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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거 말이오 : 남진원 시 전집 5- 2
산과 밤 안개, 용탄리 푸른 잎새여
남진원
바람도 살 속에 묻어 따스한 입김이 되고
오늘은 저 물소리마저
내 푸른 마음 갈피에 그윽한 어둠으로 앉아
순한 양이 되었나
아스팔트 길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내 어깨가 젖는
꽃잎 벙그는 이 밤엔
누구나 아름다운 여인이리
누구나 사랑스런 연인이리
저 나무들의 뿌리로 끊임없이 퍼올리는
봄의 촉촉한 기운이
밤안개로 퍼지고
고요와 어둠을 소금치는 용탄리여
네 손과 내 손이
말갛게 눈뜨는 이 밤
여기
내 죽어도 잊지 못할
물과 꽃과 사랑의 하늘이 숨쉬는
용탄리 산과 물안개
풋내 나는 것들아
닫혔던 우리들 귀를 열어 놓으면
의식의 맨 윗층에서 풀어내리는
방울방울
하늘 나라의 작은 노래들
이 모두
내 연한 잠결에 감기는
초록색 실타래인 것을,
내일 아침이면 새소리와 함께
마디마디 풀어질 분홍 빛
단추, 단추 들인 것을.
(1984. 3. 10. 『물레문학』3집)
산 길
남진원
산새
울음도
저물고
아이의
휘파람 소리도
멀어져 간
늦가을
산길
친구 잃고
바람이
혼자 돌아와
도토리 굴리며 논다
가랑잎 굴리며 논다.
( 1980. 11. 30.『태백문학』 4집 )
( 1989. 4. 15. 제5시집,동시집>, 『가을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
• 나는 1980년대에는 대체로 편안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교직 생활을 하며 아내와 아이들과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도 너무 편안하여 그랬던 것일까. 나도 모르게 스며드는 외로움을 떠나보내지 못하였다. 이렇게 하여 쓴 동시가 「산 길」.
외로움의 거리는 사람의 나이와는 관계가 먼 것 같다. 돌아보니, 이 작품은 1980년 11월 30일 [태백문예]에 실린 작품이다. 고즈넉한 산길. 바람에 불려 다니는 가랑잎의 모습에서 나는, 쓸쓸함을 느꼈던 것일까. 27세에 느끼는 외로움의 사치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이 벗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가랑잎과 바람과 친구 하며 노는 모습도 생각났다. 간혹 의견이 맞지 않으면 친한 친구와도 거리를 둘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 작품은 1989년 4월 15일 출간한 동시집 [가을 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 동시집에도 수록하였다.
산 길
남진원
꼬불꼬불 산길을 걸어가며는
향긋한 꽃내음 풍겨 나오고
산새들 노랫소리 들려옵니다.
친구와 손잡고 걸어가는
재미난 산길
꼬불꼬불 산길을 걸어가며는
시원한 바람은 노래 부르고
길 양편 나무들은 춤을 추어요
휘파람 불며 불며 걸어가는
즐거운 산길
( 1983. 5. 『소년』)
( 1985년 6월 13일자. <어린이강원>에 동요곡으로 뽑힌 글. 뽐은 사람: 춘천교육대학 유원 고수 )
산길을 걸으면
남진원
단풍잎 한들한들
손짓하는 산
날오라 정다웁게
손짓하는 산
산새도 비쭁비쭁
나를 부르면
내 맘은 바알갛게
꽃물이 들어
바람타고 동실동실
떠나갑니다.
구름타고 둥실둥실
떠나갑니다.
산 꽃
남진원
두근거리며
산 꽃이 피었습니다
오래도록
쓸쓸한 모습입니다
설레고만 싶은
나직한
눈물 하나 흘리고 싶습니다
불꽃으로 타지 않아도
두근거림 데워가는
작은 나라에 머물러 있습니다
억새꽃 우거진 길 따라
외로움 몇 송이
손 흔드는 나라입니다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산 나 리
남진원
산에 산에
홀로
피었네
산이
좋아
외로운
아이처럼
서 있구나
소슬한
바람에
흔들리며.
( 1984. 10. 1. 강원아동문학 9집 )
산나리
남진원
햇빛이 달궈놓은 돌다리 위에 앉아
조약돌 던지면서 찰방대던 그 시절
먼발치 산나리 웃음 그지없이 행복했지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산나물
남진원
하루 해 벗해 가며
저물도록
부르트도록
나물 뜯던 우리 엄마
자욱자욱 아린 손
얼마나 힘드셨을까
산보다 큰 보퉁이
나물 속에서 꺼내 주시던
파릇한 송구나무
입으로 벗겨내며
씹어보던 물맛 단맛
엄마는 땀을 닦으며
우릴 보고 계셨쟤.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산나물
남진원
해가 기울어야 묵직한 보따리를 이고 들어오시는 어머니, 작은 산을 이고 오시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산을 밟다가 오신 어머니 몸은 온통 푸른 산 냄새였다. 보따리에서는 깊은 산속의 참나물이 잠에서 깨어난 듯 와르르 쏟아져 나오고 나물 잎사귀에선 파릇파릇한 뻐꾸기 소리가 새어나왔다. 거기에 산의 싱싱한 기운이 안개처럼 퍼졌다. 나물 포기들 사이엔 어김없이 송구 몇개도 끼어 있었다. 동생과 나는 물오른 송구를 신들린듯 벗겨 먹었다. 산에서 자란 나무의 생기를 마시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면 몸이 간질간질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산나물 삶는 냄새와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잉크 방울처럼 잠 속에 풀어지고 있었다.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출판사.)
산다는 거 말이오
남진원
이보시게
산다는 것
즐겁고도 고달픈 인생길 아니것소
병들어 아플 때
같이 앓는 이 뉘 있는가
죽음에 들 때
손잡고 같이 갈 이 또 누구요
삶도 죽음도
혼자 가는 것
아니것소
그러니 천만 기쁨이라도
들뜨지 말고
억만 슬픔이라도
너무 시름겨워 마소
산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힘이 들겠지만,
크게 몇 번 웃어도 보소
울고 싶으면 크게 울어도 보소
희비애락 겪으며 살아가는 거,
누구나 겪는 우리 네 인생이라오
이게 사는 것 아니 것소!
살아봅시다
이게 사는 것
아니 것소!
산다는 멋
남진원
이 세태 꼴 좀 보게 이야기 좀 나눠 보세
인생이 무엇인가 산다는 것 뭐냐 말이여
즐겁고 또 고달픈 길, 그게 바로 아니것소
병들어 아플 때 누가 같이 앓겠는가
죽을 땐 누가 같이 손잡고 갈 것인가
혼자서 훠이훠이 가는 길 외롭고도 외론 길
천만 기쁨 들어설 땐 천하가 내 것 같다가
억만 슬픔 다가오면 정신줄도 놓고 살지
그러다 우리 인생사 해지듯이 지는 거야
내 것 네 것 같았지만 누구 것도 아닌 것들
욕심을 붙들다간 허망하게 가지 않나
그렇네, 무욕을 배워 저물도록 즐기세
(2021년 12월 22일 동짓날에)
산 도라지
남진원
산이
좋아
마음이
푸른 날
생각도
맑아지고
외로움도
맑아지면
산에
산에
청산에
하늘 우러러
소망 가득
등불로 밝힌
보라색
꽃등
( 1988. 11. 『강원아동문학』 13집 )
흙벽 집
남진원
한 노인네
누울만한
방 한칸
벽은
흙벽집
외롭지는
않겠다
가끔 바람이 찾아와
들여다보고
봄 되면
산도화 붉으리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산막의 저녁
남진원
나무 패고 들어와 양말 벗어 놓으니
저녁도 맨살 같다.
점점 어슴프레해지는 방안 공기가’
난롯불로 차츰 화사해지고
모처럼 나는, 따뜻해지는 산소처럼
앉았다.
무언의 한 때
조금씩 녹슬어 가는 시간이지만
이 흐릿한 방안을
그저 즐기며
살 수 있다니 ….
산목련
남진원
한나절
아릿아릿
졸음 겨운 하늘 아래
맴돌다
흰구름만
흰구름만 흠뻑 배인
한 그루
순백의 붕대
그리움을 엽니다.
( 1980. 12. 20. 한국시조시인협회 연간집, 『빛살들의 군무』)
첫 시집 (동시집), 『싸리울』, 1982. 12. 10. 아동믄에사)
( 1988. 8. 30. 제4시집<동시집>, 『풀잎과 코스모스에게 』)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산목련
남진원
산 목련, 스스로를 조용히 물들인다.
키 작은 영혼처럼 담백한 아름다움
그런데, 내 먼저 물들었네, 마냥 고요로워 졌네.
산목련 피었구나
남진원
대관령 굽이 굽이 지나는 길 섶에
산목련 피었구나
숨은 듯 수줍어 핀
산목련 몇 송이
보일 듯 말 듯
첫사랑 머금은
순정 같은 꽃
내게
스며드는
아련한
맑음의 순수
너로하여
내 가슴속에도 피어나는
하얀
그리움이어라.
( 2025. 12. 24. )
山門
남진원
산문에 들어서니
아름다워라
고요한
자태는
그냥
華嚴藏
한 걸음 또 한 걸음
발길 옮기니
멧새 소리
저리도
맑구나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山門
남진원
산문에
눈 내리니
마냥
즐거움이
이네
어느 계 색계이고
무색계인가
분별은
부끄러워라
산문에
눈 내리니
그냥
철 없네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山門에 들어서다
남진원
눈 내린
산문은
아름다워라
세상이
고즈넉하여
산문에
잠시 기대어서다
한 발 또 한 발
들어서니
모두가
진공묘유
기쁨 덩어리다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산방서정
남진원
호젓한 가을 산방 호롱불 켜놓으니
풀벌레 맑은 숨결 무릎 곁에 다가오고
세월에 스민 사람들, 하얀 물결 억새꽃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산방에서
남진원
인적이 끊기니 산속이 호젓하네
이따금 오가는 차량들의 기척소리
아무런 미련 없어도 고개 절로 돌려 진다
( 2019. 8. 15. 방터골에서 )
산방에서
남진원
가을빛을 데워서 차를 끓이다가
달을 벗 삼아 문 밖에 서니
달빛에 청산도 한 채 俗을 벗고 떠오른다
( 1991. 9. 1. 제6시집, 시조집 『내 인생 밭을 매면』 )
山房
남진원
가을빛이 좋아서 차를 끓이다가
문득 창에 어리는 빛, 문 열고 나가 서니
단풍이 한창이라고 산이 와서 안긴다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산방에서
남진원
가을 산방에서 찻물을 끓이다가
달을 벗 삼아 문 밖에 나서니
달빛에 청산이 우뚝 俗을 벗고 떠오른다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 시집속의 시조집 「나를 놓다」
산방에서
남진원
조용히
앉아 있으니
茶器에
찻물 흘러내리는 소리
찻잔
안에
매화 향기
한 송이
또
고요
한 송이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산방에 매화가 …
남진원
숫기 많은 봄 하루가 은근히 달아오르면
한낮 禪房이야 화두 물고 무거워도
바깥은 매화 때문에 천지가 멍멍해졌다
백년 향 은은한데 그냥 이리 지나치랴
고요를 박주 삼아 취하고 있는 차에
달빛을 벗한 그림자, 먼저 넋을 놓았으니…
(2020. 전자책 시조집 『꽃물 들어 아픈 날』,한국문학방송)
산방에 피는 매화를 보며
남진원
은은한 천년의 향 어이 그냥 지나치랴
고요를 장단 삼아 취하고 싶은 봄밤
달빛을 벗한 그림자, 먼저 넋을 놓는구나
(「강원시조 26집」, 강원시조시인협회 연간집. 2011. 11. 22. 송고 )
( 2025. 4. 5. * 나의 삶 나의 문학, 남진원문학전집 1권 ‘봄을 만나다’ 에 수록 ])
( 2025. 4. 7. * 나의 삶 나의 문학, 남진원문학전집 2권 ‘시조를 통해 봄을 만나다’ 에 수록 ])
산방에 피는 매화를 보며
남진원
은은한 천년의 향 그냥 이리 지나치랴
고요를 박주(博酒) 삼아 취하고 싶은 봄밤
달빛을 벗한 그림자, 먼저 넋을 잃었다.
( 2010. 「강릉문학』,18집 )
산방의 봄
남진원
세상 관심
슬그머니 밀어두고 나면
찻물
내리는 소리
조금씩 멀어지는
風磬 소리, 예사롭지 않다
어린 象牙 같은 풀이
돋아날 준비를 하나보다.
( 강릉시 소식지「제일 강릉 」, 2016년 3월호 )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산 벚꽃
남진원
산 벚꽃은 그 자태가 절묘한 음악이다
하늘 강 숨던 달빛 月魚되어 다시 오면
내 마음 불 켜진 안에 몰래 우는 音을 알까
( 2020 전자시조집 『꽃물 들어 아픈 날』,한국문학방송)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 시집속의 시조집 「나를 놓다」
산 불
남진원
폭염의 기후 변화 산불은 예감됐지
환경 오염 한 댓가로 받은 건 불의 재앙
더하여, 전염병 사태는 또 이찌할 것인가.
( 2022. 7. 20.)
산 비
남진원
산 비는 몽롱한 잠이다
새소리 몇 방울 날리고
산 빗소리 들꽃 향기에 휘어지고 만다
나는 멍하니 앉았다가 차 마신다
차 마시다가 또 멍하니 …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산사(山寺)
남진원
태고적 님의 자태
고요 속에 심어두고
목탁에 옥 굴리며
몸 헹구는 독경소리
빈 세월
마음 바늘로
빛을 뜨는 산사여
(1975년 작)
(「남진원의 문학 일생사」, 2018. 1.28. )
(2020, 전자책시조집, 『꽃물 들어 아픈 날』, 한국문학방송)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남진원의 문단 50년사. 제1권, p. 37.
아름다운 산사
남진원
고요한 산속
푸른 숲 사이로 걸어가면
목탁소리 또그르르
맑은 친구 얼굴처럼 달려 나오는 곳
아름다운 산사
스님의 독경소리 낭랑히 번지는
산사가 좋아요. 산사가 좋아요.
번잡한 도시 속
발걸음 뒤로 하고 찾아가면
범종소리 댕그러엉
우리 엄마 숨결처럼 평화로운 곳
아름다운 산사
법당의 부처님이 빙그레 웃음 짓는
산사가 좋아요 산사가 좋아요.
- 2015년 솔바람 회지에 발표 -
( 솔바람 회지에는 제목이 ‘산사가 좋아요’였다.)
산사가 좋아요
남진원
고요한 산속
푸른 숲 사이로 걸어가면
목탁소리 또그르르
맑은 친구 얼굴처럼 달려 나오는 곳
아름다운 산사
스님의 독경소리 낭랑히 번지는
산사가 좋아요. 산사가 좋아요.
번잡한 도시 속
발걸음 뒤로 하고 찾아가면
범종소리 댕그러엉
우리 엄마 숨결처럼 평화로운 곳
아름다운 산사
법당의 부처님이 빙그레 웃음 짓는
산사가 좋아요 산사가 좋아요.
- 한국불교아동문학상 수상작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산사의 종
남진원
숲에 들어서면
가만히 다가온다.
디 - ㅇ
영혼을
수놓는
영롱한 빛.
아름다운 마음을
소리로 들을 수 있다면
저런 소리일 거야
종소리는
아주
느릿느릿
산사의 숲속으로
어루만지듯
스며들었다.
산사의 종
남진원
문을 열고
산을 살포시 흔든다.
디 --- ㅇ
아름다운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다면
그런 빛과 소리일 거야
종소리는 각각
무처님과 비렁뱅이가 되었다가
서로 어울리면서
화안히 눈을 뜨고
아주 느릿느릿
풀과 돌들에게 다가가더니
앗!
자취를 감추었다.
- 제8시집. 할아버지 이뽑기 . 대교출판사. 1997년 -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산삼
남진원
암 걸린 내 친구가 산삼 먹고 병 고쳤다
분노 조절 안 된 현수 화내는 걸 잊었다네
산삼은 연희의 웃음, 우릴 자꾸 먹였지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산삼
남진원
암 걸린 외삼촌
산삼을 먹고 나았다.
우리 반 현서도
산삼을 먹고 나았다.
분노 조절이 안 되던 현서
다희와 친하더니
화내는 걸 못 봤다.
웃는 다희가 산삼이었다.
( 남진원문학전집 6권. 시집,<할머니의 등잔불> 수록.)
산소호흡기
남진원
아내가 산소 호흡기를 달았다.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생명의 방울들
옆 병실에서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는 환자들을 볼 때는
무심했는데,
아내의 파란 산소호흡기를 보고 있는 내내,
뭉클뭉클 아려온다.
부처님 오신 날에
애써 무심 한 줄을 잡아보지만
내 슬픔도 산소방울처럼 자꾸 뿜어져나오고….
( 2013. 시집<하늘에 기댄 아내>, 태원 )
산 속 빈집
남진원
풀꽃이
집을 지키는
산 속
빈 집
벌레 소리
소곤소곤…
누가
있을 것 같아
가만히
들여다 본다.
산골의 빈 집에 아름다운 풀꽃이 피어있군요. 주인은 어디 가고 풀꽃들이 남아서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벌레 소리도 소곤소곤 들리는 산속 빈 집의 모습은 참 고요하고 정다운 느낌이 듭니다. 누가 살았는지 어떤 생활을 했는지 궁금하겠죠. 그런 마음으로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군요.
산속 우리 집
남진원
청색 양철 지붕에다가 진흙으로 감싼
남향인 우리 집
아침엔 굴뚝으로 연기를 내보냅니다 난롯불에 익어가는 웃음소리도 폴폴 내 보냅니다
낮 동안엔 할머니 할아버지를 마루에 모셔놓았습니다
형이 학교에서 돌아올 쯤이면 개짖는 소리를 먼저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 대려오곤 하였습니다.
지금은 할 일이 없는 가봐요
낡아가는 모습도 비슷한 집 옆의 벌통이랑
함께 먼 산을 바라봅니다
( [오늘의 동시문학], 2013년 봄 )
( 2015. 4. 15. 남진원동시선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산속의 우리 집
남진원
우리 집은 산속의 집
나무와 숲과 친구가 되고 싶었거든
나지막하게 녹색 지붕을 한 우리 집은
숲속에 있는
요정들이 찾아오는 집이란다
밤이면 녹색 지붕에 별이 날아 내릴지도 몰라. 또 있어. 달이 지나다가 놀다 갈지도 모르거든.
아이 좋아라,
친구야, 너도 놀러 오렴.
수수한 메꽃이 반겨줄 거야.
잠들면
너랑 나랑 실컷 예쁜 꿈을 꿀 수 있을 거야.
산속 촌집, 우리 집
남진원
이따금 뱀도 들어와 쉬고
지네는 수시로 지나다닌다
아기 거미도 심심한가 봐
천정에서 쭈르르 내려오며 묘기를 부린다
빵 부스러기라도 방 바닥에 있으면
조그만 개미들이 떼로 몰려들어 부산을 떤다
초대하지 않았는 데도
절로 모여드는 산속 동물 가족
산 속에 산 속에 사는 우리 집
방안은 동물농장
(2023. 7. 18)
산수유
남진원
봄을 앉힌 나무 곁은 녹차 우러난 물빛이다
산수유 꽃이 피니 사방이 고즈넉해
열린 문 그대로 두고 속수무책 들여다본다.
(2020. 전자책 시조집 『꽃물 들어 아픈 날』,한국문학방송)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 시집속의 시조집 「나를 놓다」
( 2025. 4. 5. * 나의 삶 나의 문학, 남진원문학전집 1권 ‘봄을 만나다’ 에 수록 ])
( 2025. 4. 7. * 나의 삶 나의 문학, 남진원문학전집 2권 ‘시조를 통해 봄을 만나다’에 수록 ])
산 수 유
남진원
참선을 하다가
잔뜩 잡 생각에 든
나를
산수유가
들여다보고 있다
속수무책
들여다보고 있다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산신당
남진원
산신당은 산신 할아버지가 사시는 집이래
산신 할아버지는 나들이할 때 호랑이를 타고 다니신대. 단군왕검 보호하시던 바로 그 할아버지시래. 할머니는 절에 가시면 꼭 절 옆에 모신 산신당의 산신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셨다. 나는 절까지는 따라 갔지만 산신당 안에는 안 들어갔다.
“산신 할아버지 만났어?”
“그럼!”
“호랑이도?”
“그럼.”
나는 살그머니 올라가 산신당을 들여다보니 울긋불긋한 그림만 있었다. 무서워서 얼른 고개를 돌렸다.
할머니는 산신 할아버지도 만나고 호랑이도 만나셨다고 하셨다.
“도시로도 내려오시라고 하시지?”
그렇지 않아도 그 말씀을 드렸다고 하셨다. 그러자, 산신할아버지 호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대.
“시러배 잡놈들이 판을 치는 꼴을 안 봐도 다 아는데 거긴 뭣하러 가느냐? 여기 와 마음 바로 세우는 법 배우고 가야지!”
정말 만나시긴 하신 걸까!
( 1994. 10. 『아동문예』특선 동시. 10월호. 2024. 3. 21. 내용 일부 수정. )
( 제8시집, 할아버지 이봅기. 대교출판. 1997년)
산안개
남진원
보이기
전이다
뭉클뭉클
나무 태우며
밥 짓는 연기가 난다.
( 시집,『어초』, 2002. 8. 1. )
( 시집, 『장자의 하늘』, 태원출판사, 2004. 6. 30. )
산안개
남진원
보이기
전이다
뭉클뭉클
나무 태우며
밥 짓는 연기가 난다.
신선이 사는
어디쯤인가 보다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산에 가니 꽃들이
남진원
예뻐요
예뻐요
꽃들에게
칭찬을 들었어요
내려오는 길에
꽃들이 웃어요
더 놀다가 가래요
더 있다가 가래요
산을 오르면 산꽃이 피어 있어요. 예쁜 꽃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맑은 물소리는 산이 들려주는 노래 같지요. 산을 아끼고 꽃을 사랑하면 꽃들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거예요. 꽃만 아니지요. 새들이 하는 말도, 돌들이 하는 말도 들을 수 있겠죠.
산에 가면
남진원
산에 가면 걸으면서 온종일 바람, 곤충, 나무, 새들과 같이 섞이다가 돌아온다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산에서 살다 보니
남진원
돌을 보거나
숲을 보고 있으면
좋다
말이 없어서 좋다
쓰잘대기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피곤하던가
숲속의 나뭇잎 냄새를 맡거나
그냥 고요히 앉아 있는 것 만큼
좋은 일도 없다는 것을
나이 드니 알겠다
조용히
산에서 살다 보니
그저
보고 듣고 하는 일 모두
悅樂이다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산유화
남진원
한 세상
굽이돌면
외진
그곳에
있는 듯
없는 듯
순박하게 사는 꽃
생각이 맑아
고운 모습일레라
저 만큼
고요히
살아가누나.
( 1985. 11. 7. 제2시집 『나비, 청산의 나비』. 2024. 3. 21. 일부 수정 )
산이슬
남진원
밤새
마알갛게
맺힌
풀벌레 노래
그
몽오리
( 1985. 10. 1. 『강원아동문학』 10집 )
산이슬
남진원
마알갛게
마알갛게
맺힌
산새
울음
그
몽오리
( 1979. 8. 20. 물레방아 제2호 )
山 人
남진원
뉘 집인가 여기 와서 헐렁하게 앉았으니
나무도 산도 나도, 종일을 어리석다
날마다 어리석어지는 무재미의 이 재미
멍청한 바람 속에 깊은 맛 드는 지금
안개 물결에 나를 다 맡겨두고
빠졌다 솟구쳤다한다 참으로 일 없이…
(강호시조문학, 2006년. 2021년 개작 )
산제골 소
남진원
한낮이 되자, 책과 공책을 접었다. 울을 돌아 샘물터를 지나 동창이네 가게에서 신작로를 건너면 학교 앞 포플러 나무 옆 길이 나온다. 길을 따라 나가면 성큼성큼 벼들이 자라는 논이 반기고 그곳을 지나 작은 개울을 건너면 산제골 소가 다가왔다.
‘풍덩’
환한 웃음소리와 함께 물속에서 오후 내내 물개처럼 쏘다니며 놀았다.
물놀이를 하는 동안 산 밑 나리꽃은 종일 바람에 흔들리며 우리들을 지켜보았다. 그렇지, 그땐 나리꽃도 선들바람도 모두가 피붙이였다.
산제골 沼
남진원
오늘처럼
펄펄 끓는 날이면
고향의 푸른 물결 그립다
물장구 치고
물개처럼
마냥 물속을 헤엄치던 산제골 沼
까르르 호호호 친구들의 웃음도
첨벙대는 물방울에 날아다녔지
코가 노래지도록 놀다가
집으로 가는 길
키다리 포플러 나무는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고
벼 이삭 익어가는 냄새가 고소하였지.
잠든 아이들 여름밤 꿈속엔
별들도 반짝반짝 쏟아졌을 거야.
( 2025. 7. 27. )
산제골 소
남진원
한낮이 되자, 책과 공책을 접었다. 울을 돌아 샘물터를 지나 동창이네 가게에서 신작로를 건너면 학교 앞 포플러 나무 옆 길이 나온다. 길을 따라 나가면 성큼성큼 벼들이 자라는 논이 반기고 그곳을 지나 작은 개울을 건너면 산제골 소가 다가왔다.
‘풍덩’
환한 웃음소리와 함께 물속에서 오후 내내 물개처럼 쏘다니며 놀았다.
물놀이를 하는 동안 산 밑 나리꽃은 종일 바람에 흔들리며 우리들을 지켜보았다. 그렇지, 그땐 나리꽃도 선들바람도 모두가 피붙이였다.
산중문답
남진원
말 건네면 우두커니 강을 보고 딴짓해도
정작 내 외로울 땐 네 먼저 다가오지
늘 옆에 숨쉬고 있는 어리숙한 벗이었구나
너와는 묵묵부답 말없는 대화지만
고요로운 이 無虛, 외려 좋아 앉았으니
아팠던 시절 인연도 빛나는 줄 알겠다
( 2012. 12. 15. 『한울림문학』 10집 )
산중 살이에서
남진원
구름 덮인 산중에
찾는 이
없는데
뻐꾹 뻐꾹…
감자 씨 놓듯
찾아드는
뻐꾸기 소리
고맙구나
풀 뽑던 허리를
몇 번 씩 편다.
( 2024. 5. 21 )
산 집(山家)
남진원
안개 저, 물결에 스스로를 맡겼네
멍청한 허공 속에 깊은 맛 드는 지금
빠졌다 솟구쳤다한다 참으로 일 없이…
(2020. 전자책시조집, 『꽃물 들어 아픈 날』, 한국문학방송)
산책
남진원
우리 집은 물결이다.
새소리의 물결
줄지어 선 해바라기 꽃물결
장독대 빨강 노랑 분꽃, 수줍음의 물결
멀리서도 눈을 떼기 어려운 달맞이꽃, 미소 물결
수염 내밀며 자랑하는 옥수수 물결 …
머루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뽐 쟁이 머루 덩굴 물결
해 기울 무렵,
저녁을 맛있게 먹고 나온 우리 가족
둥둥 물결에 떠밀려 다녔다.
( 2015. 9. 17. 제14시집 『 산골에서 보내온 동시』, 좋은 꿈 ),
산촌 수첩
남진원
어둠이 엷어지자 고요가 반짝이고
감성의 새소리에 트이는 하늘 귀, 귀
이 산촌 둘레 길마다 패랭이꽃 만발했다
맹렬한 한낮 더위 때 잃고 저물 무렵
팽나무 그늘 사이 평온이 깔리고
바랄 것 없는 바위들 더 자숙해 어질다
뉘 부르는 소리인가, 내딛는 발길 앞에
가지런히 모여들어 별이 되는 물의 노래
순해서 더 막역한 벗, 천연의 이 모습
자리 펴고 누웠으니 휴식은 평안한 消失
박쥐가 내던 길에 반딧불이 꿈을 꾼다
내 유년 크레용 속엔 동화처럼 뜨는 달
( 2022. 8.10 )
산촌에 눈이 오니
남진원
눈이 자부룩하니 길이 묻힌다.
사립문 없고 보니 문 닫을 일도 없다
애초에 없던 길인데 지워진 듯 어떠리.
눈 오면 반가운 이에게 전화하자 약속했는데
정작 마구 눈이 오니 입과 손 다 묶였다
행여나 이 즐거움이 새어날까 봐 서지.
산촌에 눈이 오니 신흠의 詩句 떠오른다
‘柴扉를 여지 마라, 날 찾을 이 뉘 이시리.’
이 寂寂 백설의 그윽함 밤 깊도록 함께 하네.
거문고 한 두 줄은 눈(雪) 속에서 虛로 듣고
佳女는 마음 밭에 情으로 律 띄우니
내 곁에 정겨운 친구는 薄酒 한잔 최고지.
산촌의 밤
남진원
가을밤 귀뚜리
섬돌 밑에 깔아놓고
초가지붕 한 귀퉁이
글썽이는 달을 이고
산기슭 바람 벗삼아
홀로 지새 우는가
( 1979. 10. 20. 물레방아 제4호 )
산촌의 밤
남진원
좁쌀 같은 작은 별들
동전 같은 달이 뜨고
단잠든 아기새들
고요만 깊어갈 때
졸졸졸 물소리들만
흘러 흘러 내린다..
( 1979. 10. 20. 물레방아 제4호 )
산촌의 밤.
남진원
좁쌀 같은 작은 별들
동전 같은 달이 뜨고
단잠 든 아기새들
고요 깊어 가는 밤
돌 돌 돌 밤 물소리만
홀로 흘러 나린다.
( 남진원 아동문학회보 『물레방아』제4호. 1979. 10. 20.)
산촌의 봄
남진원
앳된 처녀 붉어지던
얼굴빛처럼
마을은 복사꽃, 꽃 색으로
물들었다
산이 두른 연두색 병풍
조금씩 더
짙어지고
산사의 종소리는
봄이 묻어
날아든다
꿈에 취한 듯
마을의 봄
주위가 자부룩히
모두들 조용한
戀情에 빠졌나 보다.
( 2024. 4. 14 )
山村 日記
남진원
별 총총 들어차고
새소리 통통하게 여문
네 눈부신 음성들이
풀잎에 업혀 나오는 이랑
흙냄새
살찐 새벽도
빛이 되어 녹고 있다
몇 천년 응달에 쌓인
비애를 불태우고
한나절 꿈을 다져
햇살 덮는 바쁜 오후
맛있는 내일도 한 줌
소중스레 덮인다.
씨알 뿌린 자리
믿음 묻은 손등 위로
다독이는 소망 한떼
일렁이는 꽃바람이야
동구밖 노을도 익어
알알 여문 저녁 길.
( 1991. 9. 1. 제6시집, 시조집 『내 인생 밭을 매면』)
( 2003. [현대시조창작법] )
산행
남진원
모처럼 날이 따뜻하니 저절로 발이 산길로 향했다
낼 모레가 입춘이라서 그런가
새가 없다
고요하니 아름다움도 최상이다
물은 맑아서 마음이 저릴 정도이다
몸을 내 마음대로 흔들며 걸어올라 갔다
(2014년 강원펜문학)
산 꽃
남진원
굽이돌면
외진
그런 곳에
있는 듯
없는 듯
순박하게
사는 꽃
맑아라
고운 모습일레라
거리 두기, 저만큼
살아가누나.
고요히
고요히
산딸기
남진원
뒷산에는
산딸기가 익었다.
가쁜 숨 몰아쉬며 오르는 길
노랑때까치 소리
숲 사이로 퍼져나가고
황톳길에는
황톳길에는
풋 여름 냄새가
쏴 – 몰려왔다.
( 2015. 9. 17. 제14시집 『 산골에서 보내온 동시』, 좋은 꿈 ),
산방 서정
남진원
산방에 밤이 깊어 등 밝히고 앉았으니
풀벌레 작은 소리 무릎 곁에 다가오고
더 없이 평화로워라 思無邪 思無邪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산방에서
남진원
헌 난로 같은 내가
깨다가 졸다 보니
고요가 舊友인 냥
커피 향에 녹아든다
무심히 깃드는 평화
이 수수한
삶 한 끼
산수 공부
남진원
아버지게서 날 앉혀놓고
글을 가르쳤다.산수문제는 왜 그리 어려웠는지....
문제를 풀어주셔도
난 하나도 몰랐다.
그래도 아버지는 '알았어?'하고 물으면
나는 몰라도 '예'하고 대답했다.
다른 문제를 내 주시면
난 전혀 깜깜했다.
우두커니 앉아 있으며
금세 불똥이 떨어졌다.
또 문제를 풀어주시면서 '알았어?' 하고 물으면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무조건 '예'였다.
몰라서 연신 두들겨 맞아도
터져나오는 울음을 삼켜도
'예' '예' 이 하나 만은 열심이었다.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출판사.)
산수유
남진원
오가던 요양원 뜰 산수유가 피었구나
연노랑 예쁜 꽃잎 귓속 말 할 것 같아
한참을 바라보다가 가던 발을 옮겼다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산안개
남진원
바람이 때맞추고 물빛이 눈을 맞춰
해 비치니 놀라워라 산은 온통 뜻의 나라
큰 이치, 작은 물방울로 말하는 것 듣는다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산안개 자욱한 날
남진원
간밤에 내린 비로 산안개 자욱한 데
뜰에 핀 코스모스 누굴 닮아 저리 곱나
바람결 해맑은 모습 내 안에도 피었다
( 2024. 9. 18 )
산제골 소(沼)
남진원
여름이면 산제골 소는
엄마처럼 가슴을 열어놓고
아이들을 끌어모았다
어쩌다 먼저 가서
혼자 멱을 감을 땐
검은 물빛에 맘이 켕기었지만
까르르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뜨던 날은
방죽에서 소(沼)까지 한달음쳤지
햇살에 달구어진 건
우리들 몸만 아니었지
뱀장어와 자라를 감추어놓고
으스대던 자라바위는
물장구 소리에 가슴이 더 넓어지고
산나리꽃은 얼굴이 더 짙어졌다.
해가 뉘엿뉘엿 산마루에 걸릴 때에야
풀을 듣넌 황소가
음 머 --
아이들을 하나 둘 집으로 불러들였지.
우람한 문래산이
우리들에게 선물로 준
제일 멋진 수영장이던
산제골 소(沼).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출판사.)
산제골 소(沼)
남진원
문래산 밑 산제골 소
수영장이었다
개 헤엄, 개 다이빙
물장구치기
모래찜질
하루 해가 짧았다
산촌의 밤
남진원
바람은 바람끼리
물은 물끼리
이때 쯤이면
귓속말을 한다.
나무는 나무끼리
꽃은 꽃끼리
이때 쯤이면 서로
몸을 기댄다.
별이 몇 개
문을 열고
살며시 내려다보는
꿈을 꾸듯
조용한
시골 밤마을
달님은 혼자 화가가 되어
시골집 봉창에
밤 깊도록 동양화를 그리고 있었다.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출판사.
살구꽃 필 때면
남진원
살구꽃 피는
봄 오면
멀리 간 친구가 생각나
어쩌다
마주치고
얼굴이 붉어지던 아이
지금은 무얼 할까
어떻게 지내는 걸까
갸름하고 하얀 손이
아름다워서
살며시 쥐어 보고 싶던 아이
살구꽃 피면
자꾸 생각나는
눈이 맑던 아이
(자구 수정 “ 2025. 9. 28.)
( 1992. 5. 6. 제7시집, 동시집. 『선생님의 구멍난 양말』)
( 2015. 4. 15. 남진원동시선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살다 보니
남진원
살다 보니
지나침 많은 한 생도
의미 있고
괴로움 더한 날도
보배롭구나
지난 날
탄식해 본들
무엇하리
저간의 자랑거리보다
허물이 더
많은 법
내 모든 허물이
이젠
나의 스승이니
고마울 뿐이네
하여,
오늘 바보처럼 살아가는
즐거움이 있어서
내일 또 어리석더라도’‘ 행복하네.
살다 보니
남진원
지나침 많던 生도 살다보니 의미 있고
괴로움 더해진 삶도 살다보니 보배롭구나
지금이 내 최고의 삶 나날 나날이 기적이네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살다 보면
남진원
살다 보면
참으로 속 타는 일들이 생길 때가 있다
난감할수록 나는 다짐한다
더 느긋해지자 느긋해지자 …….
살덩이
남진원
아픔을 먹고 사는 날은
아픔이 내 밥이다.
그래,
상처는 늘 내 살덩이지.
살맛 나는 일
남진원
버스 칸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밭에 뭘 심었냐고 묻는다
“심지는 않고 키우기만 했어요”
“무엇을 요?”
“풀입니다.”
사람들은 웃지만 나는 진심으로 대답한 것이다.
초가을 풀밭에 나가면
기분이 좋다
메뚜기 여치 풀무치들이
마구 튀어 오른다
풀밭을 만들어줘서
반갑다는 인사를 그렇게 하는 모양이다
저들의 모습을 보니
살맛이 났다
( 2024. 9. 9 )
살 멋 났다
남진원
연일 숨쉬기 힘든 폭염에 시달렸다
오르내리는 35도에
도로는 40도를 넘는 날씨
몸은 이미 기진맥진하여,
행여 외식이라도 하게 되면
겁부터 났다.
8월 4일 오늘은, 27도를 오르내리는 날씨
에어컨은 종일 틀지 않았고
문만 앞뒤로 활짝 열어놓아도 시원하였다
그래, 살맛이 났다.
아니, 살맛이 나는 게 아니라
한층 엎그레이드 된
살,
살 멋이 났다.
( ※이날은 가톨릭 출판사 내에 있는, 박홍근 아동문학상 운영위원장에게 추천서를 써서 보냈다. 충주위 권태응 아동문학상 심사위원으로 1차 심사표도 보냈다. )
임대주택
남진원
살면서 그 누구도
콧대
높일 일 아니구나
살면서 그 누고도
기죽을 일도 없구나
부자도
가난뱅이도
모두,
잠시 임대 주택에 살지 않는가
지구라는
무상 임대주택
살아가는 일
남진원
사람살이
병들고 다치면 고통스럽고
기쁘면
즐거워해도
본래
無一物이라
기실, 사람살이,
삶도 죽음도
없는 것인데
이렇게
보고 듣고 먹고 마시고 걸어가고 잠자는
이 허깨비 같은 물건이
있으니
그저 오롯이
감사할 뿐이네.
(2024. 2. 5)
살아오면서 …
남진원
살아오면서,
내 평생 한번이라도 자유롭게 쓸 돈 있었나,
날마다 빚에 허우적대며 생각도 빚더미에 매달리더니…
지금은 쓰고 싶어도 쓸 곳 없어 못 쓰니
부러워할 일 없고,
옷은 남아돌아 무엇부터 재활용 하는 곳에 보내나, 궁리하고
먹는 것은 냉장고에 오래 둔 것 버릴 것을 걱정하고
허름해도, 비피하고 등 따습게 지내며 잠잘 곳 있으니
행복하고
병들어 죽는다 해도, 허망해진 몸뚱이 사라지는 것이니
알뜰살뜰 살피지 못한 게 미안할 뿐,
걱정될 게 무엇인가.
사는 게 꿈이라 해도
꿈 또한 무량겁의 복락,
어찌 함부로 할 수 있으랴.
(2018. 2. 7.)
(남진원 문학일생사 2-1)
살아있음을 위해 견뎌내며
남진원
무지했기에 선택한 흡연,
걸어가면서도 뻑뻑
아이들과 집사람이 있는 방안에서도 빡빡
30년 태운 담배,
그 연기로 망가진
폐
의사의 최종 판결–폐기종
호흡곤란을 겪으며
보낸 세월이 벌써
22년이라니,
강의하다가 호흡곤란이 오면
급히 화장실에 가야한다며
화장실에서 힘든 호흡조절을 하기가
몇 번이었던가.
강원아동문학회장4년,강원시조시인협회장2년을 하고 곧이어,
강원문인협회 회장4년을 마무리하는 해가 되었다.
그러니10여년의 세월을 문학을 위해 봉사하며
호흡곤란 속에 견뎌내었다니 ......
주위에 있는 따뜻한 문인들의 배려가 없었던 들
될성싶은 일이었던가!
덕분에,
망가진 폐를 토끼의 간처럼
몸에 달고 다니면서
부단히도 달려왔구나
.
살고 죽는 일?
숨 쉬면 살고
못 쉬면 죽으니
이처럼 간단한 일인 줄 몰랐다.
오늘도
살아있음을 위해 하루를 견뎌냈구나
기적 같은 하루를
또 살아냈다니…
고맙다
또 고맙다.
( 2024. 5. 25 )
삶
남진원
더운 것도 아니더이다
추운 것도 아니더이다
젖은 것도 환하더이다
마른 것도 어둡더이다
묽은 똥 구린내 나도
고맙다이다 고맙더이다
냄새를 맡았읍지요
짠 내 매운 내 단 내 고소한 내
무 맛보다 더한 맛이 세상에 없습니다만
자꾸만 쓸쓸해지는 맛도 웃음 섞어 두ᅟᅡᆻ읍지요.
(* 1988년 11월 30일. 강원문학)
삶
남진원
천만 구비 애환이어도 空手來空手去
한 줌 재 된다해도 무슨 한이 있으랴만
한번 간 정든 이들은 또 어디서 만나랴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삶
남진원
소매를 걷어붙이면
네 머리칼도 싱싱한 날
단칸방도 한결 넓어 뵈고
마른 심장도 퍼렇게 젖겠다.
근심이야
걱정이야
둘둘 말아
콱, 흙 속에 끌어묻고
저승 길목에서
그때
서러운 눈물
팍 불지르자
지금은 푸르도록
힘줄 세워
부르튼 가슴
신명나게 살아갑세. .
( 『교우』. 1985년 10월호 )
삶
남진원
먹거리 때문에
일하고
먹고나면
싸고
그 사이에서
웃고 울고 하다가
한 줌 재가 되어
가는 게
삶이야
이 존재들의
허무
( 2025. 9. 28. )
삶
남진원
지나침도 많았고 모자람도 많았구나
모두가 의미있어 돌아보니 다 보배라
저간의 자랑거리 보다 허물들이 반갑네
오늘, 바보 같은 즐거움을 얻고 나니
하루가 하루가 다, 기적이고 기쁨이다
내일 또 어리석어도, 행복함이 있겠구나
( 2023. 1. 현대시조 151호 )
삶
남진원
즐거움도 고통도
모두 내 것이었지만
내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러니
살고
죽음이
또 어디 있으랴
時空이 비로자나요
처처가 불에 매달린 고드름이다
( 2023. 12. 관동문학 36집 )
나이 든 삶
남진원
말수도 줄어들고 말 크기도 작아지니
화내는 소리에도 마음이 무덤덤
세상이 애매해지고 난 무지렁이 되었지
( 2022. 6. 1)
삶
남진원
삶은 가끔 迷妄인 채로 우리 앞에 나서지만
헛되지 만은 아닌 것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단 1년 만이라도
단 하루 만이라도
단 1시간만이라도
사랑하며 사는 길은
아픈 것도 웃음의 꽃길
푸른 풀처럼
여름 뙤약볕 햇살에도
뿌리를 땅에다 박으며
의연한 나무처럼
겨울 찬바람 눈보라 속에도
봄을 기다리는 설렘으로
그렇게
살면 되리니
살면 되리니
사랑하며 사는 길은
괴로움도 행복의 길
사랑하며 사는 길은
희망으로 사는 길, 영원을 사는 길.
삼나무 숲 새 둥지
남진원
삼나무 숲은 신비한 놀이터
들어서자마자 보물찾기가 시작되었지
씩씩한 병정처럼 줄지어 푸른 삼대궁 사이
요리조리 비집고 눈을 굴리면
어디에 숨었지?
노래만 들려주는 깔깔새
드디어 찾았다
깔깔새 둥지
어미새 없는 둥지 속엔
탐스럽고 뽀얀 새알 두어개
콜콜 잠자는 듯 누워 있었지
한참을 휘돌아나오면
낯선 세상에서 살다온 아이처럼
방향을 잠시 잃었지만
새 둥지를 들고
삼대밭을 나오면
전쟁에 승리한 장군처럼
뽐내었지
삼나무 잎이
무서운 대마초 잎인 줄
그때는 아무도 몰랐지
깔깔새 둥지를 숨겨놓고
우리를 꾀던 삼나무 숲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출판사.)
삼베 적삼
남진원
深深 산 도라지꽃 하늘 바라 높아질 때
뻐꾸기, 늘인 목청 점점이 멀어지고
밭매던 우리 엄니야, 땀 물 배던 삼베 적삼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삼월
남진원
설레는 발걸음
내닫는 강둑 너머
송사리 송사리들
물줄기를 운전하고
갯가엔 갓핀 버들개지
까르르르 웃는다.
( 1979. 8. 20. 물레방아)
삼월
남진원
아직은 봄이라지만
구름 같은 날이다
엷은
햇살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길 위론
추운 노래가
또 한차례 지난다.
( 첫 시집(동시집), 『싸리울』1982. 12. 10. )
3월에 내리는 눈
남진원
3월도 중순인 15일 밤부터 비가 눈이 되어 내렸다.
아침에 내 눈을 뜨게 한 눈이었다.
밭 위로 멀리 흰 눈에 덮인 밭은 다가오는 봄을 맞기 위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멀리 삼각산 봉우리는 안개 같은 짙은 회색에 잠겨 어슴프레하다. 그래, 1,2월 가물더니 끝내 잊지 못한 눈은 3월에 들어서 찾아오고 있다.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식물들의 생명수가 되려고 천천히 땅을 어루만지며 내린다.
3월에 내리는 눈은
어질고 착하였다.
( 2018. 강원펜문학 )
3월에 내리는 비
남진원
삼월에 내리는 비는
봄비다
바거 내린다
처음 맞는
봄비
오늘은 종일 비오는 모습을 보고 있을 거다
오늘은 종일 비오는 소리를 듣고 있을 거다
( 2024. 7. 26. )
3월의 나무
남진원
나무야
겨울 동안 너무 추웠지
이제 봄이 오고 있어.
작은 숨소리도
자꾸
커지지
나들이 갈 때처럼
들뜬 마음을
애써 참고 있는 모습 좀 봐
하 - 나 둘
하나 둘
바람이 네 팔을 조심스레 잡고
운동도 시키잖니?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빛깔이
뿌리에서부터 가지 끝까지 퍼져 나가고
연한 연두색 아지랭이가
네 몸에서 피어나는 걸
알고 있니?
널 보고 있으며
외점박이 까치처럼
내 마음에도 은빛 날개가
돋아나는 걸......
( 제8시집. 동시집 『할아버지 이뽑기』. 1997.9.25. 대교출판)
3월의 남대천
남진원
고요하던 남대천이 개학날 같아졌다
여기저기 몸을 서로 부딪치고 소란스러워졌다
‘조용히 해 보세요’
이런 내 말엔 들은 척도 안 한다
앞다퉈
입을 열고
배달한다
“야아, 봄이다! 봄이야!”
( [오늘의 동시문학] 2013, 봄 )
( 2015. 4. 15. 남진원동시선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