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남산 미타사 (終南山 彌陀寺)
대한불교 조계종 제1교구 조계사의 직할사찰
서울 성동구 옥수동 395번지

서울 지하철 3호선 옥수역에 내리면 근처에 달맞이봉이 있으며,
그 달맞이봉 자락 현대아파트 앞에 천년 고찰 미타사가 있습니다.

미타사 천불전

동빙고가 있던 달맞이봉 서쪽 기슭 서울시 옥수동 395번지에 두뭇개 승방인 미타사가 있다.
미타사는 신라 진성여왕2년(888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데, 그 창건에 관해서는
몇 가지 다른 전설이 있다. 1943년에 편찬된 『종남산미타사약지(終南山彌陀寺略誌)』에
의하면 19세기 초반에 무량수전을 처음 지은 사실이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이와는 달리 미타사는 고려말 조선초부터 종남산 동쪽 기슭 현 금호동에 있었는데,
이 부근에 있던 왕실 경영의 메주가마를 자하문 밖으로 옮김에 따라 이곳에
도적이 들끓었으므로, 지금의 자리로 절을 옮겨 종남산 미타사로 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신라·고려 이래로 이곳에는 조그만 암자들이 있었는데
절 뒤의 산봉우리가 백명의 과부가 나타날 상이라는 풍수설에 따라, 비구니 사찰을
확장할 적절한 곳이라중기에 암자들을 합쳐 미타사라 했다고도 한다.

미타사는 개화기 이후에 경기도 일원에 있는 많은 토지를 사들이거나 기부받아서
1940년대 전반에는 논밭만도 모두 39필지(筆地)에 27,000여평으로서 막대한 규모의
사찰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미타사는 안성과 평택, 양주 등의 논밭을 사들였으며
이천과 시흥에 있는 막대한 규모의 논밭을 기증받기도 하였다. 미타사는 일제말기에
부유한 절로서 매우 번성하였음이 틀림없다. 번성 당시의 미타사에는 모두
9동 66칸의 건물이 있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이 절에 자주 다녀가기도 했다고 한다.종남산은 남산 줄기의 끝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1990년에는 천불전(千佛殿)을 건립하였다.

"미타사"로 명명된것은, 극락전의 주불이 "아미타불"이시기 때문에 주불 부처님 명호를
따른것이며, 아미타불의 이상세계가 극락세계이므로 법당명도 "극락전"이라 지어진 겻이다.
미타사는 역사를 내려오며 서울 중심에 위치한 좋은 입지조건인 관계로 전국 각처의
비구니 승문들이 모여들어 사중을 중심으로 7암자가 건립되는 특별한 사찰 배치가
이루어져 있다. 현재 미타사의 정문 입구에서 부터 각 암자명을 살펴 볼때 , 용운암, 관음암,
정수암, 금수암, 금보암, 칠성각, 대승암 순으로 위치해 있으며, 각 암자별 암주스님과
인연신도님이 다르게 독립 운영되고 있다.

현재의 미타사 모습은 핵 가족 시대 변이에 따른아파트 주거 문화시대에 맞춰,
절 주변의 높은 산에 고층 아파트가 병풍처럼 서있고 , 앞으로 전철역이 지나가고 있어
옛 고즈넉한 수행도량의 풍광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사찰 경계 안의 7000여 평의 도량은, 뒤로 석산이 옛모습 대로
그 자리에 의연히 서있고, 200여 년 이상 된 느티나무가 4그루가 남아 있어,
여름에는 쉼터 그늘을, 가을에는 낙엽의 낭만을 느낄 수 있게 해주어,
옛 비구니 수행도량의 향기를 다소 느낄 수 있다.
현재 미타사에 남아 있는 옛 전각은 공동 운영되고 있는 극락전과 7층석탑, 관음전,
산신각, 삼성각, 천불전,노전채 등이며, 7암자 중 5암자가 개별 법당을 건립하여
불자들의 귀의처를 삼고있다.

마을처럼 보이는 모든 건물이 미타사 경내의 암자입니다.

미타사 금보암

제일 높은곳에 위치한 대문이 보이는 암자가 대승암입니다.
이 대승암에 인연되어 찾아갑니다.

대승암 가는길 우측편의 칠성각입니다.

미타사 대승암 경내에 있는 무량수전입니다.


미타사 대승암 무량수전 법당 아미타부처님

참 아름다운 법당입니다.


아름다운 목탱화 조각작품의 신중탱화 화엄성중님 모습

법당에 걸린 등공양도 참 아름다웠습니다.



옥수역 출구를 나오면 바로 앞에 보이는 미타사
사진.2013.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