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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 아시는 선한 목자 / 행 4:5-12, 요 10:7-18
오늘은 전국교회가 어린이주일 또는 꽃주일로 지키는 날이다. 어린이 날은 이들 전의 5월5일이다. 어린이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제정된 날이다. 앞으로 신세대의 주인공이 될 어린이에 대해 오늘의 사회적인 희망을 기반으로하여, 그들의 건전한 성장과 장래를 축복하는 날을 국가에서 제정한 것이다. 그 기원은 세게적으로 고찰해 보면 정확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1856년에 미국의 마사추세츠주에 있는 유니버설리스트 제일교회의 레오날드 목사가 시작하였다. 그는 6월 2째 주일을 어린이날로 정하고 어린이들이 신앙심을 높이기 위한 의식을 매년 거행하였다. 그후 미국 각지에 퍼졌는데. 1868년 미국의 감리교회에서 6월의 2째주를 그 기념일로 제정하자 1883년부터는 전국적으로 이를 시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22년에 서울천주교회의 소년회를 중심으로 어린이날 운동의 선구자인 소파 방정환의 지도 아래 5월 1일을 기념일로 지정하여 어린이들의 민족정신의 함양에 노력하였다. 1925년부터 전국적인 행사가 있었다. 그러나 1939년 일제의 억압으로 한 때 중단되었다가 1945년 해방이 되어 다시 소생하였는데, 1956년에 국가의 정식 법령에 의해 5월5일을 어린이날로 제정하였다. 그래서 전국의 각 교회는 5월 첫째 주일을 어린이주일로 정하고 지키게 된 것이다.
이제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의 말씀을 가지고 양을 아시는 선한 목자란 주제로 말씀을 드리겠다. 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그들의 관계를 목자와 양떼의 관계로 이해하였다. 하나님은 그 백성의 목자이시며, 그 백성은 하나님의 양무리이다. 하나님과 그 백성과의 관계를 이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할 비유가 없을 것이다. 그들이 매일매일 대하는 목양의 구체적인 삶을 통하여 하나님과 그들과의 관계를 이해하였다는 사실은 참으로 지혜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목양을 통해서 그 양떼의 본성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 양떼들은 어리석어서 목자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길을 잃게 되고, 사나운 짐승들에게 공격을 받아 그들의 밥이 되기가 일쑤인 것이다. 그 양떼들에게는 목자가 절대적인 존재이다. 목자가 그들에게 있으므로 그들이 안전하고 좋은 꼴과 마실 물을 얻을 수 있으며, 사나운 짐승들에게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목자는 때로 길 잃어버린 양을 찾아 들판을 헤매기도 하며, 병든 양들을 돌아보아 치료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꼭 그 양들과 같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노래하기를 시 100:3절에서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라고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가 없으며, 하나님이 그들의 목자가 되시므로 그들은 만족함을 누리고 풍성한 생명을 얻는다고 믿었다. 시 23편은 그런 믿음을 잘 표현한 시이다.‘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목자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 그릇된 길로 나가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그들을 위로하셨다. 겔 34:15-16절상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이와 같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학대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선한 목자로 길잃은 양과 같이 헤매며,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지친 인류를 구원하시고 풍성한 생명을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이 양들을 위하여 그의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셨다. 그가 십자가를 지심으로 양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으며, 이제는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도록 그의 우리 안에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것이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 안에 들어온 사람들이 바로 교회이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관계를 다시 한번 확인함으로 우리 자신의 위치를 찾고, 우리 삶의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먼저, 우리가 목자와 양의 관계에서 배워야 할 것은, 목자를 떠나서는 양떼들이 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 너무도 분명한 사실을 우리가 때로는 잊어버리고, 때로는 부인하므로 우리의 삶이 공허하고 방황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시며, 우리는 그의 양들임을 깨닫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목자되신 하나님을 부인하고 스스로 그 삶의 길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지음을 받고, 그와의 관계 속에서만 바르게 살 수 있는데, 이런 관계성을 부인하고 또는 알지 못한 채 사는 사람은 길잃은 양처럼 처량하고 불쌍한 사람들이다. 우리 인간들이 양과 같은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는 필연적으로 목자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 존재를 파악하지 못하므로 목자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며, 그래서 양 우리에 들지 아니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이다. 길 잃어버린 양의 삶은 피곤할 수밖에 없다. 그의 영혼이 메마를 수밖에 없다.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는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한다. 그의 삶은 자유로운 것 같지만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자유란 진정한 자유일 수가 없다. 그가 비록 많은 지식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명예와 부를 지녔다 할지라도 목자와이 관계성이 회복되기 전까지는 그것들이 그의 삶을 부요하게 하지 못하며, 그의 영혼을 소생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것들은 일시적이며, 그가 영원히 의지할 수 있는 것들이 되지 못한다. 목자이신 하나님을 만나서 그가 주시는 생명을 얻기까지는 어떠한 위안도 그의 피곤해진 영혼을 소생시킬 수는 없다.
현대인들의 스트레스와 불안과 공포와 방황은 목자되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데서 오는 것이다. 내가 비록 고아일지라도 내게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누구나 다 하나님께로부터 지음받은 자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 부인할 수 없는 관계를 부인해 버릴 때, 그는 길 잃어버린 양이 된다. 우리가 부모와 아내와 자식과 바른 관계를 유지할 때, 그 가정이 행복한 것이다. 부모와의 관게를 부정해 버린 자식은 불효한 자식이요, 부모도 자식도 행복할 수 없다. 자식이 가출해서 크게 성공했다 할지라도 부모 앞에 돌아와 잘못한 것을 용서를 구할 때까지 불효한 것이다.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부인할 때, 그 가정은 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런 관계를 바로 가질 때 정상적인 삶이 이루어진다. 마찬가지로 더 근본적인 우리의 삶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질 때에 비로소 우리는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목자되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분이 있는가? 교회당에 나왔지만 아직도 삶이 불안하고 평안을 얻지 못한 분이 있는가? 목자되신 하나님를 찾으라. 겸손히 머리 숙여 기도하라. ‘하나님, 나는 무지한 어린 양입니다. 나는 목자되신 주님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죄를 회개하러 왔사오니 나를 영접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양무리 가운데 저를 받아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면 길 잃어버린 양들을 찾으러 오신 주님께서 여러분을 따뜻하게 영접하여 주실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목자와 양의 관계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관계가 회복될 때, 우리는 놀라운 축복들을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구약 에스겔서 말씀에는 좋은 우리에 두고 살찐 꼴을 먹일 것이라고 하였다. 상한 자를 싸매며, 병든 자를 강하게 하신다고 하였다. 요 10장에서도 우리가 구원을 얻고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다. 또 생명을 얻고 풍성함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고, 안전하게 보호함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 보겠다.
1. 우리는 그리스도의 양무리 가운데 듦으로 안전을 보장받는다.
언제나 우리 밖에는 도둑질하고 죽이고 파괴하려는 원수들이 있다. 우리의 대적 악마가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다니는 것이다. 이러한 악마는 우리의 내부로부터 공격하기도 하며, 또는 외부로부터 침략해 오기도 한다. 우리 내부의 원수들은 우리의 본성의 부패, 우리의 악한 정욕, 과도한 욕망, 숨겨진 죄,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배신과 속임수이다. 이러한 내부의 도둑들은 밖으로부터 오는 적들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양우리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안전하다. 요 10:28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양)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다. 성령께서 우리 속에 있는 모든 탐욕의 악령들을 몰아내시고 우리 안에 충만히 거하여 게심으로 우리는 탐욕을 좇아 행하는 대신에 성령을 좇아 사랑과 선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는 외부로부터 오는 시련과 고난의 위협과 또는 무서운 악의 유혹이 시시때때로 다가온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한 우리는 언제나 안전하다. 구약 시편기자가 46:1-3절에서 노래하기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셀라)’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롬 8장에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라고 말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하였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언제나 안전하게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 안에서는 모든 불안과 공포가 사라지는 것이다. 참 평안과 기쁨이 거기에 넘치게 되는 것이다.
2. 우리는 그 안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는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예수님께서 밀씀하셨다. 그것은 우리가 참 생명을 얻고 모든 공포와 불안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모든 율법으로부터 자유롭고, 모든 죄로부터 자유로우며, 또한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무엇이나 할 수 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능력을 더하여 주시기 때문에 과거에는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이제는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별히 자기로부터 자유로워진 그리스도인들은 남을 위하여 봉사하며 희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에는 주저하던 의를 위한 투쟁에 용기있게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물질로부터 자유로워진 자들이기에 그것들을 얻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바칠 수 잇게 된 된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자유야말로 참 자유이다. 그리스도 밖에는 어디에나 부자유만이 존재한다. 마귀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마련해 주신 양우리는 우리가 자유를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거기에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자유가 있다. 이제 우리는 항상 이 자유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려야 할 것이다.
3. 그리스도의 우리 안에 있을 때 우리는 풍성한 꼴을 얻는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풍성한 꼴이란 영적 양식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영혼을 위한 영적 양식이 풍성하게 예비되어 있다. 우리 영혼들이 필요로 하는 다양하고 풍성한 양식들이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눈을 뜰 때, 우리는 우리의 현재이 삶 속에서도 그가 주시는 풍성한 꼴들을 보게될 것이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경험도 헛된 것이 아니다. 그곳에 함께 하시는 목자의 위로와 지팡이와 막대기를 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이 선한 목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풍성한 꼴들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개인적 신앙생활과 조용한 명상 속에서 영혼의 양식을 찾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양무리들 가운데서, 그리고 성도들의 교제 안에서, 성전의 경건한 예배 안에서 영혼의 풍성한 꼴들을 얻게 될 것이다.
선한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보다 그의 양떼인 우리를 잘 아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며,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잘 아신다. 그것은 목자가 자기 양을 아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아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언제나 우리에게 선한 목자가 되신다. 나를 속속들이 아시고 나의 삶을 바로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영접하며 따를 때, 그때로부터 우리의 삶은 불안과 공포와 고독함에서 벗어나 진정 자유롭고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생애가 될 것이다. 이런 귀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언제나 양우리 안에서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자. (1995-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