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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th. Oct(월)
새벽녘 선듯한 한기에다 설사기를 느끼며 잠을 깼다. 역시 설사다. 그냥 맹물이다. 소리조차 요란스럽게 쫙 빠진다. 오싹 한기도 든다. 어제밤 河군 대신에 Cook 김군이 라면에 얼음을 채워 냉면으로 해 준걸 모처럼 시원스레 먹고 자기 전에 해수로 목욕을 하고 시원한 기분에 마누라 옆에 있던 생각하다 그냥 잠이든 모양이다. 배만은 아무리 더워도 꼭 덮고 잤는데-. 깜빡했다. 너무 차게 했었나? 얼음이 나빴나? 영 기분이 안 좋다. 깜빡 다시 잠이 들었다. 간밤에 이어 두 번째 아내의 꿈을 꾸었다. 이상한 일이다. 좀처럼 없었던 일인데-. 첫 번째 것은 그냥 그런것이었다. 함께 시골 갔던 그런 것이고 두 번째는 ‘공부’하던 것이었다. 맹열하게 파고 들었고 거뜬히 포옹하면서 -. 그러나 끝내지 못하고 잠을 깼고 그놈의 작숭이가 한끗 못다 푼 성을 채운 체 있었다. 근간 또 다시 몹시도 그리워 하긴 했다. 가끔은 masterbation으로 응해도 어쩐지 기분이 시원치 않을 뿐 아니고 더욱더 안달이 나기도 했었다. 설사기에 겹쳐 기분이 안 좋기도 하고 뭔가 개운찮은 느낌도 든다. 하룻밤에 두 번씩이나 꿈에 뵈다니 -. 무슨 사고라도 있는가? 월요일 밤이었으니 그긴 월요일 아침이였을 텐데. 여느 때 처럼 꿈이 있거나 꿈자리가 사나운 날은 종일을 조심하면서도 어두운 한 구석을 가진다. 꼭 그걸 믿어서가 아니다. 가끔은 아내가 ‘바람이라도 ...’하는 망상에 빠질 때도 있다. 내가 왜 그런 망상을 헤메고 있을까? 그것은 분명히 아내를 향한 사랑의 증거일런지도 모른다. 아직은 내가 하고 싶은 만큼 해주지 못했고 받고 싶은 만큼도 받지 못한 체 오히려 기대만 더욱 커져가고 있다. 그 주고받고 싶은 어떤 욕망이 식거나 없어지지 않은 한 그 질투 섞인 망상은 가시지 않을 것이다. 내 자신이 우선 그 희열의 순간을 못잊어 몸부림치는데 -. 그보다 더한 아늑한 분위기와 속삭임, 푸근한 안도감, 정신적인 보금자리! 그것이 더욱 필요하고 절실하기도 하다. 그러한 속에서 자연스레 나눠지는 부드러운 愛撫. 그것을 위한 공간과 시간과 자신은 가졌으면서도 오직 하나가 없는 상태! 육욕에 앞서 가슴속 깊은 곳에서 가득 차오지 못하는 정신적인 갈증이 무엇보다 큰 병이 되고 있다. 또 하루를 속았다. 어제까지 Strick. 오늘 아침 해제한 모양이다.
오후 3시반 C/O를 대리점에 대신 보냈다. 내일 출항이란다. 거두절미하고 다시 편지가 왔다. 간밤의 꿈이 결코 개꿈이 아니였구나 싶다. 옆이 찢어져 있으나 사진 7장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만약 오늘 아침 출항했더라면 어쩔뻔 했냐? 그놈들 스트라이크 잘했다. 백번 잘했다. 우선 얘들의 사진이 흐믓하다. 정현이가 많이 컸다. 어쩌면 세 놈이 어엿한 처녀테가 난다. 한복을 입혀서 그런가? 볼수록 가슴이 아프다는 정현이의 상처. 아내의 그 심정이 이해가 간다. 나 역시 그렇다. 저 고운 얼굴에 상처를 내다니 -. 내 것하고 바꿀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바꿔 달고 싶은 심정이다. 어떻게 고쳐줄 방도가 없을까? 차츰 나아져 좋아진다고 했다만. 같이 세워두고 봐도 장한 일이다. 셋을 낳고 길렀으니까. 영 약해서 아무것도 못할 것만 같았던 처음의 아내를 염려했던 내가 아니였던가. 아들이 하나쯤 섞여 있었으면 더욱 좋은 ‘調和’가 되련마는. 아쉬움은 있다. 경주 냇가에 놀러 갔더랜다. 잘했다. 여름동안 해수욕이다 뭐다 하느니 보다 그런 곳에서 방이라도 얻어놓고 2-3일 끓여 먹어가며 모깃불 피워놓고 반딧불 잡은 밤을 보내는 것이 오래전부터의 바램이였다. 고향이다. 우리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그러자 앞으로는-. 여름은 산골, 시골 냇가를 찾고 겨울은 눈 오는 곳을 찾자. 우리 차에 전 가족을 태우고 지붕에는 도구를 실어 내 스스로 운전대를 잡거나 아내와 교대로 하여 얘들은 얘들대로 우린 우리대로 뭣인가 소근거리며 끝없이 펼쳐진 들과 산을 가로질러 달려보는 거다. 소를 보고 ‘말 봐라’고 했다는 정주의 얘기. 소죽 끓이는 것을 보고 신기해한 정화의 얘기가 곧 진실이다. 그럴 수밖에 더 있는가?
잘 자고 왔다. 시부럴! 전날 혼자서 송광산가 어딘가에는 뭐하러 갔던가? 다 된밥에 코 빠지는 식으로 그게 딱 하나 몹시 불쾌하게 느껴진다. 마치 자식도 남편도 없는 여자처럼. 그게뭔가? 뭘 느꼈을까? 기분이 탁 트였고 후련했던가? 천일기도 부탁하지 말고 경주서 얘들 하루 더 데리고 놀지. 처음 있던 일이다. 또 간뎄다만 다음은 쉬이 가지리라. 마치 동네 골목 나서듯이-. 도저히 해낼 것 같지 않을 일을 해내고 난 뒤의 오히려 허전한 기분이 방심을 가져오고 그래서 큰 재난을 가져오는 것은 해난사고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정신적인 문제다. 쉬움을 어렵게 볼 때와 쉽게 봤을 때 그 결과는 자신이 알 수 없을 만큼 현저히 차이가 있다. 아이들의 즐거운 표정과 달리 아내의 표정이 그리고 까만옷이 기분을 우울케 한다. 많이도 웃지 말고 살짝만 웃었으면 내 마음은 활짝 웃었을 터인데 -. 얘들 말대로 다 있는데 나만 빠졌다. 그나마 생각해주는 얘들이 대견스럽고 고맙다. 내 몫으로 먹는 것마져 떼둔다니 뭔가 얘들만이 아닌 느낌도 든다. 자식과 아내에게 가장 큰 마음의 애정을 나눠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내게 가장 큰 잘못이다. 얘들의 그리고 아내의 표정들에서 그것을 느낀다는 것은 아직 내 자신의 양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의 아내에게 가장 좋은 화장품이 될 수 있고 가장 큰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이 곧 남편인 나의 도타운 애정이요 사랑이라라. 경주의 냇가! 생각만 해도 내가 즐겁다. 내가 있었으면 더욱더 즐겁게 해주었을 텐데-. 옷이 젖고 신발이 빠지고 -. 그런 것이 없으면 재미가 없지. 강물도 몇 모금 마셔보고, 다리에 거머리가 붙어서 우앙- 하고 질겁을 하며 울어도 보고. 종아리엔 이름 모를 풀잎에 긁혀 생채기가 생겨도 따가운 줄을 모르고 저절로 나아지기도 한다. 겨울철이면 눈사람 뭉치느라 손이 시린줄 모르고 벗은 모자 속에서 찐빵처럼 김이 서린 땀이 송송 맺히는 그 풍경들이 얘들 뿐 아니고 어른에게도 즐거운 추억을 남겨 줄 것이다. 얘들아! 그리고 여보! 미안하오. 너무나 잘 알고 또 내 스스로가 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 하나 때문에 이처럼 마음 태우고 있는 것이 안타갑기도 하오. 꼭 정말 꼭 내 꿈을 이뤄보려오.
아내가 대학 진학을 하겠다고 했다. 전번부터 의향은 들었다. 그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기도 하고 또 능히 해낼 수 있는 재간도 있다. 직접 나가는 것도 아니고 아침저녁 라디오를 듣고 공부하는 것이다. 항상 내 자신이 하고 싶어 한 일이니까 쾌히 권하고 싶다. 다만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내 스스로의 문제다. 무엇인가 아내에게 뒤떨어진다는 느낌. 그것이 가시질 않는다. 그는 뛰는데 나는 기어가는 느낌이다. 그것은 마치 나를 비웃으며 영영 나를 떼어놓고 가버리는 착각에까지 빠진다. 분명히 이것은 안다. 아내 자신이 말했듯이 무엇인가 바빠야 잡념을 잊는다고-. 가장 가정적이었을 아내였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못하도록 만들어 진다. 할 줄을 몰라서가 아니다. 일의 순서가 바뀐 것이다. 역시 환경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 직장이 그렇고 내가 없어서 처리했어야 할 일들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땅을 탐내고 집을 사고팔고-. 그러한 일들이 결코 잘못이거나 못할 일은 아니다. 다만 그러한 일을 겪는 과정에서 가장 여성다워야 할 아름다운 그리고 상냥한 모든 마음들이 앗겨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자신이 남성화하고 있지 않을까 하고 염려하는 반성의 소리가 무겁게 들린다. 길은 하나뿐이다. 내가 옆에서 모든 일을 되돌려 받아야 한다. 그뿐이다. 그래서 잊었던 소녀적 꿈을 되찾게 해줘야 한다. 비록 시대가 바뀌고 흘러갔지만 그것은 먼 저쪽에서 오는 정신적 고향을 찾는 것과 같은 것이다. 모든 바깥일은 잊은 체 손수 음식을 만들고 옷을 짓고 뜨개질을 하며 얘들에게 동화를 들려주고 방안을 꾸미고 스스로를 가꾸는 자신을 되찾게 해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 급선무중의 하나다.
18th. Oct(화)
또 다시 속은 하루! 그런 하루하루가 벌써 3일이나 됐다. 그렇다면 무슨 예정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Agent의 Mr. Tangir만나다. 아직 안 갔오? 한다. 언제 보내 줄건데? 무전기를 들고 누굴 부르고 야단이다. 점잖은 자리라 그냥 나왔지만 어찌 이상한 느낌이다. Consigner와 뭣이 맞지 않은 무엇이 있나보다. 3일 채선이면 돈이 얼만데? 아직도 속이 얼얼하고 맹물은 아니지만 건더기가 약간 섞인 설사가 난다. 좀 뜸해지긴 했다. 나 뿐만이 아니고 어제 그제부터 7-8명의 선원이 설사를 한다고 3/O가 보고해왔다. 뭣이 잘못인가? 물탓? 지금끝 이런일은 없었는데-. 음식에 좀 더 신경쓰고 물은 반드시 끓여먹도록 R/O에게 지시했다. 저녁에 가장 밑인 견습 3명을 데리고 극장엘 가다. 서둘러 Apapa Roxy란 극장. 입장하기도 전에 정전이다. 7시반에 시작한다던 영화가 ‘오늘 저녁하냐?’다 전기가 없어서-. 전기만 오면 즉시 시작한다나. 가는 날이 장날이더니. 역시 내게는 상륙의 복이 없나보다. 데리고 간 얘들 보기가 민망타. 그냥 오기도 뭣하고 도중 폐점 직전의 Lagos 쪽 해상 주점에서 맥주 한깡씩을 함으로 위로 삼으라 했다. 폴란드 선원들이란 한패가 신나게 논다. 하얀 아가씨도 섞였다. 그들 특유의 춤인가 괴상한 소리를 질러가며 돌아가기도 한다. 아무래도 검정과 흰색이 섞이니 흰색이 눈부시다. 겨우 가슴만 가린 폴란드 아가씨의 유연한 히프의 움직임에 모두가 눈길을 빼앗기고 있음을 본다. 심지어 검은 아가씨들 까지도 -.
박완서씨의 소설 ‘휘청거리는 오후’ 상권을 읽다. 잠을 청하기 위해서 누워서 든 것이 그만 밤을 새고 말았다. 재미가 있다기 보다 그 배경이 너무도 나를 닮은 듯 하다. 세 딸을 가진 교사출신의 주인공 허성씨의 그 사고방식과 성격이 꼭 내 자신을 보는 듯하고, 그 아내 민여사. 우리 마누라도 그만큼 늙으면 그럴 타입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떠오를 만큼, 마치 20년 후의 내 자신을 보는 듯 해서 스스로 그 속에 빨려들고 만듯하다.
뒷 표지에 쓰인 저자의 말처럼 책 속의 사람을 누구누구의 행불행보다 무엇이 그렇겠금 만들었나 하는데 관심을 갖게 하고 싶다는 듯이 건성으로 읽어 넘기기엔 절실함이 서려 있었다. 시골학교에서 연애결혼으로 출발한 것부터가 우리와 비슷했고 그가 공장을 경영하다 왼손 손가락이 잘려 나간 것이나 내가 배를 타고나서 바보처럼 멍청해진 것이 외형상 다를 뿐이지 그 변모의 과정마져 엇비슷했다. 우리 정화 정주 정현이의 앞날이 그들 초희, 우히 말희 같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지만, 그와 비슷한 고민은 부모로서 가질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자식을 키우는 것이 더구나 딸을 기르는 것이 얼마나 어려움이 많다는 것도 절실히 느낄 수 있고, 또 그것은 그들이 점점 자라나면서 더욱 그러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한다. 벌써부터 제 물건. 제 방의 보안장치를 한다고 슬쩍 염려한 아내의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아내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하권을 읽어봐야겠는데 선뜻 들어지지 않는 것은 왠일일까? 제 것으로 만들려고 우희를 안고 누운 민무제라는 작자의 “아내로서는 괜찮지만 당신 같은 딸은 용서치 않는다.” 는 얘기. 그것은 곧 남자의 진심이고 욕심이다. 내 자신이 그랬고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면서도 그 작자가 어찌 그리 미워지는지 모르겠다. 딸에게 그나마 가장 믿었던 딸애한테서 실망을 느꼈을 때 아버지로서의 극심한 분노와 허탈. 그러면서도 그것을 사실대로 받아들이거나 뱉지 못하고 속으로 썩혀야 하며 오히려 딸의 장래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 부모로서 겪어야 하는 가장 큰 아픔이리라. 어제 온 사진에서 나란히 선 세 아이들의 모습이 벌써부터 그리 커 보일 수가 없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부모가 자식을 향한 사랑에는 그리 큰 변함이 없을 것이다. 부모속을 썩히는 자식은 있어도 자식 속 썩히는 부모는 없다는 딸의 항변에 일종의 섬뜻한 두려움마져 느낀다면 나도 자식을 가진 부모의 입장이 더욱 강함을 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C/E가 다시 가불 $50만 ... 하며 왔다. 틀니를 놓고 왔느니 어쩌니 한다. 변명인줄 알지만 아직도 집 한칸 없이 6남매인가를 데리고 산다는 그의 생활을 보면 신기하면서도 측은한 생각도 든다. 그에게서 여자를 앗아버리면 마치 약기운 떨어진 중독자 같다. 그에게는 오직 여자가 있을 뿐이지 국적이고 나이고 희고 검고가 없다. 어찌보면 그의 인생관에도 일리는 있으리라. ‘얼마남지 않은 Sex인데 지금 않으면 말짱 헛것 아니여.’ 개 때문에 마누라한테 숨겨둔 세컨드를 들킨 얘기. 그 때문에 꼼짝 못하고 추궁당하고 있는데 아들이 자기편을 들어주더란 얘기. 그런 것이 지금은 흘러간 옛 이야기라면 납득도 가고 한때의 일로 웃을 수도 있으나 아직도 그 버릇을 계속하고 있으면서 전 선원의 비웃음을 싸고 있으니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만약 당신 아들이나 딸들이 그러면 어쩔라오? ‘남자라면 한번쯤..’ 하면서도 어딘가 그늘진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것을 보면 너무 바로 찔린듯하다. 자기의 생활과 책임을 다하고 나서의 일인 것을 -.
19h. Oct.(수)
느닷없이 Pilot가 닥쳤다. ‘Circe 1에 접안하오?’ ‘아니고, 그냥 외항으로 나가라던데-’ 이거 또 이상하다. 분명히 출항 전 Circe 1에 접안, 급유하기로 되었는데? Agent에서도 그랬잖아. 어제 오전 잠시 Mr. Ashok한테서 VHF로 언질이 있긴 했다. 일단 외항에 있으면 재입항을 수배한다고 -. 아무래도 이놈들의 속을 알 수가 없다. 시원스레 이야기해주는 놈도 없고, 마치 중국집 짜장면 되듯이 ‘곧 된다.’는 소리뿐이다. 일단 외항에 묘박. 보트로 다시 Circe 1에 가보다. 마침 Mr. Ashok가 와있다. 어찌된 거냐? 자기도 이상하단다. 그럼 누가아냐? 함께 가 본잔다. Agent. Chife Pilot 사무실. 분명히 Pilot Office에 Order는 바르게 나와 있는데? 대리점에서 다시 옥신각신. Sign해내라. 그리고 언제 접안될것이냐? 내일. 진짜? 진짜다. 내가 미칠판이다. Trans-con에 자기들 스스로 Agent를 하나 만들어 보라고 종용했더니 벌써부터 고려중이란다. 아무래도 Lansal하고는 무엇이 잘 맞질 않는다. 그건 저희들 사이의 문제이지만 船側에서는 피해가 없어야 할 것 아닌가? 기끗 기름 65tons을 주려고 하루 $2,500가까운 체선료로 4-5일 문다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짓 아닌가? 그들도 안단다. 할 말이 없다. 드골 대통령을 닮은 Circe 1 선장 영감님. 또 맥주 한 잔 하잔다. 파란눈이 쑥 들어가고 콧날이 오똑한 일등항해사와는 대조적으로 사람이 두리뭉실하다. Lome 가거던 편지 좀 보내달라며 부탁한다. 자기 마누라 것도 있고 회사 것도 있단다. 뜨거운 햇살과 그걸 되받아 넘기는 텁텁한 地熱. 그리고 부둣가의 똥 냄새와 사람 냄새. 어서 벗어나고 싶다. 높다란 배 밑을 지나가다 보면 뭔가 물에 풍덩하고 떨어지고 나서 종이가 휙휙 날라 내려온다. 배위에서 종이를 깔고 똥을 누고는 물에 던진 것인데 중량의 차이로 그 놈의 똥과 종이가 따로 따로 놀아난 것이다. 귀선 중 Life-Boat의 고장으로 2시간을 지체했다. 냉동사가 수리를 했고 Circe 1의 쟝카방을 닮은 2등기관사가 협조를 했다. 천만다행이다. 외항이 이외로 거칠다. 더 以上의 異狀은 없었지만 구명정의 정비도 철저히 해야겠다. 東幸丸. 혹시 편지 있을라나 해서 부근에 왔으나 헛탕. 근일 입항예정이라 했더니 Lome외항 정박중인 Takashiro Maru에 부탁한 주부식 받으러 간다고 대리점에 연락 좀 해달란다. 곱상한 선장 영감의 인상이 떠오른다. 잘 다녀오시오 연락 해드릴테니-. 매양 폐만 끼쳐서 미안하다며 내일 아침 6시 출발 금요일(21일) 밤까진 다시 오겠단다. 먹고 사는 일은 너나 나나 마찬가지다. 뭘 먹던 먹긴 먹어야 하니까.
20th. Oct.(목)
11시 다시 입항. Circe 1에 접안. MDO 65톤을 공급했다. 사람 좋은 France 선장, 또 손바닥을 슬쩍 뒤집으며 맥주 한 잔 하자고 오란다. 입에는 항상 필타만 남은 담배가 물려있다. Mr. Ashok와 Jose가 왔다. 필요한 Sign도 받고 Container 한 개도 실렸다는 확인도 받았다. 양볼에 길죽한 구렛나루를 기른 Mr. Joh. 15시까지 자기가 직접 Statement Fact를 가져오마 더니 감감이다. 오후 5시 Pilot J는 왔는데-. 끝까지 말썽이다. Lansal Men이라는 젊은 친구의 스쿠트 뒤에 실려 사무실에 갔다. Mr. Ofor란 놈이 있다. 눈을 불시고 고함을 쳤다. 영어고 나발이고 한국말로 욕부터 했다. ‘야! 아 쌔끼들아!
제놈도 정신이 없나보다. 표정과 고함에서 읽긴 읽은 모양이다. ‘Pilot와서 기다리는데 왜 서류를 안 보내냐?’ 무전기를 찾고 부르고 야단법석을 떤다. Mr. Joh가 갖고 갔는데 그 부근에 있으니 곧 간다며 배로 가란다. 사실은 사무실도 정신없는 개판이다. 이사를 하는 중이다. 엉망이다. 엉덩이라도 힘끗 차주고 싶다만 명색이 그도 간부다. 미안한가 씩 웃어 보일 뿐이다.
17:45시 출항하다. 땅거미가 슬슬 퍼질 때쯤 외항을 벗어나다. 맑은 하늘에 상현달이 유난히 뚜렷하다. 대양을 스치는 바람은 시원스럽고 마음도 가볍다. 근 65일 가까이 썩힌 속들이 한꺼번에 후련해지는 느낌이다. 휘황찬란하게 불들을 밝히고 있는 숱한 외항의 대기선박들이 보통으로 뵈지 않는다. 그들 나름대로 무엇인가 한 두가지씩의 고통스러운 사정을 안고 목이 빠지게 입항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 주위에 있는 일본 국적선 光陽丸도 오늘 입항했지만 4개월을 밖에서 기다렸단다. Recent Bontan, Blue Kochi, Blue Kobe. Cristal Gadnia. Neptune. Oriental 등등 자주 VHF로서 주고받던 이름들이다. 한동안 못 볼거다. Pilot Juliet의 말. ‘근 2달간 휴가 잘 보냈잖소?’ 휴가라면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으나 휴가치곤 지저분하고 곤혹스런 기간이었다. 한 달 후에 다시 오마. 너무 신경썼고 불안케 했던 이놈의 곳! 그런데도 어쩐지 시원섭섭한 것은 또 무슨 이유인고?
검둥이 아가씨에게 태극기(?)를 꽂지 못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이라도 든 것일까? 한번도 마음끝 상륙하여 구경도 못해본 이곳인데-. 아무도 반겨주고 갈 곳도 없는 이곳이었는데-. 그래서 더욱 아쉬움이 남는가는 모르겠다만 - . 조용한 항해가 시작된다. 65일간 하루도 걸러지 않고 왕왕거리던 VHF도 한동안 쉬게 된다. 잠자던 황소가 부시시 기지게를 켜고 몸을 한번 털치듯이 다시 쿵쿵거리며 움직이는 선체가 살아있는 느낌이다. 내일 아침 다시 Lome도착. 입항되고 급수가 이루어지려나? 차항은 변함이 없을런지?
21st. Oct(금)
07:20시 Lome 외항에 닻을 내렸다. Port Control의 언제 들어도 상냥하고 곱상한 아가씨의 목소리가 Lagos와는 별천지임을 일깨워 준다. 불과 서쪽으로 130여 마일 떨어졌는데 海狀도 많이 다르다. 이래서 국가가 다름을 안다. 4척의 先客이 머물고 있는 조용한 浦口. ‘물 받으러 왔오.’ ‘알겠오 최선을 다 하겠오, 그런데 귀선의 묘박 위치가 안 좋으니 조금 남쪽으로 옮겨주시오’ ‘그래요? 그러지요’ 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분명히 영국이 신사의 나라라고 했는데 영국 밑에서 자란 Lagos와 France밑에서 큰 Lome와는 너무나 다르다. 같은 검둥이라도 친절하고 삭삭하다. Lagos의 거칠고 터프한 것에 비하면-.
Apapa Reefer와 연락. Mr. Jose와도 목소리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저께부터 여기도 內政에 문제가 생겼는가 외국인은 일체 상 륙이 금지되고 있단다. ‘우리야 갈 길이 바쁜 사람이니 어서 물이나 주시오’ . 다음이 어디냐고 묻는다. 영국이요. ‘오! 좋은 곳이오. 올 때 예쁜 아가씨 하나 데려다 주시오’ 한다. 제 마누라도 여간 미인이 아니던데-. 그 자슥 무척 여자를 좋아하나 보다.
어두워서 접안. 밤새 급수하다. 이곳 Lome의 물은 이 부근에서 수질이 제일 좋은 편이다. 밤이라서 그런지 검역, Immigration 모두가 일사천리. 하자가 있어도 그냥 넘어간다. 오랜만에 맑은 청수에 묵은 때를 씻다. 한결 시원하다. 내일 아침 7시 출항예정. Mr. Jose.가 끝내 안 온다. 내일 오려나. Apapa는 다시 외항대기. 닭고기라도 몇 상자 얻어갈까 했는데 그것도 헛사. 적재계획 변경으로 4-5일 더 Waiting. USSR Trawl선에서 전제키로 했단다. 안내해준 Pilot. 다음번엔 언제 오냐고 -. 글새 한 달쯤 뒤에나-. 다음에 기회있으면 초청 한 번 해달란다. 자기는 일본의 몇 군데를 가 봤는데 자기 마누라는 가보지 못해서 관심이 많다고-. 일본 음식도 맛보고 싶고 일본 음악도 듣고 싶어한다나. 내가 일본사람인줄 아는 모양. 그럽시다. 당신은 뭘 좋아하요? 사시미, 스시 ... . 그리고 토오쿄오, 아오모리 몇군데를 들춘다. 불란서 놈이다. 여기서도 Assistance로 검둥이를 데리고 다니며 Training시킨다. 정말 오랜만에 아늑한, 정신 맑은 마음으로 평안한 잠을 청해보자.
23rd. Oct(일)
찬란한 햇살이 비치는 맑은 하늘. 잔잔한 바다. 넓은 대서양이 이렇듯 호수 같을 수가 있을까 의심이 가리만큼 푸르다. 순항이란 이를 두고 일름이리라. 어제 아침 07:30시 출항했다. 결국 Mr. Jose는 만나지 못했다. Las행 확인 Sign이라도 받아둘 참이었는데-. Circe 1의 편지도 Pilot에게 부탁했고, Apapa 김선장에게도 안부를 전했다. 저 배도 다음은 지중해의 시리아로 간댔으니 한동안 못 보겠지. 아니면 내년쯤 한국에서나 만나게 될라나.
‘잘가소’ ‘조심하소’. 서로의 안항을 빌며 작별의 정도 나누었다. 무엇보다 청수. 질 좋은 물을 가득 실었으니 한결 마음이 든든하다. 연료도 Las까지는 충분하다. 너무 공선이라 그게 좀 마음에 걸리고 야채가 부족한 게 아쉽지만 며칠만 참으면 된다. 오직 10여일간 해상과 기상만 좋으면 더 바랄게 없다. 이 계절엔 어떤 바람이 얼마만큼 주로 부는지 분명한 Data가 없는 게 염려스럽다. ETA Las는 31일 04시로 했다. 계속 순항과 안항을 기원한다.
냉동사 냉동기 Condencer Tube 파열관계를 이야기한다. 사실이라면 문제가 있다. Las에서 수리하자면 적어도 3-4일 Off-Hire가 걸린다. 여하든 뜯어서 최종점검 결과를 보고 타전을 하던지 대책을 세우자. C/E가 직접 보고하지 않는 것이 다소 안심은 된다만 아무래도 시원찮은 느낌이다. 오래 쓰긴 했다. 하루도 마음편한 날이 없다. 겨우 어제 오늘 모처럼 한가한 정신적 여유를 가졌었는데 -. 맑은 하늘에 떠있는 달빛마져 정겨운 느낌이 든다.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명상에도, 공상에도 잠겨본다. 배가 너무 낡지 않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물론 船主측에서도 알고 있고, 그래서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매선 하려는 의사를 전해왔다. 그러나 우선 내가 승선하는 기간 중엔 그런 번거로운 일이 없었으면 좋겠고 또 낡은 대로 더 이상 사고 없이 끝내고 싶다. 나 혼자만의 바램이 아닐 것이다. 일상생활이 언제나 그렇듯이 뜻하지 않은 사고나 사건이란 인간사회에서는 늘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고나 사건자체가 인간을 변화시킨다고는 할 수 없다. 문제는 그 사고를 어떻게 대처하고 반응하며 극복해 나가는가에 달렸다. 내 자신의 잘못이거나 담당자의 과오라기 보다 기계자체의 결함, 부식, 노후 등에 의한 사고라고 해도 그 결과는 우리들 자신에게 어느 정도 되돌아온다. 아무리 외적 조건이 그렇다고는 해도 또한 그것을 미리 예방하고 신속하게 대처, 처리해나가는 것이 우리들의 의무인 동시에 책임이기도 하다. 냉동기 기능이 여의치 않으면 본선은 그 존재의의를 잃는다. 모처럼의 평화로운 마음에 작은 파문이 인다. 어디서 어떻게 수리를 하던 최대한의 시간을 줄여야 한다. 수리비 자체보다도 Off-Hire로 입는 손해는 우선 막아야한다. 일단 귀추는 두고 보자. 다시 생활을 규칙적으로 되돌린다. 일요일 모두들 안심 놓은 휴식이다. 늘 할까 말까 갈까 말까 될까 안 될까 하던 불안스럽던 Lagos의 여러 날이 누구없이 마음의 긴장을 강요했던 모양이다. 늘 예정이라는 계획을 두고 그기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선박회사의 운영인데 그게 무시되다 싶이 했으니 다른 일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그래 오늘 푹 쉬고 내일은 다시 또 시작하자. 끝맺음과 시작은 늘 같이 있는 것이며, 하루 중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것이 곧 한 주일. 한 달. 일년을 통해서 되풀이되고 우리의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비록 낡았으나, 아니 낡았으니까 더욱 꾸미고 가꾸고 손질하고 고쳐야 한다. 청구해둔 Paint를 주려는지 모르지만 있는 것이라도 최대한 활용해서 정비를 하자. Cement가 떨어진 곳도 다시 하고 -. 선체자체의 정비라기 보다 우리들 마음의 정비하는 의미에서 보자.
25. Oct(화)
계속 최상의 날씨 그리고 안항이다. 정오쯤 Liberia의 수도 Monrovia앞을 지나다. 어제 동경으로부터 Paint 수배, 선용금 송금했다는 입전 있었고 Canpex에서는 급유량, 작업비 등을 수배토록 타전했다. 오늘 다시 동경에서 Las로 Parcel 띄우고 28일 도착한다는 전문이 왔다. 부득이 냉동기건 Owner에게 알리기로 하다. Las에서 일단 수리하도록 함이 좋겠다고 -. 이번 항차만 무사히 마칠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지난번 久保감독도 염려했다니 본사에서도 알고야 있을 테지만 겨우 한 항차를 마치고 터지다니 -. 462개의 Condencer내 Tube중 30개가 Gas가 센 흔적이 있단다. 수리한데도 전부를 다 갈지 않는 이상 문제는 남는다만 우선은 30개의 Tube를 막아버리면 그 압력이 다른 튜브에 걸리고 압력이 높아지면 그게 또 터질 우려가 있다. 일단은 사실을 알리고 본사의 지시를 받자. 갑판위에는 Bulwark 등 Chipping과 Painting이 시작되었다. 마치 늙은 노인네가 요란스레 화장을 한 격이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덜 녹이 났을 때 벗기고 칠해야지. 전번 9일 Lagos에서 본사 小川(오가와)상무 앞으로 띄운 편지가 제대로 들어간 모양이다. 외판용 페인트, Docking시 Grating 수리 수당 등을 보내준 것을 보니-. 다행이다. 없는 실력을 줏어 모아 그것도 편지라고 쓴 보람이 있어 흐믓하다. 하루 1시간씩 일광욕을 다시 시작하다. 이왕 새카맣게 탄 몸. 좀 더 골고루 태우고 제발 그놈의 벌레가 좀 덜 물고 물어도 못 뚫고 들어오게 했으면 싶다. 이미 배를 탄 후 이런 항해는 처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처럼 느긋한 정신적 여유하며 시간적 넉넉함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지는 해 돋는 달을 바라보며 조용히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내일을 그려보기도 한다. 가끔은 권태 비슷한 것이 비끔히 모습을 들어내기도 한다. 1년 중이면 그럴만한 때도 됐다. 8개월이 며칠 안 남았으니까. 그리고 한 달 중 가장 지루하게 느껴지는 25일경이다. 시간이 남아서 주체하지 못 할만큼 게으러지는 않다만 가끔은 부질없는 工事에 시간을 앗기기도 한다.
‘조용한 가을밤. 얘들이 잠든 시간. 커텐을 걷으면 환한 달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목욕을 끝내고 쇼파에서 한 잔 술로 몸을 식힌다. 역시 샤워를 마친 아내가 조용히 옆에서 아니면 뒤에서 기대온다. 무엇인가 가만히 속삭임이 오가고, 가벼운 입맞춤이 나누어지고-. 그리고 오늘과 내일의 일들을 주고받는다. 그와 나의 세계! 그리고 보금자리. 긴 가을밤이 깊은 줄도 모르리라. 그리고는 짧으나 깊은 잠. 가벼운 피로감을 오히려 상쾌함과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아침이 되기도 한다. 얘들과 요란스레 시작되는 아침. 새로운 우리의 삶이 열리는 하루의 시작’
남은 4개월도 너무 지루한데 과연 2년을 지탱해 갈 수 있을는지? 남자인 내 자신도 이런데 하물며 내 꿈의 보금자리인 집이 있고 얘들이 있는데 오직 주고받을 상대만이 없는 아내의 답답함이 더욱 그러하리라. 하고 싶은 얘기들이 쌓이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고 혼자서 가만히 대밭에서 외치던 동화속의 이발사처럼 혼자라도 중얼거릴 수도 있을거나.
대화의 단절! 그것은 정신이나 마음을 시들고 병들게 할런지도 모른다. ‘인생은 시름의 연속’이라고 옛사람들이 말했다지만 그것이 곧 진실이라고 믿어진다. 아예 큰 꿈은 꾸지도 말고 그런 게 삶이려니 하고 살아 가는 게 제일 마음 편할 것도 같으나 그러기엔 아직 내 자신의 젊음이 무료하게 보내져 버릴 것만 같아 억울하기도 하다. 나만은 내 뜻같이 잘 살 수 있는 길이 어딘가 있을 것 같으면서도 쉬이 찾지 못하고 또 남들은 모두가 훨씬 더 행복하게 아무런 고뇌 없이 살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욕망! 그것이 있는 한 만족한 소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만 나름이 아닐까? 크고 거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작고 가장 기본적인 삶의 바탕이 되는 작은 욕망! 그것이 모든 것의 始原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때 불만을 해소시키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신경안정제를 먹는 법도 있다.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바가지를 긁는 방법도 있다. 교외로 하이킹을 가거나 등산을 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두는 일시적인 효과밖에 갖고 있지 않다. 불만은 못살기 때문에 있는 것만이 아니다. 잘 살아도 불만은 있다. 권력이 있어도 역시 불만은 떠나지 않으며 근심이 가시는 것도 아니다. 한편 근심 가운데서도 보람이 있고 사랑이 있는 법이다. 불만 속에서 삶을 숨막히게 둔 것 보다도 시름 속에서 나가 삶의 보람을 찾아내는 자세가 요새처럼 아쉬운 적은 없다.’ (洪思重씨의 에세이에서)
내 보람은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고 언제 있느냐가 더 가까울 것 같다. 오늘이건 내일이건 4개월 후이건 1년 4개월 후이건 언젠가 내 아내가 있고 얘들이 있는 내 가정 속으로 되돌아가면 언제라도 생의 보람은 기다려 줄 것만 같은 이 지금의 바램이 한갓 바램만으로 끝나지는 않으리라 믿는 것도 망상일까? 한 가족이 모이는 그러한 단란함이 있는 시간이 몹시도 그리운 어제고 오늘이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뜻인가? 너무나도 허망하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 것만 같다.
26th. Oct(수)
계속 좋은 날씨! 그러나 조금씩 북상 할수록 조바심이 난다. 조금이라도 해상에 파도가 생기면 많은 航程과 시간적 손실을 가져온다. 그보다 사람이 축나고 못 견딘다. 오후 4시반. Las의 Mavacasa로부터 積地인 영국의 Milford Haven으로 직항하라는 전보를 받다. Las 입항이 Cancel한단다. Mr. Tikam이 영국에서 기다리며 급유 및 수배한 사항을 Supply한단다. 여우같은 녀석, 또 속았는가? Las에서 급유한다는 전제하에 Circe 1에 최대한 연료유를 주었는데-. 기상만 좋으면 못 갈 것도 없지만 무엇인가 희롱 당하는 기분이라 씁쓸하다. 그곳 Agent는 Milford Haven Dock Company. Cable Address가 “Drydock Milford Haven'이란다. 조선소 이름이다. 혹시 조선소의 한 부서에서 대리점 업무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일단 바로 올라가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으고 탁송품을 그리고 송부토록 타전해야겠지만 아무래도 부근의 기상이 걱정이다. 고장중인 No.1 냉동기 콘덴샤 수리 문제도 있다. 일단 수리의뢰를 영국으로 하고 1대로서 일부 Hatch에 적제 중에 수리를 마침으로서 Off-Hire는 최대한 기간을 줄이는 방법을 검토하라고 본사에 타전하다. 공사 자체가 비교적 어렵고 또한 앞으로를 봤을 때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선 중요한 문제임을 감안하면 쉬운 일이 아님을 짐작한다. 적어도 2-3일은 Off-Hire가 되리라 본다. 부득이한 일이다. Owner와 Charterer사이에 원만한 결정과 협조가 있으리라 기대할 뿐이다. 올라 갈수록 낮이 짧아지고 햇살이 그 힘을 잃는다. 투명한 공간을 그저 간지러울 정도로 비칠뿐이다. 10여일 동안에 1년 사철,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한꺼번에 겪는 셈이다. 11월의 영국이면 벌써 스산하나 겨울철에 접어든다. 북대서양의 거대한 저기압 덩어리의 이동을 매일 한번씩 Check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너무 많이 발생하고 빨리 이동하고 또 그 규모가 큰데 염려가 쌓인다. Lagos에서 만난 Mino Star선장의 얘기가 새삼 떠오른다. ‘오죽했으면 흔들리기가 싫어서 갈라고 했겄오.’ 숱하게 겪은 북태평양의 저기압이지만 그 중심경도가 북태평양의 것보다 낮은 듯하다. 아프리카 대륙의 고기압과의 사이에 촘촘히 그으진 기압골이 마치 눈앞에 보이는 듯 하다. 한발 더 일찍 갔었더라도... 하는 아쉬움이 있다.
27th. Oct (목)
일단 Mavacasa에는 영국으로 모든 Parcel을 탁송하도록 타전. 대아에도 입항지 변경을. Milford Haven의 대리점에도 ETA와 협조의뢰의 Cable를 띄우다. 날씨가 좋다고 가정한다면 11워 5-6일경에는 충분히 입항이 가능하다.
오후부터 Swell이 길죽해져 온다. 가까이서 생긴 것이 아니다. 밤12시경이면 Dakar 앞을 지나겠다. 꼭 5개월 만이다. 지난 5월말 밤늦게 다카를 출항했었지. Blue Kochi호가 부근을 항해중 VHF가 통한다. Mr. 菅原 동기생이 그곳의 통신사와의 교신에서 알려준다. 도중 Dakar 입항 예정이라는 것과 선장의 안부도 아울러 -. 아무래도 내일부턴 날씨가 나빠질 것만 예감이다. 약간은 달무리도 졌다. 긴 Swell도 염려스럽고. 냉동사 부상. 작업중 손과 발을 무거운 쇠덩이에 끼여 다친 모양. 앞으로 할 일이 많은데 -. 뼈에 이상이 없어야 한다. 야채가 다시 문제가 된다. Las 입항이 안 되면 영국까지 거의 야채가 없어지는 셈이다. 야채 없는 식사는 실상 맛이 없다. 억지를 쓰더래도 잠간이나마 Las 입항토록 해보는 수 뿐이다. 급한데로 야채는 살 수 있으니까. 무욕! 아니 무기력이란 표현이 적절하다. 이런 증상이 내게 있은 것은 꽤 오래 전부터라 생각된다만, 최근 다시 느낀다.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간절히 생각하면서 막상 실행에 옮기기가 지극히 싫은, 나른한 봄날의 심신처럼. 이것은 분명히 신체적이나 병적인 것이 아니고 정신적인 원인에 의한 일종의 증세가 아닌가 싶다. 어쩌면 되는대로 살아가는 하루가 아니고 너무도 의식적으로 보내려는, 하루의 시간을 유용하게 써 보려는 지나친 의도적인 생각이 곧 잠재의식이 되어 오히려 시간에 쫒기고 불안스러워 하는 그런 나날이 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일이라고 말하는 현인들이 있었지만 실상 자신을 이기고 극복한다는 것 그리고 적당히 통제한다는 것은 영영 불가능한 일일 것만 같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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