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튼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논리의 렌즈만이 아니라 '둘 다'라는 역설의 렌즈로 삶을 바라보는 것 또한 얼마나 중요한지를 내게 가르쳐주었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닐스 보어가 말했듯이, "올바른 진술의 반대는 거짓 진술이다. 그러나 심오한 진리의 반대는 또 다른 심오한 진리다." 역설적으로 생각하기는 창조성의 열쇠다. 그것은 새로운 것을 향해 정신과 마음을 열어놓으면서, 갈라지는 생각들을 끌어안는 능력이다. 역설적으로 사는 것은 인격의 온전함에 이르는 열쇠다. 그것은 자기모순을 끌어안는 능력에 달려 있다.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파커J. 파머
제가 다른 교사들에게 단 하나의 개념을 전할 수 있다면, '역설'을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역설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그런 삶을 살았었고요.
성경에 보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구절이 있습니다.(여호수아 1장 7절) 이 구절에 대한 맥락 안에서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죠. 그렇지만, 제 마음에 들어왔던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은 좌와 우의 중간에서 고민하는 삶이 아니라, 좌와 우의 끝에 동시에 있을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는 흔히 말하는 '친절하면서 단호한 교사'와 같은 개념이 교사의 삶의 전반에 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친절함과 단호함 그 사이의 어딘가가 추구해야 하는 이상적인 교사가 아니라 100% 친절하면서도 100% 단호한 교사 결국은 우리가 꿈꾸는 교사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둘 중에 하나가 아니라 둘 다 옳다'라는 생각을 마음 속에 품어야 자유로운 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둘 다 맞을 수 있고, 교육의 실천 안에서도 둘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좌절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육에서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교육적 행동의 반대편에도 좋은 교육이 있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교사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수업은 학생들의 삶과 인생을 바꾸는 수업일 것입니다. 그런데, 입시라는 현실에 맞지 않는 것 같아 포기하려 한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쉽지 않은 수업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고, 수업을 해놓고도 흡족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수업을 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노력이 헛되지 않고 아이들의 삶에도, 입시에도 도움이 되는 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반대편을 생각해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반대편을 품을 수 있을 때 진정한 가르침은 시작됩니다. 억지로 책을 읽히는 필독도서와 같은 시스템을 반대하는 입장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주도성으로 가지고 책을 읽을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중요한 원리를 담고 있는 주장입니다.
EBS 다큐 <칭찬의 역효과>에서는 한 가지 실험 보여줍니다. 초등학생 2학년 학생 1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입니다. 아이들에게 100분 동안 책을 읽게 하는데, 아이들이 책을 읽을 때마다 칭찬스티커를 주는 실험입니다. 서가에는 유치원생 수준의 책 150권과 초등학교 2학년 수준의 책 150권이 꽂혀 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스티커를 받기 위해 시합하듯 책을 읽습니다. 아이들을 유치원 수준의 책을 읽고, 책의 내용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프랑스의 교사이자, 작가인 다니엘 페낙크는 그의 책의 소설처럼에서 '독자의 침해할 수 없는 권리 10가지'를 이야기합니다. 독서교육을 할 때, 꼭 말해주고, 토론하는 좋은 주제이기도 합니다.
1. 책을 읽지 않을 권리
2. 건너뛰며 읽을 권리
3.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4. 책을 다시 읽을 권리
5.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6. *보바리즘을 누릴 권리
7.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8.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9. 소리 내서 읽을 권리
10.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보바리즘
보바리즘(Bovarysme)이란 특히 일부 신경질적인 젊은이들에게서 발견되는, 감정적·사회적인 면에서의 불만족스러운 상태를 말한다. 지나치게 거대하고 헛된 야망, 또는 상상과 소설속으로의 도피라는 뜻도 있다.(위키백과)
아내와 독자의 권리에 대해 대화한 적이 있습니다. 아내는 공감하면서도 "그렇지만, 저는 모든 이들이 꼭 읽어야 하는 책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성경이요."라고 말하더군요. 독서의 자유로움에 기울어져 있던 때라서, 그때는 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맞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독서에 대한 연수시간에 '독자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 선생님께서는 자신은 그동안 학생들에게 꼭 읽어야 할 필독서를 강요한 것 같다며, 자책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생님,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좋은 교육이기도 합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곰곰이 생각할수록 그렇습니다. 누군가에게 좋은 책을 권유받아 읽다보면, 그것에 영향을 받습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책을 전문가인 교사들이 권장하고 읽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것도 교사의 역할입니다.
'100% 책을 권장하는 교사이지만, 100% 책을 자유롭게 읽도록 돕는 교사'가 결국 제가 추구하는 국어교사의 모습인거죠. 만약 그런 독서교육을 할 수 있다면, 역설적인 가르침을 실천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에 따라서는 자유롭게 책을 읽도록 돕지만, 필요한 아이들에게는 좋은 책을 추천하고 읽도록 합니다. 교육적 상황에 따라서 책 읽기 자체의 즐거움을 누리게 하지만, 또 어떤 책을 무조건 읽도록 강요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저의 연약함과 모순을 깨달은 후에는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내가 해야 하는 몫을 알고 그것을 해내려고 노력합니다. 저에게 그 전에는 없었던 역설적인 움직임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