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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대화_시즌2]_100~110p_2021년_9월 6일(월)
It has been a gold gamble on my mother's part, but it worked - she was given an identical little purse! When she received the coveted purse, my mother was elated despite being in physical agony from the surgery. Two nurses came in and one stuck a thermometer in her mouth. My mother said, "Ummm, ummm," to show the purse to the second nurse, who answered, "Oh, for me? Why thank you!" and took the purse. My mother was at a loss, and never figured out how to say, "I didn't mean to give it to you. Please return it to me." Her story poignantly reveals how painful it can be when people don't openly acknowledge their needs. 어머니에게는 대담한 도박이었지만 그것은 성공했다. 언니가 선물로 받은 것과 똑같은 동전지갑을 받은 것이다. 그렇게 원하던 지갑을 얻자 어머니는 수술 때문에 고통스러웠으면서도 정말 신이 났다. 그러던 중 간호사 두 명이 병실에 들어와서 한 간호사가 어머니 입에 체온계를 꽂고 있을 때 어머니는 동전 지갑을 자랑하고 싶어서 다른 간호사에게 “음 음”하고 소리를 내면서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 간호사는 “어머나, 나한테 주는 거니? 고맙기도 해라!” 하며 가져가 버렸다. 어머니는 어쩔 줄 몰랐고 그거 드리려고 한 게 아니예요. 돌려주세요. 라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어머니의 이야기는 절실하게 보여준다. 얼마나 괴로운지를. 자신의 욕구를 솔직하고 분명하게 [번역판_100p, 말하지 못할 때 오히려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절실하게 보여준다.
From emotional slavery to emotional liberation 정서적 노예상태로부터 정서적 해방으로
In our development toward a state of emotional liberation, most of us experience three states in the way we relate to others. Stage 1: "In this stage, which I refer to as emotional slavery, we believe ourselves responsible for the feelings of others.We think we must constantly strive to keep everyone happy. If they don't appear happy, we feel responsible and compelled to do something about it. This can easily lead us to see the very people who are closet to us as burdens. 우리의 단계. 감정적인 해방의 상태로 나아가는 발달 단계는 대체로 3단계를 거치게 된다. 1단계에서는 내가 정서적 노예 상태라고 부르는 이 시기에는 자신이 다른 사람의 느낌에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생각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위하여. 만약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으면 그것에 대해 책임을 느끼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결국 이런 느낌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우리가 부담스럽게 느끼게 만든다.
Taking responsibility for the feelings of others can be very detrimental to intimate relationships. I routinely hear variations on the following theme: "I'm really scared to be in a relationship. “Every time I see my partner in pain or needing something, I feel overwhelmed. I feel like I'm in prison, that I'm being smothered - and I just have to get out of the relationship as fast as possible.”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대해 책임지는 것은 매우 해로울 수 있다. 친밀한 관계에서. 나는 자주 듣는다. 이런 것들의 변형된 형태들을 다음과 같은 주제로 “나는 진짜 무서워요. 누군가와 깊이 사귀는 것이 정말 두려워요. 상대가 괴로워하거나 무언가 원한다고 생각되면 심한 압박을 느껴요. 감옥에 갖힌 것 같고 질실할 것 같아요. 그래서 되도록 빨리 그 관계에서 벗어나야만 해요”
First stage: emotional slavery. We see ourselves responsible for others' feelings. 정서적 노예상태. 자신이 다른 사람의 느낌에 책임이 있다고 여긴다.
This response is common among those who experience love as denial of one's own needs in order to attend to the needs of the beloved. In the early days of a relationship, partners typically relate joyfully and compassionately to each other out of a sense of freedom. 이런 반응은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돌보기 위해서 자신에게 [번역판_101p, 필요한 것을 부인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관계의 초기 단계에서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서로 공감하며 즐겁게 관계를 맺는다.
The relationship is exhilarating, spontaneous, wonderful. Eventually, however, as the relationship becomes "serious", partners may begin to assume responsibility for each other's feelings. If I were a partner who is conscious of doing this, I might acknowledge the situation by explaining, "I can't bear it when I lose myself in relationships. When I see my partner's pain, I lose me, and then I just have to break free." However, if I have not reached this level of awareness, I am like to blame my partner for the deterioration of the relationship. Thus I might say, "My partner is so needy and dependent it's really stressing out our relationship." 이때의 관계는 생동감이 넘치고, 자연스러우며, 경이롭다. 하지만 관계가 진지해지면 서로 상대의 느낌에 책임을 지기 시작한다. 만일 내가 이런 것에 대한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자신을 이렇게 이해할 것이다. 관계에서 내가 내 중심을 잃는 것은 참을 수 없어. 상대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어. 기거시 그저 벗어나고 싶어진다. 하지만 나의 인식이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면 관계가 나빠지고 그 책임을 상대방에게 돌리면서 다음과 같이 비난하기 쉬울 것이다. “내 파트너는 원하는 게 많고 또 너무 의존적이라서 우리 관계에 많은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In such a case, my partner would do well to reject the notion that there is anything wrong with her needs. 이런 상황에서 상대방은 자신의 욕구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무시하는 것이 좋다.
It would only make a bad situation worse to the pain of my emotional slavery: "So you find yourself in panic. 그러나 만약 상대방이 모든 게 그의 탓이라는 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상황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It's very hard for you to hold on to the deep caring and love we've had without turning it into a responsibility, duty, obligation...You sense your freedom closing down because you think you constantly have to take care of me." 그 대신 상대방이 내 자신의 정서적 노예 상태로부터 비롯된 나의 고통을 이해하면 다음과 같이 공감으로 반응할 수 있다.
If, however, instead of an empathic response, she says, "Are you feeling tense because I have been making too many demands on you?" then both of us are likely to stay enmeshed in emotional slavery, making it that much more difficult for the relationship to survive. [번역판_102p, 그러나 상대가 이런 공감 어린 반응 대신 “내가 너무 많은 걸 요구하기 때문에 당신이 힘든가요?”라고 한다면, 두 사람 모두 정서적인 노예 상태에 빠져들어 관계를 지속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Stage 2: In this stage, we become aware of the high costs of assuming responsibility for others' feelings and trying to accommodate them at our own expense. When we notice how much of our lives we've missed and how little we have responded to the call of our own soul, we may get angry. 이 단계에서는 우리는 깨닫게 된다. 비싼 대가를 깨닫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대한 책임감을 진다는 것의 비싼 대가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들에게 맞춰가면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르는지. 나를 희생해 가면서. 우리가 알아차리게 될 때. 얼마나 많이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었는지. 얼마나 적게 우리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반응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면 우리는 화를 느낄 수 있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느낌에 책임을 지고 나를 희생하면서 남의 기분을 맞춰주며 살 때에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또 우리는 그동안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았으며 내면의 소리를 얼마나 무시하고 살았는지 깨닫게 되어 분노를 느낄 수도 있다.>
Second stage: The obnoxious stage. We feel angry; we not longer want to be responsible for others' feelings. 제 2단계: 얄미운 단계. 화가 나고 다른 사람의 느낌에 더 이상 책임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I refer jokingly to this stage as the obnoxious stage because we tend toward obnoxious comments like, "That's your problem! I'm not responsible for your feelings!" when presented with another person's pain. We are clear what we are not responsible for, but have yet to learn how to be responsible to others in a way that is not emotionally enslaving. As we emerge from the stage of emotional slavery, we may continue to carry remnants of fear and guilt around having our own needs. 나는 이 단계를 재미있게 ‘얄미운 단계’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이 단계에서는 다른 사람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건 당신 문제야! 난 당신의 느낌에 책임이 없어!” 와 같이 얄미운 말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느낌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게 알리지만 정서적인 노예 상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책임 있게 행동하는 법은 아직 모르고 있는 법이다. 우리는 정서적인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서도 자신이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여전히 두려움과 죄책감을 느낄 수 있다.
Thus it is not surprising that we end up expressing our needs in ways that sound rigid and unyielding to the ears of others. 그러므로 이 단계에서는 우리가 하는 욕구 표현이 다른 사람들에게 딱딱하고 고집스럽게 들릴 수가 있다.
For example, during a break in one of my workshops, a young woman expressed appreciation for the insights she'd gained into her own state of emotional enslavement. When the workshop resumed, I suggested an activity to the group. 내가 진행하던 워크숍의 휴식 시간에 한 젊은 여성이 자신이 처한 정서적 노예 상태를 통찰할 수 었었다고 감사의 말을 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모였을 때, 나는 한 가지 활동을 제안했다.
The same young woman then declared assertively, "I'd rather do something else." I sensed she was exercising her newfound right to express her needs - even if they ran counter to those of others. To encourage her so sort out what she wanted, I asked, "Do you want to do something else even if it conflicts with my needs?" She thought for a moment, and then stammered, "Yes...er...I mean, no." Her confusion reflects how, Her confusion reflects how, in the obnoxious stage, we have yet to grasp that emotional liberation entails more than simply asserting our own needs. I recall an incident during my daughter Marla's passage toward emotional liberation. She had always been the "perfect little girl" who denied her own needs to comply with the wishes of others. 그러자 그 여성이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다른 걸 했으면 좋겠어요. [번역판_103p, 다른 사람들과 일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자신의 욕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이제 막 새롭게 찾아낸 권리를 그녀가 행사하고 있음을 나는 감지할 수 있었다. 나는 그녀가 원하는 것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려고 “당신이 원하는 게 저와 다르더라도 말입니까?” 라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네...어...제 말은 그게 아니라” 라고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이 같은 혼돈은 정서적 해방단계로 가려면 단순히 자신의 욕구만을 주장하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나의 딸 말라가 정서적 해방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겪었던 사건이 생각난다. 말라는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인정하지 않는 ‘아주 착한 아이’ 였다.
When I became aware of how frequently she suppressed her own desires in order to please others, I talked to her about how I'd enjoy hearing her express her needs more often. 말라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자주 자신이 원하는 거을 억누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딸에게 네가 자신의 욕구를 좀 더 자주 표현하는 것을 듣고 싶다고 했다.
When we first broached the subject, Marla cried. "But Daddy, I don't want to disappoint anybody!" she protested helplessly I tried to show Marla how her honesty would be a gift more precious to others than accommodating them to prevent their upset.내가 이 이야기를 처음 꺼냈을 때 말라는 울면서 힘없이 항의했다. 하지만 아빠 나는 누구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요. 이 말을 듣고 나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순응만 하기보다 솔직한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더 소중한 선물이 되리라는 것을 말라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Third stage: Emotional liberation. We take responsibility for our intentions and actions. 3단계 : 감정적 해방 단계. 우리는 우리의 의도와 행동들에 대한 책임을 가진다.
I also clarified ways she could empathize with people when they were upset without taking responsibility for their feelings. A short time later, I saw evidence that my daughter was beginning to express her needs more openly. A call came from her school principal, apparently disturbed by a communication he'd had with Marla, who arrived at school wearing overalls. "Marla," he'd said, "young women do not dress this way." "To which Marla had responded, "Bug off!" 또한 다른 사람의 기분이 상했을 때도 말라가 어떻게 그 사람의 느낌에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공감할 수 있는지 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얼마 후 딸이 자신의 욕구를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를 보았다. 한 번은 위아래가 붙어 있는 작업복을 입고 등교한 말라와 [번역판_104p, 얘기하는 동안 몹시 당황한 교장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말라 어린 여학생은 그런 옷을 입는 게 아니다. 라고 말했을 때 말라가 “꺼져요.” 라고 했다는 것이다.
Hearing this was cause for celebration: Marla had graduated from emotional slavery to obnoxiousness! 이 이야기는 축하할 만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말라가 드디어 정서적 노예 단계를 졸업하고 얄미운 단계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She was learning to express her needs and risk dealing with the displeasure of others. Surely she had yet to assert her needs comfortable and in a way that respected the needs of others, but I trusted this would occur in time. 말라는 다른 사람의 화를 상대해야 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자기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물론 나는 말라가 다른 사람의 욕구도 존중하면서 자신의 욕구를 편안하게 주장하는 법을 머지않아 배우게 되리라고 믿었다.
Stage 3: At the third stage, emotional liberation, we respond to the needs of others out of compassion, never out of fear, guilt, or shame. 3단계에서는 정서적 해방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욕구에 대해 두려움, 죄책감 또는 수치심이 아니라 연민에서 나와 반응한다.
Our actions are therefore fulfilling to us as well as to those who receive our efforts. We accept full responsibility for our own intentions and actions, but not for the feelings of others. At this stage, we are aware that we can never meet our own needs at the expense of others. Emotional liberation involves stating clearly what we need in a way what communicates what we need in a way that communicates we are equally concerned that the needs of others be fulfilled. NVC is designed to support us in relating at this level. 다른 사람의 느낌에는 책임을 지지 않지만 우리는 자신의 의도와 행동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 또한 이 단계에서는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자신의 욕구를 결코 충족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정서적 해방이란 상대의 욕구 충족도 똑같이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드러내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NVC는 이런 차원에서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한다.
Summary
The third component of NVC is the acknowledgment of the needs behind our feelings. [번역판_105p, NVC의 세 번째 요소는 욕구들의 인정이다. 우리의 감정 뒤에 있는 욕구들의 인정이다.
What others say and do may be the stimulus for, but never the cause of, our feelings. When someone communicates negatively, we have four options as to how receive the message; (1) blame ourselves, (2) blame others, (3) sense our own feelings and needs, (4) sense the feelings and needs hidden in the other person's negative message. Judgments, criticisms, diagnoses, and interpretations of others are all alienated expressions of our own needs and values. When others hear criticism, they tend to invest their energy in self-defense our counterattack.다른 사람들이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은 자극이지 원인이 아니다. 우리의 감정들에 대해. 어떤 사람이 부정적으로 우리에게 말할 때 우리는 네 가지 선택을 가지고 있다. 그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1) 우리 자신을 비난한다. (2) 상대방을 비난한다. (3) 우리의 감정과 욕구들을 알아챈다. (4) 감정들과 욕구를 알아챈다.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사람의 부정적인 메시지에 담겨있는 감정과 욕구들을 알아챈다. 판단들, 비판들, 분석들, 해석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모든 소외된 표현들이다. 우리 자신의 욕구와 가치들의 소외된 표현들이다. 사람들은 비판이나 비난을 들으면, 그들의 에너지를 쏟는다. 우리의 공격을 맞받아칠 방어를 하는 것에 힘을 쏟는다.
The more directly we an connect our feelings to our needs, the easier it is for others to respond compassionately. 더 직접적으로 우리 자신의 감정에 연결될수록 - 우리 자신의 욕구에 대한 감정들에 연결될수록 더 쉽게 다른 사람들은 연민으로 우리에게 반응할 것이다.
In a world where we are often harshly judged for identifying and revealing our needs, doing so can be very frightening, especially for women who are socialized to ignore their own needs while caring for others. 세계에서는. 우리가 자주 가혹하게 판단되는 세계에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욕구을 알아 채는 것에 대해 가혹하게 판단되는 세계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매우 두려울 수 있다. 특별히 여성들에게, 사회화된 여성들에게. 그들 자신의 욕구들에 무시해야 되는 여성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그들 자신의 욕구를 무시하도록 사회된 여성들에게는.
In the course of developing emotional responsibility, most of us experience three states: "emotional slavery" - believing ourselves responsible for the feeling of others, "the obnoxious state" - in which we refuse to admit to caring what anyone else feels or needs, and "emotional liberation" - in which we accept full responsibility for our own feelings but not the feelings of others, while being aware that we can never meet our own needs at the expense of others. 우리가 감정적 책임감을 발달시키는 과정에 우리 대부분은 3단계를 경험한다. “감정적 노예” 단계에서는 우리 자신을 믿는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고 두 번째 단계는 “얄미운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우리는 받아들이기 거부한다. 다른 사람들의 느낌이나 욕구에 대해서 돌보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거부한다. 세 번째 단계에는 “정서적 해방”의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감정에 대한 전면적인 책임감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희생하면서까지 우리 자신의 감정을 충족하지는 않는 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NVC in Action
Bring back the Stigma of Illegitimacy! (사생아에 대한 낙인)
A student of Nonviolent Communication volunteering at a food bank was shocked when an elderly co-worker burst out from behind a newspaper, "What we need to do in this country is bring back the stigma of illegitimacy!" [번역판_106p, NVC 연수생, 푸드 뱅크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NVC연수생 한 명은 놀랐다. 같이 일하던 여성 연장자가 갑자기 큰소리로 말하는 것을 보고, 신문을 읽다 말고 갑자기 큰 소리를 터뜨리는 것을 보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생아들에게 낙인을 찍는 일이야”
The student's habitual reaction to this kind of statement would have been to say nothing, to judge the other severely but silently, and eventually to process her own feelings safely away from the scene. 이 학생의 평소의 반응, 이와 같은 말에 대한 평소의 반응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속으로는 심하게 비난하면서도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감정을 처리했을 것이다. 느낌을 다른 것으로 돌려버렸을 것이다.
This time, she remembered she had the option of listening for the feelings and needs behind the words that had shocked her.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는 기억했다. 그녀는 선택을 가졌다는 것을. 감정과 욕구들을 들을 선택을 가졌다는 것을. 그 말들의 뒷면에 있는 감정과 욕구들을 들을 선택. 그녀는 놀라게 했던 말들의 이면에 있는 감정과 욕구들을 들을 선택을 가졌다는 것을 기억했다.
Student: (first checking out her guess as to what the coworker was observing) Are you reading something about teenage pregnancies in the paper? 그녀의 추측을 확인하면서, 그 동료 근로자가 관찰하고 있는 것들에 관해 그녀의 추측을 확인하면서 “당신은 읽고 있나요? 10대의 임심에 관해서 읽고 계신가요? 신문에서?
Listen to what people are needing rather than what they are thinking. 사람들이 필요한 것에 귀를 기우려라.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가보다는.
Co-worker: Yes, it’s unbelievable how many of them are doing it! 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는지 믿을 수가 없어요.
Student: (now listening for the co-worker’s feeling, and what unmet need might be giving rise to this feeling) Are you feeling alarmed because you’d like kids to have stable families? 동료 근로자의 감정을 들으면서, 그리고 어떤 충족되지 않는 욕구가 이것을 일으키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당신은 놀라시는군요. 왜냐하면 아이들이 안정된 가정에서 자라기를 원하기 때문에 놀라신거예요.
Co-worker: Of course! Do you know, my father would have killed me if I had done anything like that! 물론이죠. 내 아버지라면 나를 아마 죽였을 거예요. 만약 내가 이와 같은 것을 했다면요.
Student: So you’re remembering how it was for the girls in your generation who got pregnant? [번역판_107p, 선생님이 10대였을 때 여자 아이가 임신하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이 나시는군요.
Co-worker: Sure thing! We knew what would happen to us if we got pregnant. We were scared about it all the time, not like these girls nowadays. 물론이죠. 우리들은 알았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만약 우리가 임신했을 때. 우리들은 두려웠어요. 그것에 관해 언제나. 요즘 애들과는 다르게.
Student: Are you annoyed that there is no fear of punishment for the girls who get pregnant these days. 당신은 짜증나세요?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 보이는 요즘 소녀들에 대해서. 임신했을 때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요즘 소녀들에 대해서 두려우세요?
Co-worker: Well, at least fear and punishment worked! It says here that these are girls sleeping around with different men just so they can get pregnant! That’s right! They have babies and the rest of us in society pay for it! 글쎄요. 겁을 주고 처벌을 하는 게 효과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요. 그리고 신문에서 말하길, 여기 소녀들은 다른 사람들과 잔다고 한다. 그들이 임신하기 위해서. 정말 못 믿겠어. 그들은 애를 가지게 되고 우리는 그 양육비용을 세금으로 지불하는 것이네요.
The student of NVC heard two different feelings in this statement: astonishment that girls would deliberately get pregnant, and annoyance that taxpayers end up paying for children born in this way. She chose which feeling to empathize with. NVC 학생은 이 진술에서 두 가지 느낌들을 들었다. 놀라움과 억울함. 소녀들이 의도적으로 임신한다는 놀라움과. 결국은 납세자들이 아이들을 양육하는 데 지불해야 한다는 억울함. 그녀는 어느 감정에 공감할지 선택했다.
Student: Are you astonished to realize that people are getting pregnant these days without any consideration of reputation, consequences, financial stability...all the things you used to consider? 당신은 깨닫고 놀라는군요. 사람들이 오늘날 임신한다는 것에 대해 비난의 고려, 결과의 고려, 경제적인 안정성들에 대해 고려없이 임신한다는 것에 대해 놀라시는군요. 과거에는 이런 것들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했는데 말이죠.
Co-worker: Yeah, and guess who ends up paying for it? 결국 그 돈은 누가 내야 할 것인가요?
The co-worker, probably feeling heard around her astonishment, moved on to her other feeling: that of annoyance. [번역판_108p, 자신이 놀라는 이유를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자, 동료는 또 하나의 느낌인 억울함으로 옮겨갔다. 동료 근로자는 아마 자신이 놀라는 이유를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자, 또 하나의 느낌인 다른 감정(억울함)으로 옮겨갔다.
As often happens when there is a mixture of feelings present, the speaker will return to those that have not received empathic attention. 여러 느낌이 동시에 일어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을 아직 공감 받지 못한 느낌으로 돌아온다.
It is not necessary for the listener to reflect back a complex mixture of feelings all at once; the flow of compassion will continue as each feeling comes up again in its turn. 청자는 할 필요가 없다. 복잡한 감정으로 한 번에 대응하려고 할 필요 없다. 느낌이 하나하나 떠오르면서 자연스럽게 공감이 이어진다. 느낌이 하나하나 순서대로 떠오르면서.
Student: Sounds like you're exasperated because you'd like you tax money to be used for other purposes. Is that so? 당신은 화가 나는 듯 보이네요. 왜냐하면 당신은 우리의 세금이 다른 용도로 쓰이길 원하기 때문에.
Co-worker: Certainly is! Do you know that my son and his wife want a second child and they can't have one - even though they have two jobs - because it costs so much! 물론이죠. 내 아들과 며느리는 두 번째 아이를 갖기를 원하고 있죠. 그리고 그러질 못하고 있어요. 그들이 맞벌이를 하고 있는 데도 말이죠. 돈이 너무 들어요.
Student: I guess you're sad about that? You'd probably love to have a second grandchild...그것 때문에 마음이 아프세요. 당신은 두 번째 손자를 가지고 싶은 데 말이죠.
Co-worker: Yes, and it's not just for me that it would make a difference. 그래요, 그렇게만 되면 저만 좋은 일이겠어요?
Student: ...and for your son to have the family he want...(Even though the student guessed only partially correctly, she did not interrupt the flow of empathy, instead allowing the co-worker to continue and realize another concern.) 아드님도 정말 그렇겠네요. 연수생의 추측이 일부만 맞았다 해도, 그녀는 공감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았다. 대신에 동료 근로자가 계속해서 또 다른 자신의 관심사를 이야기 할 것이기 때문에.
Co-worker: Yes I think It's sad to be single child too. 그래요, 또 아이가 외동딸로 자라는 것도 슬픈 일이지요.
Student: Oh, I see, you'd like for Katie to have a little brother? 아~케이티에게 동생이 있었음하고 바라는 군요.
Co-worker: That would be nice. 그러면 좋죠.
At this point, the student sensed a release in her co-worker, a moment of silence elapsed. She felt surprised to discover that, while she still wanted to express her own views, her urgency and tension had dissipated because she no longer felt "adversarial," [번역판_109p, 이 시점에서 연수생은 동료의 태도에 다소 여유가 생겼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발견하고 놀랐다. 그녀는 여전히 그녀의 견해를 표현하고 싶었지만 긴박감이나 긴장감은 사라졌다. 왜냐하면 그녀는 더 이상 적대감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Taking responsibility for our feelings 우리 감정들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기.
She understood the feelings and needs behind co-worker's statements and no longer felt that the two of them were "worlds apart." 그녀는 이해했다. 동료 근로자의 진술뒤에 있는 감정과 욕구들에 대해. 그리고 더 이상 그들 두 사람은 다른 세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Student: (expressing herself in NVC, and using all four parts of the process: observation[O}, feeling[F], need[N], request[R]) You know, when you first said that we should bring back the stigma of illegitimacy[O}, I got really scared[F}, because it really matters to me that all of us here share a deep caring for people needing help[N}. NVC 방식으로 그녀 스스로 표현하면서 NVC 네 부분들을 사용하면서, 관찰, 느낌, 욕구, 부탁등. 당신이 처음 우리는 사생아에게 낙인을 찍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정말 두려웠어요. 왜냐하면 저에게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우리 모두 여기 있는 사람들은 공감하고 나누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기 때문에.
Some of the people coming here for food are teenage Parents[O], and I want to make sure they feel welcome[N}. 여기에 오는 사람들의 일부분은 10대 부모들이다. 그리고 나는 확신하길 원한다. 그들이 환영받는다는 느낌을 갖는 다는 것을.
Would you mind telling me how you feel when you see Dashal, or Amy and her boyfriend, walking in? [R] 어떤 느낌이 드세요. 당신이 데샬, 또는 에이미와 그녀의 남자친구가 여기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을 때.
The dialogue continued with several more exchanges until the woman got the reassurance she needed that her coworker did indeed offer caring and respectful help to unmarried teen clients. [번역판_110p, 이 대화는 동료가 이곳에 오는 미혼 청소년에게 존중과 애정이 담긴 도움을 주리라고 연수생이 확산하게 될 때까지 더 이어졌다. 그녀의 동료 근로자가 존중과 애정이 담긴 도움을 제공한다는 것. 미혼 청소년들에게 존중과 애정이 담긴 도움을 주리라고 연수생이 확신하게 될 때까지 더 이어졌다.
Even more importantly, what the woman gained was a new experience in expressing disagreement in a way that met her needs for honesty and mutual respect. In the meantime, the co-worker left satisfied that her concerns around teen pregnancy had been fully heard. Both parties felt understood, and their relationship benefited from their having shared their understanding and differences without hostility. In the absence of NVC, their relationship might have begun to deteriorate from this moment, and the work they both wanted to do in common - helping people-might have suffered. 더 중요한 것은 얻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경험을. 의견이 다른 것을 표현할 때, 그녀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를 존중하면서 상대와 자기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표시할 수 있다는 새로운 경험을 얻은 것이었다. 한편 동료는 만족을 느꼈다. 그녀의 10대 임신에 대한 우려를 누군가가 충분히 들어 준 것에 대해 만족을 느꼈다. 두 사람은 이해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가 나아졌다는 것을. 그들의 이해를 공유하고 적대감 없이 차이점을 서로 알게 되어서. NVC가 없었더라면 그들의 관계는 악화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 하고자 했던 - 사람들을 돕는 것 - 일을 하는 데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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