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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울란바트르로
이르쿠추크로 떠나는 아침에 앙가라 강으로 달려갔다. 호텔앞 도로를 건너면 공원이 있고, 공원을 가로지르면 앙가라 강이다. 흐린 하늘, 잿빛하늘에 강물도 어둡게 흐른다. 사흘 전 그토록 맑고 푸르며, 찬란하게 빛나던 강물이 아니다. 이것이 앙가라와의 작별이다. 어젯밤의 뇌성벽력과 소나기에 꽃밭이 다 망가졌다. 앙가라강에 이별을 고한다, 바트와도 이별이다. 열심히 사는 그에게 가져간 선물을 주었더니 아주 좋아한다. 그는 석달 째 이르쿠추크에 출장 나와서 가이더을 하고 있다. 젊은 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그는 우리 팀이 아주 특별하고 짧은 시간에 정이 듬뿍 들었다고 말한다.
고물 비행기는 먼저 타면 아무 자리나 앉는데 우리 자리는 맨 뒷자리 의자 등받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 창밖으로 보이는 산은 녹빛에서 가을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꿈결 같은 바이칼 여행은 이 여름만큼이나 빨리 끝났지만 바이칼과 함께 한 시간은 아주 오래오래 내 가슴에서 출렁되며 흐르리라,
공항에 마중온 몽골 가이더는 디도 여행사의 박사장으로 몽골 여인과 결혼 몽골에서 열심히 사는 젊은이이다.
한국식당 영빈관에서 점심을 한식으로 먹은 다음 쇼핑센터에 잠시 들렀다. 한국제 물건이 넘친다. 햇살은 따갑지만 그늘은 바람이 불어 시원하다. 중심가엔 차가 지나면 먼지를 뒤집어쓰기 일쑤, 겨울엔 40도-60도의 추위에 도로를 포장해도 얼어서 깨지기 때문이란다. 이런걸 보면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다.
하늘 속으로-뭉근 머리트
8월 10일 오후 4시 20분에 일행들은 3대의 봉고차로 바꾸어 타고 뭉근 머리트로 달린다.
노샘과 나는 맨 앞자리에서 몽골의 드넓은 초원을 즐기기로 했다. 기사아저씨는 40대로 보이는 말이 적고 친근해 보이는 ‘짜오’아저씨다. 말끔하고 푸른 대기‘두둥실 떠 있는 흰 뭉게 구름, 광활한 대지위에 부드럽게 펼쳐진 연녹빛의 대초원.
차창에 내리쬐는 빛이 따가워도 초원을 보느라 감탄에 감탄이다.
양, 소 ,말들이 무리지어 풀을 뜯고 말몰이하는 목동들이 영화 속의 장면처럼 느린 화면으로 질주한다. 붉은 옷을 입은 그들의 모습이 초록 속에서 뚜렷하다. 구름과 산과 언덕과 벌판이 같은 녹빛이면서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간다.
달리는 차 앞으로 녹색 융단을 깔아 놓은 듯 부드러운 초원이 그칠 줄 모르고 펼쳐진다. 두어 시간 달린 후 노천 광산지대 아파트 마을을 지나자 비포장 길에 줄줄히 따라 붙던 나무 전봇대도 사라지고, 완전히 문명의 혜택을 받지 않는 원시의 자연이 나타났다. 차들은 초원에 난 실 같은 길, 길이랄 것도 없다, 울퉁불퉁 패인 길들을 이리저리 용케도 잘 피해 달린다. 하늘 같이 넓은 초원에 문명의 혜택이라곤 오로지 봉고 세대뿐이다. 언덕에 내리니 앞에 펼쳐진 벌판과 고불거리는 가는 강줄기와 강 옆의 작은 숲들이 그대로 꿈의 세계다. 녹색 속으로 한 올 실처럼 난 가는 길이 하늘 속으로 빨려들듯 이어져 있다.
테를지와 갈라지는 나무 팻말이(이정표) 설치된 곳에서 잠시 내려 쉬어가기로 하였다. 풀숲에 피는 작은 꽃들은 하늘에 빛나는 별들 마냥 이 짧은 여름에 대를 잇기위해 그 고운 빛깔을 다 소진하는 걸까. 땅바닥에 엎드려 핀 꽃들이 작고 앙증스러워 그렇게 이쁠 수가 없다.
서녘하늘엔 구름 무더기가 짙어진다. 8시가 넘었다. 석양 아래 비가 내리는 것을 지켜 본다. 4시간 40분이 걸려 우린 뭉근머리트 게르 캠프촌에 도착했다. 하늘은 붉은 노을빛으로 훨훨 불꽃을 피운다. 24개의 게르에 식당과 샤워실, 전기는 자가 발전기다. 저녁엔 기온이 쑥 내려가기 때문에 더운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란다. 울란바타르를 둘러싼 2.5km이내는 도시를 보호하는 외곽지대여서 전기가 들어오지만 그 밖은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청정 자연 지역으로, 뭉근머리트는 칭기스칸이 친구인 자무하와 함께 목장을 가꾸며 제국의 꿈을 키웠던 성스러운 곳이란다.
울란 바타르에서 동쪽으로 4시간 정도 떨어진 헨티산기슭엔 ‘테를지’국립공원이 있으며 몽골 최고의 휴양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자연 보호 지역이기도 하다. 강가엔 자작나무와 버드나무가 빼곡이 늘어서 있다.
바람과 비에 침식되어 형성된 높은 암벽과 낮은 계곡, 푸른 초원이 한 폭의 수채화를 연출한다.바람과 햇빛, 순도 100%의 자연을 안겨준다. 이 국립공원엔 400개의 게르 캠프장과 우리의 성황당(오위)도 있다.
몽골의 이동식 전통가옥인 ‘게르’는 4인 1실, 중앙엔 나무 장작을 지피는 난로가 있고, 연통은 게르 중앙을 통해 밖으로 나가게 설치되었다. 그 세찬 바람에도 안은 아늑하다. 난로를 중심으로 돌아가며 침대가 놓이고, 출입문 하나, 거울, 빗,옷걸이, 헤어드라이,쓰레기통2,장작 바구니,탁자 하나에 의자둘 너무 간편한 살림도구지만 불편하지 않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은 광천수라 세수를 하면 얼굴이 싸하니 차거웠다. 저녁은 가이더의 집에서 준비해 온 김치,고추장에 양고기찜 ‘허르헉’이다.
10시엔 몽골 민속예술학교 학생들의 민속 공연이 있다. 공연 전에 소낙비가 퍼부어 빗속을 뚫고 온 학생들의 비단 옷이 다 젖었다. 춤은 역동적이고 활기가 넘쳤으며 그들이 말을 몰며 살았던 대륙적 기상을 보여줬다. 노랫소리는 맑고 높은 고음으로 밤공기를 가르며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아쉬운 건 가사를 모른다는 것, 교육열 높은 이곳에서 이들은 몽골의 꿈이다. 알바로 학비를 벌고, 손님들의 잔심부름도 겸한다, 저녁엔 ‘게르’의 장작불이 꺼지지 않도록 불침번을 돌며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세계에서 3대 별 관측지라는 이 하늘 아래서 구름에 가려져 오늘 밤 별을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저녁 세수를 하고 (화장실겸 샤워실은 떨어져 있다) 우리 침실로 오는데 띄엄띄엄 별이 뜬다.
우리는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서서 별빛을 보며 각자의 가슴에 별을 심는다.
풀꽃들을 만나다-헨티산맥
아침 일찍 일어나 해돋이를 보았다. 맑고 곱다. 예쁘고 환하다. 대초원에서 보는 해돋이는 장엄하다. 금방 위로 쑥 솟아오른다. 헨티 산맥 끝자락에 야생화를 보러 갔다. 간 밤 소나기로 길 여기저기가 질퍽하다. 한 시간 가량 북쪽을 향해 달렸다. 야생화는 간 밤 소나기로 무참히 꺽이고 쓰러져 있었다. 우리가 본 건 떨어진 잔 가지 뿐, 돌아오는 길에 더 많은 꽃들이 우리를 반겼다. 겨울이 되기 전에 남은 시간을 아쉬워해서 일까, 키를 낮추며 핀 노랑과 보라색 꽃은 그 고운 빛깔 때문에 우리 눈을 잡아끌었다.
유목민 게르 방문
유목민의 게르를 방문했다. 게르안에는 여러명의 어른들이 전통복을 입고 있고, 게르 밖에는 젊은이들과 아이들과 말 몇 마리가 서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침대와 작은 의자 몇이 있다. 관광객에 익숙한 아주머니가 우유로 만든 시큼한 과자를 돌린다. TV에서 볼 때는 맛있어 보였지만 시큼한 맛과 과자에 잔뜩 붙은 파리를 보니 먹을 맛이 싹 가신다. 엉겹결에 받기는 받았지만 표정들이 영 시큰둥하다. 이웃에 있는 사돈들이 결혼 문제를 의논하기 위하여 모였다고 한다. 이곳은 신부집이고 신부는 입가에 생글생글 미소를 달고 작고 몸집이 가냘픈 아가씨였다. 짧은 가죽부츠에 탁 달라붙는 흰 티셔츠에 청바지로 멋을 냈다. 신랑은 부끄러워서 밖에서만 서성거린다. 여기서는 신랑이 처가살이를 한 3년하면 혼인을 하고 혼인 후 불어난 양의 수를 가지고 독립을 한단다.
남자는 여자집으로 들어갈 때 재산을 좀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몽골의 역사에서 여자들은 당당하게 자기 몫을 한다.
몽골의 결혼 풍습에선 첫날밤 신부를 이방인으로 온 축하손님에게 바치는 풍습이 있는데, 이건 그들이 살아남기 위한 처절함이다.
한가구당 2백두의 말을 키우다 보면 반경 2,5km의 넓은 목초지가 필요하고, 그 말에서 새끼가 생겨나 자식들을 분가시키면 또 2.5km가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몽골의 청춘 남녀들은 5km를 가도 사촌들, 외래인을 만나는 기회가 적다 보니 피가 섞이지 않아 기형아가 많이 출산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피갈이를 하는 거란다.
이들의 음식도 간편하다. 채소는 거의 먹지 않고, 주식은 오로지 고기다. 채소를 먹는 사람을 보고 소처럼 풀을 먹는다고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제는 많은 몽골인들이 외지에 나가 살게 되고, 육식위주의 식생활이 성인병을 많이 가져와 식생활을 바꾸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한국식당에서 먹은 상치와 배추는 이곳에서 한국인들이 실험재배에 성공한 것이란다. 과일 채소 공산품은 주로 중국에서 수입되고 있다. 욕심 없이 넓은 초원을 마음껏 누비며 푸른 하늘 아래서 인간 본래의 순수성을 가진 초동으로 세상을 누린다. 그들에게도 스트래스가 있을까?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말을 타는 사람들-뭉근머리트 언덕의 장관
바람의 땅 몽골이라더니 뭉근머리트 게르 안에서 바람 소리를 듣는다.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이다. 누워 있노라니 정신없이 게르를 흔드는 바람소리가 거칠어 간다. 어제의 경이로운 초원에는 한낮의 햇빛이 가득하고 바람은 모질게도 불어댄다. 떠들썩한 소리들이 거슬린다. 어젯밤 내리치던 소나기는 저만치 물러나 번개로 번쩍이고, 바람들은 가만히 누워있지 못하게 한다. 몽골에서의 가장 근사한 체험인 말을 타러 가기로 했다. 영화 장면처럼 기수와 일행들이 말을 타고 나서는 장면은 볼만하다. 겁없는 당당한 모습이다. 역시 기마민족의 후예답다. 말을 타고 푸른 초원을 서서히 걷다가 ‘추추추’하면 말이 달린다. 우리의 ‘이랴’에 해당되는 말이다. 가이더 차는 구조대인 셈이다. 연신 카메라를 눌러 댄다. 흰 뭉게구름이 높이 떠 있고, 푸른 하늘이 끝도 없이 광활하게 열린 초원에서 말을 타는 사람들. 몽골의 아이들은 걷기 전에 망아지를 탄다. 내 말의 기사도 어린 꼬마이다. 유목민들은 주로 두개의 말고삐를 잡고 이끈다. 훈련된 말들은 속도를 내지 않고 천천히 걷는다. 망아지 두 마리도 어미 틈에 엉켜 맴을 돈다.
강가에서 일행들은 말에서 내려 잠시 쉬었다. 키 작은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깔렸다. 승마 가이더는 안장도 없이 날렵하고 멋있게 말을 탄다. 말과 함께 바람을 가르는 몽골의 기상이 아름답다.
한 시간 정도 승마를 하고, 더 할 분들은 개인지출로 하란다. 우린 초원을 산책하기로 했다. 초원의 산책은 얼마나 멋진지, 햇빛이 강렬하여도 발밑은 융단처럼 깔린 야생화가 생기있게 팔랑거리고, 바람은 모자를 날릴 듯 불어 시원하고 상쾌하다. 걷다 멈추어 풀꽃들의 앙징스러움에 취해도 보고, 점점히 모였다 흩어지는 휜 구름도 보고, 바람을 맞으며 한가한 여정을 즐긴다.
산책이 끝난 다음 게르에 돌아와 광천수 물로 오늘 그린 그림에 색칠을 하고, 다른 방에서도 건너와 그림을 보며 담소를 즐긴다.
바람의 땅에서 깃발처럼 마음대로 흔들리며 긴 겨울잠을 자보고 싶다. 너무 척박하고 메마르고 단순해서 살고 싶지는 않다. 말을 타지 않고 걷기만 한다면 가도가도 그 자리에서 맴돌 것이다. 엄청나게 광활한 것은 그만큼 막막하다, 숲이 그리울 것이다.
뭉근머리트-징기스칸을 그리며
6시가 넘어서 다시 차를 타고 이번에는 남쪽으로 달려 나간다. 헬렌강을 몇 번 지나고 언덕을 오르내리고, 웅덩이를 피하고 울퉁거리는 길을 슬슬 기며 차는 산언덕으로 올라간다. 걸어서 오르지 않고 차를 타고 길길대며 작은 산봉우리에 섰다. 아, 거센 바람이 정신없다. 모자를 두 손으로 잡고 둘러보는 사방의 멋진 풍경. 타원형 모양의 흰강 줄기들이 햇볕에 반사되어 틔어 오를 듯 반짝인다. 언덕 위에는 기이한 바위들이 삐죽삐죽 여기저기 서 있고, 건너편엔 짙푸른 산들이 엎드려 있다. 이곳은 징기스칸과 그의 친구 자무하가 제국의 꿈을 키우며 말을 키우던 목장이다. 바람을 가르며 말을 모는 그의 모습이 초원 위에서 한줌 바람으로 흩어진다.
어디를 봐도 경치는 장관으로 펼쳐진다. 벌판과 푸른 하늘과 숲과 산과 강줄기들, 뭉근머리트의 가장 훌륭한 모습이 여기 전부 내려다보인다. 차오 아저씨와 기념촬영을 한다. 기사 아저씨의 바지에 새겨진 보행금지라는 단어가 깃발처럼 흔들린다. 차오 아하(차오 아저씨)는 산에서 내려오자 초원길을 휘달린다. 운전 실력을 뽐내고 싶은거다, 말이 통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에는 전통 게르를 방문했다. 수태차를 마셨다, 수태차는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차이다. 게르 안에는 할머니 한분이 앉아 계신다. 게르 안쪽에는 푸른 바탕에 화려한 꽃무늬가 수놓인 천이 벽처럼 둘러 처져있고, 붉은 가구위에 작은 TV한대가 놓여있다 정말 조촐한 살림살이이다. 우린 작은 선물들을 내놓고, 수태 차와 과자를 받았지만 파리가 많아 먹지 않았다. 아이들과 사진을 몇 장 찍고, 캠프로 돌아오는 길, 저녁 시간이 말할 수 없이 곱고 아름답다, 붉은 놀이 번지는 서쪽 하늘, 초원은 노을빛에 잠기고, 보라색 꽃들도 연녹색의 잎들도 고요의 시간을 맞이한다. 하루 중 가장 평화롭고 고운시간이다. 저녁은 양고기찜인 허르헉이 나온다. 고기는 질기고, 김치는 떨어지고, 고기 냄새도 질린다. 밤바람은 차갑다.
백미터가 넘게 걸어 샤워실로 가서 수도꼭지를 틀자 얼굴이 따끔거리는 탄산수다,펑펑나오는 더운 물이 그동안 얼마나 고마웠는지, 밖에서는 캠프파이어가 시작 되었지만 우리는 타오르는 난롯불에 몸을 녹이고, 내일 서울로 돌아갈 짐을 챙긴다. 달이 떠오르자 하늘에는 초원의 풀꽃들만큼 무수히 많은 별들이 하늘을 채운다. 춥지만 큰 달구경을 하러 밖으로 나섰다. 이 춥고 척박한 곳에 이토록 아름다운 하늘과 별들,꽃들, 오래 서있지 못하게 부는 칼바람에 추워서 들어왔다 쉬이 잠이 오지 않지만 잠을 청한다.
초원의 사랑
일행중 29살먹은 데레사와 식당에서 써빙을 돕는 남자 아이와의 이야기를 나는 초원의 사랑이라 불렀다. 어떻게 이다지도 순수한 모습이 아직 남이 있을까? 어젯밤 식당에서 사진 찍기를 청한 남자아이는 우리가 떠나려고 차에 오르자 차 앞에 엉거주춤 서있다. 물기름을 바른 머리는 가르마를 타서 옆으로 넘기고, 최고로 좋은 옷을 입었다. 우리는 그 아이의 맘을 알아차리고 옆 차에 탄 데레사에게 내리라고 아우성을 쳤다. 키 큰 남자애는 수줍어서 뒤로 돌아선다. 참으로 고전적인 모습이다. 남자애는 밤새워 영어로 쓴 편지를 책속에 끼워 데레사에게 건네 주더란다, 다음에 또 오면 수태차를 대접하겠노라고, 하며 이메일을 주고 받았단다. 우리는 차 안에서 그 모습을 보며 입가에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우리 차가 출발하자 남자애와 환송나온 사람들이 일제히 그 차쪽으로 몰려간다. 우리가 머문 시간은 사흘, 사흘 동안 남자애는 데레사를 마음에 두고 숨죽이고 가슴 설레었을 것이다. 어젯 저녁 용기를 내어 사진 찍기를 청하고, 밤새워 편지를 쓰고,
아직도 이 초원에는 그런 맑고 고운 사랑이 있다. 어젯밤 별빛처럼 초롱초롱 반짝이는 아름다운 사랑이 있다.
아버지는 파일럿이고, 방학동안 캠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이었다. 이 청년의 모습이 우리들의 잊어버린 모습을 잠시 되돌아보게 했고, 순수함을 일깨워 주었다. 나이 든 분이 ‘우리에게 이제 이런 사랑은 없다’라고 말하자, 나이든 아가씨 ‘우리라고 하지 마세요. 난 아니에요’ 해서 모두 웃었다, 초원에서의 사랑은 멀어지고 아침은 여전히 아름다운 초원길이다. 그 청년이 데레사를 만나러 한국에 올 꿈을 꾸듯 우리도 가슴 한쪽에 초원의 푸른 꿈이 커져가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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