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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악기웨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물질은 나의 자아다.'라고 주장하는데, 그대는 '내 물질은 이렇게 되고, 이렇게 되지 마라.'고 그 물질을 지배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16. "악기웨사나여, 마음에 잡도리하라. 악기웨사나여, 마음에 잡도리하고서 설명하라.
그대의 말은 먼저 한 말은 뒤에 한 말과 일치하지 않고 뒤에 한 말은 앞에 한 말과 일치하지 않는다.
악기웨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느낌은 나의 자아다.'라고 주장하는데, 그대는 '내 느낌은 이렇게 되고, 이렇게 되지 마라.'라고
그 느낌을 지배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17. "악기웨사나여, 마음에 잡도리하라. 악기웨사나여, 마음에 잡도리하고서 설명하라.
그대의 말은 먼저 한 말은 뒤에 한 말과 일치하지 않고 뒤에 한 말은 앞에 한 말과 일치하지 않는다.
악기웨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인식은 나의 자아다.'라고 주장하는데, 그대는 '내 인식은 이렇게 되고, 이렇게 되지 마라.'고
그 인식을 지배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18. "악기웨사나여, 마음에 잡도리하라. 악기웨사나여, 마음에 잡도리하고서 설명하라.
그대의 말은 먼저 한 말은 뒤에 한 말과 일치하지 않고 뒤에 한 말은 앞에 한 말과 일치하지 않는다.
악기웨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심리현상들[行]은 나의 자아다.'라고 주장하는데, 그대는 '내 심리현상들[行]은 이렇게 되고,
이렇게 되지 마라.'고 그 '심리현상들을 지배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19. "악기웨사나여, 마음에 잡도리하라. 악기웨사나여, 마음에 잡도리하고서 설명하라.
그대의 말은 먼저 한 말은 뒤에 한 말과 일치하지 않고 뒤에 한 말은 앞에 한 말과 일치하지 않는다.
악기웨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알음알이는 나의 자아다.'라고 주장하는데, 그대는 '내 알음알이는 이렇게 되고,
이렇게 되지 마라.'고 그 알음알이를 지배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20. "악기웨사나여, 마음에 잡도리하라. 악기웨사나여, 마음에 잡도리하고서 설명하라.
그대의 말은 먼저 한 말은 뒤에 한 말과 일치하지 않고 뒤에 한 말은 앞에 한 말과 일치하지 않는다.
악기웨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악기웨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
악기웨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
악기웨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심리현상들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
악기웨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알음알이는 항상한가, 무상한가?" …
무상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21.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악기웨사나여?
괴로움에 들러붙고(*1) 괴로움에 의지하고 괴로움을 고수하여 괴로움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보는(*2) 자가
그 스스로 괴로움을 통달하여 알 수 있거나(*3)
혹은 괴로움을 철저히 부수어버리고(*4) 머물 수 있겠는가?"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참으로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5)
(*1) “‘괴로움에 들러붙는다.’는 등은
이 5가지 무더기의 괴로움(pañca-kkhandha-dukkha)에
갈애와 사견(taṇhā-diṭṭhi)에 의해 들러붙는다는 말이다.”(MA.ⅱ.279)
(*2) “‘괴로움은 나의 자아다(dukkhaṃ etaṃ mama)’라는 등을 본다는 말은
오온의 괴로움을 갈애와 자만과 사견으로써 본다는 말이다.”(MA.ⅱ.279)
(*3) “‘통달하여 안다(parijāneyya).’는 것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무아라고 조사의 통달지에 의해 철저히 아는 것을 말한다.”(MA.ⅱ.279)
(*4) “‘철저히 부수어버린다(parikkhepetvā)’는 것은
부수어지고 사라지고 다시 생기지 않는 것에 이른다는 말이다.”(MA.ⅱ.279)
(*5) Be와 Se에는 이 문단 다음에 다시 다음 문단이 들어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악기웨사나여, 비록 이와 같다하더라도
그대는 괴로움에 들러붙고 괴로움에 의지하고 괴로움을 고수하여 괴로움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보고 있지 않은가?”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참으로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22. "악기웨사나여, 예를 들면 심재가 필요하고 심재를 찾는 사람이 심재를 찾아
이리저리 다니면서 날카로운 도끼를 들고 숲에 들어가서, 그는 거기서 야자나무 줄기가 크고 곧고 싱싱하지만
안이 꽉 차지 않은 것(*6)을 볼 것이다. 그는 그것의 뿌리를 자를 것이다. 뿌리를 자르고 꼭대기를 자를 것이다.
꼭대기를 자른 뒤 잔가지와 잎사귀를 깨끗하게 제거할 것이다.
이처럼 잔가지와 잎사귀까지 깨끗하게 제거해버리고 나면 그는 겉재목조차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어디서 튼튼한 좋은 목재를 얻겠는가?
악기웨사나여, 그와 같이 그대는 그대 자신의 주장에 대해 내가 질문하고 반문하고 추궁하자 실없고 헛되고 좌절되었다.
악기웨사나여, 그런데도 그대는 웨살리의 집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간에, 그가 승가를 가졌든 무리를 가졌든 무리의 스승이든, 또한 아라한‧정등각자라고 자처하던,
나와 논쟁을 시작하면 동요하지 않고 떨지 않고 전율하지 않고 겨드랑이에 식은땀을 흘리지 않는 자를 보지 못했다.
비록 내가 무정물인 기둥과 논쟁을 시작하더라도 막상 논쟁이 시작되면 그 기둥도 동요하고 떨고 전율할 것인데
하물며 인간이야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라고
악기웨사나여, 그런데 이제 그대의 얼굴이 온통 땀방울에 젖어서 윗옷을 몽땅 적시고는 땅에 떨어졌다.
악기웨사나여, 그러나 내 몸에는 땀이 한 방울도 없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말씀하시고 그 대중에서 황금색 몸을 드러내셨다.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삿짜까는 말없이 의기소침하여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우울한 표정으로 아무런 대답을 못하고 앉아 있었다.
23. 그러자 릿차위의 후예인 둠무카는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가 말없이 의기소침하여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우울한 표정으로 아무런 대답을 못하는 것을 알고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게 비유가 떠올랐습니다."
"그것을 말해 보라, 둠무카여."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마을이나 성읍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연못이 있는데 그곳에 게가 있다고 합시다.
세존이시여, 이제 많은 소년들이나 소녀들이 그 마을이나 성읍에서 나와 그 연못으로 갑니다.
가서는 연못에 들어가 그 게를 물 밖으로 끄집어내어 땅바닥에 던져 놓습니다.
그 게가 집게발을 내어놓을 때마다 그 소년들이나 소녀들이
막대기나 돌로 그것을 잘라버리고 끊어버리고 박살을 냅니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그 게는 모든 집게발들이 잘리고 끊어지고 박살이 나 다시는 전에처럼
그 연못으로 내려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의 곡해, 안절부절, 동요(*7)는
세존에 의해 모두 잘리고 끊어지고 박살이 나버렸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는
다시는 세존과 논쟁을 벌이겠다고 찾아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24. 이렇게 들었을 때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는 릿차위의 후예인 둠무카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그대는 기다리시오,(*8) 둠무카여. 그대는 기다리시오, 둠무카여.
우리는 그대와 더불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는 고따마 존자와 더불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시 삿짜까는 세존께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제 이것을 그만 둡시다.
우리의 대화도 여느 보통 사문‧바라문들의 논쟁처럼 단지 한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고따마 존자의 제자들은 가르침을 실천하고 훈계를 받들어 행하고 의심을 건너고 회의를 극복하고
무외를 얻고(*9)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10) 스승의 가르침에 머뭅니까?"(*11)
(*9) “‘무외를 얻는다(vesārajja-ppatta).’는 것은 지혜 얻음(ñāṇa-ppatta)을 말한다.”(MA.ⅱ.281)
"악기웨사나여, 여기서 나의 제자는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섬세하든,
저열하든 수승하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그 모든 물질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써 본다.
악기웨사나여, 여기서 나의 제자는 느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
인식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
심리현상들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
알음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섬세하든, 저열하든 수승하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그 모든 알음알이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써 본다.
악기웨사나여, 이렇게 해서 나의 제자들은 가르침을 실천하고 훈계를 받들어 행하고
의심을 건너고 회의를 극복하고 무외를 얻고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스승의 가르침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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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괴로움에 들러붙는다.’는 등은
이 5가지 무더기의 괴로움(pañca-kkhandha-dukkha)에
갈애와 사견(taṇhā-diṭṭhi)에 의해 들러붙는다는 말이다.”(MA.ⅱ.279)
(*2) “‘괴로움은 나의 자아다(dukkhaṃ etaṃ mama)’라는 등을 본다는 말은
오온의 괴로움을 갈애와 자만과 사견으로써 본다는 말이다.”(MA.ⅱ.279)
(*3) “‘통달하여 안다(parijāneyya).’는 것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무아라고 조사의 통달지에 의해 철저히 아는 것을 말한다.”(MA.ⅱ.279)
(*4) “‘철저히 부수어버린다(parikkhepetvā)’는 것은
부수어지고 사라지고 다시 생기지 않는 것에 이른다는 말이다.”(MA.ⅱ.279)
(*5) Be와 Se에는 이 문단 다음에 다시 다음 문단이 들어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악기웨사나여, 비록 이와 같다하더라도
그대는 괴로움에 들러붙고 괴로움에 의지하고 괴로움을 고수하여 괴로움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보고 있지 않은가?”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참으로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6) ‘안이 꽉 차지 않은 것’은 “안에 유조직(柔組織)이 들어있지 않은 것”(SA.ⅱ.322)이라거나,
“꽃이 필 시기에 안에 손가락 크기만한 하나의 유조직이 생기는데 그런 것이 없다는 뜻이다.”(MA.ⅱ.279)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야자나무의 껍질이 시멘트 같이 생겨서 두껍지만 내부가 비어 있는 것을 말한다
(*7) “삿짜까의 ‘곡해, 안절부절, 동요’는
모두 사견(diṭṭhi)에 의한 곡해, 사견에 의한 안절부절, 사견에 의한 동요이다.”(MA.ⅱ.280)
(*8) “‘기다리시오(āgamehi)’라는 것은 다시 말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다.”(MA.ⅱ.281)
(*9) “‘무외를 얻는다(vesārajja-ppatta).’는 것은 지혜 얻음(ñāṇa-ppatta)을 말한다.”(MA.ⅱ.281)
(*10)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는 “남의 증득이 아님을 뜻한다.”(MA.ⅱ.281)라고만 밝히고 있는데,
복주서는 다시 “남이 증득한 것은 신뢰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MAT.ⅱ.208)라고 풀이하고 있다.
또 다른 주석서에는 “‘그의 지혜는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은
남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직접 경험한 지혜(atta-paccakkha-ñāṇa)를 말한다.”(SA.ⅱ.33)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paccakkha는 눈앞에 드러난 직접지[現量]와 같은 말이다.
추론지[比量]나 비유지[譬喩量]나 성인의 가르침[聖言量]을 통해서 알게 된 지혜가 아니고
직접 체득한 지혜라는 뜻이며, 온∙처∙계∙근∙제∙연으로 대표되는 법에 대한 지혜가 생긴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예류자 이상의 성자의 경지이기도 하다.
(*11) ‘가르침을 실천하고 훈계를 받들어 행하고 의심을 건너고 회의를 극복하고 무외를 얻고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스승의 가르침에 머뭅니까?’라는 이 문구는
예류자, 일래자, 불환자의 유학의 경지를 설명하는 정형구로 알려져 있다.
첫댓글 無我論 - 2-2. 삿짜까 짧은 經② - 마음 認識 精神作用 知識이 自我라면 支配할 수 있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