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대음집에서 주무시고 간 뒤 잠자리가 좋으셨는지 또 찾아주셨다.
아버지는 오시자마자 본채 뒤편에 있는 대나무숲으로 향하신다.
본채 뒤편에는 약간의 언덕이 있고 그 뒤로 부채꼴 모양의 대숲이 한줄로 늘어서 있다.
대숲이라기보다는 대나무로 된 집 뒤 가림막이라 하면 되겠다.
집 뒤에는 마을분이 농사지으시는 밭이 있어서 이 대숲은 집을 가리기도 하고 경계가 되기도 한다.
덕분에 가끔 이렇게 대를 끊어서 여러 용도로 쓴다.
아버지는 톱을 들고 대숲으로 들어가 대나무를 여러 개 끊어오신다.
여쭤보니 오늘은 지난번 아래 밭에 심어 놓은 포도의 넝쿨을 잡아주는 작업을 하자고 하신다.
나이가 드신 아버지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보니 서글퍼진다.
언제나 나의 슈퍼맨이신 아버지가 어느새 이리 나이가 드셨을까?
내가 어른이 된 것만 생각했지, 아버지가 나이 드신 것은 생각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많이 부족한 아들이자 아빠이기만 한데, 아버지처럼 잘할 수 있을까?
아버지는 언제나 ‘나의 무엇을 도와줄까?’ 를 생각하신다.
그래서 오늘도 대음집에 도착하시자마자 쉬지도 않고 일을 도와주시려고 움직이시는 것이다.
대나무를 어깨에 메고 아버지와 나는 아래 밭으로 향한다.
대음집에서 500m쯤 떨어진 거리에 작년에 얻은 조그마나한 밭이 하나 있다.
동네 어르신께 부탁하여 놀고 있는 밭에 밭농사를 지어보려고 임대하였다.
무엇을 심을까 하다가 남원장에 나가 마음에 드는 과실수를 몇 그루 구매하였다.
그중 심어 놓은 포도나무를 보시고 포도나무는 넝쿨 식물이라며 넝쿨이 타고 갈 지지대를 만들어줘야 한다며 대나무를 이용하여 지지대를 만들러 가는 것이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뭔가를 함께하니 기분이 참 좋다.
솔직히 나는 농사일을 잘 못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잘하신다.
그리고 체력도 나보다 좋으시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 언제나 든든하다.
아버지 앞에서는 나는 작은 소년이 된다.
내가 뭔가를 말하면 다 해주실 것만 같다.
아직도 나에게 아버지는 슈퍼맨이시다.
그런 아버지가 오래도록 건강하게 내 곁에 계시면 좋겠다.
대나무 두 개를 연결하여 세모 모양으로 땅에 박고 그 위로 기다란 대나무를 연결한다.
내가 옆에서 대나무를 가져다드리면 아버지는 대나무를 땅에 박고, 내가 옆에서 줄을 자르면 아버지는 줄을 멘다.
그리고 포도나무 줄기를 지지대에 묶어주면 끝.
1시간이 남짓 아버지와 끙끙대며 만든 지지대가 드디어 완성이다.
다 하고 나니 뿌듯하다.
아버지와 함께여서 더 의미가 있다.
아버지와 함께 일할 수 있어 좋다.
언제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이 땀을 함께 흘리며 일을 같이 해보겠는가?
아들 밭농사를 위해 멀리서 와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이는 다 대음집 덕분이다.
땀 흘리는 노동을 했으니, 오후에는 아버지와 함께 동네에 있는 온천이나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