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가장 편한 공간에서 가장 불편한 옷을 입어라.
사람은 가장 편할 때 가장 게을러진다. 오히려 출근을 하고 바싹 긴장된 상태에서 정장을 입고 일을 할 때에는 식욕이 폭발하는 생리 전이라도 막상 많은 음식이 들어가지 않는다. 바로 앞에 무서운 직장 상사가 날 주시하고 있고, 같은 식사자리 맛좋은 음식들이 즐비해도 무서운 시어머님과 겸상을 하면 음식의 맛을 못 느끼고 그저 기계적인 식사만 하게 된다. 그러니 막상 긴장이 풀어지는 퇴근 이후나 일과를 마친 저녁에 음식을 탐하며 침대에 쓰러지기 일쑤다. 난 내 생애 두 가지 경험을 통해서 살찔 수 있는 상황을 잘 극복해 내었다. 첫 번째는 출산 후의 경험이다. 늦은 나이에 출산의 첫 경험을 하게 된 나는, 한국에서 산후조리원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즈음, 첫 개업하는 프랜차이즈 산후조리원의 첫 고객이 되었다. 당시 이웃에 거주하시던 중년을 넘으신 대학병원의 산부인과 선생님께서 출산 축하를 위해 방문해 주셨다. 다른 어르신들과는 달리, 뜨끈뜨끈한 방에 몸을 달구 듯 고정자세로 누워있는 나에게 마치 그릴 위에 눕혀진 군고구마처럼 있다가는 출산 후 피부도 더 늘어지고 살이 찐다며 조리원의 가운을 벗어던지고 호흡하기 편한 면바지나 청바지를 입고 복대를 해서 몸의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조언을 주셨다. “우리 아들이 건강하다”, “잘 생겼다”,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귀가 잘 생겼다”, “머리가 나보다 작으니 성공했다”하는 칭찬들은 그저 들어서 좋은 말들이었고, 선생님의 그 조언은 내가 그 날부터 바로 실천해야 할 절실함이었다. 갑작스레 바쁜 직장생활을 하시는 친정어머니에게 전화를 하여 내 옷장에 있는 바지 하나와 힙 업 거들을 가져다 줄 것을 무리하게 요청했고 난 그 날부터 열심히 착용한 후 밤마다 거들을 손으로 빨아, 달구어진 조리원 방바닥에 깔아 말리며 하루도 빠짐없이 그 실천을 했다.
두 번째 경험은 추리닝 사건이다. 스포츠웨어 디자인 회사에 근무하는 한 후배로부터 “이번에 우리 회사에서 선배님 같은 에지 있는 몸매에 어울리는 추리닝을 출시했는데 꼭 선배님께 선물을 드리고 싶어요.”라며 정성 어린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원래 쳐진 엉덩이가 여실히 드러나는 추리닝 패션을 선호하지 않던 나였지만, 곱디고운 색상에 마음이 끌려 퇴근 후 그 후배를 만나는 모임에 선물 받은 추리닝을 입고 나가게 되었다. 직장에서 입었던 옷을 벗어던지고 추리닝을 입자니 힐도 가방도 모든 패션이 어울리지 않자 나는 추리닝에 맞는 패션코디를 시작하였다. 그와 어울리는 스포츠모자에 운동화를 착용하였다. 한 번도 그러한 패션을 즐기지 않았던 나이기에 후배들의 립 서비스는 폭발적이었다. “우와, 선배님, 정말 젊어 보여요.” 여러분은 이해할지 모르지만, 35세 이전의 여자들은 예쁘다는 칭찬에 약하고 35세 이후의 여자들은 정색을 하며 너무 젊은 것 아니냐는 칭찬을 들으면 가장 약해진다. 가뜩이나 늘어가는 눈가주름에 나이 듦을 속상해하던 시기였던지라, 그 이후로 나는 마르고 닳도록 일주일 내내 저녁 모임이 있으면 추리닝을 입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추리닝을 입고 나갈 수 없는 스터디 모임이 있어 다시 일주일 전까지 즐기던 스키니 핏의 청바지를 입게 되었다. 순간, 나는 충격적인 경험을 하였다. 바지의 허벅지가 끼기 시작했고 넉넉하게 채워졌던 바지의 단추가 침대에 한 번 누워 잠기어야 잠가지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난 별로 식생활이 달라진 것도 없었고 폭식을 한 적도 없었고 무엇보다 살이 쪘다는 생각은 전혀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뱃살은 늘어나 있고 허벅지는 물 풍선처럼 부어올라 있었다. 그 바지를 입고 나갔다가 압력을 버티지 못한 바지 단추가 강한 힘으로 튕겨 나갈 것임에 분명하였다. 당황하였지만, 침착한 마음으로 다음 날 아침 항상 체중을 재었던 그 시간 대 동일한 조건을 유지하고 일주일 만에 체중을 재어본 순간, 놀랄만한 충격을 받았다. 1.3kg이 늘어 있었다. 생리 전도 아니고, 변비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항생제나 소염제를 복용하여 몸이 부은 것도 아니었다. 기분이 상해 가만히 책상에 앉아 그간의 생활을 되짚어 보는 순간 나의 달라진 환경, 바로 선물로 받은 추리닝을 발견하였다. 마치 같은 물고기도 다른 환경의 어항의 사이즈만큼만 물고기가 성장하듯, 루즈한 옷의 탄력만큼 지방의 부피도 불어난 것이다. 난 덜 먹었다고 생각하지만, 옷이 편히 받쳐주니 포만감으로 불편했을만한 팽배해진 위도 감지하지 못했고, 젊음을 칭찬받게 했던 추리닝은 결국 내 지방을 끌어당기는 주원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나는 집에서도 쫄티를 입고 청바지를 입는다. 오히려 평소 입고 다니기 불편한 민망한 옷을 입기도 한다. 가끔 “옷이 좀 조이네.”라는 말을 하는 아들에게 불같이 화를 낼 위기를 다스리기는 하나 난 가장 편한 순간 우리는 가장 살이 찐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눈앞에 펼쳐진 식탐의 위기를 잡을 수 있는 장치는 이성적으로 학습한 단백질 먹기, 칼로리 계산하기보다 불편한 옷차림일 수 있음을 반드시 명심하고 실천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