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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몸치의 댄스일기12 (마누라 흉보기)
2003년 5월 22일 새벽에
요즘은 시간이 너무 없어서 댄스연습도 제대로 못했다. 일기는 써나가야 하는데 꺼리가 없어서....
강원도 주천에 있는 내 숙소에 자주 내려가는데 요즘은 전에처럼 광적으로 연습은 못한다. 너무 피곤해서 들어오면 쓰러져 자빠지거나 업무에 대한 예민한 신경 때문에.... 슬픈 일이다.
그래도 지방숙소에서는 나 혼자 있으니까 양말만 신고 그 외는 발가벗고 그렇게라도 마음 내키면 운동 삼아 연습을 하면 되는데...
그렇게 터득된 요령으로 집에서도 얼마든지 운동 삼아 연습은 가능한 것 같은데...
그래서 집에서도 운동하는 방법이라고 둘러대고 공개적으로 연습을 시도할까를 몇 번 생각해보았지만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서 사실 열 받는다.
왜냐하면 아무리 우리 마누라가 댄스에 대해서 모른다지만 왈츠 기본 스텝과 홀딩자세를 취하면 "무슨 운동이 그래?" 라며,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설사 홀딩자세를 안 취하고 발동작만 한다 해도 아무래도 의문을 가질 것 같다. 마눌의 의식으론 운동이면 뛰거나 굽히거나 뭐, 대충 그런 쪽으로 여길 텐데. (무식하긴...ㅋㅋ)
이렇게 불안에 떨지 말고 자수하여 광명 찾을까 곰곰 나 혼자 생각도 해보았지만, 아무래도 그건 안 될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울 마눌은 댄스 한다는 건 도저히 용납 안 해줄 거고 이해도 안 해줄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같이 하자고 해도 그걸 같이 해줄 위인도 아니다.
내가 벌써 그 여자 하나만 데리고 이십 일 이년을 살고 있는데 그 성격이나 속을 모를 리 있겠는가.
울 마눌이 댄스 하는 걸 왜 그렇게 예민해 하는가 하면 난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일단 댄스는 어떤 명분이든 여성과 스킨십이 이루어진다는 것 때문이다. 글타구 마눌 하고는 도저히 함께 댄스를 할 운명은 아니고.
본인이 그런 걸 질색팔색임을 내가 너무 잘 알고 있다.
글구, 사실 나도 댄스를 안 하면 안 했지, 그 인간하구는 할 마음이 조금도 없는 게 진심이다....ㅋㅋ... 안 하구 말지. 내가 그 인간하고 할 바에야...ㅎㅎ...(이 문구를 만약 울 마누라한테 둘키면, 난 이혼 정도 당하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진짜, 생물학적으로 바로 죽음이다)
난 취미생활을 이것저것 무지하게 많이 접해봤다.
이것 쬐끔 저것 쬐끔, 요것 찔끔 조것 찔끔.
취미생활이라기 보다 충동적인 호기심 해소랄까.
끝까지 완성시킨 건 하나도 없지만... 한 번 미치면 물불 안 가리고 홀딱 미쳤다가 금방 싫증내고... 누구나 그런 경험은 한번쯤 있지 않을까. 난, 한번쯤이 아리라서 탈이지만.
대금을 배운다고 한때 미쳐서, 대금 선생님과 목포까지 내려가서 갈대 속에 있는 대금 [청]-대금 소리를 내는 떨림판-을 따러 내려갔다 오기도 했고.
판소리로 유명한 명창선생님(조상현 명창)으로부터 소리 배운답시고 지리산 뱀사골에 틀어박혀서 보름간 합숙훈련도 받아 봤구. 그래서 판소리 북도 가지고 있다. 판소리는 그 선생님 말고도 두 분 선생님께 더 배웠다.
가요학원에 노래 배우러 다니고.
풍수지리 배운다고 풍수 선생님과 전국의 명당이란 묘지를 1여년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덕분에 풍수지리에 관한 전문잡지에 글도 기고하고 책도 한 권 썼지만.
수맥 탐사하는 걸 배운다고 추와 기역자 쇠꼬챙이를 들고 다니며 별 짓 다하고.
주역 배울 때는 팔 쾌 뽑는다고 대나무가지 들고 점쟁이처럼 굴기도 하고.
골프는 기본으로 했고.
수상스키 배우다가 청평 호수에 빠져 죽을 뻔 하기도 했고
수영(다이빙) 배운답시고 10m 점프대에서 뛰어내리다가 허리가 꺾인 채 물에 빠져서 잠자리채에 구조되기도 했고.
또, 뭐가 있더라. 하두 많이 벌려봐서 나 자신도 다 기억을 못 하겠다. 아, 참 또 있지.
낚시에 미쳐서 맨날 낚시동우회를 따라 다녀봤지만 저수지 낚시든 바다낚시든 낚시는 내 체질에 안 맞았다. 고기는 안 잡히고, 고기가 오히려 날 잡으려고만 드니.
등산 같은 건 취미랄 것도 없지만 다닐 때는 시도 때도 없이 막 다닐 때도 있었다. (그 덕분에 박스 베이직 연습을 아무리 오래해도 다리도 안 아프고 피곤하지 않는 것 같다)
현재는 색소폰과 댄스에 중독된 상태이고. 색소폰은 댄스에 비해 요즘은 시큰둥한 편이지만...
취미생활 외에도 컴퓨터나 인터넷에도 많은 투자를 했다. (비용 시간 노력 등) 각종 전문 프로그램이며, 리눅스, 서버관리, 홈피 만들기는 기본, 드림위버 포토샵 등 이미지 다루는 기술. OA(워드, 엑셀 등)은 기본이구.
이제 어지간한 건 별로 관심 없지만.
그래도 아직 몇 가지는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
행글라이더와 경비행기 조종.
그것보다 사실은 틈만 생기면 일 벌릴 거 하나 있긴 한데. 그것도 마누라가 입에 거품 물고 못하게 말리니. 자기를 먼저 죽이고 하든 말든 하라며...
예전부터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무지하게, 짱으로, 멋있고 큰 사이카 한 대 사서 타보고 싶은 거였다.
롱부츠를 신고 머리칼이 뒷 허리까지 내려뜨린, 글구 몸에 착 달라붙는 가죽 자켓과 바지를 입은 쭉쭉빵빵 뒤에 딱 한 명 달고, 쭉 뻗은 경춘가도를 바람처럼 한 번 땡겨 보는 거. (ㅋㅋ... 상상만 해도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ㅎㅎ)
예전부터 할리데이비손 한 대 장만하려고 군침 흘리는데. 그것도 마누라가 죽기 살기로 말려서. 쩝, 그거 타는 인간치고 다리 안 부러지고, 마무라 생과부 안 만드는 거 본적 없대나 뭐래나면서. 더군다나 난 몸무게가 가벼워서 더 사고가 나기 쉽다나.
우쒸, 경춘가도에 그런 족속들이 떼 지어 질주하는 걸 보면 난 열받아서. 차로는 아무리 밟아보아도 못 쫓아가겠더군, 씨이...
그치만 아직 실망하긴 이르지롱, 내 마음은 나도 몰라서, 한번 마음속에서 욕망을 느낀 건 어느 순간에 어느 날 갑자기 사고를 칠지 아무도 모르니까....ㅋㅋ
난, 내 생업에 관련된 일 외에도 무언가에 빠져들고 미쳐야 살맛이 났다.
그리고 마누라가 그런 걸 인정하고 위에 열거한 어지간한 건 눈감아주는 편이다. 오토바이만 빼고.
근데, 유독 댄스만은 거부반응이고, 여성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거라고 고리타분한 사고에 빠져있는 게 안타깝다.
나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경험에 의하면 내가 누려본 모든 취미생활에는 다른 여성들이 많이 참여했었다.
풍수지리에도 심취한 여성들이 있었고, 컴퓨터 학원에는 무지 많았고. 판소리 배우는 데는 더 많았고.
단지 현재 하고 있는 색소폰은 나와 함께 배우는 여성은 없을 뿐이다.
남편이 여성과 접촉하는 걸 경계한다면 굳이 댄스 말고도 다른 취미생활이나 사회생활에도 빈번한 게 현실이다.
글타구, 울 마눌이 의부증 환자라서 남편이 여성 근처에도 못 가게 하는 게 아니란 건 내가 더 잘 안다.
나 자신부터 댄스 배우는 걸 실토하고 싶지 않는 건 왜일까?
댄스를 시작하고 꼬리가 길면 어차피 탄로 나지 않을까 불안해서, 내 스스로 실토하려고 했지만. 내 직감으론 그것만은 비밀로 하는 게 옳을 것 같다는 판단이다.
그래서 작은 아이 녀석한테만 살짝 고백하고, 비밀을 지켜 달라고 할까도 생각해봤지만, 그것도 안 될 것 같았다. (난 비밀을 혼자 간직하고 있지 못하는 편이다. 입이 가벼워서... 입술이 근질거려서... 글구, 자랑하고 싶어서....ㅎㅎ)
사실, 녀석과 나와는 어떤 비밀도 없는 관계인데, 이번에는 비밀이 하나 생겨서 나로서는 더 좋은 일이다...ㅋㅋ
어지간한 건 녀석과는 비밀 없이 지낸다.
예를 들어, 내가 "야, 똘아-내가 부르는 녀석의 애칭- 나, 오늘 무지하게 쭉쭉빵빵하게 빠진 무지무지하게 예쁜 여자 봤다." 라든가, 뭐 그런 시시껄렁한 소리들뿐이지만.
내가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할 얘기도 녀석하고만 통한다.
그러면 녀석은 "그래? 많이 예뻤어? 아빠 맘에 쏙 들었어?"하고 꼬치꼬치 부연해서 묻는다.
난, "응, 응." 혹은 "그럼, 당근이지."하고 더 신이 나서 떠벌이곤 한다.
녀석은 다 듣고 있다가 나중에는 "아빠 간이 배 바깥으로 나온 거 아냐?" 하고는 "내가 이 사실을 엄마한테 고자질하면 어케 되는 줄 알지?" 하며, 결정적으로 녀석이 무슨 일이 불리할 때, 나 협박용으로 써먹거나, 그걸 미끼로 공갈협박해서 현찰 뜯어내는 수단으로 써먹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화할 상대는 녀석밖에 없다. 애비를 불안에 떨게 해서 돈 욹어 가지만 여태껏 정말로 그런 얘기를 제 엄마한테 고자질 한 적은 없다. 내가 지레 겁먹고 자폭하는 경우는 많지만.
이번에도 입이 근지러워서 녀석에게 댄스 배우는 걸 자랑하려고 생각했는데, 이번만은 내가 참기로 작정했다.
따지고 보면 나가 마누라한테 약점 잡힐 어떤 여자문제도 일으킨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내 생각에는.... 근데, 마누라 입장에선 아닌 것 같은 눈치라서.....
나는 진짜루 맹세코 여자와 말썽 피고, 가정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다고 생각되는데...
마누라는 내가 무슨 취미생활에 몰두하고 있을 때는 안심한다.
내가 취미생활을 안하면 여자문제를 일으킬 위험남편으로 낙인찍힌 것 같다.
사실, 나도 뭘 배우는데 미치지 않으면 과거에는 젊은 언니들과 어울려서 한두 번 정도 미사리니, 양수리니 라이브 카페 촌 같은데 좀 다니고, 음식도 함께 먹고 그런 적은 솔직히 있었다. 그거야 어떤 남자든 한두 번 안 그런 적 있겠나, 씨이.
난, 드라이브나 식사 외에는, 그 이상도 이하도 의심받을 일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맹세코 진실로 하느님 앞에서도 부처님 앞에서도 신령님 앞에서도 울 사부님들 앞에서도 맹세할 수 있다.
근데, 울 마눌은 그런 남편의 결백을 인정해주진 않구.
내가 무언가에 취미활동에 몰두 안하면 자기 남편을 시한폭탄으로 취급하니. 난, 정말 억울하고 분할 따름이다.
근데, 딱 한 번 마눌한테 약점 잡혀서 서초동 가정법원 이혼전담 여자 판사 앞까지 끌려간 적은 있었다.
아이구, 그때 생각하면 끔찍하구 몸서리가 처진다.
사람이 재수가 없으려니까 드럽게, 엉뚱한 데서 마누라한테 티 잡힐 일이 터지더구만 쓰바... (지금 생각해도 욕이 튀어 나오네.)
그땐 된통 당해봤기 땜에 지난번 장충체육관에서 [동아댄스대회]때도 방송국 카메라를 드럽게 의식했다.
어느 구석에서 내 얼굴이 찍힐까봐서.
지금부터 5년 전쯤, 내가 제주도 지역에 사업을 활발하게 할 때였는데, 사업도 잘 되고 해서 끗발 날리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곧 IMF가 뭔가 터졌던가.
제주도에 늘씬하고 예쁘장한 우리 사무실 여직원과 갔다가 태풍 때문에 비행기가 못 떠서, 공항대합실에서 얼쩡거리고 있는데, 제주도 무슨 방송국에서 뉴스화면 찍는다고, 공항대합실의 초조한 승객들의 표정을 담았는데.
하필이면, 내가 그 여직원하고 거기 있는 걸 찍혀 갖구, 쓰바, 에이쉬 (지금 생각해도 입에서 막 무엇이 튀어나오네, 쓰바.)
그게 9시뉴스 시간에 나가는 바람에, 흑흑.
난, 찍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으 지금 생각해도 소름 끼치고 치가 떨린다 덜덜덜.
근데, 그 사건도 따지고 보면 난 정말 억울한 희생자일 뿐이다.
그 여직원과는 아무런 일도 아니었구. (흔히 말하는 남여문제가 아닌데.)
난, 그냥 사업차 가는 길에 그날따라 혼자 가기가 적적해서 같이 회나 먹자고 하니까, 걔가 냉큼 정말 따라 나서길래...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데리고 간 것뿐인데. (누가 그렇게 걔가 쉽게 따라 나설 줄 알았남.)
아침에 갈 때는 정상적으로 비행기가 떴는데, 오후부터 갑자기 날씨 때문에 결항이 생기고... 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발이 묶여서 우왕좌왕 하고 공항이 미어터질 듯 했다.
그날 오후부터 태풍권에 들어갔다며 각 방송국에서 나와 공항 표정을 찍었던 모양이다.
난, 방송국에서 찍는 것도 모르고 전광판에 항공기가 이륙하는 상황만 지켜보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 여직원이 바싹 내 옆에 붙어서 거의 팔짱을 끼다 시피해서.
근데, 마눌한테 더 덤터기를 덮어쓴 원인은 평소에는 그런 짓 안하는데... 그날따라 위에는 얇고 새하얀 남방셔츠를 입고, 제일 위 단추는 풀어 젖히고 두 번째 단추에다 시커먼 안경까지 걸치고 있었던 게 사건을 더 크게 만들 줄이야. 차라리 안경을 끼고나 있었더라면 마누라가 난 줄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게 또 빌미가 되어서 멋을 있는 대로 부리고 젊은 여자와 전형적으로 바람피우는 중년 남자 스타일 아니냐고 몰아부쳐서, 고스란히 난 누명을 덮어써야 했던 것이다.
그날은 밤늦게 어찌어찌 바람이 좀 잠잠해지니까, 각 항공사에서 특별기를 띄우고 승객들을 수송해 주었다.
난, 대기자 명단으로 기다렸는데 (그때, 대한항공에 내 마일리지가 많이 쌓였던 덕분에 임시항공편을 우선적으로 탈 수 있었다.)
근데, 그 항공기는 난 또 일생에서 딱 한 번 타본 1등석이었다.
사람이 워낙 많이 밀려 있다 보니까 대한항공에서 임시 편으로 가장 큰 비행기를 내줬는데, 2층의 최고 특실에 내 좌석을 배당해주어서, 처음으로 이층 퍼스트클래스를 타본 것이었다. 외국 갈 때, 10시간 이상도 이코노미 클래스 밖에 이용 못했는데.
그 기종은 평상시에는 장거리 국제노선만 배치되는 대형점보기였다. 외국 나갈 때, 그 자리 값은 일반석의 몇 배나 비싸기 때문에 나 같은 넘이야 비싼 돈 주고 그 좌석은 앉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발이 묶일 뻔 하다 최고급 좌석에 앉아서 1시간 정도 오는 게 아쉬웠지만, 어쨌든 김포공항에 도착되어서 다행이었다.
그래서 여직원은 전철타고 집에 보내고,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집에 딱 들어갔는데....
이건 집안 분위기가 영 아니었다. 12시쯤 됐지만 평소에도 그 시간 정도에 들어오는 경우는 많은 편이었지만.
마누라는 나를 보고도 말도 안하고, 찬바람만 쌩 나며, 아예 나를 외면해 버렸다.
난, 좀 늦게 들어와서 그런가 보다 하고,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하룻밤 자고 아침에 토껴버리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그 밤은 지나갔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려는데 마누라는 밥도 준비 안 해주고, 식탁의자에 돌부처처럼 앉아 있었다. 느낌이 전날 밤부터 거기 그 자세로 있었던 기분이었다.
낌새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나도 대충 옷만 걸치고 빨리 그 자리를 탈출해버리려고, 문을 나서는데, 마누라가 불러 세웠다.
잠깐 자기 좀 보고 가랬다.
내가 문을 나가려던 걸음을 멈추니까, 자기 있는 데로 와보라고 해서, 신었던 구두를 다시 벗고 식탁으로 갔더니 맞은편 의자에 좀 앉아 보란다.
분위기가 영 이상한 느낌을 받긴 받았다. 평소에 마누라가 안하던 짓이었다.
이건 남편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 마님이 머슴 부리듯 선생님이 학생 다루듯.
사실 그땐 마음이 조마조마 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어리석었다. 지은 죄가 쬐끔이라도 있었으면 그냥 문에서 마누라가 불러도 냅다 토끼고 봐야 하는 건데. 나중일은 나중일이고. 나도 참으로 멍청한 넘이었다. 소나기는 피하고 봐야 하는데...
마누라가 물었다.
솔직히 말해보래. 어제 누구랑, 어디 갔었는가를.
난, 이크 싶었다. 안 찔릴 수 없었다. 어디서 어제의 내 행적에 대한 정보가 샛나 보다는 직감은 그때서야 들어서...
난, 그래도 시치미를 딱 떼며...
뭘...?
하고 반문했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져서 난, 독안에 든 생쥐 꼴이었다.
마눌은 앞니를 꼬옥 깨물며, 입술을 바싹 오므렸고, 그 모습은 처음 대하는 무시무시한 인상이었다.
"어제 어떤 *하고, 어디 갔었냐고."
하는 모습이 무지하게 독이 올라있었고, 난 그 기세에 눌려 속으로 떨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마누라가 무서웠다.
"가긴 어딜 가, 일보러..."
내가 우물우물 얼버무려 하는데...
"이 나쁜 **!"
하면서 금방이라도 내 뺨을 갈길 것 같은 태세에 눌려 난 더 이상 변명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는 결국 마누라는 제 분에 못 이겨, 화닥닥 내게 달려들어 내 머리칼을 갑자기 잡아채서 흔들어대는데, 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쓰바, 그때 뽑힌 머리칼이 아직까지 안 돋아나서 난, 결국 가운데 머리칼이 헬기장이 돼 버렸다.)
우와, 그때 마누라 모습이 되게 무서웠다. 꼭 마귀할멈 같기도 했구.
거기서 내가 더 대꾸하거나, 대들었다간 날 정말 씹어 먹어 버릴 것 같았다. 일단 내가 거기서는 꼬랑지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억울하기는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밤 9시뉴스가 나가자마자 고종사촌 형수님이 그 화면을 보고 재까닥 울마눌한테 전화를 해서 바람을 잡은 것도 알았지만.
마누라는 뉴스 같은 걸 잘 안 보는데 하필이면 그 시간에 마누라도 직접 본 모양이었다. 그치만 마누라는 깅가민가 하는 상태였는데... 사촌 형수님이 전화해서 확신을 심어주어서 그만.
그 고종사촌 형수님은 그 형님이 고등학교 2년 선배인데, 형님과 형수님이 결혼 전에 사귈 때, 나도 울 마눌을 만나고 있었는데, 그 커플과 잘 어울려 다녀서 함께 술도 마시고 나이트도 가고 해서 울 마누라와 그 형수님은 친구처럼 잘 통하는 사이였다.
글구, 얼마 후에는 죄 없는 그 여직원은 울 마눌한테 억울하게 짤리고. 지금 생각해도 죄스럽고 미안할 따름이다.
마누라가 막 씹어대니까, 그 여직원은 못 견디고, 제 발로 나갔지만. 지금도 난, 울 마누라가 쫓아낸 거라고밖에....
흑흑, 착한 애였는데....
그래서 미안하기도 하고, 죄스럽기도 해서 얼마 전에도 한 번 찾아보려고, 심부름센터에 상담까지 했는데.
지금쯤 결혼해서 잘 살고 있을 것 같아, 혹시라도 또 피해를 줄까봐서 내가 포기했지만....
그후 계속 그 사건이 꼬투리가 되어서 대판 싸우고, 마누라와 이혼하기로 합의하고서 호적서류 다 챙겨서 서초동 가정법원 판사님 앞에까지 섰는데....
근데, 막상 여자 판사가"두 분이 이혼합의 된 거죠?"하고 물어서,
난, 서습없이, "예!" 하고 씩씩하게 대답했는데...
마누라는 판사 앞에서 엉뚱한 소릴 하면서 그제야 꼬리를 내렸다.
뭐, 자기는 이혼을 하기는 하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 현금을 딱 얼마 내놓아야 한다구.
금액을 밝히기도 쪽 팔리게.
누가 들어도 현금으로 그 자리에서 당장 내놓을 수 없는 금액이었다. 재벌이 아닌 이상.
그러니까 그 여자 판사가 물끄러미 마누라를 쳐다보더니,
"다시 가서 서로 합의해서 오도록 하세요. 여기는 협의이혼만 취급하니까, 위자료를 다시 청구하려면 정식으로 이혼재판을 하라면서..."
속이 뻔히 보이는 변명 아닌가.
그 머리 좋은 판사님들이 마누라의 속마음을 못 읽겠는가.
개가 들어도 "멍멍..." 하고 웃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혼할 마음도 없으면서 끝까지 나를 이겨보려다, 내가 정말 강하게 나가니까 그제야 판사 앞에서 꼬리 내리는 꼴이란, 지금 생각해도 통쾌 유쾌 상쾌다... ㅎㅎ.. 승리의 기쁨을 그때서야 만끽할 수 있었다.
판사실에서 그렇게 얘기하니까 어떤 여자가 와서 우릴 데리고 옆방 상담실로 데리고 가서, 다시 서로들 한 번 더 생각해보라며 중재를 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각각 거기를 나와서 집에까지 왔고, 그 이후론 마누라가 이혼하자는 말은 입 밖에도 꺼내지 않는다.
난, 지금이라도 이혼하자면 얼씨구나 하고 대환영이니까.
대신에 요즘엔 내가 비윗장 뒤틀리면, "이혼도 못해주면서... 내가 보따리 싸서 가출해버린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면 마누라는 꼼짝도 못하고 설설 기지롱...ㅎㅎ... (매우 유쾌한 장면임.)
여자문제는 문제 같지도 않는 이 정도 사건밖에 없는데, 마누라는 내가 무슨 취미생활에 미치고 몰두하지 않으면, 곧바로 여자와 관련된 사고를 낼 그런 위험인물, 전과자로 취급하는 듯하다.
그래서 무슨 취미생활이든지 내가 몰두하는 걸 반대 않고 무조건 인정해주고 잔소리도 안하는데, 유독 댄스만은 그렇지 않을 것 같아서.... 나도 고백할 수도 없구. 안하자니 자꾸 알리바이가 안 맞구. 약간 고민된다.
나두 억울하기 그지없다.
여자문제로 사고다운 사고는 제대로 한번 쳐보지도 못했는데.
마누라는 왜 나를 자꾸 전과자로 취급하는지.
하늘 같이 위대한 자기 남편을 일 낼 인간이라며 시한폭탄 취급하는지.
결혼하기 전에야 나도 쬐끔 아주 미세한 정도로 쬐끔은 그런 적 있었지만...ㅋㅋ
어쨌든, 지금은 마누라를 택할래 댄스를 택할래 양자택일하라면 난, 댄스 초이스다.
이제 점점 더 재미있어지고, 앞으론 더 재미있을 것 같구.
대부분 다른 취미생활은 시작해서 평균 두 달이면 끝장 나구 길면 6개월이었다.
댄스를 시작한지 벌써 3,4개월 접어들었고 지금부터 슬슬 더 구미가 당기고, 재미도 느껴 지고.
댄스는 6개월이 아니라 6년 할 수만 있다면 (죽지않고) 앞으로 60년이라도 더 갈 것 같은데...ㅎㅎ
에라, 모르겠다.
마누라한테 들킬 때 들키더라도 이젠 아예 노골적으로 댄스에 미쳐버려야지...ㅋㅋ
[오늘은 연습일기가 아니라 심리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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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티
ㅎㅎㅎ... 님 의 심리일기 넘 재미 있슴돠. 남 들이 갖을래도 잘 안되는 정수리 상부에 헬기장까지 보유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03.05.22 08:25
답글
비비안
잼 있게 잘 봤는데여...... 저두 그런 마누라 되면 어쩌죠? 음... -.- 03.05.22 11:35
답글
2003년 5월 22일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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