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 폭파사건
북한은 1980년대 들어 1988 서울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여러 작전을 실행했다.
대외적으로는 서울-평양 공동 올림픽을 주장하거나 대한민국의 혼란스럽고 불안한 상황으로는 올림픽을 열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리고 음지에서는 남의 나라 국가원수 묘소에 폭탄을 설치해 대한민국 정부 관료를 죽이기도 하고 외국의 테러조직을 포섭하기도 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이번에는 대한민국 국적사 항공기를 공중폭파하는 작전을 세우게 된 것이다.
1987년 11월 12일, 김승일과 김현희 북한 공작원 두 명은 평양을 떠나 소련 모스크바로 이동했고 모스크바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이동했다.
이후 헝가리에 주재한 다른 북한 요원의 집에서 6일간 머물게 되었고 11월 18일에 자동차를 이용하여 오스트리아 빈으로 다시 이동했다.
이때 헝가리에 있었던 안내 요원은 국경을 넘으며 일본 위조여권 두 장을 넘겨주었다.
오스트리아는 냉전 시대에 중립국이었기 때문에 북한 여권으로도 입국이 가능했지만 친미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두 공작원은 일본 여권을 위조해 일본인 행세를 한 것.
이후 빈에 소재한 호텔에 약 9일을 머무르는 동안 오스트리아 항공을 이용하여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바그다드, 아부다비를 거쳐 바레인으로 가는 티켓을 구매했다.
그리고 아부다비에서 로마로 가는 또 다른 티켓 한 장을 도피용으로 구매한다.
그리고 11월 27일, 오스트리아로 온 다른 북한 요원이 이들에게 액체 폭발물과 기폭장치 등을 건네주었고 이들은 다음 날 바그다드 공항으로 떠났다.
11월 28일, 두 공작원은 바그다드에서 아부다비로 가는 비행기에 밤 11시 30분 경 탑승했다.
이후 자신들이 앉은 7B, 7C 부근에 폭탄을 설치하고 테러요원들은 중간 기착지인 아부다비에서 내려 도피 계획을 세웠다.
사건 발생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사담 국제공항에서 이륙한 대한항공의 보잉 707 기종의 KE858편(HL7406)이 UAE의 아부다비 국제공항을 거쳐 서울(김포)로 오기 전의 마지막 중간 기착지인 방콕 돈므앙 국제공항으로 비행하던 도중 인도양 상공에서 교신이 두절되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바그다드에서는 99명이 탑승했다가 15명이 아부다비에서 내렸고 11명이 아부다비에서 출국수속을 마치고 858편을 탔다.
사건 초기에는 단순 기체 고장이나 돌풍 같은 갑작스런 기상 악화 가능성이 제기되었는데 특히 이 중에서 기체 고장의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사실 사고기인 HL7406은 사건 10년 전인 1977년 9월 13일에는 부산(김해)을 떠나 김포로 착륙하던 중 유압 장치가 고장나 동체 착륙한 전력이 있었으며 앞에 나온 고장의 10년 후이자 사건 약 3개월 전이던 1987년 9월 2일에는 제주를 떠나 김포로 향하던 기체가 랜딩 기어 앞바퀴가 나오지 않아 동체 착륙을 하는 등의 기체 결함으로 인한 사고 전력이 있었고 수리한 후 첫 출항하여 김포국제공항으로 귀국하는 항공편이 바로 858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사고기의 고장 전력은 폭파 사건 음모론의 중요한 정황 증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보통 주변 공항 관제탑이나 공용 통신망으로 구조 요청을 하는데 당연히 이 사건에서 조종사의 구조요청은 없었다.
결국 이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은 테러에 의한 공중폭발.
물론 TWA 800편 추락 사고처럼 전기 합선 등의 원인으로 기체가 폭발하는 현상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런 경우에는 이 사건처럼 폭탄이 폭발하는 소리가 나지는 않는다.
범인 검거
조사 과정에서, 중간 기항지였던 아부다비 국제공항에서 내린 일본인 남녀 승객 2명이 출국을 시도하다가 위조 여권 사용으로 검거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고 즉시 이들이 검거되었다.
검거된 남성의 신원은 70세의 노인 하치야 신이치(蜂谷眞[구자체]一, 본명은 김승일(金勝一)), 여성은 25세의 하치야 마유미(蜂谷眞[구자체]由美)였다.
이들은 부녀지간으로 위장하고 있었는데 검거 후 담배갑에 숨겨둔 청산가리 앰풀을 깨물어 자살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하치야 신이치는 사망했으나 하치야 마유미는 앰풀을 깨물기는 했지만 재빨리 빼앗기는 바람에 자살에 실패했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위조된 일본 여권을 사용했기 때문에 일본으로 송환되어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대한민국 정부에서 청산가리 앰풀을 깨물어 자살하는 것은 북한의 수법임을 증명하여 하치야 마유미를 최대한 빨리 한국으로 압송할 수 있었다.
사건 수사를 담당한 안기부는 1988 서울 올림픽 방해를 위한 북한의 테러로 결론지었고 추가 조사 결과 하치야 마유미로부터 자신의 본명은 김현희이며 북한 조선로동당 대외정보조사부의 공작원으로서 지령을 받고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또한 헝가리, 오스트리아를 비롯하여 김현희가 대한항공 858편에 잠입하기 위해 경유한 나라들에서 정보를 받은 결과 북한의 중앙통신의 베오그라드 지부에서 김현희를 목격한 정보도 확인했다.
시한폭탄과 액체 폭발물을 승무원들이 발견하기 어려운 곳에 몰래 두고 중간에 내리는 수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들이 내린 이후 해당 비행기는 시한폭탄에 맞춰진 시간에 도달한 인도양 상공에서 폭파되었다.
김현희가 자살에 실패하고 남한으로 귀순하자 김정일은 북한에 남아 있던 김현희의 가족들을 모두 요덕수용소로 보냈다.
이는 1995년 성혜림의 언니인 성혜랑이 아들 이한영과의 전화 통화에서 얘기했던 내용이라고 한다.
당시 신문 기사. 또한 김정일은 자살에 실패하고 남한으로 전향한 김현희의 소식을 듣고 여자는 요물이라는 독설과 함께 김현희가 속했던 대외정보조사부(35호실)에서 여성 공작원들을 모두 방출하고 김현희를 교육한 노동당 조사부간부들까지 요덕 정치범 수용소로 보냈다고 한다.
김현희의 육촌 친척까지 평양에서 지방으로 추방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규정했고 김현희는 사형 판결을 받았으나 추후 음모론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막고자 일종의 살아있는 증거로 남겨 두려는 목적,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과 관련된 정보를 조금이라도 김현희로부터 더 캐내야 하는 차원에서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재량으로 전격 사면을 받았으며 이후 본인의 회고록을 저술하기도 하고 가끔씩 안보 강연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등 안기부(현 국정원)의 보호를 받으며 살고 있다.
그리고 2013년 1월 15일에는 MBC에도 출연했다.
이 사건 이후 수뇌부에서 특전사, 707특임대를 북한에 침투시켜서 북한의 핵심 표적들에 대해 응징하는 보복작전을 계획했다.
하지만 결국 작전 계획이 실제로 실시되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