⑴ 십자가와 예수
A.D. 30년 봄 어느 금요일 오전 9시, 예루살렘 교외
A.D. 30년 봄 어느 금요일 이른 아침에 산헤드린(Sanhedrin:유대인의 종교적 최고 의회)에 의하여 신성모독이라는 공식적인 죄명을 쓰신 예수님은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 로마 제5대 총독, 주후 26~36)에게 끌려가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로마총독인 빌라도로부터 예수에 대한 최종적인 사형 선고를 받기 위함입니다.(<마 27:2>~26; <막 15:2>~15; <눅 23:1>~5, 13~25)
빌라도는 유대 지도자들과 무리들에게 자신과 헤롯(Herod)은 예수에게서 그들이 고발하였던 그 죄를 발견할 수 없고(<마 27:23>~26; <막 15:14; ><눅 23:4, 14 ><요 18:38, 19:4>) 예수님이 매 맞을 일을 한 것이 없지만 그를 단지 매를 좀 때리고 방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눅 23:16, 22>)
당시 관습에 따르면 로마의 총독은 자유재량으로 유월절(Passover: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하나.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탈출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에 유대인 죄수 중 한 사람을 놓아줍니다. 이 관습에 따라 빌라도는 그들이 예수님을 놓아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에게 조종 받고 있는 군중들은 민란과 살인의 죄목으로 수감되어 있던 바라바(Barabbas: 사람의 아들)를 놓아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마 27:15>~18, <막 15:6>~15, <눅 23:18>~25, <요 18:40, 19:6, 15>)
예수님은 새로운 국가의 지도자가 되어달라는 저들의 희망을 저버렸으나 적어도 바라바는 로마의 통치에 대항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바라바는 석방되었고, 다시 한 번 예수님을 석방하려는 빌라도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진정한 의미에서 심판대에 오른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빌라도였습니다.
그리스도냐(Christ)? 가이샤(Caesar)?
본디오 빌라도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님을 병사들에게 넘겼습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인의 규례대로 예수님을 유대인에게 넘겨주기는 했으나 예수님의 유죄(宥罪)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책임이 없으며 무익한 일을 하였다는 것을 상징하려고 최후에는 물을 가져오게 하여 자신의 손을 씻음으로 이 모든 일에 중립을 취했다고 생각하고 싶었습니다.(마태복음 27:24)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을 석방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보다도 예수님을 유죄로 판결하는 일은 더욱 더 곤란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프로클라 클라우디아(Procula Claudia:유대교에 귀의했을 뿐 아니라(외경 니고데모 복음서 2장), 그리스와 에디오피아교회에서는 그녀를 심지어 성자(聖者)의 한 사람으로 숭배하기까지 했다고 전한다.)라고 불리는 그의 아내가 그에게 메시지(Message)를 보내 온 것입니다.
성경의 증언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더라 ~ 마태복음 27:19
그러나 유대 지도자들과 그 무리들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기를 원하였습니다.
죄수는 처형될 장소까지 적어도 자기의 십자가를 운반하도록 강요당했습니다. 그 십자가 형틀의 세로(縱) 세우는 나무를 스티페스(stipes)라고 부르고, 가로 지르(橫)는 나무를 파티불룸(patibulum)이라고 불렀습니다. 일반적인 처형일 때 세로 세우는 나무는 미리 처형될 장소의 구덩이를 파서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로 지르는 나무인 파티불룸(patibulum)만 외통으로 된 것이었으나 많은 경우에 그것은 두 갈래로 갈라져 있는 나무로서 한 쪽은 연결되어 있고, 다른 한 쪽은 갈라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수의 머리가 두 가닥의 갈라져 있는 공간에 위치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병사들(Roman soldiers)에 의하여 총독 관저(praetorium) 앞뜰로 끌려가신 예수님은 그 병사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겨 때린 후에 묶었습니다. 그리고는 살을 에고 뼛속까지 파고드는 채찍질을 시작하였습니다.
채찍질은 언제나 십자가 처형의 전주로서 행하는 것이었습니다.(<마 27:26, ><막 15:15, ><눅 23:16, ><요 19:1>) 로마의 채찍질 이상으로 혹독한 고통은 없습니다. 그 채찍의 끝에는 납이나 쇠 조각이나 뼈의 파편이 붙어있어서 인체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채찍질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의식을 잃기도 하며, 미친 사람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 이 채찍질로 인하여 죽는 것이 흔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극악한 채찍질이 우리 예수님이 받은 고통이었습니다.
당시의 십자가 처형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미리 때리는 방편으로 로마 병사들이 때릴 때도 있지만 이집트의 가장 포악한 노예 6명을 선출하여 그들의 울분을 마음껏 채찍으로 풀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채찍에 맞아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죽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6명이 교대로 술을 마시며 지칠 때까지 때렸습니다. 두 명은 탄력 있고 흰 가죽채찍으로 피벅범이 될 때까지 때리다 지치면, 다른 두 명이 딱딱한 파칠라우스 채찍으로 끝에 뼈가 달려있는데 때릴 때 살점이 튀고 피가 튀었습니다. 그들도 지치면 나머지 두 명이 끝에 갈고리처럼 동물의 뼈 같은 날카로운 것이 달려있는 채찍으로 때릴 때 옆구리, 등, 이마 등에 깊숙이 패여, 피벅범이 되고 녹초가 되는데 이때 죽는 사람도 부지기수지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이 목적이기에 매 맞는 감각이 없을 때 까지 때려 십자가의 길(道)을 걷게 하였습니다.
채찍질을 가한 후 그들은 예수님께 자색 옷을 입혔고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씌웠습니다. 그 병사들이 갈대를 예수님의 손에 쥐이고 유대인의 왕 이라 하며 그에게 경배하는 시늉을 할 때 아마도 예수님의 의식은 분명치 않으셨을 것입니다. 이때 몇몇 병사들은 그 갈대를 다시 빼앗아 그것으로 예수님을 때렸으며 심지어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군중들 앞에 서신 예수님의 모습은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손은 묶이셨고 머리에는 긴 가시들로 덮인 유연성 있는 가시더미가 면류관 모양으로 만들어져 예수님의 머리에 씌워집니다. 이 가시 면류관(crown of thorns)으로 인한 상처 때문에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얼굴은 수없는 구타로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을 것이며 등은 채찍질로 인하여 온통 상처투성이였으며 너무나도 힘이 없어 로마 병정의 부축으로 겨우 서 계실 수 있을 정도였을 것입니다.
성경의 증언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 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 마태복음 27:29~31
그 뜰에서 끌려 나오신 예수님은 그 상한 어깨 위에 약 120㎏의 나무로 된 십자가를 짊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저주하고 침 뱉는 가운데 예루살렘의 가장 번화한 거리를 걸어야 했습니다. 그분이 걸으셨던 그 길은 오늘날에 Via Dolorosa(비아 돌로로사)는 라틴어로 '슬픔의 길'이라는 뜻으로 빌라도법정에서 골고다 언덕에 이르기까지의 십자가 수난의 길을 말한다.
비아 돌로로사는 옛 길을 따라 14개의 지점에 그림 또는 조각으로 표시를 해놓고, 그날의 슬픈 현장을 생생하게 회상케 해 준다.) 즉 십자가의 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1지점은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시던 빌라도 법정(Praetorium, <마 27:11>~14)이며
제2지점은 가시관을 씌우고, 홍포를 입히고 희롱한 곳이며
제3지점은 십자가를 지고 가다 처음 쓰러진 곳이며
제4지점은 슬퍼하는 마리아를 만난 곳이며
제5지점은 구레네 사람 시몬(Simon of Cyrene)이 십자가를 대신 진 곳이며
제6지점은 성 베로니카(St. Veronica) 여인이 물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는 곳이며
제7지점은 예수님이 두 번째로 쓰러진 곳이며
제8지점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 23:28>) 라고 말씀하신 곳이며
제9지점은 예수님이 세 번째로 쓰러진 곳이며
제10지점은 예수님의 옷을 벗긴 곳이며
제11지점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곳이며
제12지점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신 곳이며
제13지점은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놓았던 곳이며
제14지점은 예수님이 묻히신 곳 즉,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 입니다.
※ 제10지점 에서 제14지점까지는 처형의 목적지인 골고다 언덕 위로써 지금의 성묘 교회 (Church of the Holy Sepulchre)안에 있습니다.
비아돌로로사 (Via Dolorosa)
예수님은 지난 밤 사이에 줄곧 자행된 심문과 취조에 피곤해 있었고, 채찍에 의한 극심한 고통에 의해서 기력이 상실해 있었기 때문에 주님은 십자가 형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곧 넘어지셨습니다. 그분이 너무도 탈진했으므로 잔인한 로마 병정들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유럽의 전설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러 가실 때, 유대인 아하슈바(Ahasvar)의 집 처마 밑에서 좀 쉬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하슈바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저주를 받아 최후의 심판 날까지 영원히 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쉼 없이 걷기만 하고 있다고 합니다.
유대인은 운명적으로 고단한 짐을 지고 쉼 없이 걸어야하는 슬픈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젠 더 이상 발길질을 하고, 때리고, 욕을 해도 그분을 움직이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들은 북아프리카의 구경꾼 구레네 사람 시몬(Simon of Cyrene)을 시켜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하여 예루살렘 성문 밖의 한 언덕에 위치한 십자가의 처형의 장소 갈보리Calvaria/Calvary ¢¡ 마태, 마가, 요한복음에는 골고다(Golgotha/누가복음에는 갈보리)까지의 나머지 길을 걷게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3:12~13) 골고다는 비바람을 맞아 뼈만 남은 두개골이란 뜻으로 그 모양이 두개골과 닮았기 때문에 이름 붙여진 것입니다.
성경의 증언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 (번역하면 해골의 곳) 에 이르러 ~ 마가복음 15:22
안토니아 요새(Antonia fortress)로부터 골고다까지 600미터의 행렬이 끝나자, 허락된 속옷만을 남긴 채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belt:허리 띠, sandals:샌달, girdles:띠, turban:터어빈, tunic:겉옷)을 다 벗겼습니다. 십자가 처형이 시작됩니다. 십자가의 가로대를 땅에 내려놓으라는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예수님의 두 어깨가 가로대 위에 뉘어졌습니다.
로마 군병은 예수님의 손목 앞의 약간 오목한 곳을 손으로 더듬었습니다. 곧 그는 무겁고 네모진 단철 못을 예수님의 손목을 뚫고 나무에 박았습니다. 재빨리 그는 다른 쪽으로 가서 팔이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도록 조심하며 그분의 팔을 세게 잡아당기지 않고 못을 계속 박아댔습니다.
군병은 십자가의 가로대를 세워 올리고『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Iesus Nazarenus Rex Iudaeorum)』이라는 죄 패를 그 위에 세웠습니다.(요한복음 19:19) 사도 요한에 의하면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히브리어, 라틴어, 헬라어 등의 말로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19:20) 그리고 왼쪽 발을 오른쪽 발에 포개어 발가락을 아래로 향하게 하고 무릎을 적당히 움직일 수 있게 한 다음 발목에 못을 박기 시작합니다.
갈보리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Crucifixion) 달리셔야 했습니다.(누가복음 23:34~43)
헝가리 황제의 딸 엘리자베스 공주가 궁중생활 기록문서중 개인 소장품 중에서 후대 사람에게 남기는 글을 발견하여 기록하였습니다.(1207~1231) 그녀는 어느 날 마지막 지병으로 임종을 앞두고 주님의 고난당하신 십자가 앞에 마지막 힘을 다하여 묵상을 하다가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자기 자신을 위해 고난당하신 주님을 만나 뵙기를 간절하게 기도를 하고 있는데 … 주님께서 환상가운데 나타나셔서 가야바 대제사장의 뒤뜰에서 골고다 언덕까지를 환상으로 보여 주었다고 합니다.
"그때 주님을 둘러선 빌라도의 병사들은 150명이었고, 그 중에서 주님을 십자가에 매달릴 때 까지 끌고 간 병사들은 23명이었다. 예수님을 사형집행 할 때 혹시 민중들이나 제자들에 의해 민란이 일어나는 것을 대비하여 무장한 병사 83명을 추가로 주의에 배치시켰다. 그리고 예수님의 머리는 150번이나 주먹으로 크게 맞았고, 180번이나 발길질 당했으며 양쪽 어깨에는 채찍으로 80번이나 맞았으며 예수님의 머리칼은 끈처럼 꼬인 채로 끌려 다녔다.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침세례를 받았고, 110번이나 채찍으로 머리를 맞았다. 예수님은 아침 9시에 머리칼이 헝클어지고 머리가 찢어진 채 십자가에 달렸다. 특수 채찍에 뼈가 부서질 뜻이 100번이나 맞았으며, 머리에 쓰인 강철 같은 가시관은 7~8㎝나 되었으며, 그 가시관은 너무나 아파서 신포도주를 먹지 못하고 3시에 운명 하시였다.
가시관의 가시 숫자는 72개였는데 머리에 박힌 상처는 110개인 이유를 물으니, 이 가시관을 한 번 벗겼다가 다시 씌웠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을 박은 못은 20㎝로 그 중 하나가 산타클로치인 예루살렘 대 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예수님은 아침 9시쯤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달려있으셨습니다.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입니다. 모든 신경과 근육은 극심한 고통의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프레데릭 파라르(Frederick W. Farrar)목사님은 이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십자가형은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무서운 고통을 죄수가 다 겪는 사형방식입니다. 현기증, 경련, 갈증, 굶주림, 잠 못 이룸, 상처로 인 한 열(파상풍), 강직성 근육 경련, 수치, 모욕, 쉽게 끝나지 않는 고문, 사라지는 희망에 대한 공포, 방치된 상처로 인해 느껴지는 억울함, 이 모든 것들이 극한의 한계에까지 솟구치다가 어느 한 순간 의식이 흐려지며 죄수에게 마지막 안식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자세는 아주 작은 움직임에도 고통을 배가 시킵니다. 갈기갈기 찢겨진 정맥과 뭉그러진 근육이 끊임없는 고통으로 맥박치고, 햇빛에 노출된 상처는 벌겋게 부어올라 괴저(壞疽:신체 조직의 일부분이 생활력을 잃고, 그 기능을 소멸하는 일)가 생겨납니다.
특히 머리와 복부의 동맥들은 부풀어 오르고 몰리는 피로 압박감을 느낍니다. 시간이 지나며 온갖 고통이 증가해 감에 따라 참을 수 없이 타는 목마름이 찾아옵니다. 이러한 외부적인 고통은 내적으로도 엄청난 고통을 몰고 와서 여느 때 같으면 다가오는 죽음에 소스라칠 텐데, 이러한 순간에 오히려 달콤하고 황홀한 안식으로 인도할 죽음을 더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마리아 발또르다(Maria Valtorta)는 1897년 이탈리아 가제르타에서 태어 낳습니다. 그녀는 37세부터 병으로 인해 27년간 침대에서 생활했는데 예수님께서 나타나 영화처럼 보여주신 환상을 4주 동안 기록한 책이 1500페이지를 넘는다고 합니다. 그녀가 묵상 중에 받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에 대한 환상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네 번째 집행인은 머리가 둥글고 팽팽한 10원짜리 동전크기만한 기다란 못을 들고 기다리고 있으며, 나무에 뚫어놓은 구멍이 손목관절과 꼭 맞는지를 확인한다. 사나이는 쇠망치를 들어 올려 손목 끝에 세워놓은 못을 향해 일격을 가한다. 눈을 감고 있는 예수님은 극심한 고통으로 소리를 지르며, 손바닥을 감아쥐고 눈물이 흥건한 눈을 뜬다.
이 아픔은 상상을 초월한다. 못은 근육과 맥과 신경을 찢고 뼈를 부수고 관통한다. 이 모습을 보고 옆에 서 있던 어머니 마리아는 머리를 감싸 쥐고 몸을 웅크린다. 예수님은 너무 아파 신음하다가 어머니를 괴롭히지 않기 위해 그 아픔을 삼키며 다시는 비명을 지르시지 않는다."
브리짓다 성녀(St. Birgitta of Sweden, 1303~1373)는 예수님께 가해진 채찍질에 대한 직접적인 환시를 보았는지에 대해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채찍질에 대해 브리짓다 성녀에게 알려 주신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 그리고 나서 내 아들은 기둥으로 끌려가 당신 스스로 옷을 벗으시고 스스로 당신의 손을 기둥으로 뻗으셨다. 그 분의 적들은 잔인하게 그 분의 손을 묶었다. 그들은 그 분의 순결하신 몸을 온통 상처투성이로 만들며 채찍질을 가하였다. 그 분의 몸 전체는, 끝이 뾰쪽하게 구부려져서 살을 찢는 정도가 아니라 후벼 파내는 갈고리가 달린 채찍에 의해 찢어졌다.
가까이에 서있던 나는 첫 번째 채찍질에 죽은 듯이 쓰러졌다. 의식을 되찾자마자 나는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까지 맞아 상처 입은 그 분의 몸을 보았다. 그리고 더욱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채찍질이 가해질 때마다 가죽 끈과 함께 그 분의 살이 파여 나가는 것이었다. 나의 아들은 온 몸이 피로 덮이고 온 몸이 찢어진 채 서 계셨고 그래서 그 분께는 성한 곳이라고는 한 군데도 찾아볼 수 없었고 채찍질을 할 만한 곳도 한 군데도 남아 있지 않았다."
(Revelaciones 1권과 4권)
테레사 노이만(Theresa Neumann, 1898~1962)에 의한 기술은 이것보다 더 상세합니다. 그녀는 주님께서 손이 높은 기둥의 끝에 묶여서 몸을 늘어뜨리고 계셨다고 말합니다.
" … 그리고 주님께서는 동시에 두 사람에 의해 채찍질을 당하셨으며, 집행인은 2번 교체가 되어 (총) 6명의 집행인이 있었으며 주님의 몸이 돌려져서 앞 쪽에도 채찍질을 당하셨다."
그녀가 레오폴드 위트 신부에게 이야기 한 아래의 사실은 1928년 레오폴드 신부에 의해 출판되었으며 예수님의 성의의 흔적과 아주 일치합니다.
"잠시 후에, 나는 채찍질, 바로 그 끔찍한 채찍질을 위해 옷이 벗겨지는 예수님을 본다. 우리의 구세주께서 묶이신 기둥은 다소 높은 기둥이었다. 주님께서는 기둥에 오직 손만 묶인 채 계셨는데 이는 몸이 길게 축 늘어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우리의 구세주께서는 땅 위에 서 계신다.
그 분은 두 명의 남자에 의해 동시에 무자비하게 채찍질 당하신다. 그 분을 채찍질 하고 있는 남자들은 올리브 동산에서 그 분을 끌고 간 남자들과 닮았다. 집행인들이 두 번 바뀌어서 실제로 6명이 그 분에게 채찍질을 가한다. 우리의 사랑하올 구세주께서는 온 몸에 걸쳐 채찍질을 당하셨다.
먼저 그 분의 등 쪽에 그리고 그 분은 돌려 세워져 앞부분에 채찍질을 당하셨다. 그 분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완전히 옷을 벗겨지게 된 것이었다."
"계속되는 채찍질에 먼저 살갗이 부어오르고 그리고는 찢겨졌다. 피가 흘러 내려 그 분의 온 몸은 상처와 피로 인해 끔찍하게, 붉게 물들여졌다. 군인들이 그들의 잔학한 행위를 모두 마쳤을 때 그들은 우리의 구세주를 풀어 주었고 그 분은 쓰러지셨다. 그것은 가슴 찢어지는 비통한 광경이었다."
가경자(可敬者, venerable) 마리아 다그레다와 카트린느 에메릭에 의한 채찍질에 관한 기술은 위의 두 개의 것보다 더 상세합니다. 이 두 개의 기술에서 고문 기구에 대한 것이 설명 되어져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묘사는 6명의 집행인이 있었다는 것과 주님의 손이 높은 기둥의 꼭대기에 묶였다는 테레사 노이만의 말과 일치합니다.
카트린느 에메릭과 테레사 노이만은 주님의 몸이 돌려 세워져서 앞쪽에도 채찍질을 당했음을 명백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경자 마리아 다그레다는 카트린느 에메릭과 같은 방법으로 얼굴의 구타를 묘사하는데 그것은 몸이 돌려졌다는 것을 짐작케 합니다.
브리짓다 성녀와 카트린느 에메릭 둘 모두 집행인들에게, 그들이 죄 없는 사람을 죽일 권리가 없다고 하면서 기둥에 주님을 묶고 있던 줄을 자른 어떤 남자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2명의 집행인들이 사용한 채찍에 대한 묘사에서 카트린느 에메릭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처음에 사용했던 채찍은 휘는 하얀 나무처럼 보였다. 아니면 소 근육, 혹은 가죽 끈처럼 보였다."
첫 번째 두 명의 집행인들이 주님을 채찍질 하고 있을 때에 카트린느 에메릭은 새로운 채찍을 준비하고 있는 다른 집행인들을 보았습니다.
"나는 한 무리의 파렴치한 젊은 남자들을 보았다. 그들은 새 채찍을 준비하느라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다른 사람들은 가시 덩굴을 찾으러 나갔다. 고위 사제의 종이 집행인들에게 돈을 주었다. 종들은 집행인들을 취하게 하고 그들을 더 광포하게 만드는 밝은 적색의 술이 가득 담긴 커다란 항아리도 가지고 있었다."
"그 다음의 2명의 집행인들은 가시와 혹이 달린 가시 막대기와 같은 것을 사용하였다. 이 막대기로 때리니 주님의 살은 조각이 되어 찢겨졌다. 그 분의 피가 뿜어져 나가 그들의 팔을 물들였고 주님께서는 신음하시며 기도하셨으며 전율하셨다. 두 명의 새로운 집행인들은 작은 체인으로 만든 채찍 혹은 철 갈고리가 달린 가죽 끈을 사용하였는데, 그것은 뼛속까지 뚫고 들어가 매번 내리칠 때마다 살이 조각조각으로 찢겨져 나왔다."
"집행인들은 예수님을 풀어서 그 분의 등을 기둥 쪽으로 가게 하여 단단히 묶었다. 그들은 전보다 더 광포하게 그 분을 다시 채찍질하기 시작하였다. 그들 중의 한 명은 새 막대기로 끊임없이 그 분의 얼굴을 때렸다."
"나는 당신의 거룩하신 아들이 채찍질 당하는 동안에 줄곧 정신을 잃으신 마리아를
을 보았습니다. 마리아께서는 주님께서 견디고 계신 모든 고문의 고통을 표현할 수 없는 사랑으로 보고 계셨으며 또 그것에 의해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가경자 마리아 다그레다에 의한 채찍질의 묘사는 카트린느 에메릭의 묘사와 아주 일치합니다. 둘의 묘사는 자신들이 보았던 것에 대한 기억에 의존하여 묘사를 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말하여진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용된 채찍에 대한 묘사는 둘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마리아 다그레다는 채찍중의 어떤 것은 단단한 매듭이 있는 밧줄로 되어 있고 어떤 것들은 소 근육이나 또 다른 것들은 가죽 줄로 되어 있었다고 말합니다.
채찍질 이후의 주님의 갈가리 찢긴 몸의 상태에 대한 4명의 묘사는 매우 일치하며 성의의 흔적과도 일치합니다.
가경자 마리아 다그레다는 주님의 얼굴을 때리는 집행인 중의 한 명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거룩하신 아들의 육체적인 고통을 함께 나누는 마리아에 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말로 끝을 맺습니다.
"두 번째로 채찍질을 한 2명의 집행인이 물러났을 때 지극히 거룩하신 몸의 모든 핏줄들이 터졌고, 몸 자체는 끊임없는 상처의 연속처럼 보여서 세 번째로 채찍질을 하려던 집행인들은 핏줄이 터질 만한 성한 곳을 한 곳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집행인들은 비인간적인 잔인함으로 채찍질을 시작하여 죄 없이 순결하신 우리 주 그리스도의 몸은 완전히 찢겨졌다.
그 분의 살 조각 까지도 땅바닥에 떨어졌고 어깨의 여러 부분에 뼈가 드러나 뚜렷이 보였다. 온 몸이 피로 뒤덮였다. 이렇게 뼈가 겉으로 드러난 어떤 부분들에서는 그 크기가 손바닥보다도 더 컸다. 인간의 아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우신, 거룩하신 인성의 비길 데 없는 아름다움의 최후의 흔적까지 파괴하기 위해 집행인들은 그들의 채찍으로 우리의 거룩하신 구세주의 얼굴과 발과 손을 때렸다.
그들의 사나운 포악함은 어느 한 곳도 성한 곳이라는 남겨 놓지 않았다. 고귀한 보혈은 철철 땅으로 흘러 내려 땅위에 괴었다. 사랑하올 예수님의 얼굴은 모두 부어오르고 상처를 입어 그 분의 눈은 눈을 덮은 피와 상처로 인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조롱하며 더러운 침을 뱉어 그 분의 얼굴을 침으로 뒤덮었다.
그래서 그야말로 주님께서는 마음껏 모욕을 당하셨던 것이다."
더욱이 십자가 위에서 조차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 또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는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성경의 증언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 마태복음 27:39~44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 않고, 그 수난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대신 지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일곱 마디의 말씀(架上七言)을 하시고 결코 길지도 않고, 평탄하지도 않았던 삶의 마지막 비극적인 운명을 하셨습니다.
가상칠언(架上七言)¢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는 핍박자를 위한 기도(누가복음 23:34)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는 회개한 강도에게 하신 약속(누가복음 23:43)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 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는 어머니에 대한 선책(요한복음 19:26~27)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는 슬픔의 심연에서 나오는 절규(마태복음 27:46)
"내가 목마르다"는 인간적인 고통의 외침(요한복음 19:28)
"다 이루었다"는 승리의 외침(요한복음 19:30)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는 영혼을 부탁하시는 말씀(누가복음 23:46)
고통스런 죽음의 시간이 한참이나 흐른 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끌어내려졌습니다.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님을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외쳤습니다.(마태복음 27:54)
로마 백부장은 예수가 죽은 사실을 확인했고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그 말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서부터 인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무리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십자가 위에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역사가 없었다면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 놓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분의 마지막은 위대한 승리였습니다.
십자가에 대한 12가지 반응들 (<눅 23:47>~49)
① 군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잔인한 범인을 보았습니다.
② 여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슬픔을 안고 보호자를 보았습니다.
③ 그 모친 마리아는 그리스도 안에서 고뇌로써 아들을 보았습니다.
④ 제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낭패와 더불어 시든 소망을 보았습니다.
⑤ 그 첫 도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고함을 가지고 악인을 보았습니다.
⑥ 그 둘째 도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참회로써 왕의 왕을 보았습니다.
⑦ 백부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자각을 가지고 신성을 보았습니다.
⑧ 제사장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조롱으로 협잡꾼을 보았습니다.
⑨ 천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경이로서 사랑을 보았습니다.
⑩ 악마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경악으로 여인의 씨를 보았습니다.
⑪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애정으로 순종을 보았습니다.
⑫ 통행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무관심으로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Cross)는
① 갈보리에서의 죄인들을 위한 대속의 죽음이었으며
② 갈보리에서 하나님은 원수 되었던 죄인들과 화목을 이루셨고
③ 갈보리에서 죽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신실한 십자가!
다른 모든 것보다 유일하게 고귀한 나무여!
너의 동료들 중에는 잎사귀를 가지 것이 없고,
꽃을 피운 것도 없고, 열매를 맺는 것도 없구나,
너의 가장 매력 있는 나무요 가장 매력 있는 쇠로구나!
그런 너에게 가장 매력적인 분이 매달려 있구나!
베나티우스 포르투나투스(Venatius Fortunatus)의 Zeslilla regis
~예수 수난의 십자가의 꿈
(The Dream of the Lord)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의 띠를 푸셨다:
그분은 그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두려움 없이 교수대에 올라가기를 원하셨다:
그는 인류를 해방 시켜야 할 것이었다.
그가 두 팔로 나를 안을 때에
나는 떨렸지만 땅에 엎드려 경배하지는 않았다.
나는 견고히 서야만 했다.
나는 예수 수난의 십자가에게로 들려 올려졌다.
나는 위대한 임금을 들어올렸다.
천국의 충실한 주는
결코 진실한 것들을 버리지 아니하신다.
베나티우스 포르투나투스(Venantius Fortunatus)의 Pange Iingua
~그때 그 무리들이 (세 개의 못)
1. 그때 그 무리들이 예수님 못 박았네 녹슨 세 개의 그 못으로
망치소리 내 맘에 울리면서 들렸네 그 피로 내죄 씻었네
2.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주님눈물로 기도했네
정결한 그 보배 피 나를 위해 흘렸네 그 피로 내죄 씻었네
3. 비웃는 그 무리들 주의 옷 벗긴 후에 주님 몸 깊이 찔렀네
귀중한 그 보배 피 나를 위해 흘렸네 그 피로 내죄 씻었네
4. 주여 나의 영혼을 받아 주시옵소서 그때 구원을 이루셨네
마지막 피한방울 나를 위해 흘렸네 그 피로 내죄 씻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