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자유자로 종의 멍에를 매지 마라
01/22수(水)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갈 5:1).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고후 3:17). 주님이 내 안에 영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내 속에 인격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를 인식하는 삶 속에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영도 인격이고, 능력입니다. 죄짓는 능력입니다. 악한 영은 악한 인격, 악한 생명, 악한 능력입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으니 예전 습관으로 돌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인격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주님과 인격으로 통할 때 3대 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3대 적입니다.
▣우리의 적은 세상입니다.
요즘 핸드폰이 유행입니다. 어느 곳에서든 나이를 불문하고 사람들이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에 붙들린 것입니다. 돈, 물질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돈, 물질에 붙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의 문화를 활용할 수는 있지만, 종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세상의 것들에 관심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갈 6:14).
세상에서 죽었다는 것은 세상에서 끊어진 것입니다. 내 기준에서 볼 때 세상이 죽었고, 세상에서 볼 때 내가 죽은 것입니다. 이렇게 믿을 때 세상에서 살지만, 성령의 역사로 세상의 힘을 받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끊어졌다는 것은 세상의 에너지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내 말은 영이요 생명이니” 생명은 에너지입니다. 말씀을 읽으면 힘이 나는 것은 말씀으로부터 에너지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적은 정욕(육신)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갈 5:24). 세상은 죄가 역사할 수 있는 바깥 무대이고, 정욕은 내 안에서 역사할 수 있는 사단의 무대입니다. 예수 믿으면 육신은 있지만, 그것이 역사할 수 있는 옛사람이 죽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믿어야 합니다. 육신이 죽었다는 것을 믿을 때 몸의 행실(나쁜 습관)을 죽일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역사하시면 몸의 행실이 끊어집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빚을 지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육신에 빚을 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아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롬 8:12-13).
▣우리의 적은 마귀입니다.
우리를 병들게 하고, 귀신을 통해 불행하게 하고, 교통사고를 유발하는 마귀의 역사를 막아야 합니다. 언제 침투할지 모르기 때문에 방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을 끊을 수 있는 길은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골 2:14-15). 예수께서 십자가로 사단과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마귀의 가장 큰 무기는 죽음입니다. 이미 나(영혼)는 죽었다가 부활하였기 때문에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통치자, 권세들이 마귀의 역사입니다. 그들은 죽음의 공포를 주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마귀의 역사를 이기셨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은 사망의 권세에 눌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죽을 수 있지만, 우리의 영혼은 이미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주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갈 5:1).
And...
우리는 내일의 일을 걱정하며 온통 내일에 대한 계획 세우기에 몰두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일에 대한 염려로 마음을 온통 빼앗기지 말고, 그 마음을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십니다. 현재의 하나님은 현재에 임재하시며 우리가 현재로 돌아오시기 기다립니다. 나를 기뻐하시는 주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얼굴을 구합니다. “주님, 내 안에 오시옵소서” 그 고백 한 마디로 내 안에 계신 주님을 깨웁니다.
주님의 임재가 느껴지면 그분의 위대하심과 그분의 사랑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내게 염려되는 부분, 미래의 숙제 등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문제를 올리는 순간 내 마음에 평강이 찾아옵니다. 우선순위에 따라 혹은 시급성에 따라 주님이 일하심을 보게 됩니다. ‘좋으신 주님’ 흐뭇한 미소가 나옵니다. 문제의 앞과 뒤를 보시는 분, 나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우리에게 있는 문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문제는 내가 하면 됩니다. 내가 할 수 없는 문제는 주님께 넘기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께 넘기는 대신 그 문제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노력을 기울이려는 노력이 오히려 일을 꼬이게 만듭니다. 주님의 일은 주님이 하시도록 내가 하려는 노력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주님을 초청하면 우리는 더 즐겁고 효율적으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수많은 일이 산재해 있지만, 그 일에서 벗어나 주님과 함께 안식하는 그 시간을 누리는 것을 주님을 신뢰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그분으로부터 충분한 공급을 받아야 합니다. 대상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함께하는 시간보다 내가 해야 할 일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대로 믿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신뢰는 경외로 이어집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했기에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칠 수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진리이신 주님을 초청하여 주님과 함께 하루를 지낸다면 죄에서, 삶에서, 결과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성령이 계시니 나는 자유자입니다. 쉬지 않고 주님을 인식하니 세밀한 음성으로, 혹은 생각으로 깨닫게 하시거나, 감동으로 인식하게 하십니다. “주님”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입술로 주님을 찾습니다. 남은 인생 여정을 주님과 함께할 때 길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주님과 함께하면 날마다 삶 속에서 주님이 하신 일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많이 주십니다. 받은 선물을 하나하나 기억하며 참 세심하게도 챙겨 주셨구나~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통로가 되어주신 분도 감사합니다.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때 아주 가까이 계시고, 나의 모든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이 믿어집니다. 이렇게 날마다 주님을 체험하고 그분의 이름을 불려지는 것이 삶에서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믿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은 예수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 특히 기억되는 말씀은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현시대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어도 목숨 걸고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아주 단순합니다. 성경 말씀을 말씀 그대로 믿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신앙은 날마다 삶 속에서 능력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신학적 지식이나 성경을 많이 안다고 믿음이 커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릇은 커질 수 있지만, 믿음은 단순하게 말씀을 믿을 때 성장합니다. 말씀에 붙들려 사단의 종에서 자유한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주를 섬기는 것이 후회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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