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글쓰기14-2
창희와 현아는 왜 종적 자아인가? (사소)
현아는 이를테면 '추락한 천사' '타락한 마리아'다. 창희가 고객인 편의점 점주로부터 한 시간씩 통화서비스 해야되는 것을 해결키 위해 본인이 헤어진 여자 친구이라고 속여 구해주고, 창희를 무지 힘들게하는 직장 상사를 날 잡아서 패주겠다고 해결사를 자처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차가 없어서 여자 친구에게 차인 창희의 넋두리를 들어주고 위로해 주는 베프였다. 하지만 현아는 늘 술과 나이트클럽과 남자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돈다. 암에 걸린 전 남자 친구를 간호해줬다는 죄목으로 남자 친구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하는데, 늘 그녀의 삶은 정리되질 않은 난장판이다.
5억 잔고를 찍어주며 자길 보러 오길 원하는 전 남자 친구. 엄마 손은 붙잡고 죽기 싫다는 남자의 엄마를 피해 도망가며 소리치는 현아. 그녀는 세상에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지 가장 적나라하게 목도하며 그들의 손을 잡아주려다 중력에 견디지 못해 갈증과 허기를 채우지 못해 아래로 아래로 끊임없이 추락하며 살아간다.
현아는 친구 미정에게
"나는 갈망하다 죽을 거야. 너는 나처럼 갈구하지 마. 다 줘, 전사처럼 다 줘. 그냥 사랑으로 폭발해버려"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인간의 괴로움의 본질을 다 알고 본 여자다.
이후 창희의 여자 친구가 되지만 방황을 빠져나오지 않고 회복되지 못한다. 그녀는 미정이에게 '말'에 대해 말한다.
" 어느 지점을 넘어가면 말로 끼를 부리기 시작해. 말로 사람 시선 모으는데 재미 붙이기 시작하면 막차 탄 거야. 내가 하는 말 중에 쓸데 있는 말이 하나라도 있는 줄 알아? 없어. 하나도. 그러니까 넌 절대 그 지점을 안 넘었으면 좋겠어. 정도를 갈 자신이 없어 샛길로 빠졌다는 느낌이야. 너무 멀리 샛길로 빠져서 이제 돌아갈 엄두도 나지 않아."
생사를 오가는 전 남자 친구에 대한 인간적 연민인지 의무감인지 그를 돌보면서도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비틀거렸다. 임종을 맞는 것까지 창희가 대신하게 하고, 성실하게 변한 창희의 여친이 되지만 승천하려던 천사가 지루한 일상을 견디지못해 다시 떠도는 길 잃은 천사. 마리아는 출구를 잃었다.
창희는 특화된 주둥아리가 가비여운,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며 비굴하게 경기도와 가난 탈출 기회만 노리던 행실도 유치 졸렬한 소시민이었다. 차가 없다고 떠나버린 여자 친구, 점주 기회를 채간 여우 같은 상사, 심지어 아버지까지 어떤 말을 해도 창희를 믿어 주지 않는다. 그러나 유일하게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창희를 믿어주고, 편이 되어 도와주겠다는 엄마. 그러나 창희는 그런 엄마의 임종을 목도하면서 변곡점을 밎는다.
장례를 치른 후 창희는 서울로 입성한 뒤 무섭게 변한다. 아버지를 새장가보내고 새로 시작한 편의점 사업에 망하지 않기 위해서 어금니 꽉 깨물고 밤낮으로 성실하게 일하면서 찍소리 안 하고 눈물 나게 빚을 다 갚는다. 그러면서 그는 쏟아지는 말들을 혀끝에서 밀어 넣고 삼키는 그야말로 어른이 된다.
1원짜리 77억 개를 쌓아야 산이 된다고 했던, 매일 산을 쳐다보던 구 씨의 말을 기억하며 창희는 자신을 지칭해 초라한 1원짜리가 참 요란하게 산다고 했다. 하지만 엉겁결에 "있어줘야 되지 않나?'는 생각으로 떠안게 된 임종 지킴이를 해내면서 ' 현아의 도움만 받던 기다려주 어느 순간에 도움을 주고 기다려주는 존재'로 현아와 위아래로 종적 크로스 한다.
창희는 현아의 전 남자 친구 혁수의 임종을 지키며 " 나 여깄어 " 하면서 손을 잡아 주며 했던 말.
" 이거 팔자 같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다 내가 보내드렸잖아. 희한하지? 내 나이에 임종 한 번도 못 본 애들도 많은데. 근데 난 내가 나은 거 같아. 보내드릴 때마다 여긴 내가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거든. 귀신같이 발길이 또 이리로 오네.
형! 내가 세 명 보내봐서 아는데 갈 때 엄청 편해진다. 얼굴들이 그래. 그러니까 형, 겁먹지 말고 편하게 가.가볍게."
죽음 지킴이로 점점 성숙해가는 창희.
창희는 죽음이라는 깨달음의 계단을 통해 점점 구원의 길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리고 손을 잡아주며 인간 세계의 신이, 산이 되어간다. 믿을 '신'이나 종교적 절대자를 부르는 '신'이 묘하게 같은 글자다. 엄마의 믿음이 창희를 변모시켰을까? 거기에 점 하나 찍으니 산이 되니 둘 다 높이 있긴 하다.
10년 동안 모은 사업비를 쏟아부은 대박 예정 고구마 기계 사업 시연회, 낙찰 1순위를, 임종을 대신 봐주는 시간으로 기꺼이 바꿔버린 창희. 필자는 어쩜 포기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거라는 생각을 한다. 민간인 예수 같은 느낌도 나는 창희는 말한다.
"난 좀 그런 팔자 같아. 가랑비 같은 팔자." 강이나 바다처럼 크게 내 물줄기가 있고 그런 건 아닌데 가랑비처럼 티 안 나게 여러 사람 촉촉하게 하는 거."
낮은 데로 임하소서! 인가? 현아는 죽을병이라도 걸려야 불같이 달려들어서 불사르는데, 창희는차곡 차곡 있는 자리에서 견뎌내면서 다시 탐욕의 지옥 속으로 안 들어간다고, 평범하게 살아갈 거라고 사람들 마음에 스미는 촉촉함이 되겠다고 한다.
거의 마지막 장면에 창희는 떠나겠다는 현아에게 무릎 꿇고 진지하게 얘기한다.
"살다가 힘들다 싶으면 그때 와. 그때도 내가 혼자면 받아줄게. 쉬었다가 또 떠나야겠다 싶으면 또 가. 괜찮아. 우리 이제 정말 서로 축복하고 헤어지자."
창희는 이별의 순간 눈이 새빨개지면서도 현아와 넉넉하게 이별하며 돌아서며 스스로 산이 되겠다고 한다. 창희가 산이 되어 있는 한, 길 잃은 현아는 어느 날 저 높은 산을 향해 방향을 잡을지 모르겠다.
박해영 작가는 두 조연, 현아와 창희의 대사를 통해 인간의 '마음'이 발이 달려 나가는 '말'에 대해 정의한다. 현아는 끼를 부리는 말, 시선을 유도하는 말 (인정 욕구의 발로)로 샛길로 새 버린다. 반면, 1원짜리 다발증이던 창희는 77억 개 많은 말을 삼키며 자기를 지키는 성을 쌓아올려 산이 된다.
작가 박해영이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을 하나하나 참으며 그리고자 하는 세상을 생각했을까? 그 말들을 꾹 꾹 캐릭터들에게 담아내려 했는지... 아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을 것이라 짐작된다.
구씨와 미정, 현아와 창희를 횡적 종적 자아로 분리하고 합체하면서 드는 생각은, 누구에게나 그런 면모가 조금 씩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 그 사람을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되어보는 건 어떨까? ^^
첫댓글 아아, 수고하셨어요. 드라마를 보고 인물 분석과 작가의 의도까지 헤아려 정리하시다니요. ^^ 본인도 시원하시죠?
ㅎ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몇달 전 제게 질문한 것을 이 글을 쓰면서 정리할 수 있었어요. 치유의 글쓰기가 ㅡ 글을 쓰면서 1.집중하며 잡념을 잊게하고 2. 자문자답도 하게 하네요. 3.ㅎ 댓글을 쓰는 것도 치유 작용을 하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