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삶을 가꾸는 일이라기에/고혜숙
나는 강진에서 사는 ‘목포댁’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걷고 싶어지는 그런 동네에서 살고 싶었다. 하여, 찾아든 곳이 여기 월하리다. 3년 전에 이사를 왔지만 아직은 남악을 오가면서 산다. 귀촌 2년 차에 접어들고 보니. 이제 강진 사람으로 살아야지 싶었다. 작년에는 동네에서 주1회 사물놀이 연습하는 곳에 다녔다. 신나게 놀다 오는 기분이었지만 똑같은 것만 반복하는 것이 지루해졌다. 다시 읍내 프로그램을 찾아봤다. 독서대학에서 전남대 이향준 교수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유학에 관한 4회 강연은 공자의 황금률을 담고 있는 ’서‘라는 개념으로 모아졌다. 그는 '서'를 인간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징검다리라 표현했다. 흔히 들었던 단어, 역지사지가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의 강좌도 몇 달에 걸쳐 이어졌지만 그다지 재미가 없어서 그만 두었다.
군에서 평생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개설한 체험형 프로그램이 많이 있다. '청자의 고장 강진이니 도자기 만드는 것도 한번쯤 해봐야지.' 뜻은 가상했으나 몇 조금 못갔다. 한두 번 결석하다 보니 폐를 끼치곤 했다. 초짜라서 수시로 도움이 필요한데 선생님 손길은 늘 모자랐다. 수강생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옆에 있는 사람을 성가시게 할 때마다 미안했다. 기대에 부풀어서 가벼웠던 발걸음이 차츰 무거워질 수 밖에. 심기일전은 너무 거창한 표현일까? 올 해는 다시 ’어반 스케치‘ 에 도전했다. 첫 시간에 수채화 물감을 사용하는 법까지 가르쳐주었다. 의외로 재미있었다. 처음부터 잘 그리려고 애쓰지 말라는 강사 선생님도 맘에 들었다. 내가 꾸준히 다니기만 하면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는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몇 번 다니다 보니 나는 늘 나머지반임을 알아차렸다. 수강생 대부분이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왔고, 처음 배운다는 젊은 처자들도 나름 소질이 있어 보였다. 그들은 주어진 과제를 일찍 끝내고 예정된 시간보다 빨리 강의실을 빠져나가곤 했던 것이다. ’이를 어쩌나. 우리집을 그려서 방에 걸어 놓을 수 있을 정도까지는 하고 싶었는데....’
뭔가 색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으나 뜻대로 안되는 것을 어쩌랴. 책이라도 열심히 읽어야지. 내사랑 <코스모스>! 간지럽지만 나에게 <코스모스>는 그런 존재다. 2019년 5월 4일이었던가? “《코스모스》를 읽고 나면 못읽을 책이 없대요.” 에스가 말했다. “그럼, 우리 같이 한번 읽어 볼까?” 도서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눈여겨 봤던 사람들 네 명에게 바로 문자를 보냈다. 코스모스를 함께 읽어 볼 생각 없냐고.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좋다는 답을 보내왔다. 학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합류했다. <코스모스>라는 이름으로 매주 금요일 도서관에서 8명이 공부하고 있다. 지금까지 아홉 권의 책을 읽었다. 생각 나누기에 초점을 맞춘 터라 한 권을 다 읽기까지 1년 가까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별에서 온 그대'가 결코 은유가 아니었음을, 우리의 존재 자체가 자연을 이루는 모든 환경세계에 빚지고 있음을, 나를 둘러싼 타자는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작년 10월 23일에 읽기 시작했던 《측의 시대》를 마침내 다 읽었다. 9.11 테러에 충격을 받은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이 종교의 탄생과 철학의 시작을 파헤쳤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축의 시대 현자들이 말하는 황금률은 대체로 비슷했다. 영성에 대해, 자비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나에게 영성이라는 단어는 늘 종교, 특히 기독교와 연관된 것이었다. 얼마나 편협한 생각이었는 지! 저마다 영성에 관한 개념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이제 나는 '공감하는 사람이 영적인 사람이다'로 정리한다. 영성과 자비는 한몸이구나. 더불어 잘 살고 싶다면 공감력을, 자비심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이제는 조금 더 깊이 책 속으로, 나아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보고 싶어졌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어떻게? 결국, <일상의 글쓰기>를 등록하고야 말았다.
무자비하게 더웠던 8월 내내, 왜 글을 써야 하는가를 나 자신에게 묻고 설득하려 애썼다. 사실 2,3년 전까지만 해도 가끔 글쓰기 관련 책들을 읽었고 강연도 찾아서 듣곤 했었다. 항상 뭔가 써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가끔 도서관에서 제공한 글쓰기 관련 프로그램을 찾아 가기도 했다. 언제나 쓰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으로는 지속하기 어려웠다. 포기하고 나니 몸도 마음도 편해졌다. 다시는 글쓰기에 마음 두지 않으리라. 그러다가 작년에 르뽀작가 은유의 강의를 들으러 해남에 갔다. 다만 좋아하는 작가라서 청중의 숫자라도 채워서 힘을 보태고 싶었을 뿐이다. '감히 쓰고 싶어지면 어쩌지?' 마음 한켠에서 올라오는 걱정을 모른 척 했다. 늘 소외당하고 있는, 아픈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은유의 마음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글쓰기의 힘을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의 친필 사인을 받았다. "자기 언어를 찾아서"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왜 나는 자꾸만 쓰고 싶은 지 모르겠다고 나의 도반들에게 하소연 하기 시작한 것이. 세상에는 이미 좋은 글들이 차고 넘치는데 어쩌자고 그런 생각이 자꾸만 올라오는 지. 그러다가 《바가바트 기타》에서 소개한 여러 가지 요가 중 '행위의 요가'에 대한 부분을 읽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쓴다는 행위 자체 보다 그 결과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구나. 다시 물었다. 쓴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책 읽기의 완성은 쓰기라거나, 수행의 한 방법이라는 이야기야 자주 듣는다. 어떤 이는 말한다. 타자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그에게 다가가면 자비심이 샘솟게 된다고. 글쓰기는 그런 것을 지향한다고. '과연 그럴까? 어쨌거나, 더불어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진심이라면 글은 쓰고 볼 일이구나.'
8월은 너무나 덥고 길었다. 월하의 정원도 몸살을 앓았다. 어서 9월이 와주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글쓰기를 시작해 보겠다는 내마음이 변하게 될까봐. 나는 문을 두드렸고, 이제 그 문지방을 넘어가고 있다. 글쓰기가 삶을 가꾸는 일이라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첫댓글 생각거리가 많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잘 쓰시네요. 멋진 분과 함께해서 기대됩니다. 이 방에도 강진댁이 있답니다.
저도 월하라는 동네 알아요. 지나면서 참 예쁘다는 생각 늘 했어요. 저도 그쪽은 아니지만 강진댁이기도 하고요.
재야의 고수가 나타났나 봅니다.
어려운 책들을 많이 읽으셨네요. 처음 들어보는 제목도 있고요. 엄청난 내공있는 분이라 짐작됩니다. 글도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도 어려운 책도 좀 읽어야 하는데.
기가 죽네요. 하하.
잘 읽었습니다.
생각하게 하는 글이네요. 글쓰기...음, 앞으로 함께 고민해 봐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