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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어느 정도 미치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 변화는 현재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과거의 공식에 등을 돌려 미래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용기에서 나온다. -토마스 상카라Thomas Sankara
금융 위기의 직접적인 여파로, 세계의 엘리트들이 뿌리까지 흔들리기 시작했다. (생각만큼 많지는 않지만), 몇몇은 재산을 잃었고 또 다른 몇몇은 일자리를 잃었으며, 자본주의의 장점에 대한 믿음까지도 잃었다. 분석가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지난 20년 동안 그들이 당연시했던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역사는 끝났다. 그리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자본주의다.” 그러나 이처럼 숨가쁜 발언이 종말을 고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는, 마찬가지로, 자본주의가 기적적으로 살아남는 능력, 심지어는 뒤떨어진 경제 시스템을 중단시키는 위기를 통해 적응하는 능력에 관한 숨 가쁜 발언으로 대체되었다.
10년 후, 자유시장 체제의 운명에 관해 낙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계 경제는 중국의 전례 없는 경기진작 프로그램과 세계 주요 국가의 극단적으로 느슨한 통화정책에 바탕을 두고 회복을 꾀했으나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식시장이 불안정해졌고, 민간부문에서는 부채 버블이 발생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성장의 원동력이라 할 생산성은 정체되었다. 글로벌 노스 밖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단 한 가지 정책만 변경하더라도 따라잡기에서 멀어진다는 말을 들었던 많은 국가가 비슷한 수준의 정체를 경험했고, 지금은 글로벌 노스에서 긴축통화정책을 추진하면서 자본 도피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그 사이에 글로벌 독점기업(특히 기술기업)은 위기 이후의 얼마 안 되는 성장으로부터 얻은 이윤을 축적했고, 부정으로 얻은 이득을 조세피난처에 보관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규제를 가하려는 국민국가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막강한 경제 권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30년대 이후로 볼 수 없었던 수준의 극우 포퓰리즘이 다시 등장했다. 국가주의자들은 유권자들이 고난에 시달리고 생활 수준이 나빠진 것을 나와는 다른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기 위해 그들만의 인종주의를 동원한다. 극우파를 자극하는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운동으로서 유일한 것은 생활 수준이 나빠진 것에 대해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엘리트들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 정당 중 이 과제에 부응하는 곳은 거의 없고, 대신 그들은 자유와 착취 사이에서 노동자를 위한 ‘제3의 길’에 관한 오래된 담화에만 집착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그리스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파속PASOK, Panhellenic Socialist Movement(그리스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을 지칭-옮긴이)처럼 선거에서 밀려서 극우파가 경제적 선동을 주도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겼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몇 가지 예외도 있다. 금융 위기가 있은 후 11년이 지나 미국과 영국처럼 가장 심하게 금융화된 경제에서, 좌파가 지난 40년과 비교해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막강해졌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경제 위기와 심각성이 컸기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는 다수결 선거제도가 갖는 특징 때문에, 앵글로아메리카에서 좌파 사회운동 세력은 정치에 분열을 일으키기 위해 전통적인 정당에 속한 구성원들과 보조를 같이했다.
이 전개는 분석가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어쩌면 위기 그 자체보다도 훨씬 더 큰 충격일 수도 있었다. <더 이코노미스트>는 열띤 논조로 밀레니얼 사회주의Millennial socialism의 등장에 관한 기사를 썼다. 그리고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의 기사에는 양적완화가 주택 가격을 올려놓았기 때문에 이런 새로운 현상이 일어난 것이라고 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사회주의를 ‘시대에 역행하는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이며, 진보적인 네트워크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조롱하며 현재 상황을 고수하려 했던 사람들은 삶의 목표를 인간의 자유를 위한 오랜 투쟁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는 민주사회주의자들의 새로운 물결을 보면서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자신이 부모세대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거란 생각도 안 하면서, 왜 더 적은 임금과 복리후생에도 보다 오래 근무해야 하는가? 그들은 왜 단지 생존 때문에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앞으로 남은 삶을 부채의 노예가 되어 일만 하며 보내야 하는가? 결국, 그들은 왜 자본을 소유할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으면서 자본주의를 지지해야 하는가?
특히 마지막 질문이 지배 계급을 걱정하게 만든다. 글로벌 노스에서 자산 소유의 민주주의가 자산 소유의 과두제로 썩어 들어가는 상황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은 금융자본주의가 기반을 둔 정치적, 경제적 합의가 무너지고 있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답이 없다. 프랑스의 엠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대통령처럼 자유주의적 질서를 복구하려는 사람들이 지키기 못할 약속을 하면서 갑자기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정치의제는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금융 주도 성장의 종말은 이미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사람들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우파 사람들은 자본을 축적한 부유층으로 가기 위한 길을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노동자들이 서로 등을 돌리도록 자본주의에 대한 반발을 활용할 것이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종말을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세상의 종말을 보겠다는 엘리트들에게서 용기를 얻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본주의가 진정으로 역사의 종말을 의미한다(그리고 지금부터 우리에게 남은 것은 침체와 쇠퇴뿐이다).
그러나 또 다른 길이 있다. 1970년대에 신자유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이 순간을 장악하여 권력 관계를 재조정하고 새로운 제도를 심어놓을 수 있다면 새로운 경제 질서로 가기 위한 길을 닦을 수 있다.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면, 담화와 선거정치, ,사회적 세력이라는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들에 관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포퓰리스트의 담화를 개발하여 ‘소수 엘리트의 손에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착취와 수탈의 자본주의 모델로 인해 노동자가 더욱 가난해지고 지금의 상황이 그대로 유지되면, 그들의 상황은 더욱 악화만 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강력하고도 다양한 사회운동 세력의 지지를 기반으로 노동자가 정부기구를 장악하게 될 선거연합을 이뤄야 한다. 이와 동시에, 고용주, 지주, 금융기관의 권력에 도전하기 위해 노동운동과 급진적인 사회운동 세력을 형성해 사회에서의 권력 균형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부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일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는 새로운 정치적, 경제적 합의를 제도화하기 위해 그 권력을 사용해야 한다.
금융 주도 성장이 서서히 쇠퇴함으로써 우리에게 그것을 뛰어넘는 방법에 관한 단서를 제공한다. 또한 부채가 증가하고 임금과 생산성이 하락하고 환경 붕괴가 코앞에 다가오면서, 이 모든 것들이 사회주의자들에게는 개입을 위한 전략적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들을 다루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금융자본 자체에 도전함으로써 이것을 만든 시스템의 중심부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다. 이번 장에서는 금융을 사회화하기 위한, 즉 금융 시스템을 공동소유권과 민주적 통제에 두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주장할 것이다. 이는 은행 시스템을 적절히 규제하고, 민간에 의한 신용 창출을 대체할 새로운 ‘공공 금융기관’을 설립하고, 경제 전체에 걸쳐 소유권을 지속적으로 사회화하는 역할을 담당할 ‘국민을 위한 자산관리자people’s asset manager’를 양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제도의 민주화는 금융이 특권을 가진 엘리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해서 작동할 것을 보장해줄 것이다. 금융의 사회화는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의 차이가 서서히 사라지게 해줄 것이고, 머지않아 우리가 자본주의를 완전히 뛰어넘게 해줄 것이다. 역사가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다면, 자본주의의 종말은 자신이 태어난 곳인 영국에서 시작될 것이다.(271~278)
부유세의 의미
마르크스가 같은 제목의 저작을 발간한 지 146년이 지난 2013년에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을 출간했다. 이 책은 비록 서문 다음까지 읽은 사람이 별로 없지만 금방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피케티는 이 책에서 ‘우리 시대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부에서 나오는 수익률이 경제 성장률을 능가하는 경향에 있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부가 매우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어서, 이는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이 경향이 유일하게 잠시 중단된 때는 전후 자본주의의 황금시대였다. 당시에는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전후 합의에 의한 정치의 조합이 부의 불평등을 상당히 감소시켰다. 1970년대 이후 부의 불평등은 급격하게 증가했고 이것이 아직 2차 대전 이전 수준에 도달하지는 않았지만, 피케티는 지금의 추세를 보면 머지않아 그 수준에 도달하게 될 것을 우려한다. 실제로 그는 150년 전에 마르크스가 확인했던 문제인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가 창출한 가치와 그가 받는 임금의 차이에서 이윤이 발생하는 것에서 경험적 증거를 찾아냈다. 거의 모든 경우, 자본주의 체제에는 자본에 대한 수익이 노동에 대한 수익을 능가하는 경향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향은 금융 주도 성장의 특징에서 알 수 있듯이, 이윤과 소득이 금융시장으로 갈 경우 혹은 지대추구 계급으로 넘어갈 경우에 더욱 강화된다.
피케티는 마르크스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의 저작은 상당히 경험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주류 경제학이나 다른 경제학이론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다. 그로 인해 분석의 품질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거기에는 뚜렷한 결론이 들어있다. 피케티는 이런 추세에 합리적으로 대처하려면, 자본세를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주장하는 부유세는 국가가 완전고용을 제공하거나 복지제도를 확충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경제학의 틀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세력 간의 권력 균형과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싸움에 의해 경제적 결과가 형성되는 정치경제학이론을 제시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자본뿐만 아니라 권력도 가진 자들이다. 그 어떤 것에도 복종하려는 부자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도, 우리가 자본가가 아니라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는 정부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대기업과 시티오브런던이 장악한 정부가 무엇 때문에 자신의 핵심 지지층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하려고 하겠는가. 정치인들은 글로벌 부유세를 추진할 능력은 두말할 것도 없고 동기조차도 없다. 실제로 권력기구의 정치인들은 지금의 위기에 대처하려는 동기가 전혀 없고, 바로 이 사실이 오늘날에 널리 퍼져있는 특이한 정치적, 경제적 조건을 창출하고 있다.
피케티의 부유세는 현재의 제도 구조를 수정하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해결주의solutionism를 보여주는 주요 사례다. 그는 권력이나 정치, 또는 다른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현대통화이론modern monetary theory, 토지가치세land value taxation,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처럼 최근에 유행하는 급진적인 사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똑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이것들은 위로부터 사회가 변화할 수 있고, 한두개의 급진적인 정책 변화로 경제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가정에 바탕을 둔 일종의 기술관료주의적인 유토피아주의라 할 수 있다. 이 정책들은 대부분이 타당하고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지금 있는 곳에 어떻게 도달했는지를 먼저 생각하지 않은 채 이것들을 때론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규정한다. 부유세에서 토지가치세, 금융 개혁, 주택 개혁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책 처방들은 이들이 처한 정치적, 경제적 상황 속에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권력을 이야기하지 않고서 정책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정부는 그들의 주요 지지층이 부유한 엘리트라서 근본적인 경제 개혁에는 관심이 없다. 금융 주도 성장을 지지하기 위한 연대는 자산소유권에 기반을 둔다. 부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 즉 이미 가지고 있는 자산을 투자하거나 임대해서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부를 소유한 사람들이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부유세 증액 같은 의미 있는 금융개혁에 절대로 승복하지 않는다. 그들은 노동자와 자본가의 권력 균형이 무너지고 정부가 채권소유자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는 생각이 서서히 퇴색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위기를 종식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정부의 지출을 늘리길 반대한다. 그들은 1980년대에 등장한 금융자본주의 체제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아왔기 때문에, 이것이 종식되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진 않을 것이다.
부자들이 이러한 연대 속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을 대표하고 있지만 수적으로 가장 우세하진 않다. 3장에서 설명했듯, 금융 주도 성장 모델의 장기적인 지속이 가능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중산층에게 이것이 지속되는 것에 대한 지분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연금과 공공주택의 민영화를 포함해) 민영화와 모기지대출의 증가를 초래한 은행에 대한 규제 철폐의 조합을 통해 달성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연대를 유지하려면,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과 함께 임금 억제가 요구되었다. 여기서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은 자산을 소유한 계급에 금융 주도 성장을 계속 지지하게 만드는 물질적 기반을 제공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주택소유 비율이 감소하고, 주택 가격도 하락하고, 세계적으로는 연금펀드도 위기에 처해 있다. 다시 말해, 합의가 깨지고 있다. 이것이 지속 불가능한 수준의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양적완화에 의해 유지되고는 있지만, 자산시장에서 조만간 터지게 될 버블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것은 정치적 모순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두 개의 유권자 집단의 타협할 수 없는 분열이며, 양쪽 모두를 지지하라는 것은 바로 지금의 상황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부유세를 추진하면 유권자들 중 가장 강력한 분자인 부유한 엘리트들을 소외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본소유권 정치화로 금융 주도 성장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을 분열시킬 수도 있다. 부유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근본적인 분열을 노출시킨다. 그것은 일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과 부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 사이의 분열이다. 금융화의 정치적 목표는 분열을 가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일부 노동자들이 부자들에게 혜택이 되는 체제를 지지하도록 설득하는 것에 있다. 부유세 증액은 경제에서 본질적인 적대 관계를 보여줄 것이고 노동자들의 의식을 고양시켜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정부가 부유세를 절대 추진하지 않는 이유이다.(279~283)
민주사회주의로의 대체
위기 이전의 정치로 결코 돌아갈 수는 없다. 그것은 주택시장 버블이 걷히기 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의 새로운 부채(새로운 신용)를 또다시 창출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부채가 증가하지 않고 자산 가격이 상승하지 않으면, 금융 주도 성장의 경제학은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다. 사람들은 생활수준이 정체되면서 현재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을 가장 잘 충족시켜주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란 생각에 의문을 품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환경 붕괴를 바라보면서, 당장의 이윤을 위해 자신의 미래를 희생하는 경제 체제에 반발할 것이다.
우리는 엘리트에 맞서기 위해 노동자를 단결시키는 선거연합을 결성함으로써, 지금과 같은 정치적, 경제적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이것은 일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과 부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 간의 싸움이다. 오직 재분배에만 의존하여, 소수에게서 권력과 부를 가져와서 다수에게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재조정을 시도하는 것은 지속 불가능할 것이다. 경제 투쟁의 기본적인 노선은 소유권에 있다. 대처 총리가 권좌에 오르고 나서는 영국의 공동으로 소유한 부를 민영화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그것은 자신의 선거연합을 안정시키는 데 필요한 표를 제공해줄 중산층에게 단기적인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영국의 소중한 자산을 매각하는 것이었다. 또한 대처 총리는 자본 이동에 대한 통제를 철폐해서 이러한 모델을 되돌리려는 모든 시도가 자본 도피에 직면하도록 했다. 또한 부자를 위한 감세정책을 추진했고, GDP에 대한 비율로 나타낸 세금 부담이 감소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변화는 정치적, 경제적 권력의 균형을 바꿔놓은 훨씬 더 광범위한 정책들에 의해 쉽게 진행되었다. 이후로 신노동당이 불안정하고 불평등한 시스템을 약간 더 공정하게 만들려고 시도하면서 세금과 지출에 관한 커다란 논쟁이 벌어졌다.
우리는 국가, 공동체, 노동자의 지분과 소유권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사회에서 권력 균형이 자본가에게서 노동자에게로 이동시키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도덕적,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 필요에 의한 발언이다. 부를 사회화하기 위한 계획이 없이는 현재의 모델이 갖는(불평등에서 기후 변화에 이르기까지) 경제적 모순은 계속 커지기만 할 것이다. 피케티는 자본주의 체제에는 자본에 대한 수익이 노동에 대한 수익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금융자본주의는 부채를 기반으로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키는 거대한 투기적 버블을 일으킴으로써 한동안 더욱 빠르게 진행되도록 했다. 이것은 비효율성과 낭비를 조장하다가 결국 터지고 만다. 부의 사적 소유와 불평등한 분배가 계속되는 한, 이러한 양상이 경제를 계속 해롭게 할 것이다. 이후로 등장하는 것은 버블, 불평등의 심화, 사상 유례가 없는 부채 수준으로 규정되고 이윤 추구와 함께 환경 붕괴를 동반하는 금융화된 세상이 될 것이다. 결국 이 모델은 장기적으로 안정적일 수가 없다.
이런 문제를 정부가 경제의 어느 한구석에 개입하면 해결할 수 있는 ‘시장 실패market failure’의 사례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소유의 구조 변화가 정답이 아니라 기업에 대한 규제가 가해져야 하고 사회와 환경에 이익이 되도록 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관점은 환경 붕괴, 독점력 강화, 불평등 심화가 자본주의 체제에 내재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시민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는 계몽된 정부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는 지난 40년 동안 세상의 주요 문제들의 대부분을 해결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탄소가격제Carbon pricing가 기후 변화를 중단시키지 못했고, 경쟁 규제는 글로벌 독점기업의 등장을 가로막지 못했다. 그리고 재분배가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에 분명히 일정한 역할을 했지만,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26명이 세계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가난한 사람들 혹은 거의 40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소유한 만큼의 부를 갖게 되는 상황을 가로막지는 못했다.
진실을 말하자면, ‘시장 실패’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순수 경쟁시장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사과를 구매하는 것에서 기업이 새로운 공장에 투자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장 거래는 정부가 감독하는 제도적 구조 속에서 발생한다. 정부는 시장을 조성함에 따라 거기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의 책임을 져야 한다. 현대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 시장과 신자유주의 정부 사이의 일종의 조인트벤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시장 실패는 자본주의의 실패라고 보는 것이 훨씬 더 이해하기 쉽다.
시장 실패를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 기후 변화, 불평등, 금융 불안정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면, 금융주도 성장을 떠받치는 권력 관계에 위협이 될 것이다. 오늘날 기업이 조세와 규제 회피, 임금 인하와 같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모든 기회를 활용하지 않으면, 미래에는 존재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눠 먹을 게 많을 때는 이런 역학 관계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위기와 결핍의 시기에는 자본주의의 경쟁이 갖는 다윈의 진화론적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경쟁할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를 선택해야 할 때는 사적 이윤의 제단에 바치는 것이라면 지구 자체를 포함해 그 어느 것도 아깝지가 않다. 기업은 임금, 세금, 규제에서 세계적인 바닥치기 경쟁race to the bottom(국가가 외국 기업의 유치나 산업육성 때문에 감세와 노동, 환경 기준의 완화 등을 겨루는 것으로, 자연환경 또는 노동의 환경, 사회복지 등이 최저 수준으로 향하는 것을 의미한다−옮긴이)을 일으키고, 그 과정에서 지구를 파괴하며 규제를 회피할 것이고, 정부를 대상으로 특혜를 얻기 위해 로비활동을 펼치고 또 다른 관할구역으로 가기 위해 지금의 그곳을 떠날 것이다.
오늘날 2008년 이전의 부채 버블이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적, 경제적 거래는 제로섬게임이 되었다. 1980년대에 불평등이 심화되었지만, 대다수는 주로 신용을 얻을 기회가 확대되었기 때문에 형편이 좋아지고 있었다. 부채 버블이 결코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자본주의가 침체되어 가는 추세를 가리는 데에는 잠시나마 기여했다. 오늘날 우리는 저성장, 저임금, 저생산성의 세상에 살고 있다. 대다수 기업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수익성을 저해하는 요소들이다. 글로벌 독점기업이 여전히 수익을 내고는 있지만, 이들이 장기적으로는 경제적, 정치적 불안정을 일으킨다. 한편, 지주와 금융기관은 노동자와 기업으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금액을 뽑아내면서 지출과 투자는 훨씬 적게 한다. 자본가들이 해마다 점점 더 느리게 증가하는 자원 안에서 자기 몫을 늘리기 위해 경쟁할 때, 사회의 나머지 사람들은 침체와 쇠퇴를 경험한다. 우리는 기후 변화를 멈춰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기후 변화에 맞서 싸우는 것이 금융 주도 성장 모델에서 투자자들에게 익숙한 우발 이익을 창출하지 않기 때문에, 이토록 명백한 진실을 계속 회피하게 될 것이다.
개인 주주들은 사회 이익보다 기업의 이윤 극대화를 항상 우선시할 것이다. 그들이 개인으로서 기업의 윤리적 행위를 장려하더라도, 세계 자본의 대부분을 독점하고 있는 대형 기관 투자자들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투자를 하면서, 경쟁 원리에 이끌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오직 하나의 집단으로서 환경과 사회를 우려하면서 이윤 동기를 완화해야 한다는 정당한 동기를 가진다.
이에 대해, 우파 사람과 심지어는 좌파 사람 일부도 사회주의 사회가 오더라도 공익을 추구하기 위해 정부에 의존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주주와 노동자는 그들이 생각하기에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추구하기 위해 기업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할 것이다. 공직자는 스스로 부자가 되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경제적 통제권을 행사할 것이고, 경영자는 기업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정치적 권력을 행사할 것이다. 또한 정치인은 정부의 연장선에서 기업을 바라보기 시작할 것이다. 경영자는 주주에 대한 책임을 지기보다는 국영 기업이 친구의 일자리를 제공하게끔 하거나 자신의 선거구에 투자하거나 정부를 위해 (심지어는 정치인 자신을 위해) 돈을 벌어줄 것을 요구하는 정치인과 공직자를 책임지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지역주의에 빠져든 정치인은 환경과 사회의 폭넓은 문제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기업지배 구조에서는 경영자가 노동자를 통제하는 하향 방식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가 임금을 더 많이 받고 더욱 안정적으로 근무하더라도 민간기업의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소외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으로는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이로부터 혜택을 얻는 사람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흔히 듣는 말은 사회주의가 1970년대의 경제 문제를 되살릴 조짐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즉, 노동조합 위원장과 정치인이 사회 전체를 볼모로 잡아 비효율적인 기업을 상대로 자신의 통제권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1970년대의 영국을 이런 식으로 묘사하는 것은 일종의 파스티셰pastiche(그림 등이 여러 스타일을 혼합한 작품−옮긴이)에 해당하지만, 여기에는 나름의 진실도 있다. 때로는 국유화가 노동 조건과 기업지배 구조를 개선하고 환경 목표를 달성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별로 없다. 또한 규모가 큰 글로벌 국영 기업 중 일부는 가장 비도덕적이고 착취적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주주나 정치인의 이익에 따라 지배되는 기업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지점이 (기업이 국영 기업이든 상호회사이든, 혹은 다른 형태의 공동소유 기업이든 상관없이) 민주사회주의에서 ‘민주’라는 단어가 들어오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노동자는 자신이 의사결정을 담당하거나 다른 의사결정자에게 엄격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최근 노동당이 영국 경제에서 소유권을 민주화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들을 제안했다. 이것은 협동조합부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국유화에서 종업원소유권기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영국 사회기반시설의 주요 부문이라 할 교통, 전기, 가스, 수도 부문은 기업지배 구조에 관한 민주적 모델에 기반을 두고 차기 노동당 정부 아래 국유화될 전망이다. 또한 대기업의 수익과 연계하여 주식 일부를 노동자에게 이전하는 종업원소유권기금이 설립될 예정이다. 상호회사와 협동조합부문에 대한 금융 지원도 강화될 것이고, 소유권을 민주화한 기업이 우대를 받을 수 있도록 공공조달에도 변경이 가해질 것이다. 그리고 만성적인 자금 부족에 시달리고는 있지만, 잠재적인 생산성이 높은 부문을 대상으로 직접적인 금융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국립 투자은행National investment Bank을 설립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해야 할 것은 이보다 훨씬 더 많다. 현재 상태에서는 노동당의 선언문이 전후 합의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읽힌다. 이것은 21세기 금융자본주의의 관점에서는 급진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민주주의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처럼 방어적인 입장을 취할 여유가 없다. 그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민주사회주의를 위해 싸워야 한다. 이것이 더 나은 체제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모델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체하지 못하면 이것의 붕괴가 어떤 파멸을 초래할 것인지 예측도 불가능하다.(283~291)
[출처] 금융도둑
STOLEN: HOW TO SAVE THE WORLD FROM FINANCIALISATION(2019)
그레이스 블레이클리 지음, 안세민 옮김, 책세상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