.
이 시대, 나의 순교는 내 뜻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사는 일이다.
앞으로 나홀로 순례의 여정이 익숙한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를 만나는 여정이 되길 기도했다.
관덕정을 나와 대구대교구청까지 걸어갔다.
성모당에 도착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양팔을 들고 묵주기도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앉아서 묵주기도 5단을 바쳤다.
성모당은 대구대교구청 안에 위치한,
대구대교구 제1주보이신 루르드 성모님을 모신 곳이다.
성모 동굴과 크기와 모양이 똑같고,
벽돌당까지 로마에 있는 루르드 동굴의 벽돌당과 같다고 한다.
(참고로 대구대교구 제2주보는 이윤일 요한 성인이시다)
오늘 성지순례를 마쳤다.
순례한 복자성당, 계산주교좌성당,
관덕정, 성모당은 모두 이미 가봤던 곳들이다.
그러나 나혼자서 일일이 걸어서 다녔다는 것이 뿌듯하고 감사했다.
다시 성모당에서 대구역까지 걸어갔다.
가는 길에서 한두 번 길을 물었다.
지하도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아이 둘을 데리고 가던 엄마가
지하도에서 대구역으로 가는 길이 복잡하다며 친절하게 안내까지 해주었다.
오늘 참 많은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다.
사람들 모두가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주었다.
누군가에게 길을 묻는 다는 것은
낯선 사람에게 다가섬이다.
다가가 도움을 받는 일이다.
앞으로도
길의 여정에서 남에게 도움을 주기보다 받는 일이 많을 것 같다.
성지 순례 한 곳 한 곳을 찾아가는 길,
나는 마치 맛있는 음식을 아껴서 조금씩 먹었던 어린시절처럼
순례의 행복을 천천히 천천히 맛보고 있다.
마중 나온 남편 차를 타고 오후 7시 조금 넘어 집에 도착했다.
( 2012년 9월4일 화요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