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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고종41년) 2월 8일 오후, 수십척의 일본 군함들이 중국 뤼순항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날밤, 일본군은 선전포고없이 러시아 군함에 수뢰공격을 가했다. 다음날, 인천 앞바다에 정박해 있던 두척의 러시아 군함도 일본의 기습공격을 받아 격침됐다. 러일전쟁의 시작이었다. 러일전쟁 발발 6개월전, 고종은 러시아 황제에게 은밀히 친서를 보내는데, (방송인 이윤석 대독연기)
1903년 8월 15일
존경하옵는 짐의 좋은 형제 아라사국 황제 폐하,
일본이 지금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나
그렇게 된다면 귀국의 군대가 승전보를 알릴 것은
의심할 것도 없으니 짐이 미리 축하드리는 바입니다.
지금 이후로 바라옵건데 폐하가 우리나라를
더욱 잘 대해주시리라 짐은 깊이 믿습니다.
폐하의 덕화가 융성하고
왕업이 영원하기를 바라옵니다.
최원정/KBS 아나운서: 역사저널 그날, 오늘은 러일전쟁이 일어나기 6개월 전 고종이 러시아 황제에게 밀서를 보낸 사건으로 시작을 해봤습니다. 그러니까 고종은 인제 러시아가 승리할 일만 확신하고 전쟁이 끝나면 우리와 앞으로 화목하게 잘 지냅시다 라는 편지인데 그것을 지금 밀사에게 읽어주신 거에요. 아니 그런데 왜 그런 콧수염에 복장을 하고 계속 앉아계실 거에요? 낯설어가지고--,
이윤석/방송인: 아, 그렇군요.
류근/시인: 콧수염이 잘 어울려요.
이윤석: 수염은 떼고 하겠습니다. 어쨌거나 이 러일전쟁 결과는 사실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보면은 미리 축하드립니다 라고 할 정도로 러시아의 승리를 고종은 확신을 했어요. 안타깝지만 고종이 국제정세에 너무 어두웠던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이익주/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그 당시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은 러시아가 이길 거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정말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러시아와 일본의 국력 차이를 보면 그런 생각이 무리가 아니죠. 그러니까 고종이 러시아에게 이런 밀서를 보낸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아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류근: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카더라 통신.
이윤석: 설마? 1분 됐나, 시작한지,
류근: 러일전쟁, 과연 황제는 이 전쟁을 어떻게 바라 봤을까요? 류근의 카더라 통신입니다. 전운이 감돌자 영국의 사교클럽에서 러일전쟁에 대해 내기 도박판이 벌어졌습니다.
이윤석: 러시아가 이기냐? 일본이 이기냐? 내기를 건건데.
류근: 과연, 그랬을까요? 당시 도박사들은 러시아가 이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러시아가 며칠만에 이 전쟁을 끝내느냐고 두고 내기를 했다는 사실, 전쟁이 발발하면 해가 뜨기 전에 전쟁이 끝날거란 이야기도 있고, 열흘이면 끝날거란 이야기도 있고, 아무튼 그 누구도 러시아가 질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참, 남의 나라 전쟁에 내기를 했다니까 어이가 없습니다만 어쨌든 이상 류근의 카더라 통신이었습니다.
최원정: 돈 딴 사람은 한명도 없었겠네요. 항상 도박은 업소가 돈을 법니다. 참가하는 사람은 돈을 못벌어요.
류근: 하우스가 돈을 번다
최원정: 아니, 오늘 복장이 그러더니 이상한 말만 해요?
이윤석: 칩을 나눠 줘야할 것 같아요.
최원정: 아무튼 어느 누구도 일본이 이길거라고 예상을 못했는데 왜 당시에는 주변국들은 러시아의 압승을 예상했던 걸까요?
서민교/동국대학교 대외교류연구원/교수: 러시아가 1860년대 이후 공업화가 진전이 되면서 상당히 국력이 신장이 됐습니다. 그리고 군대병력만 보더라도 러시아 육군만 하더라도 100만이 넘어요. 그 다음에 발틱함대라든지 해군도 세계 5위권에 드는 대국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볼 때 일본의 경우는 육군만 따져 보면 20만이 채 안됐거든요. 해군력도 러시아에 비해서 3분의 2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류근: 이럴 때 이제 써 먹는 말이 있죠. 당랑거철(螳螂拒轍) 이라고, (螳螂拒轍-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는다는 뜻. 자신의 힘을 모른채 강자에게 함부로 덤비는 형세), 사마귀가 마차에 맞서는 형세죠. 그러니까 당연히 모든 주변 국들이 보기에 일본은 한갖 동양 변방의 약소국으로 보였겠네요. 그러니까 고종이 이런 밀서를 보낸다는게 별로 무리가 아니라는 거죠.
심용환/역사작가: 그걸 입증하는 사진, 풍자화가 여기 있는데요. 이게 1904년 4월 3일날, 프랑스의 신문이었던 르삐띠 파리지 1면에 실렸던 사진인데요. 지금 보시면 여기 가운데 키 큰 사람이 러시아, 그리고 왼쪽에 카 작은 사람이 일본이죠. 위에서 뒷짐지고 늠름하고 두배 큰 키에 밑으로 내려다 보고 있고---,
이익주: 러시아 사람은 두 손을 안쓰고 발로 해도 이긴다고 하는 거 잖아요. 그런데 저 그림 속에는 러시아와 일본 말고도 정말 재밋는 요소가, 풍자가 있는 재밋는 요소가 많이 있습니다. 곳곳에 재밋는 그림이 있는데요.
이윤석: 키 작은 일본인이 한반도 대한제국을 밟고 있고, 러시아인은 만주를 발로 밟고 있고요.
이익주: 이 싸움이 한반도를 사이에 둔 일본과 러시아의 전쟁이다 라는 걸 상징하는데, 그보다 관중석을 보면 뒷 열에 키 큰 사람의 모자에 성조기가 그러져 있어요. 이게 미국이죠. 그리고 앞 열에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중절모 쓰고 있는 저 사람은 영국일 겁니다. 그 당시 세계의 중심, 영국이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죠. 그리고 영국 옆에 프랑스, 독일이 있는데, 저 그림이 재밋는게 저기서 표를 못구해서 못들어오고 있는 한 사람이 있어요. 경기장 밖에서 관람하는 관객,
최원정: 淸나라잖아요.
심용환: 복장이 중국사람이죠.
이익주: 그래서 청일전쟁 이후에 이미 경쟁대열에서 이탈한 청나라가 이 관중석에 못들어오고 바깥에서 담 넘어 구경하고 있는 정말 이런 걸 요즘엔 眼濕이라고 하는, 그런 광경이 여기 연출되어 있습니다.
류근: 저 풍자만 봐도 당시의 서양국가들이 동양국가들을 어떠한 의미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아스라히 느껴지지 않습니까. 서양국가들은 다들 크고 굉장한 반면에 저기 일본하고 중국을 보세요. 왜소하지 않습니까. 우습게 보이는 거죠.
최원정: 전쟁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그 전에 이미 프랑스 신문에 실렸던 실화인데, 아니 단순히 두 나라의 군사력을 비교하기 보다는 뭔가 좀 편견같은게 스며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서민교: 맞습니다. 서양국가들은 기독교 문명, 기독교를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문명국가라는 인식이고 동양국가는 야만에 가까운 비기독교권 국가라는 구분도 있으면서 더군다나 이때는 인종주의적인 측면이 굉장히 강했던 시대였죠. 백색인종 대 황색인종 싸움, 단순한 국가 간의 전쟁이라기 보다는 우월한 백인종과 열등한 황인종의 전쟁이다라고 하는 그런 차별적인 시각도 이 풍자화에 반영이 되고 있습니다.
류근: 십자군 전쟁이래 문명 충돌로 봐야겠군요.
이익주: 인종주의적인 시각이죠. 이것의 대표적인 사례가 황화론이예요. (黃禍論-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주장한 것으로 황인종이 유럽문명에 위협이 된다는 논리), 황인종이 유럽문명에 심대한 위협을 준다 는 생각인데요. 그 중에서도 러시아는 좀 재밋는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몽골제국이 확장해서 유라시아 대륙에 걸치는 대제국을 건설하잖아요. 그 몽골제국 가운데 가장 마지막까지 존속했던 나라가 지금 러시아 지역에 있었던 조치 울루스예요. 그러니까 몽골족의 지배를 가장 오래 받은 곳이 러시아 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러시아는 이 황인종에 대한 콤플렉스가 더 심하게 있었던 거지요. 실제로 러시아 사람들은 몽골인들을 타타르인 이라고 불렀는데 그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타르타로스인가, 지옥의 주인을 상징하는 거니까. (타타르=지옥의 주인을 의미하는 타르타로스), 그만큼 굉장히 공포감도 있었고 심지어 무정부주의자였던 바쿠닌은 중국인들이 연젠가는 우랄 산맥을 넘어 볼가강으로 쳐들어 오니까 대비해야 됩니다 라고 하면서 러시아 황제에게 경고했던 적도 있습니다.
최원정: 모두가 러시아의 승리를 점치고 있고 또 기대하고 있는데 왜 일본은 무모하게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던 걸까요?
류근: 우리가 청일전쟁에서 한번 다뤄본 바가 있는 것처럼 러시아의 부동항을 위한 남하정책과 일본의 대륙진출 야욕으로 두나라가 진출할려는 영역이 딱 부딪히잖아요. 그러니까 언제든지 일촉즉발의 상황이 발생하는 거지요. 이상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이윤석: 거기에다가 복수심!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뺏겼다 하니까 화가 나는데 이때 일본에서도 너무 억울하고 분해가지고 일본군인 40여명이 아마 자살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아마도 십년동안 이를 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서민교: 당시 그래서 등장한 슬로건이 와신상담이죠, (臥薪嘗膽-불편한 장작 위에 몸을 눕히고 쓸개를 맛본다는 뜻으로 원수를 갚기 위하여 온갖 괴로움을 참는 상황), 잠 잘 때도 잊지 않기 위해서 장작 나무 위에서 잠을 자고 그 복수심을 잊지 않기 위해서 쓰디쓴 쓸개를 맛본다 라고 하는 臥薪嘗膽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일본이 국력이 약했기 때문에 3국간섭에서 뺏긴 거다. 그럼 우리가 국력을 키워야된다 라고 해서 淸日戰爭 때 받은 배상금을 대부분 군수공업 쪽으로 투자를 하면서 군대 무력을 확장을 시킵니다. 그것만 한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교실에서 교육을 시키면서 요동반도 부분만 빨갛게 칠해 놓고 요게 원래 우리 건데 러시아에 빼긴 거다. 찾아와야 한다는 식의 정신교육도 시켰던 것이죠.
심용환: 회보도 있거든요. 빨간색 칠한 걸 봤던 학생들이 오스키 사카에는 삼국간섭의 장본인 러시아에 대한 복수전의 요구였다. 우리들은 피가 용솟음치듯 끓었다.
류근: 원래 전쟁에서 물리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어떠한 정신태세를 갖추고 있느냐가 문제이잖아요. 그래서 군대에서 비가와도 눈이와도 하는게 정신교육 아닙니까. 그런데 어린 학생들한테 까지 그렇게 왜곡된 복수심을 심어준다는 게 이후의 역사를 우리가 알고 있잖하요. 전쟁을 낳은 불행의 씨앗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는 것이죠.
이윤석: 십년간 복수를 위해서 칼을 갈다가 이제 칼을 뽑았잖아요. 일본 나름대로는 뭔가 자신이 있으니까 칼을 꺼냈을 것 같은데--,
이익주: 러일전쟁이 일어나기 사년전에 그러니까 1900년에 청에서 의화단 운동이 일어납니다. (義和團運動-1900년 淸에서 일어난 외세배척운동), 淸에 있는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러시아 군대가 淸으로 진출합니다. 그래서 만주를 점령해 버려요. 언젠가 러시아가 남쪽으로 내려올 거라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결국 내려오니까 영국이 여기에 대해서 경계를 하기 시작합니다. 러시아를 막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나 그래서 일본에 주목을 해요. 일본을 끌어들여서 러시아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영국이 정책이 바뀌는 순간, 일본이 그 기회를 포착하는 거죠.
그 臥薪嘗膽했던 그 복수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을 한 일본은 영국과 동맹을 체결합니다. 이것이 제1차 영일동맹인데, 이 영일동맹이 우리가 오늘 이야기할 러일전쟁의 결과에 정말 엄청난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지금으로부터 꼭 600초 뒤에 이야기 해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600초를 세세요.
심용환: 진짜 재미있습니다.
류근: 60초도 아닌 600초라니요.
이익주: 오래 세셔야되요
이윤석: 전문방송용어로 밑밥(?)이라고 하거든요. 진짜 궁금합니다.
류근: 그런데 가만 듣고 보니까 한 마디로 일본 입장에서는 불감청고소원 딱 그 상황이네요. (不敢請固所願-감히 청하지는 못했으나 몹시 바라던 것), 정말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일본 입장에서는 대륙진출을 도모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온 거예요. 그러면 영국과 미국의 손을 잡은 일본을 러시아가 혼자서 그걸 감당해야 되는지요?
서민교: 그렇지는 않았구요. 러시아는 1890년부터 강력한 동맹관계였던 프랑스가 있습니다. 프랑스와 러시아가 동맹관계였고 그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나라가 유럽 지역을 보시면 독일이 있습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독일의 경우는 이 두 나라가 바로 붙어있으니까 한쪽이 너무 높아지는 것 사실은 서로 싫어하죠. 그래서 러시아가 유럽 쪽으로 눈을 돌리기 보다는 차라리 동양쪽으로 눈을 돌려서 만약에 극동지역에서 남하정책을 치중하고 있으니까 오히려 독일 입장에서는 그걸 지지하고 도와 주는 게 독일은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요런 복잡한 국제환경이 작용하면서 결국 프랑스와 독일이 러시아를 지지하는 형태, 그 다음에 영국과 미국이 일본을 지지하는 형태로 구도가 형성이 됐죠.
이윤석: 나라들이 많이 나오니까 헷갈려서 제가 지도를 가지고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지도하고 국기를 준비를 했는데요. 일단, 일본이 동쪽에 있고 일본하고 미국하고 영국이 같은 편이죠. 지금 한팀이 된거고, 러시아가 눈이 많이 오잖아요. 눈이 쌓여요. 국기 흰색부분이 위로 가고, 러시아 월드컵 때 독일 국기 본 거 같은데, 독일이 하늘이 흐려요. 국기 검은색 부분이 위쪽으로, 프랑스가 헷갈리는데, 프랑스가 월드컵 때 파란 유니폼 많이 입었죠. 파란색 부분이 왼쪽으로 가고, 아, 국가배열이 헷갈리네요. 러시아 프랑스 독일이 한팀이고, 일본 미국 영국이 한팀이예요.
류근: 참 재밋네요. 삼선국기파(프랑스 독일 러시아)와 내 맘대로 국기파(영국 미국 일본)군요,
이윤석: 팽팽한 대결이 펼쳐지는 거죠. 이게 陣營정리는 되는데 국기정리는 잘 안되네요.
이익주: 러일전쟁 전에 저렇게 두 진영으로 나뉘기는 하는데, 영국과 미국이 일본을 강력하게 지지했던데 비해서, 저쪽 독일과 프랑스는 러시아를 좀 미지근하게 지지했죠. 여기에서 러시아와 일본의 희비가 엇갈립니다.
최원정: 얼핏 보니까 국제 대리전 처럼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어요. 그런데 전통적으로 서양에 동양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는 것과 영국과 미국이 일본을 도왔다는 게 특이한 점인데요.
서민교: 일본이 청일전쟁에 승리했을 때 3국간섭을 당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요동반도를 빼앗긴 경험이 있으니까 이게 전쟁만 이긴다고, 승리만 한다고 뭐가 얻어지는 게 아니구나. 이미 이걸 물밑에서 서구 열강들과 교섭을 해둬야 하는 거구나 라는 교훈을 일본은 알게 된 거죠. 그래서 일본 정치가라든가 지도자들이 일본의 이미지를 서구와 같은 문명국임을 지향합니다. 일본도 발전하고 있다 라는 걸 굉장히 어필했던 것입니다.
이익주: 露日戰爭이 막 시작됐을 때 이토 히로부미가 가네코 켄타로(1853~1942, 일본의 정치가)라고 하는 사람을 미국에 파견을 해요. 그래서 이 전쟁에서 도움을 얻도록 외교활동을 하게 하는데 그 주된 논지는 러일전쟁은 백인과 황인의 싸움이 아니다, 러일전쟁은 기독교 문명과 이교도의 전쟁이 아니다 라는 걸 설득하는 작업이에요. 마침 가네코 켄타로 라고 하는 사람이 일본 사람인데 미리 일찍 유학가서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때 미국 대통령이 시어도우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1858~1919, 미국 26대 대통령)인데 이 사람도 하버드 출신이에요.
최원정: 동문이에요?
이익주: 동문이에요. 그래서 이 사람을 보내서 루즈벨트 대통령을 설득을 하는데 그래서인지 루즈벨트 대통령이 일본의 전쟁을 지원하고 홍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윤석: 어쨌거나 그것 때문에 들어준 것이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은 전쟁을 위해서 그렇게 학연까지 동원해서 외교활동을 펼쳤다는 것 자체가 지독하게 준비를 했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심용환: 실제로 일본이 적극적으로 대외홍보에 나서는데 약간 이유가 있습니다. 무슨 이유가 있느냐 하면 대외원조가 필요해서요.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을 보게되면 사실 준비가 필요하고 예산이 필요하잖아요. 3국간섭이 일어났던 그 해에, 그 다음에 1895년에 12월 정도에 일본은 10년 정도 예산을 편성하게 되는데 육군은 7개 사단에서 13개 사단으로, 그리고 해군은 강철 전투함 6척, 그리고 순양함 6척해서 66계획을 편성해 엄청나게 많은 예산을 미리 계산했는데 그 자금이 부족한 거죠. 계획 세웠던 예산안이 그 당시 7억8천5백만엔 정도인데 약 8억엔, 이게 청일전쟁 전의 9배 수준이었어요. 결국에 외국에 도움을 요청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문제는 뭐냐 아까 우리가 풍자만화 지금까지 우리가 얘기를 들어와서 알겠지만 외국입장에선 그다지 그 많은 돈을 이 나라에다 빌려줄 이유가 없는 거죠. 전쟁의 결과가 뻔한 상태니까 약간 딜레마 라고 볼 수있죠.
이윤석: 아니 돈 없으면 안하면 되지,
류근: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먹지,
서민교: 사실, 미국이 일본을 도와 주었던 때는 국제관계 이유도 있지요. 그 다음에 일본을 좀 도와줘서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할 경우에 한반도와 만주의 일부를 일본이 차지할 것이 예상이 되니까 그럴 경우에는 미국의 자본참여도 가능할 것이고 미국한테도 이익이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을 한 것이고 그리고 또 하나가 일본이 질게 뻔한데 누가 돈을 빌려줍니까 처음에는 미국의 은행에서 돈을 안빌려줄려고 그랬어요. 그런데 이게 여기서 재밋는게 뭐냐면 당시 미국의 유대인 은행가로 유명했던 야곱 시프(Jacob Schiff, 미국유대인 은행가) 라는 사람이 알선을 합니다. 이 사람이 빌려주겠다 해서 전체적으로 아마 네번에 걸쳐서 외채를 조달하게 됩니다. 영국으로부터도 조달하지만, 그래서 일본에서 하는 말이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를 거둔 것은 군사력에 의한 승리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야곱 시프의 원조였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류근: 유대인 은행가라고 하면 일단 보통내기가 아니었을 것 같애요. 뭘 믿고 돈을 빌려준 걸까요?
서민교: 이 사람이 유대인이었다고 하는게 거꾸로 일본한테 돈을 빌려주게 만드는 하나의 요인이 됐어요. 그 이유가 뭐냐하면 근대 유럽에서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가장 심했던 나라가 러시아입니다. 러시아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감이 굉장히 컸었고 전세계 유대인들의 적이 바로 러시아였던 셈이죠.
심용환: 약간 나비효과 죠. 러시아의 반유대주의가 이렇게 몰고 와서 러일전쟁에 일본의 힘이 되었던 거죠.
서민교: 그래서 러시아와 전쟁할 수 있는 일본에게 힘을 주자. 자금을 빌져주자 (야곱 시프) 이렇게 된 거죠.
최원정: 정말 재밋다.
류근: 착하게 살아야 됩니다.
최원정: 전쟁에 反동양정서에 反유대정서에 굉장히 많은 감정들이 녹아있어요.
이익주: 이런 얘기 하고 있으면 안돼요! 600초가 다가오고 있어요!
최원정: 아직 안됐죠? 지금 450초 정도 지났습니다. 정리하면 일본은 영국과 동맹을 맺고 미국으로부터 자금을 끌어와서 이제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이 당시 대한제국은 어떤 일을 하고 있었을까요?
서민교: 국내망명이랄까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간 약 1년간 俄館播遷을 계기로 조선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집니다. 근데 의외로 러시아는 한반도 조선보다는 만주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만주를 개발해서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있으니까, 만주가 워낙 크니까 일본은 러시아 보다 한반도에서 불리한 입장이었으니까 요 시기를 잘 살렸으면 한국도 자체적인 근대화라든가 내정개혁이 가능한 시기가 아니었겠느냐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조선은 일본의 영향력이 약해진 시기를 잘 이용했다면 자주적으로 근대적인 개혁을 이룰 수 있었을 것),
최원정: 대한제국이 중심이 돼서 개혁을 하죠. 그게 바로 광무개혁(光武改革), 광무개혁은 오랫만에 외세 의존적인 자세를 버리고 대한제국의 황제가 중심이 되어서 자주적인 개혁을 한다는 점에서 앞에 갑오을미개혁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특히 광무개혁이 앞에 갑오을미개혁에 비해서 다른 점은 국방력 강화라고 하는 개혁이 포함되어 있다는 거예요. 조선의 군대를 근대화 시키고자 황제 직속으로 원수부 라는 걸 설치하고 또 무관학교 사관학교도 설치하고 또 다른 나라에서 무기도 수입을 해옵니다. 이때에 대한제국의 예산 중에 해마다 40% 정도를 군부예산이 차지해요.
심용환: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가지 각종개혁들이 진행되긴 했는데 1903년 4월, 일본으로부터 군함을 구입하게 되었다는게 인상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죠.
류근: 일본으로부터 군함을 사들였다구요? 웬지 불안해 지네요. 왜냐면 대한제국이 힘을 키우겠다는데 일본이 협조적일리가 없잖아요. 그 동안 전례로 봤을 때는 혹시 일본이 청일전쟁 때 쓰다가 망가진 군함을 대한제국에 팔아 넘긴 건 아닙니까?
최원정: 조선에다 멀쩡한 걸 팔았을 리가 없다.
심용환: 정확하면서 더 비극적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이 배는 군함이 아니었구요. 1894년 영국으로부터 사들인 증기화물선을 군함으로 둔갑시켜서 팔았던 겁니다.
이윤석: 화물선을 군함으로 속여서 판 거네요.
최원정: 사기잖아요?
이윤석: 물탱크를 탱크라고 속여 판 격이네요! 그런 소리 아닌가요. 그리고 1894년도산 이라고 하면 거의 9년 정도 쓰다 판 거잖아요. 중고를 속여서 판 거네요.
서민교: 심지어는 일본이 이 배를 처음 영국에서 구입을 했을 때 25만엔을 주고 산 거예요. 9년이나 쓰다가 대한제국에다 이걸 55만엔에 팔았어요. (1894년에 25만엔에 구입해 9년후 1903년에 55만엔에 판매), 55만엔 이라고 하는 돈은 당시의 돈으로 하면 대한제국 국방예산의 일년치의 30%에 해당합니다. 그 당시 국가 전체 예산의 10%나 된 돈인데 이런 막대한 돈을 주고 엉터리 배를 사왔다는 거죠.
류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외관을 보면 몰랐을까요?
서민교: 증기선에 대포 몇문 장착시키고 무기를 부친거죠.
이윤석: 화물선에다 대포를 부쳐 버렸군요.
서민교: 그게 방산비리의 원조였습니다.
류근: 아까 일본이 전쟁준비에 자금이 많이 필요하다고 했잖아요. 그렇게 챙겨가지고 또 자기들 전쟁자금을 마련했다고 생각을 하니까 진짜 너무 하였습니다.
최원정: 우리의 어떤 자강개혁의지는 이렇게 꺾이고 말았고 러일전쟁은 시작이 되고 그런데 아까 처음으로 돌아가서 고종이 러시아에 밀서를 보냈잖아요. 그러면 이제 대한제국은 공식적으로 러시아 편에 딱 선 건가요?
심용환: 고종이 중립화를 선언합니다. 노일전쟁 한 달 정도인 1904년 1월 21일날 우리는 어느쪽 편도 들지 않겠다 라고 선언을 하게 됐고 그건 뭐냐면 나름대로 두나라의 싸움 속에서 국가의 어떤 주체성과 자주성을 지키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라고 볼 수 있죠.
서민교: 선언을 했으면 선언을 지킬 힘이 있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짓밟혀 버리죠. 그러니까 간단하게 얘기하면 중립선언을 했으면 난 중립이니까 들어오지 마라. 일본군도 들어오지 말고 러시아군도 들어오지 마라 하고 이걸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되는데 그런 점이 결여되었다는게 안타까운 현실이었죠.
최원정: 대한제국은 그래도 이 전쟁 직전까지 중립화 선언을 하고 애썼는데 받아 들여지지 않고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발발합니다.
심용환: 그래서 문제가 더 심각해져요. 아까 러일전쟁 한달 전에 중립선언을 시도했잖아요. 그런데 다시 그때부터 한달이 지난 1904년 2월 23일날 한일의정서 라는 게 체결이 됩니다. 이 의정서의 핵심 내용이 뭐냐 일본이 조선에 들어와서 각종 어떤 병참기지로 영토를 사용한다든지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그런 조약을 맺게 돼요.
류근: 을사늑약의 전초전 같은 거 아니예요?
심용환: 그렇죠.
류근: 진짜 심각하네요.
이익주: 제물포를 사실상 일본의 기지로 활용을 하고 대한제국 군대 3천명을 일본군에 예속시키기 까지 해요. 전략상 필요한 지점을 수시로 사용할 수 있다. 용산기지 얘기가 나왔는데 올해 114년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다고 그러잖아요. 2018년에서 114를 빼면 1904년이예요. 이때 이후로 한국 사람들이 거기를 처음 가보게 되는 겁니다. 서울 안에 우리나라 땅이 아닌 땅이 114년 동안 있었는데 그 시작이 이때부터예요.
최원정: 반드시 가봐야겠다.
서민교: 맞습니다.
이익주: 우리가 지금 생각해 볼게 이런 게 정말 일본한테만 행복이었는가예요. 이게 대한제국의 불행이고 그만큼 일본이 그 행복을 가져갔느냐고요? 결코 그렇지 않아요. 일본도 불행의 길로 계속 들어가고 있는 겁니다.
최원정: 자, 그 전쟁 진행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심용환: 일본 연합함대가 뤼순항 밖에서 황해 재해권을 장악하게 되고요. 블라디보스토크항에 있었던 러시아 함대도 울산해전에서 패배하게 됨으로써 서해와 동해를 일본 해군이 장악하게 되고 그 바탕에서 일본 육군이 올라가게 되는 거죠.
서민교: 그래서 벌어진 전투가 뤼순 공략전이 되겠는데, 러시아가 여순항 뒤에 있는, 일본에서는 203고지라고 불렀어요, 그 뒷산을 완전히 토치카식으로 요새화시켜 버렸어요. 콘크리트로 전부 요새화시키고, 그리고 사면, 올라오는 적들이 보일 수 있도록 밑에 있는 나무들을 다 베어버리고, 이런 상태로 완전히 요새화시켰습니다. 여순항이 천혜의 요새인데, 만이 넓은데 들어가는 입구는 배가 한척씩 밖에 못들어가요. 그러니까 만안에서 러시아 함대들이 포를 대고 있으면 만약 일본 함대가 들어가려면 한 줄로 서서 들어가야 되니까 바로 포격을 받아서 패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203 고지를 점령하고 여기서부터 항구를 공격해야 되는데, 일본의 정규 3개 사단 6만명이 여기서 전사하여 소진됩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게 되면서 일본도 굉장한 피해를 보게 됩니다만은 여하튼 여순항을 1905년 1월초에 점령을 하고 그 다음에 러시아 태평양 함대를 제압 함으로써 일본이 러일전쟁 초반부터 기선제압을 하는데 성공을 했던 것이죠.
심용환: 여기서 죽었던 사람들이 일본군의 군사영웅이 돼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썼던 무기, 초상화 같은 것들을 신사에 모셔놓고 전용 신사도 만들고 거기 가서 교육도 받고 하면서 진짜 전쟁국가로 돌입되는 시발점이라고 보면 돼요.
최원정: 일본이 뤼순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에 고종이 또 다시 러시아에 밀서를 보낸다지요. 내용을 들어볼까요?
------------------1905년 1월 10일, 고종의 러시아 황제에게 보내는 친서---------------
존경하옵는 짐의 형제 아라사국 황제 폐하
지금 뤼순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
짐은 분노와 탄식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귀국의 용맹한 장수들과 날랜 병졸들은
반드시 오래지 않아 뤼순을 수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귀국 군대가 우리나라에 도착하는 날이면
내응 접대할 방책을 몰래 준비한 지 오래이며
의당 전국의 인민들이 곳곳에서 도와
힘과 정성을 다할 것입니다.
류근: 고종의 밀서가 답답해 보이는 건 사실인데, 한편 생각해 보면 고종이 정세 판단을 못했다기 보다는 얼마나 비빌 언덕이 없었으면 일본의 승전 소식을 듣고도 러시아에다 저런 밀서를 보낼 수 밖에 없었을까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일단 듭니다.
이익주: 어찌보면 고종의 밀서 중에 첫번째 밀서는 고종의 상황판단, 아마 러시아가 이길 것이다 라는 판단에서 쓴 것이고, 두번째 이것은 고종의 희망이 담겨있는 거예요. 한일협약이 맺어진 다음에 고종이, (韓日協約(1908.8.22)-일본이 顧問政治를 하기 위하여 한국과 강압적으로 체결한 조약), 러시아와 연결을 시도합니다. 그래서 1905년 2월 7일날 고종이 대신들과 밀실에서 몰래 대한제국의 현재 상황을 기록한 국서 5통을 작성해서 러시아로 보낼려고 해요.
이익주: 그런데 일본이 첩자를 통해서 이 사실을 미리 알아버립니다.
서민교: 실상 러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일제 강점기가 시작됐다고 말씀 드렸습니다만 고종은 사실상 일본의 포로가 된 것이죠. 일본이 고종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합니다. 러일전쟁이 발생하면서 일본이 가장 먼저 했던게 대한제국의 통신망을 장악해 버립니다. 전보가 오고 나가고 하는 걸 전부 검열을 하고 체크를 하니까 이걸 이용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 이제 사람이 들고 나가야 되는데 이런 것도 밀정들이나 첩보원들을 가지고 감시를 하니까 옴싹달싹 할 수 없었던 거지요.
최원정: 고종은 독 안에 든 쥐였네요.
이윤석: 도와줄 나라는 없고 구조요청은 막히고 孤立無援의 孤城落日인데 이 모든 일들이 100여년전에 일어났던 일들입니다. 근데 백년전이라는게 그렇게 멀리가 아니에요. 정신이 번쩍 드는거 같애요.
최원정: 그렇네요. 이렇게 뤼순을 정복한 일본이 고종이나 다른 나라들의 예상과는 달리 러시아를상대로 계속 승리를 이어가는 거죠?
심용환: 일본이 계속 이깁니다. 1905년 넘어서 3월달에 펑톈, 奉天이라고 옛날에 많이 불렀고 최근에는 센양(瀋陽)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일본군 25만, 러시아는 32만이 투입돼서 일본군 사상자 7만, 러시아군 포로를 포함해서 9만 사상자가 나면서 일본군이 간신히 승리를 거두게 돼요. 그래서 펑텐에 입성한 날이 3월10일인데 1945년 일제가 패망하기 까지 그날이 일본의 육군 기념일이었어요. (奉天入城-1905년 3월 10일->패망전 일본 육군기념일), 그들이 굉장히 이 사건의 의미를 부여하였던 거죠.
이익주: 그러다가 이 전쟁을 끝내는 정말 결정적인 승리를 일본이 거두게 되는데 혹시 600초를기억하세요?
일동: 아! 아!
이익주: 영일동맹이 러일전쟁에 미친 영향, 이것이 무엇일까, 자, 일년간 이어진 러일전쟁을 일본의 승리로 이끈 걸정적인 계기가 쓰시마 해전 그리고 영국, 두가지 입니다.
류근: 쓰시마 해전과 영국?
이익주: 러시아가 지금 우리가 이야기한 것 처럼 계속 져요. 그러다보니까 최후에 카드를 꺼냅니다. 그게 뭐냐하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정말 최강의 해군, 발틱함대를 이쪽 한반도 쪽으로 이동을 시킬려고 나선 거예요.
이윤석: 그게 어떻게 일본 승리의 결정적 계기가 돼죠? 러시아의 승리로 이어지지 않고?
심용환: 결정적인 게 뭐냐하면 이건 수에즈 운하, 보시면 알겠지만, 발틱함대가 빨리 오는 길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야 됩니다. 이 당시 수에즈 운하를 관리하고 있던 나라가 영국이었고, 영국은 일본의 동맹국이니까 안돼! 라고 하니까 이걸 돌아갈 수 밖에 없고 그만큼 물자니 체력이니 모든 게 소진될 수 밖에 없는 거죠.
류근: 어디를 돌았다는 거예요?
-----------------발틱 함대 실제경로------------------
발틱해-도버해협-대서양-희망봉-인도양-말레이시아 해협-대만 해협-제주도-.쓰시마 해전
최원정:저건 지구를 거의 반바퀴 이상 도는 거잖아요.
류근: 저건 연료도 예상보다 많이 들었을텐데---,
최원정: 당시는 증기선 이었을텐데, 석탄연료가 필요했을텐데---,
서민교: 배에다가 석탄을 어마어마하게 실은 거죠. 영국의 식민지에는 기항을 안시켜주니까, 독일 식민지 라든지 이런데 잠깐씩 기항을 해서 휴식하고 보급도 하고 그리고 석탄을 어디서 보급해야 할지 모르니까 갑판에는 석탄의 산이 쌓이는 거죠. 그런 상태로 동양으로 아시아로 일본쪽으로 계속 항해를 했던 거죠.
이윤석: 진입로 폐쇄(수에즈 운하)에다, 주유소 폐쇄(기항지)까지,
서민교: 그리고 발틱 함대는 1905년 5월에, 약 8개월 가까이 걸려서 우리 대한해협에 도착합니다.
류근: 전쟁이 되겠습니까? 기진맥진 해가지고,
이익주: 기진맥진한 상태의 러시아 해군이 쓰시마 해전에서 참패를 당합니다. 그러면서 러일전쟁이 최종적으로 끝이나요. 이 전쟁은 어떻게 보면 일본이 러시아를 상대로 싸웠다기 보다는 영국이 러시아를 상대로 싸운 것이다. 그리고 이쪽 한반도 지역에서 일본은 그저 조연에 불과했던 것이다 라고 까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 영국입니다.
최원정: 이런 장기간 전쟁 중에 일본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요인이 또 하나 있다고 합니다. 이 상자 안에 어떤 물건이 들어있는지 맞춰주시면 됩니다. 뭘까요?
이윤석: 일본 징집 영장 같은 거? 계속 병사를 차출해야 되니까
류근: 일단 전쟁은 돈이에요, 달러!
최원정 아나운서가 상자에서 征露丸 두개를 꺼냅니다.
류근: 근데 약이라면 국민 약골 이윤석씨가 맞춰 보세요.
이윤석: 모르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 제가 한번 丸은 한자잖아요. 알약이란 뜻이죠. 맨 처음 征 글자는 아마 정복하다의 뜻이고, 가운데 露 글자가 이게 주점에서 많이 보던 露 이슬 로자가 맞을 거에요. 그러면 뜻으로만 보면 이슬을 정복한 약이다 해 가지고 숙취해소제 같겠지만 부쳐서 읽어보면 정로환, 이거 다른 분들은 알거예요. 사실은 저도 이 약을 먹을 때가 있어요.
이익주: 아무튼 저 이름부터 보지요. 이슬을 정복하는 알약, 이상 하잖아요? 저 露가 정복은 정복인데 이슬이 아니고 露는 러시아입니다. 그래서 러시아를 정복한 알약=征露丸입니다.
최원정: 우리가 알고 있는 征露丸에 그런 뜻이 있었어요?
이익주: 이런 아주 음흉한 뜻이 있어요.
류근: 그러면 저게 유독 러시아 사람한테는 독약으로 작용한다는 그런 얘기예요?
서민교: 그런 건 아니고요. 사실은 이 약이 왜 개발되게 되었냐 하면 청일전쟁 때 일본군이 요동반도를 점령 하잖아요. 그런데 요동에 들어가서 만주에서 싸웠는데 당시 일본군의 사망자 비율을 보면 싸우다가 죽은 사람보다 배탈로 사망자가 7할 정도가 돼요. 중국이 물이 안좋아요. 그 물을 마시고 탈이 나면 설사가 멈추질 않으니까 탈수증으로 죽는 거예요. 러시아와 싸우기 위해서는 다시 또 만주에 들어가서 똑 같은 상황을 겪을 수 있으니까 그럴 경우에 대비해서 약을 만들자,
류근: 그래서 유사이래로 전쟁에서 한번도 안진 장군이 冬將軍이고, 가장 무서운 병사가 해병도 아니고 疾病아닙니까.
서민교: 일본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 계속 정복할 征자를 쓰기가 뭣하잖아요. 그래서 이걸 바를 正자로 바꿉니다.
최원정: 슬쩍 바꿨네요.
이익주: 그런데 그 이름 바꾼게 더 고약해요. 러시아를 정복한 알약이잖아요? 이걸 바를 正자로 고쳐 놓으니까 러시아를 바르게 하는 알약이 돼요. 바로 러시아를 바르게 해 주겠다는 거예요.
최원정: 어딘가 좀 불편한 진실이지만 우리가 다 알고 있다시피 러일전쟁에서는 일본이 승리하게 됩니다. 심용환 작가가 전쟁이 끝난 바로 그날로 가보는 어떤 사진을 준비했다면서요.
심용환: 오늘은 끝까지 불편한 진실을 말씀 드릴 수 밖에 없는 시간인데요. 이 사진은 1905년 9월 5일, 그러니까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을 끝내고 강화조약을 체결한 그날 찍었던 사진입니다. 왼쪽부터 보시면 러시아 대표 비테와 로젠, 한 사람 건너 뛰어서, 그리고 일본 대표인 고무라 주타로 와 다카히라 고고로 입니다. 이 중에서 지금 제가 말하지 않은 가운데 있는 인물, 이 사람이 누굴까요?
류근: 아까 그 풍자화에 심판이 안보였잖아요? 드디어 심판이 나타난 거네요.
이윤석: 많이 봤어요. 익숙한 얼굴이네요.
심용환: 꽤 익숙하죠. 이 얼굴이, 이 분이 누구냐 하면 당시에 미국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26대) 입니다. 미국 대통령 중에 2차 세계 대전을 이끌었던 사람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고 이 분은 시어더어 루즈벨트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갑자기 왜 나왔을까가 궁금한데 러일전쟁이 벌어졌는데 러시아와 일본이 합의를 맺고 강화조약을 맺는 장소가 일본도 아니고 러시아도 아니고 놀랍게도 미국 포츠머스였습니다.
이윤석: 포츠머스? 포츠머스를 달달달 외웠거든요. 전 지금까지 러시아에 있는 도시인줄 알았는데---, 미국 도시였네요.
심용환: 그게 암기교육의 폐해죠.
류근: 저도 부끄럽지만 저 포츠머스가 미국 있다는 거 처음 알았어요. 그런데 정말 더 이상한 건 왜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을 했는데 회담을 미국에서 합니까?
최원정: 왜 미국 대통령이 똑같이 서 있어요?
서민교: 일본이 러시아와 전쟁을 할 때 엄청난 전쟁비용을 쓰게 됩니다. 청일전쟁 때는 약2억엔 정도의 비용을 썼는데 10년 뒤인 러일전쟁 때 일본이 쓴 전쟁비용이 약18억엔 입니다. 뤼순공략을 겪고 봉천전투에서 승리를 겨우 했지만 일본군은 이미 사상율이 30%에 달하게 되면서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심용환: 전쟁에서는 이기고 있었지만 전쟁을 마무리 지울 수 없었던 능력의 한계에 도달했던 일본의 입장에서 자국에 우호적이었던 미국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걸 어떻게 생각해 보면 기회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중재자로 나서게 되면서 다른 땅도 아닌 미국에 두 나라 대표를 불러서 회담하게 된 겁니다.
류근: 미국은 일본에게 전쟁하라고 외채까지 지원을 했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는 중재에 나서고 있는 거 아닙니까. 앞뒤가 안맞는거 아니예요.
이익주: 더 안 맞는게 있습니다. 지금 일본의 요청으로 중재를 한 거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그때 대한제국이 미국에 중재를 요청한 적이 있어요. 우리 기억하세요? 1885년에 조미조약 맺을 때 거중 조정이란 말이 있었잖아요. 이때 러일전쟁이 일어 났을 때 대한제국에서는 그 조약 조항을 근거로 해서 미국에게 조정을 해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런데 저 루즈벨트는 일언지하에 거절해요. 아주 냉담한 태도를 보입니다. 오히려 태프트 육군장관을 일본에 보내서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요.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년 일본과 미국이 체결한 밀약. 미국의 필리핀 지배와 일본의 한국 지배를 서로 승인), 그래서 조선을 일본에 넘긴다고 하고 이런 뜻을 밝히기 까지 합니다. 그러니까 조정을 안해야 될 때는 조정을 하고있고 조정을 해야할 때는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이중적인 모습이 드러나죠.
심용환: 청일전쟁의 결과로 일본은 막대한 배상금을 얻었습니다. 러일전쟁을 통해서 일본은 무엇을 얻었을까요? 포스머스 조약의 결과는 뭘까요?
이윤석: 전쟁이라는게 러시아로부터 막대한 돈을 얻어내고 또 러시아로부터 막대한 땅을 좀 얻어내고 그러지 않았을까요?
심용환: 조금 냉정하게 얘기하면 일본이 러일전쟁의 승리의 대가로 받아낸 건 대한제국이었습니다.
이윤석: 러시아가 졌는데 갑자기 왜 대한제국 땅을 ?
심용환: 이 포스머스 강화조약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러시아 제국정부는 일본이 한국에서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우월한 이익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며
일본 제국정부가 한국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지도-보호-감독에 조치를 취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포츠머스 강화조약 中-----------------------
이윤석: 저게 중재가 된 거예요?
최원정: 우월한 이익을 인정한 데잖아요. 그러니까 마치 대한제국이 이들의 전리품인양—
류근: 저게 말이 됩니까?
서민교: 러일전쟁 자체가 일본제국주의와 러시아 제국주의가 한반도와 만주에서의 어떤 이권을 놓고 벌인 제국주의 전쟁이었다 라는 점이니까 당연히 그 목적 제1항에 강화조약 제1조가 한국이다 라는 기록이 나오는 거지요.
류근: 시어도어 루즈벨트 라고 했잖아요. 중재를 저런 식으로 했으니까 지금 까지도 미국에서 제국주의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게 아닙니까?
심용환: 여기에 하나 특별한 상황이 더 있습니다. 이 중재를 했었던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이 분이 러일전쟁을 중재하고 포츠머스 조약을 맺는 공로로 인해서 미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노벨 평화상 수상), 우리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열강들의 결정을 노벨 평화상으로 수여를 하게 되는 답답한 결과로 이야기가 마무리가 됩니다. 사진이 말하는 그날 심용환이었습니다.
최원정: 우리나라를 일본에 딱 넘겨주고 받은 상인 거예요. 지금 이게 상의 권위를 의심하게 되는데요. 너무 언짢은데요.
류근: 평화라는 것이 시대마다 상황마다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되겠지만 지금 저 상황에서 평화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여기서 말하는 루즈벨트의 평화는 과연 뭘까요?
이익주: 강대국의 평화입니다! 강대국 간에 합의할 수 있는 평화이고 노벨 평화상이 정말 강대국의 논리에 저렇게 왔다 갔다 하는 권위 없는 상인 적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원정: 이 러일전쟁이 초래한 결과가 이게 어마어마 하군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구도를 바꾸는 데요. 아, 몰랐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떠세요? 러일전쟁을 접한 기분이---,
이윤석: 고종이 치열한 고민과 노력 끝에 중립화 선언을 한 건 알겠는데 중립화란게 가운데 위치한 나라가 아니라 가운데 우뚝 선 나라가 되어야 중립국이 가능한 건데, 그 부분이 상당히 아쉽고, 사거리가 되는 거 같애요. 사거리, 이 차도 지나가고 저 차도 지나가고, 좌회전도 하고 가운데에다 다 밟고 지나가면, 평상시에는 그래도 되는데, 전시에는 로타리가 되어야 됩니다. 우뚝 서가지고 침범하지 못하고 다들 돌아가게 만드는,
류근: 그런데 대한제국의 운명 뿐만 아니라 어떻게 보면 세계사의지형을 바꾼 분수령이 되느 20세기 최초의 가장 큰 전쟁이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된 그런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심용환: 아이러니한게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이 백인들에 의해서 점령당할 때 참 독특하게도 조선이라는 나라는 백인이 아닌 일본에 의해서 지배를 당하고 공교롭게도 백인에 의해서 해방의 과정을 가지는 독특한 과정을 갖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 시야를 넓게 보면서 세계의 정세를 보면서 내용을 보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서민교: 한국의 역사 그러면 참 슬프고 비참해 보이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 경험을 했어요. 역사에서 망국의 경험을 했거든요. 앞으로 만약에 그런 유사한 상황이 온다고 하면 우리가 어떤 선택들을 해야 할 거냐 하는 것을 우리 근대사가 보여주고 있다는 거지요. 러일전쟁이 보여주고 있고 거기서 우리가 오히려 역사적 교훈을 얻을려고 생각을 그걸 가지고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이런 식의 이분법으로 봐서는 안된다 라고 생각합니다.
이익주: 저는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근대사를 일본이 조선을 또는 대한제국을 침략했고 식민지를 만들었고 우리는 거기에 저항했다 그래서 우리와 일본의 관계로 주로 설명하죠. 그런데 러일전쟁 처럼 일본이 주인공이 아니라 오히려 영국, 미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그 당시 세계 열강들이 전부 참여하는 정말 복잡한 스토리가 여기에서 전개되고 있었던 거예요. 대한제국은 아무리 힘이 없어서 싸우지는 못하더라도 대한제국을 둘러싸고 있는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해서는 분명히 파악하고 있었어야 돼요 그래야 대한제국이 그 어려운 속에서도 살아날 길을 찾을 수가 있었던 거죠.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우리 대한민국을 둘러싸고 세계의 강대국들 간의 관계들, 이걸 면밀히 주시하고 있어야만 됩니다. 이것이 이 비극적인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원정: 진짜 항상 자기 이익을 긴장하고 항상 공허한 자세로 있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끝. (KBS 역사저널 그날 37화, “예상을 못한 일본의 승리”에서 정리).
①일본은 1894년 淸日戰爭에서 승리, 淸으로부터 배상금과 영토를 할양받지만 3국간섭(프랑스, 러시아, 독일)에 의해서 요동반도를 러시아에 빼앗긴다. 일본으로서는 굴욕이었고, 분해서 일본군인 40명이 자살했다는 얘기도 있고, 요동반도를 생각하며 십년동안 臥薪嘗膽한다.
② 露日戰爭이 일어나기 4年前, 1900년에 淸에서 義和團 운동이 일어난다. 러시아군은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만주를 점령한다.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경계한다. 영국은 일본을 끌어들여서 러시아를 막는 정책을 세운다. 제1차 英日同盟, 이게 후일 露日戰爭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③ 1904년(고종41년) 2월 8일 오후, 일본군함 수십척은 뤼순항으로 접근, 선전포고없이 러시아 군함에 수뢰공격을 가했고, 다음날, 인천 앞바다에 정박해 있던 두척의 러시아 군함도 기습공격하여 격침시킨다. 일본은 露日戰爭이 시작되자 가네코 켄타로(1853~1942)를 미국에 파견, 외교활동을 하는데, 논지는 露日戰爭은 백인과 황인의 싸움이 아니다, 露日戰爭은 기독교 문명과 이교도의 전쟁이 아니다. 마침 가네코 켄타로와 시어도어 루즈벨트(1858~1919) 대통령은 같은 하버드대 출신, 루즈벨트 대통령은 일본의 전쟁을 지원하고 홍보하는 모습을 보인다.
④ 1895년 12월, 3국간섭이 일어났던 해, 일본의 10개년 예산편성은 육군을 7개 사단에서 13개 사단으로, 해군은 강철 전투함 6척과 순양함 6척해서 66계획을 편성했는데 약 8억엔 정도 부족, 그 당시 약 8억엔은, 淸日戰爭 때 비용의 9배 수준, 그래서 露日戰爭에 막대한 돈 대외원조가 필요했다. 당시 외국입장에선 일본이 질게 뻔한데 그 많은 돈을 빌려줄 이유가 없었다.
⑤ 당시 미국에는 유대인 은행가로 야곱 시프(Jacob Schiff) 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이 미국과 영국에서 네번에 외채를 조달해 일본에 빌려준다. 유대인이 일본에 돈을 빌려주게 된 요인은 유럽에서 러시아가 유대인에 대해 박해가 가장 심했다. 러시아는 전세계 유대인들의 공적, 야곱 시프는 일본을 도와 주기로 결심, 야곱 시프는 일본의 露日戰爭 승리에 元朝였다.
⑥ 露日戰爭이 시작됐을때 대한제국은 황제 중심의 광무개혁(光武改革)을 하였다. 이는 조선 군대의 근대화로 원수부와 무관학교를 설치하고, 1903년 4월, 일본으로부터 군함을 구입한다. 그런데 일본은 1894년 영국으로부터 25만엔에 사들인 증기화물선을 9년 정도 쓰고 55만엔에 군함이라 속여 팔았다. 55만엔은 대한제국 국방예산의 일년치의 30%이고, 국가 전체 예산의 10%다.
⑦ 1904년 2월 8일, 露日戰爭이 발발하고, 조선은 중립을 선언했으나, 동년 2월 23일 韓日議定書를 체결하는데, 이는 일본이 조선에서 병참기지로 영토와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는 조약이다. 제물포를 일본기지로 활용하고 대한제국 군대 3천명을 일본군에 예속시키고, 이때, 용산이 일본군 기지가 된다. 올해 2018년 용산기지 반환은 빼앗긴지 114년만이다(1904년).
⑧ 일본은 露日戰爭에서 황해와 동해 재해권을 장악한 후 이제 러시아가 장악하고 있는 뤼순(203고지)을 공략한다. 뤼순 공략전 전투에서 일본의 정규 3개 사단 6만명이 전사한다. 여기서 죽은 일본 군인은 군사영웅이 돼서, 일본신사에 모셔지고 국민들 교육도 받고 일본이 전쟁국가로 돌입되는 시발점이 되고, 1905년 1월초, 여순항을 점령하고 러시아 태평양 함대도 제압한다.
⑨ 1905년 3월에 奉天전투에 일본군 25만, 러시아군 32만이 투입돼서 일본은 사상자 7만, 러시아는 포로 포함 사상자 9만, 일본군이 겨우 승리를 거두어 奉天에 입성하는데 그날이 3월10일로 일제는 큰 의미를 부여 2차대전 패망까지 3월 10일을 일본 육군 기념일로 삼았다.
⑩ 러시아는 전쟁에서 계속 지니까 최후로, 발틱 함대를 유럽에서 한반도 쪽으로 이동시킨다. 발틱 함대의 수에즈 운하 통과를 영국이 거부하므로, 발틱 함대는 희망봉으로 빙둘러 돌아가다 모든 게 소진, 이듬해인 1905년 5월, 8개월이 걸려서 기진맥진한 발틱함대는 쓰시마 해전에서 참패, 露日戰爭이 끝난다. 일본의 露日戰爭 승리의 결정적인 요소는 쓰시마 해전과 영국,
⑪ 일본은 淸日戰爭 때 약2억엔을 썼고, 10년 뒤인 露日戰爭 때 약18억엔 사용. 뤼순공략과 봉천전투에서 겨우 승리를 했지만 일본은 사상율이 30%에 달하면서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 전쟁을 마무리 지울 수 없었던 한계에 도달, 일본은 미국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미국은 이를 수락, 1905년 9월 5일, 미국 포츠머스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의 중재로 러일 간에 강화조약을 체결,
⑫ 露日戰爭 중 루즈벨트는 태프트 육군장관을 일본에 보내서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 미국의 필리핀 지배와 일본의 한국 지배를 서로 승인, 미국은 대한제국을 일본에 넘겼다. 일본은 露日戰爭을 통해서 대한제국을 얻었다. 이 중재로 루즈벨트는 미국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 수상,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열강들이 대한제국의 운명을 결정, 평화는 강대국 간 합의에 의한 평화이고 노벨 평화상은 권위 없는 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