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8편은 표제에서 역사적인 배경과 시인을 확실하게 언급한 시입니다. 여호와의 종 다윗에게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와 사울의 손에서 건져 주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는 원수에 손에서 건저 주신 것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시입니다.
1절에서 3절을 보시면 먼저 시인은 찬양의 선포로 시작합니다. 감사 시에서 일반적인데, 특이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먼저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시인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 쓰이는 말은 자식이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할 때 쓰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 관계를 2절에서 나의 방배,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건지시는 이, 나의 구원의 뿔, 피할 바위로 말합니다. 이 용어들은 모두 전쟁 용어로서 피하고 숨고 막아 내어서 결국은 승리를 쟁취하는 것을의미합니다. ‘나의’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자식과 부모의 관계처럼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기를 극진히 살피시고, 시인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보여줍니다. 3절은 이렇게 번역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찬송 중에 여호와를 부르니, 이는 내가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찬송의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이미 얻은 구원에 대한 감사의 반응입니다.
4절에서 6절을 보시면 어떤 상황에서 시인이 구출을 받았는지 말하는데, 그것은 죽음을 바로 직면한 상황을 묘사합니다. 사망의 줄이 자기를 두르고 불의의거센 물결이 자기를 두렵고 하고, 사망의 올무가 자기에게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것은 다윗이 특정한 한 상황을 회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직면했던 수많은어려움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란은 시인 뿐만 아니라 오고 오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겪을 수 있는 상황을 포괄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6절을보면 그런 환란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에 그분이 그의 성전에서 들으셨다고 합니다. 죽을 것 같은 절체절명의 상황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어려움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을 때 주님은 그 분이 계신 곳에서 듣고 응답하셨던 것입니다. 다윗이 성전 근처에만 싸운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가 계신 곳에서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에게 계시지만 성전에 갇혀 계신 분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지만, 동시에 어디에나계셔서 그의 자녀들이 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부르짖음에 응답하십니다.
7절에서 15절을 보시면 그 부르짖음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반응을 하셨는지 보여줍니다. 7절부터 묘사되는 하나님을 보면 화가 많이 나있습니다. 마치 자녀를 괴롭히던 나쁜 동네 형들이나 깡패들에게 화가 난 아버지처럼 아들과 같은 왕을 곤경에 빠뜨린 자들을 처리합니다. 하나님이 진노 하시자 땅과 산들의 터도 요동합니다. 그리고 그의 코에서 연기가 피어 오릅니다. 지진과 뇌우와 홍수가 가지고 있는 무시무시한 상황을 떠올리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면 어떻게 되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7절에서 15절은 그분의 무시무시한 심판을 말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다니고, 회오리 바람으로 높이 올라가시고, 흑암으로 그분이 숨으셔서 찾을 수 없게 만들고, 구름으로 자기를 가리시고 번개를 치게 하고, 우박과 숯불을 하늘에서 내리게 하십니다. 그럴 때에 여호와의 꾸지람을 한 번 하시고 콧김 한 번 부시면 바다가 말라서 그 마른 땅을 드러내고 세상의 터가 완전히 드러납니다. 만물이 완전히 발가벗겨 집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면 안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그분은 친근한 아버지이시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대할 수 있는 분은 아닙니다. 이렇게 한 번의 꾸짖음으로 모든 세상을 벌거벗길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진노의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상상만 해도 후들후들 떨립니다.
16절부터19절은 이런 엄청난 분이 시인을 위해서 움직인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강력한 분이 높은 곳에서 손을 펴서 시인을 붙잡아 줍니다. 많은 물에서 건져내 주시고 강한 원수와 그를 미워하는 자들에게서 건져 주십니다. 그들은 시인보다 강력하지만 하나님은 시인을 붙들어 주셔서 결국 승리하게 하십니다. 18절을 보시면 원수들이 시인에게 날을 잡아 시인에게 재앙의 날로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어떻게 됩니까? 여호와께서 의지가 되셔서 넓은 곳으로 인도해 주시고, 시인을 기뻐하시기 때문에 구원해 줍니다. 여호와께서 왕을 기뻐하고 사랑하는 것이 구원의 이유입니다.
20절부터 24절까지 왜 하나님께서 왕을 기뻐하셨는지 상세하게 설명을 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를 따라 상으로 갚으시고 또 시인의 손의 깨끗함에 따라서 갚으심으로 그를 기뻐하심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시인 다윗 왕이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하게 그의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그의 모든 규례가 그의 앞에 있고 그에게서 하나님의 율례를 버리지 않았고 또 그분 앞에서 완전하여 자기의 죄악에서 스스로 자신을 지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시인인 다윗이 실제로 율법에서 완전하게 행했다고 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완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죄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언약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율법을 지킴으로 언약을 지켰고, 또 범죄하였을 때 언약의 말씀대로 징계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심도 경험하면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안에서 율법을 신실하게 시키고, 그 언약을 깨고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잘못했을 때 회개를 통해서 언약적 징계를 받음으로서 언약 안에 머물러 있음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징계는 회복과 새롭게함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자기의 의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의로움은 죄를 짓지 않는 완전함이 뿐만이라 죄를 지었을 때 징계를 통해서 다시 회복되는 것도 의로운 것입니다. 징계가 가볍거나 견디기 쉬운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진노의 하나님을 경험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죄로 인해서 그의아들을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더 붙들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다윗을붙드셨고, 솔로몬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의에 따라 갚으신 것입니다.
26절에서 30절은 여호와의 신실하심을 노래합니다. 그분은 자비로운 자에게 자신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고 완전한 자에게는 주님의 완전 하심을 보이시고 깨끗한 자에게는 주님의 깨끗하심을 보이시고 사악한 자에게는 주님의 거스르심을 보이십니다. 자비는 지난 시간에도 보았던 ‘헤세드’입니다. 언약의 약속, 곧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나의 하나님이 되겠다는 그것에 신실하심을, 하나님은 왕을 구원함으로 그 자비와 신실하심과 사랑을 보여줍니다. 자비와깨끗함과 완전함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그분의 언약 안에서 닮아가는 사람들에게당신의 성품을 보여주십니다. 이것이 신비입니다. 성품을 닮아갈 수록 하나님을 더 알게 되고 더 닮게 되고 더 알게 됩니다. 또 주님은 주님을 의지하는 백성은구원하시고 교만한 자의 눈은 낮추십니다. 왕은 주님을 철저히 의지하여 주님이 그 길의 등불이 되셔서 그의 어둔 길을 밝히고, 주님을 의지하여 적진에 뛰어들어 그에게 맡기신 백성들을 지키고, 담을 뛰어 넘는 자입니다. 왕을 그렇게 인도하는 것은 다름 아닌 여호와의 완전한 도와 순수한 말씀입니다.
오늘 시편18편 전반부는 시인인 다윗이 자신을 평온 할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셨던 것에 대한 감사를 그분이 어떻게 도우셨는지 회상하며 다루고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시를 하나님에 대한 사랑 고백으로 시작을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 사랑한다고 언제 고백해 보았습니까? 또 하나님께서 주신 것과 구원에 대해서 회상하면서 얼마나 감사했습니까? 한 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또 오늘 시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그렇게 도우시고 인도하신 것은 그를 기뻐했기 때문에 무엇을 기뻐 했느냐 하면 언약을 끝까지 붙들고 하나님께 신실하고 의로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아니라 범죄 했을때 엎드려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형벌을 받고 다시 회복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완전한 도와 순수한 말씀을 붙들고 살아간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 죄에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쉽게 그 죄를 여기지 않고 진노의 하나님을 떠올리고 얼마나 내 죄가 하나님 앞에서 심각한지 깨닫고 회개하고 그죄 마저도 용서하시는 아버지와 같은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붙들고 죄를 미워하며 의로운 싸움 싸우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