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고 싶은 아버지, 닮고 싶은 아버지
2025. 5. 11(주일낮예배) 열왕기상 12:14
로렌스 형제가 쓴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라는 아주 오래 전에 출판된 책이 있다. 그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독일과의 전쟁에 참전한 로렌스 형제는 부상을 당하여 한쪽 다리를 못쓰게 되었다. 그 후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지내던 중에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갈멜 수도원에 들어간다. 그리고 1642년 자신의 생애를 하나님께 바치기로 서약하고, 수도원에서 십여년간 주방에서 일을 하였다. 그 후 로렌스는 40여년 동안 수도원에서 신발을 고치는 일을 하면서 수도원의 허드렛 일을 도맡아 하였다. 사실 남들이 알아주는 일도 아니었고, 또 허드렛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50년의 시간을 보낸 로렌스 형제의 얼굴은 항상 밝은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로렌스 형제를 찾아와 어떻게 그런 행복한 얼굴을 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때 로렌스 형제는 이렇게 대답한다.
연습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곁에 계시다고 생각하는 연습입니다.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서 50여년을 살았다. 그래서 로렌스는 하나님이 옆에 계시다는 연습을 하고 또 연습하였는데, 결국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 것이다. 그 결과 로렌스의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가득했던 것이다.
무슨 말인가? 내가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을 하고 있느냐?가 내 삶의 기쁨을 주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 한분 만으로 만족합니다는 고백을 가진 성도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배우면 행복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가정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우리 식구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때 기쁨이 넘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좋은 환경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간다. 그런데 실제로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려면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지금 저와 여러분은 함께 사는 법을 알고 있는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열왕기상 12장을 보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간다. 이스라엘 백성이 르호보암을 왕으로 세우기 위하여 세겜에 모여 있었다. 그래서 르호보암은 세겜에서 왕으로 등극하기 위하여 갔는데, 모여 있던 이스라엘 백성은 르호보암에게 부역을 줄여 달라고 요청한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로운 왕에게 부역을 줄여 달라고 요청하였겠는가? 르호보암의 아버지 솔로몬은 7년동안 성전을 건축하고, 14년동안 궁궐을 건축하였다. 솔로몬 40년 재위기간 중에 20년동안은 건축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히람왕의 신하들과 솔로몬의 신하들이 오빌에서 금을 실어올 때 백단목과 보석도 함께 실어왔는데, 그 백단목으로 성전과 궁궐의 계단을 만들고, 또 수금과 비파를 만들었다. 20년동안 건축을 할 솔로몬은 그 건물을 유지, 보수하기 위하여 계속 수고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백성은 많은 세금과 부역은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에 부역을 이제 줄여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르호보암은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가? 르호보암은 3일의 여유를 달라고 말한 후에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한 노인들을 만나서 자문을 구하고, 또 자기 친구들을 만나서 자문을 구한다. 그렇게 심사숙고한 르호보암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열왕기상 12장 11절으로 말한다. 함께 읽기 바란다.
(왕상 12:14) 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르호보암은 내 아버지는 너희를 채찍으로 징계하였지만, 나는 전갈 채찍으로 징치하리라고 말한다. 여기서 채찍은 가죽으로 만든 끈을 말한다. 그래서 채찍에 맞으면 굉장히 아프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채찍에 납이나, 쇠붙이가 붙어 있는 전갈채찍으로 다스리겠다고 한다. 이 채찍전갈은 신약성경에도 나온다. 우리 예수님이 빌라도법정에서 재판을 받은 후 로마병정들에 의하여 채찍에 맞았는데, 그 채찍이 전갈채찍이다. 강한 힘을 가진 로마가 채찍전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강력한 힘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겠다는 것이다. 르호보암은 나는 내 아버지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너희를 다스리겠다는 것이다.
왜 르호보암은 아버지와 자신을 비교하고 있겠는가? 코넬대학 심리학교수인 토마스 길로비치(Thomas Gilovich)는 워비콘 호수 효과(Lake Wobegon Effect)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또 과신하는 것이다. 그래서 또래와 비교하여 나는 운전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면 10% 정도만 손을 든다. 90%는 내가 남보다 운전을 더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업에서 우수인재로 분류되는 직원은 전체의 20% 남짓이다. 그런데 당신은 회사에서 꼭 필요한 우수한 인재입니까? 하고 물으면 80% 정도가 그렇다고 응답한다. 워비콘 효과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소위 말하여 잘난 맛에 살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항상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위험을 목전에 두고도 설마 나에게 이런 사고가 나겠어! 라는 생각한다. 그래서 뉴스를 보면서 이런저런 사고 소식을 접하면서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2001년 뉴욕무역센타인 쌍둥이 빌딩에 2대의 비행기가 자폭하는 911테러가 발생하였다. 그 당시 무역센타에 있었던 1만 4천명의 사람 중에 누군가는 빌딩 밖으로 대피하였고, 누군가는 빌딩 안에서 머무르다 사고를 당하였다. 그런데 911테러 때 사람들이 대피할 102분의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대피하지 못한 것은 비행기가 충돌해도 끄덕 없다는 홍보성 멘트를 과신했기 때문이다. 사고가 나도 끄덕없다는 과대한 신뢰가 대피할 기회를 놓친 것이다. 그래서 911테러 사망자 2,749명 중에 건물 안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이 1,500명이었다고 한다.
그들이 왜 건물 안에서 가만히 있다가 죽었는가? 그런데 르호보암이 이런 어리석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금 세겜에 모여 있는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으로 피신한 여로보암을 불러서 함께하고 있었다. 아버지 솔로몬이 건축할 때 공사감독을 맡은 여로보암은 능력있는 사람이었고, 또 하나님이 아히야 선지를 통하여 10지파를 주겠다고 약속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울 모든 준비를 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자신이 당연히 왕이 될 것이고, 자기 나라가 둘로 쪼개어 질 것이다는 위험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한 르호보암은 아버지와 함께 하였던 노인의 말과 또 자기와 함께 자라난 동무들의 의견을 묻는다. 그리고 동무들의 말을 들어서 자기의 강함을 드러낸 것이다.
르호보암이 자기의 힘을 과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르호보암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들은 것이다. 그런데 르호보암의 더 큰 문제가 있다. 르호보암은 아버지와 함께한 노인과 자기 친구들과는 의논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과는 의논하지 않는다. 그의 아버지 솔로몬은 왕이 된 후에 기브온에서 일천번제를 드리며 하나님을 찾았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자기의 힘으로 왕의 역할을 감당하려 하였던 것이다.
왜 르호보암은 하나님을 찾지 않았는가? 지난 1,2여전도회 헌신예배 때 설교한 것처럼 르호보암의 아버지 솔로몬이 왕이 되었다. 그리고 일천번제를 드린 솔로몬에게 하나님이 꿈으로 찾아오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말씀하였을 때 솔로몬이 말한 것은 열왕기상 3장 6절이다.
(왕상 3:6)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솔로몬은 내 아버지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하나님이 큰 은혜를 베풀어 주었다고 고백할 수 있었다. 그래서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과 같이 하나님 앞에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서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왕이 된 후에 전무후무한 지혜를 가진 아버지보다 더 강한 왕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내 아버지보다 더 강하고 뛰어난 왕이 되겠다고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르호보암은 그의 눈 앞에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도 없고, 또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은 아버지도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르호보암이 참된 왕이 될 수 있겠는가? 아이를 성공적으로 키우려면 할아버지의 재력, 어머니의 정보력, 아버지의 무관심이 있어야 한다. 이 이야기를 보면 자녀양육에 아버지의 역할은 가만히 있는 것이 돕는다는 것이다.
안타깝지 않는가?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조세핀 킴 교수에 의하면 아버지가 육아에 참여하는 경우 아이들의 사고력 및 두뇌발달 능력이 더 우수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애착관계가 좋은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더 안전하다고 느끼고, 새로운 환경을 탐색할 때 더 자신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신체발달도 아버지와 애착관계가 형성될 때 훨씬 더 건강하게 발달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아이가 쇼파에서 엄마 나 여기서 뛴다 하고 말하면 다친다 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빠는 그래 뛰어 봐! 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쇼파에서 뛰어내릴 때 아빠의 말을 들으면 훨씬 더 안정감을 가지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자녀양육에 있어서 두뇌발달, 정서발달, 신체발달에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자녀의 신앙발달(영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자녀는 아버지의 기도로 자라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축복하였고, 이삭이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축복하여서 믿음의 대가 이어져간 것처럼 아버지의 축복으로 자녀는 믿음의 대를 이어가는 복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는 어떠한가? 이기고 싶은 아버지가 아니라, 닮고 싶은 아버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버지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법을 배워서 건강한 믿음의 대가 이어지는 복된 가정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