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청나라 戊辰년(1748) 윤7월 乙丑일 巳시 巳월장
(1국 밤귀인)/ 점단: 풍수/ 출전: 『목부점험(牧夫占驗)』
① 왕목부가 말하였다. 용식(庸寔) 칠형(七兄)이 이녕(以寧) 조카의 자용(子容) 계은(溪隱)의 묏자리를 위해 풍수를 보러 갔다. 이미 좌향(坐向)을 결정하고 봉인을 하였는데, 나에게 이것이 어느 향(向)인지 점을 쳐보라고 하였다.
② 점괘의 수리를 자세히 살펴본 뒤, 나는 이전 사람들이 내룡(來龍)·산(山)·향(向)을 살피던 방법에 따라, 간(幹)과 지(支)의 상신이 서로 합하는 것을 기준으로 판단하여 말하였다.
-> * 내룡(來龍) : 혈처로 들어오는 산줄기, 산은 좌(坐), 향은 향(向)이다.
③ 조룡(祖龍)은 서남쪽 곤방에서 들어오고, 용맥이 떨어져 나오는 곳은 손방에 있으며, 을산(乙山)에 앉아 신향(辛向)을 취하고 卯酉를 더한 좌향이다.
-> * 조룡(祖龍) : 풍수에서 산맥의 근원, 즉 산줄기가 시작된 근본적인 맥.
④ 이녕의 조카가 봉인을 뜯어 확인해 보니, 과연 점에서 말한 것과 일치하였다.
⑤ 칠형이 말하기를, “용맥과 산향이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은 묘를 써도 되는 자리입니까?”
⑥ 내가 말하였다. “구진이 辰에 있어 산을 나타낸다. 산은 높고 험준하지만, 혈(穴)은 오히려 산 중턱의 평평한 곳에 있다. 이는 등사가 중전에 있고 丑이 평평한 땅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⑦ 이 과(課)는 비록 복음으로 고요한 형상을 보이고 있지만, 묘를 쓸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
⑧ 태음(戌)이 말전에 있어 간상(辰)을 충하고 지(支)를 형(刑)하며, 戌 가운데에는 또 은밀한 귀(鬼:辛)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⑨ 혈(穴)에 丁이 타고 있으므로 비록 정감이 있고 생동하는 모습이 있지만, 이곳에는 이미 사람이 묘를 쓴 흔적이 있는 듯하다. 사람이 오지 않았다면 어찌하여 丑이 귀묘(鬼墓)가 되어 겹겹이 쌓여 있고, 그것이 지상에 나타났겠는가?
-> *원전 ‘穴乘丁’으로는 정확한 해석을 할 수 없다.
⑩ 이녕의 조카가 말하였다. “이곳의 이름이 정가분(程家墳)입니다.” 하나하나가 모두 점에서 말한 것과 들어맞았으므로, 모두 감탄하며 탄복하였다.