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도는 중국 선종의 창시자인 달마대사의 초상화이다. 달마대사는 서기 520년경에 중국으로 건너와서 양나라 무제와 대면하게 되었다. 불교를 중흥시킨 공덕의 크기를 묻는 무왕에게 달마는 공덕이 없다고 답한다. 서로가 인연이 아님을 알았기에 달마는 갈댓잎을 타고 강을 건너 쑹산의 소림사(少林寺)로 향했다. 단순히 두 사람의 개인적인 견해 차이로 인한 헤어짐이 아니다. 결별과 도강은 외형적인 성장에 치중한 당시 중국불교에 대한 달마의 회의적인 견해를 대변한다. (달마도, 법보신문2018.3.13에서 인용)
그 후 달마는 9년간 면벽 수도를 통해 깨달음을 얻으면서 선종을 널리 알리었다. 참선 수행하는 달마의 모습이나 얼굴만을 부각시켜 그린 것을 <달마도>라고 한다. <달마도>는 부릅뜬 눈을 강조한다. 눈에 힘이 없으면 달마도로서의 의미가 퇴색된다고 여겨진다. 달마 스님이 면벽 수도 중 졸음을 이기려고 눈꺼풀을 잘라버렸다는 일화에서 유래된 형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참선의 경지에서 깨달음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를 담아야 하기 때문이리라. (김명국의 달마도, 전준엽, 문화재청 자료에서 인용)
중국 소림사 스님들은 합장 인사를 할 때 한 손만 올려 인사를 한다. 소림권법(쿵후)를 하는 사찰이라 그런 줄 알었다. 아니었다. 그 배경에는 선종 1조 달마대사와 2조 혜가스님이 등장한다. 6세기 초 달마대사가 불교를 진흥한 양무제에게 공덕이 없다고 말하고 한 줄기 갈대를 타고 강을 건너 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 수행을 하였다.
어느 날 눈보라 속 소림사에 혜가스님이 찾아와 달마에게 가르침을 청한다. 답이 없자 기다리다가 추위에 몇 번이고 쓰러지자 달마가 무엇을 원하는가? 물었다. 혜가는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가? 묻고 달마는 혜가에게 그 불안한 마음을 가져오라 이른다. 가져올 수 없는 마음은 이미 치료된 것이니 돌아가란 말에 혜가는 한 팔을 잘라 바치고 제자가 되기를 청하였고 달마의 뒤를 이어 선종 2조가 되었다. 그 뒤부터 소림사 스님들은 한 팔 없는 혜가스님을 따라 한 손으로 합장하게 되었다.
위의 이야기에서 참선은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이며 가져올 수 없는 마음은 공(空, 色卽是空) 임을 가르치고 있다. 어떤 스님은 수행은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것이라 한다.
2조 혜가의 제자인 3조 승찬을 거쳐 4조 도신과 5조 홍인은 청정한 마음을 잘 지키고 염불로 집중하라는 법문을 전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집단 수행 생활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